1




전쟁은 끝났다, 하지만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


사령관은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눈앞에 펼쳐진 황무지를 바라보았다.

까맣게 타버린 땅, 바짝 말라 그 흔적도 찾아 볼 수 없는 나무들만이 가득한 이곳은

도저히 과거에 숲이였던 곳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하아…”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짚었다. 

지구를 차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철충들이 모든 것을 황폐화 시키고 떠난 그 순간부터, 

그의 머릿속 어딘가에서부터 시작된 기묘한 두통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른 곳으로 가보자.” 


사령관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타고 있던 작은 바이크에 시동을 걸었다. 

굴러가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낡아빠진 바이크가 힘겨운 배기음을 뿜으며 털털거린다.

힘을 줘 스로틀을 당기자 드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마른 땅을 갈아낸 바퀴가 흙먼지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얼굴에 부딪히는 겨울 바람이 따가웠다.


"제발…"


아직 희망을 버리긴 일렀다.

이 지구상 어딘가에 오염되지 않은 땅이 남아 있을것이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2




구름 사이로 비친 달빛이 길을 밝히고 있는 판자촌으로 남자 하나가 바이크를 질질 끌면서 들어오고 있었다.

하루종일 돌아다녀 지칠대로 지쳐버린 사령관이었다.

그는 짓다만 집들이 늘어선 길을 따라 걷다가 차고로 사용하는 작은 천막앞에 멈춰섰다.

천막이라고 해도 거의 모포 수준의 빈약한 것이였지만 바이크 하나 놓는데는 충분했다.

그는 던지듯 바이크를 내려놓고 얼굴에 떠오른 힘든 기색을 지웠다.

몸이 좀 힘들다고 해서 지금까지 쌓아온 희망을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다녀왔어…”


사령관은 그렇게 말하며 문을 열었다. 하지만 조용하다. 

항상 그를 마중 나오던 리리스도 보이지 않았다. 

항상 바이크의 배기음이 들리기가 무섭게 뛰쳐나왔던 리리스가 보이지 않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리리스? 나 왔어..”


사령관은 다시 그렇게 말하면서 팔을 뻗어 전등에 달려있을 줄을 더듬었다. 

불도 켜져 있지 않은 방 안,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는 고요함이 사령관의 어깨를 짓눌렀다.


“뭐야…”


사령관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줄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낡은 등이 깜빡거리며 켜졌다. 

집 안은 아무런 일도 없는 듯 조용했지만, 

바닥은 그가 나갔을 때와는 다르게 심하게 어질러져 있었다.


“....”


사령관은 여기저기 늘어진 잡동사니를 밟지 않도록 조심하며, 안쪽을 향해 걸어갔다.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식은땀이 맺힌다.

오르카 호와는 다른 작은 집안, 그는 금세 복도 끝에 있는 방에 도달했다.

작게 심호흡을 한 그는 문고리를 잡고, 그것을 돌렸다.


“...리리스?”


단숨에 문이 열리며 리리스의 방이 드러났다. 

평소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리리스답게,

잘 개켜진 이불과 얼마 없는 짐들이 방 구석에 가지런하게 쌓여 있었다.

하지만 한번 자라난 불안감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리리스! 어디있는 거야!!”


그는 미아처럼 방안을 맴돌며 소리질렀다. 닫혀있던 서랍을 열고 침대보를 들추었다.

애써 정리한 물건들이 흩어져 아무렇게나 나뒹굴었다.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작은 틈새까지 들추던 사령관은

문득 전에는 보지 못했던 흰 종이를 발견하고 우뚝 멈춰섰다.


그것을 집어든 사령관의 손이 점점 떨려왔다.

엉망이 된 방 한가운데 서서 그는 그것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리리스의 글씨체로 쓰인 편지의 첫 문장은 “안녕히 계세요, 사령관님” 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3





빈 참치캔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어두운 방의 한가운데에는 마치 시체처럼 바짝 마른 사령관이 앉아있었다.

작은 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방 안, 

그곳을 밝히는 유일한 조명은 사령관의 콘솔에서 세어나오는 불빛이였다.


[삐비비빅 삐비비빅]


사방이 닳고, 액정까지 조금 부서져 있는 콘솔이 연신 울리며 시끄러운 호출음을 뱉어냈다.

하지만 사령관은 그것에 눈길조차 주지 않고 멍하게 허공을 응시했다.


판자촌의 모든 문을 열어보고, 길게 이어진 황무지를 따라 달렸다.

하지만 그녀의 동생들도 리리스의 행방을 알지 못했고,

악을 써서 강행한 열흘간의 수색도 성과가 없었다.

마침내 그는 다시는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삑삑삐비빅]


콘솔이 재촉하듯 울린다.

비척거리며 그것을 집어들자 ''화성 테라포밍 완료까지 335일','T 지역 수색결과' 

따위의 복잡한 글자가 어지럽게 시야에 잡혔다.

그는 그것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침대 위로 던졌다. 

시끄럽게 울리던 소리가 잦아들고 곧 어둠이 찾아왔다.






4



언제부턴가 소완의 손에는 손때가 타 반짝거리는 낡은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그것은 종종 칼질을 방해하곤 했지만 그녀가 그 반지를 빼는 일은 없었다.

사령관을 위한 고기를 자르던 그녀는 문득 처음 그것을 얻었을 때를 떠올렸다.




“지금 어디로 가시는 것이옵니까?”


리리스는 길을 막고 서 있는 소완을 보며 눈을 좁혔다. 

항상 자신을 방해하는 연적, 건방진 요리사.


“흥, 그걸 네가 알 필요는 없을 텐데?”


“아무리 리리스양이라고 해도 지금 먼 거리를 가는 것은 무리이옵니다.”


“...나도 알고 있어.”


겨울바람에 휘날린 머리카락이 얼굴을 때렸다. 

리리스는 하나 남은 팔을 들어 짜증스럽게 그것을 털어냈다. 

거추장스럽고 불편했다.


“그 몸으로 떠난다니...죽으러 가는 것과 다름없지 않사옵니까...”


이미 전부 아는 사실이었다. 불편한 몸으로는 일을 할 수도 싸울수도 없었다.

그런 몸뚱이를 신경쓰는 이는 사령관 정도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리리스는 그 말을 흘리고 소완을 지나치려 했다.

소완의 중식도가 길을 막지 않았더라면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다.


“..무슨 짓이야, 음침한 요리사.”


“지나갈 수 없사옵니다.”


앵무새 같은 대답을 들은 리리스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소완과의 전투는 최악의 수였지만, 살다보면 종종 악수를 둬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말라가는 입술을 핥고 허리춤에 찬 블랙맘바를 만지작 거렸다. 

철충의 칼날이 왼손을 앗아간 이후 무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싸우고 싶지도 않사옵니다.”


언제고 그녀에게 덤벼들던 소완이었다.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았지만 소완은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불타오르던 전의는 순식간에 사그라 들었다.


“주인께서…걱정하실 것이옵니다.”


소완은 애써 담담한 태도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문득 리리스는 전장에서 소완의 목숨과 자신의 왼팔을 바꾸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하, 변명 수준 하고는. 

하지만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그것이 리리스를 막을 명분이 되지는 않았다.


“...그럴 수 있겠네.”


그녀는 일부러 매몰차게 말하고는 쌓인 눈밭 위로 반짝이는 무언가를 던졌다.

반지였다. 


한때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이 원했으나 그녀 혼자만이 얻어낸 것.

하지만 반지를 끼울 수 있는 왼손은 더 이상 없었다. 

그래서 단지 철과 빛나는 보석으로 이루어진 반지는 그녀에게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이였다.


그것은 소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소완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여 그것을 주웠다.

그리고 그녀가 고개를 들었을 때 리리스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5  




그날 이후, 소완은 종종 사령관의 방문을 두드리곤 했다. 

그가 대답도 하지 않고 문도 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바이오로이드인 그녀는 사령관이 갇혀있는 방문을 부술 수도, 그를 끌어낼 수도 없었다.


“여기 식사를 두고 가겠사옵니다.”


그래서 그녀는 사령관을 밝은 빛 아래 끌어내는 대신,

하루 세번 식사를 나르며 그에게 안부인사를 건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보답받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크게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세상엔 이런 사랑도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완...거기..있어?”


“주인님..!”


소완은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그에게 달려갔다.

석달만에 비쩍 말라버린 그를 조심스럽게 껴안고 눈물까지 흘렸다. 

그것은 그녀가 바이오로이드로 태어난 이후 처음 흘려보는 눈물이었다.


“소첩이...아아..소첩은..”


“집에 돌아가자..”


소완은 그를 껴안고 체온을 확인하며 그가 사라지지 않은 것에 안심했다.

눈물 고인 얼굴로 웃고 있는 그녀의 눈물자국을 훔쳐주며 그는 쓰게 웃었다.






6





“소완?”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났다. 

어느 순간부터 소완은 사령관에게 안기는 것을 너무도 좋아하게 되었다.

사령관에게서 느껴지는 온기는 기분을 좋게 했고 반대로 그와 떨어지면 불안했다.

이유를 굳이 생각하려 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그저 틈만 나면 그에게 안아달라고 졸랐다.

그의 품은 따뜻했다. 잠시나마 괴로운 기억을 잊게 해준다.


“소완.”


그는 멍한 얼굴의 소완을 보며 그녀의 이름을 몇 번이고 상냥하게 불러 주었다.

그녀는 대답 대신 어린 짐승처럼 그의 품 속으로 파고 들었다.

그러자 사려 깊게 머리를 쓰다듬는 사령관의 손길이 느껴진다.


그는 단 한번도 리리스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소완은 종종 그의 행동이나 습관에서 리리스의 흔적을 찾고는 했다.

지금처럼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을 때나,

일에 치인 그녀가 졸고 있을 때 얼마 남지 않은 커피를 타오는 것이 그랬다.


물론 소완은 쓴 커피도 정돈된 머리칼을 흐트러뜨리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가 해주는 것이었기에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소완은 마음 한구석이 텅 비어버리는 기묘한 감정에 시달렸다.


“사랑해, 소완.”


사령관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 그녀를 꼬옥 껴안았다. 

그녀는 말 없이 왼손 약지에 끼인 반지를 만지작 거렸다.

아까 전의 기묘한 감정이 사라지고 다시 따뜻함이 느껴진다.






7





몇 달이 더 지났다. 

그는 예전처럼 자주 그녀의 곁에 있지 않게 되었다. 

인류를 재건하는 일이 생각보다 험난해진 탓이었다.

소완은 그가 없을 때마다 보존식을 만들거나 집 안을 청소하곤 했다. 

그녀 말고도 그 일을 할 수 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은 많았지만, 

그럼에도 사령관이 돌아올 때까지 그녀가 쉬는 일은 거의 없었다.


“소완? 나 왔어.”


“오셨사옵니까, 주인님.”


사령관은 늘 해가 지고 달이 뜨고 나서야 집에 도착했다.

달려나오는 소완을 한번 안아주고, 머리카락을 쓸어 준 그는 금세 쓰러져 잠들었다.

소완은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저 엷게 웃으며 지친 몸에 이불을 덮어 주었다.


“...리리스…가지마..제발...”


사령관을 침대에 눕히던 손이 순간 멈췄다. 따끔따끔한 것이 목을 타고 내려간 탓이다.

소완의 두 손을 꼭 잡은 그의 두 눈에는 눈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저는 여기 있어요 주인님, 어디로도 떠나지 않아요”


소완은 그렇게 속삭이며 그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달라붙어오는 손가락을 억지로 잡아 때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주세요…”


소완은 그를 믿었다. 

언젠가는 분명히 ,그가 슬픔을 이겨낼 거라 생각하며 뒤돌아 주방으로 향했다.





8



맞지 않는 크기의 반지는 때로 족쇄처럼 그녀의 손가락을 꼭 조였다.

때문에 그녀의 하얀 손가락은 늘 새파란 멍으로 얼룩져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고집스럽게도 반지를 벗지 않았다.


“....”


소완은 식탁에 앉아 커피잔을 만지작거렸다. 

달이 떠오르고도 한참이 지났지만 사령관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사라져가는 손가락의 온기를 아쉬워하며 이미 식어버린 커피를 마셨다. 

익숙해진 쓴 맛이 입 안을 가득 채웠다.


소완이 그토록 싫어하던 커피 한 잔을 다 비우도록 익숙한 엔진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래도 그녀는 차가워진 잔을 만지작거리며 못 박은듯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저 지친 미소를 짓는 사령관의 품에 안겨 ‘사랑한다’ 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 단어에 따뜻함이 담겨 있지 않다는 것을 소완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애써 삼킨 그녀는 이렇게 마침표를 찍기로 했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그래서 나는 정말로 행복하다. 라고.











쓴 이유



이번엔 좀 다른 느낌으로 써보고 싶어서 써봤어. 

내가 좋아하는 작가 작품 다시 읽으면서 생각도 많이 해봤고..

원레 요리 못하는 소완 쓰려 했는데 이야기가 이상하게 흘러가 버림.

열심히 쓴 글 재미있게 읽어줘서 늘 고마워. 라붕이들 불금 잘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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