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https://arca.live/b/lastorigin/20441074

2편 https://arca.live/b/lastorigin/20470588 

(2편 약간 수정함) 

 




쫌 매움









 

“리엔 님?”

“라비아타 어서오고…막 이래, 헤헤… 무슨 일이야, 라비아타?”

“리엔 님이야말로 몇시간째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가요?

 "으응, 그게..."

"...?"



“…만약 사람에게 평생 이룰 수 있는 업적의 한계치가 있다면,

그래서 왓슨도 이룰 수 있는 업적을 한계까지 쌓아올린 거라면…”

 

“왓슨이 돌아와도…바뀌는 게 있을까…?"


 

“걱정 마세요, 리앤 님…

주인님께서는 분명, 그분이 이룰 업적의 반조차 쌓아올리지 못하셨으니까요…”

 


“헤헤…그렇겠지?

나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

 

 

 

 

 

 

차가운 북극의 바람이 리앤의 얼굴을 때렸다. 아무리 생각을 돌리려 해 봐도, 사령관을 만난 날 나눈 대화가 끊임없이 그녀의 머리를 헤집었다.

“정말 그렇다면…”

나는…어떻게 해야 돼  응? 셜록…왓슨…

 

 

 

 

 

 

 

 

2524.12.24

운이 좋은 날이었다. 한겨울에 알래스카에 무슨 볼일이 있었는지, 새끼 북극곰을 사냥하는데 성공한 것이었다. 한 손으로 포악한 맹수를 잡아내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지만, 마침내 주인께 제대로 된 식사를 대접할 수 있었다.

 

“후후…부군, 음식은 많으니, 부디 천천히…”

일주일은 굶은 아이처럼 (실제로도 그랬지만) 먹어대는 사령관을 보며, 소완도 간만에 웃을 수 있었다.

한참을 먹던 사령관은, 갑자기 고기 한 점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길을 떠난 이래 처음으로, 사령관이 다른 생명체를 인식한 순간이었다. 조금씩, 사령관의 머릿속 안개가 흩어지려 하고 있었다.

 

“우우…”

“부군… 혹시 소첩을 알아보시는…?”

부군께서 소첩을 보셨사옵니다.

 

기쁨의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사령관을 꼭 끌어안았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이 깊어만 갔고, 구원자의 재탄생을 축하하듯 오로라가 드넓은 설원을 감쌌다.

 

 

 

 

 


 

2524.12.28

“이제 얼마 후면… 오르카 호가 도착할 것이옵니다.”

처음 상륙했던 항구에 도착했고, 북극해 부근에 수 년째 대기중인 오르카 호에 연락을 넣은 참이었다. 도착하기만 하면, 다시 안전한 바다 속으로 돌아갈 수 있다. 반격의 신호탄을 쏘아올릴 수 있다...



 

이윽고 곤히 잠든 사령관을 쓰다듬던 소완에게,

부아아아앙-!

멀리서 들려선 안 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따라붙은 것이옵니까.”

얼굴을 굳힌 채, 소완은 최후의 항전을 준비했다. 다행히 항구에는 빈 건물도 많았고, 무기도 어느 정도 찾을 수 있었다.

“어디 한번 와 보시지요…”

 

 

 

 




타타탕! 

총열이 끊임없이 불을 뿜고, 총소리가 하늘을 찢는다. 순식간에 외곽 건물들에 구멍이 뚫린다.

그에 반해, 그녀의 반격은 애처롭기 짝이 없다.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몸을 이끌며 간신히 구식 총으로 반격을 해보지만 적들의 기세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미 몇몇 스피더는 그녀를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깝다.

죽음을 각오한 소완의 눈동자에 절망이 아로새겨진 그 순간,

 

 

 

 

콰과광-!

오르카 호의 포문이 불을 뿜었다.

순식간에 몇 대의 스피더가 부서지며 흰 설원에 붉은 피를 뿌렸다.

멍하게 구원의 방주를 바라보는 소완에게, 용맹스러운 무전이 들렸다.

 

“여기는 호라이즌 제3 주둔부대. 사령관님을 확인했다. 안전하게 승선하실 때까지 계속 엄호하라!”

 

“아아…마침내…”

 

소완은 겁에 질린 사령관을 감싸며 천천히 선착장 쪽으로 이동했다.  몇 분 이내로 오르카 호도 안전하게 정박하리라. 3년간의 작전이 성공으로 끝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탕-

무자비한 총알이, 사령관의 가슴을 꿰뚫었다.

 

 












 

 

 

시간이 멈춘 것만 같다.

그녀의 눈앞에서, 누군가가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있다.

아니,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

 

 

“부군…?”

 


그 자리에 얼어붙은 소완의 뒤로, 선내에서 통곡과 비명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이윽고, 하얀 요리복도 피로 물들었고, 오르카 호로부터 고작 2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두 남녀가 쓰러졌다.

 

 

 




 

이미 말라버렸다고 생각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나온다. 이미 세상의 모든 슬픔을 겪었다고 생각했건만,

아니 되옵니다. 어째서…대체 왜…

 


죽어가던 사령관이 힘겹게 눈을 떠, 소완의 눈을 바라보았다. 역설적이게도, 지금에서야 그의 눈빛은 생명력 넘치던 과거로 돌아온 것만 같았다.

고마워…라고 속삭이려는 듯한 사령관의 입이 멈추고, 업적의 한계에 도달한 마지막 인간은 결코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오른팔로 그의 상처를 감싼 채, 충성스러운 요리장도 그의 뒤를 따랐다. 

약지에서 빛나던 작은 반지가 떨어졌고, 눈에 파묻혀 두번 다시 빛을 내지 않았다.

 

 

 

 

 




그들을 축복하듯, 하늘에서는 눈이 하염없이 내린다.

 

 






 



 

“왓슨…?”

“주인…님…”

함교에서도 시간은 마치 얼어붙은 것만 같았다. 추적자들은 전멸시켰는데, 마지막으로 쏘아진 총알이 설마 그의 생명을 앗아갈 줄이야. 라비아타는 비틀거리며 주저앉았고, 리앤은 무너진 채 통곡하고 있었다.

그때, 기술실에서 그렘린에게서 다급한 보고가 들려왔다.

“라비아타님! 엔진 동력이 완전히 끊겼어요! 항해 시스템, 산소 발생기 모두 먹통이에요! 이대로는…”

 

라비아타는 쓸쓸히 웃으며 대답했다.


“주인님께서 돌아가시니 오르카 호도 죽네요. 마치 주인님의 생명이 이 잠수함을 지탱해오기라도 한 것처럼…


이 잠수함도, 저희도…마침내 쉴 수 있는 거겠죠…”

 

 

 

 

 

 

 

 

 

 

 

 

북쪽의 한 항구에는 두 남녀가 무덤도 없이 쓰러져 있고, 작은 반지 하나만이 묘비를 대신하듯 떨어져 있다.

차디찬 북극해의 얼음 밑으로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항해하지 않는다.

 

 




 

제국의 80%를 이루는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이 아니다.

나머지 20%를 이루는 2등 시민은 인간이다. 하지만 자유의지가 없는 인간을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가?

백 서른 일곱의 지배자들은 자유로운 인간이다. 하지만 부모를 배신하고 동족을 지배하는 이들에게 과연 인간성이 남아있는가?

 

 

 

 

첫번째 멸망 후, 남은 인간은 하나뿐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철충과 별의 아이는 더 이상 없다.

두번째 멸망 후, 인간도, 더 이상 없다.







2524.12.29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거주지구 외벽에 붙은 제국의 표어를 보며, 2급 시민이자 6등급 공무원인 잭슨-48은 오후 업무 – 교육자료 창작 – 를 끝마친다.

오 분 뒤에 시작이군.

잭슨-48은 진리성 강당으로 가며 생각한다.

어제 북부 지역에서 큰 소란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하지만 위대한 제국에 큰 소란이 벌어질 리가 없다. 다행히 그는 이중사고에 능숙하다.

잭슨-48은 곧 어제 들은 소식을 잊어버린다. 

톱니바퀴는 끊임없이 돌아간다.






 
















원래 구상할 땐 둘이서 설원에서 얼어죽는 거였는데

쓰다보니 다죽여버림


로비에서 소완 볼때마다 마음아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