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몸을 따뜻하게 감싸고 있던 배양액이 사라지고 있었다.

눈을 뜨자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당연히 그를 만나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리폰은 그가 그녀의 사령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하, 안녕? 그리폰?”


그녀가 아는 것과 다르게 그녀의 심장은 터질 것 같이 두근거리지도 않았고,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녀의 첫 인삿말은 퉁명스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흐응..인간? 생각보다 평범한 얼굴이네?”


그리폰은 갑자기 그가 자기 몸에 손을 대자 흠칫 놀랐지만 곧 잠잠해졌다.

그의 손길은 따뜻했다. 마음 한 구석이 작게 간질거렸다. 

그녀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말없이 웃어주고 있었다.


“..되도록 들러붙지는 말아줘, 나 끈적한거 질색이거든?”


하지만 그녀는 마주 웃어주는 대신, 그의 손을 탁 쳐내며 시선을 피했다.

태어나 처음 느끼는 기묘한 간질거림 때문이었다.

변명처럼 그렇게 생각하면서 사령관의 눈치를 살폈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미소를 띄고 있었다.






2


그리폰은 바이오로이드, 그러니까 인간을 사랑하게 만들어진 생물이다. 

하지만 만들어진지 오 개월도 안된 그녀에게 ‘사랑’ 이라는 단어는 낯설었다. 


“그러니까 그게 뭔데?”


“음...그걸 말로 표현하긴 어려운데…”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미사일을 쏠 수 있었고, 정찰도 할 줄 알았다. 

다만 그녀의 자매들이 입이 닳도록 말하는 ‘사랑’ 이라는 것만은 어려웠다.

사랑의 정의를 말해달라고 조르고 투정부려도,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물음표였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엄청나게 두근두근 거리고…”


그리폰은 전장에 나가기 전의 고양감을 떠올렸다. 

그게 사랑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그녀도 알고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같이 있으면..무지무지 행복해지고?”


이번에는 전투 후에 먹는 초콜릿과 사탕이 떠올랐다.

달콤한 것들은 늘 그녀에게 행복감을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그것도 사랑이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 뒤로도 길게 이어진 대화 속에서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는 일은 없었다.


“...나중에 그리폰이 더 크면 알 수 있지 않을까?”


결국 대화는 항상 이런 식으로 마무리 되곤 했다.








3


“오늘도, 수고했어 그리폰.”


사령관의 칭찬을 듣고 손길을 느끼는 것은 전투의 공포를 감수할 만큼 기분 좋았다.

하지만 그를 대하는 그리폰의 태도는 한결같았다. 


“갔다 왔어, 뭐야, 빨리 온건 그냥 피곤해서거든?”


그의 커다란 손길이 닿으면 마음 한 구석이 간지러워진다.

그러다가도 짜증이 치솟는데, 그게 또 나쁘지는 않았다.

이런 감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몰랐지만, 아무튼 처음 느끼는 이상한 기분이다.


“응, 피곤 했구나, 어서 들어가 쉬어.”


그 말과 함께 머리에 머물렀던 온기가 사라졌다.

그녀는 어쩐지 그것이 아쉽다고 느껴졌다. 

아쉽다고? 스스로 한 생각에 살짝 놀란 그녀의 눈이 크게 뜨였다.


“흐..흥, 조금 쓰다듬는 것 정도는 괜찮아!”


그렇게 말하자 마음 속을 긁던 간지러움이 커졌다.

간지러움과 함께 커진 두근거림을 느끼며 그녀는 그렇게 한참을 서 있었다.






4


그리폰이 날아 도착한 곳은 낡은 건물들이 가득한 작은 도시, 철충의 흔적 따위는 없는 조용한 곳이었다.

그것을 확인한 그리폰은 우쭐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으흠, 별 다른건 없네, 걱정할 건 없어 사령관!”


“고마워, 그리폰.”


무전기 넘어로 들리는 그의 목소리에 그녀는 자랑스럽게 웃었다.

이유는 몰랐지만 도움이 된다는 것이 기뻤다.


하지만 전장은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었다. 

건물의 갈라진 벽 틈에서 철충들이 드러난 것은 순간이었다.


“...! 피해 그리폰!!!”


그녀는 처음 듣는 사령관의 다급한 목소리에 당황했다.

부스터가 불을 뿜는 것과 동시에 철충들의 포격이 머리 위를 스쳤다.


“...쳇..!”


그리폰은 방향을 돌려 어지럽게 날았다. 

하지만 그녀의 비행은 포격보다는 빠르지 못했다.

곧 미사일에 얻어맞은 그녀의 몸은 추락해 건물의 잔해와 뒤섞였다. 


그녀는 힘없이 손을 들어 상처투성이가 된 몸을 어루만졌다.

감각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사령관의 얼굴만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사령관..구해..줘…”


당장이라도 눈이 감길 것 같은 무거운 피로감이 느껴졌다.

시야가 점점 어두워졌다.







5


다행히 그리폰이 눈을 뜬 것은 오르카호의 병상 위였다.

눈을 깜빡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자 옆에는 사령관이 엎드려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를 어루만졌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또 다시 마음 한 구석이 간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런 감정은 그녀가 들었던 ‘사랑’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죽을만큼 가슴이 두근거리지도 않았고, 미칠듯이 행복해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어쩐지 이 낯선 감정이 귀가 닳도록 들었던 사랑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리고 가슴이 너무도 간지러운 탓에 직접 말 할 수는 없겠지만

어쩐지 지금이라면 그 감정을 전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리폰은 잠든 사령관의 귀에 대고 조그맣게 속삭였다.

당신을 정말로 ‘사랑’한다고.














쓴 이유


빨리 쓰다보니 칭찬이 아니라 사랑이 되어버렸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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