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러니까 카엔은 전투형 바이오로이드였다.

즉 찢고 베고 싸우는 것만이 그녀의 삶의 이유였고, 

그것은 그녀가 구출되어 사령관을 만나기 전까지 변하지 않았다.


"안녕 카엔! 만나서 반가워!"


카엔은 쾌활한 목소리로 인사하는 사령관을 무표정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반갑다는 말의 의미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들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어색했다.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입술만 오물거렸다.


“..응...주공, 카엔도, 반가워?”


한참을 망설이던 카엔은 결국 그의 말을 똑같이 따라하기로 했다. 

끈기있게 기다리던 그의 얼굴에 장난스러운 웃음이 떠올랐다.


“그래그래, 잘 지내 보자.”


그는 카엔의 손을 잡고 그녀의 방까지 안내해 주었다. 

복도를 걷는 내내 그가 입을 닫고 있는 법은 없었다.

자신과는 정반대로 끝도 없이 떠드는 그를 보며 카엔은 눈을 깜빡거렸다.


“그럼, 내일 또 보자!”


그는 그렇게 인사하곤 순식간에 멀어져갔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방문 앞에 서서 그가 사라질 때까지 그 말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었다.




2



그가 하는 말의 대부분은 그녀가 아는 명령, 임무, 죽음 중 그 어느것에도 속해 있지 않았다.


“명령, 해줘.”


그래서 그녀는 입버릇처럼 그렇게 말했다. 명령이 없으면 불안하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고 구속구가 몸을 조인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그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카엔이 받아보지 못했던 '명령'들을 내리곤 했다.


“음..그럼 웃어줄래? 히~ 이렇게.”


이상한 표정, 하지만 카엔은 그가 했던 것처럼 입과 볼을 당겨 표정을 만들었다.


"이렇,게?"


"아하하하!!"


그는 카엔이 명령대로 '웃어' 보이자 카엔의 등을 두드렸다.

그리고 그녀가 한번도 보지 못했던 표정을 짓는 것이였다.


"주공, 이상한, 표정."


혹시 자신이 틀린 것일까? 

명령의 실패에 따르는 것은 늘 찢어지는 듯한 아픔이었다.

더럭 겁이 난 카엔은 곧 다가올 충격에 대비했다.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눈을 꼭 감았다.


"어? 카엔? 너까지 벌써 날 놀리는거야?"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통증은 없었다. 

눈을 뜨자 그의 동그란 눈이 자신을 장난스럽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카엔..잘했어?"


"응! 임무 완료! 수고했어!"


그 말에 긴장이 풀린 카엔이 그대로 주저앉았다.

몸을 꼭 조이던 구속구가 느슨해진다.

어쩌면 이게 사령관이 말했던 '좋다' 라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그녀의 얼굴에 자신도 모르는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3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카엔은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의 볼을 콕 누르고 있는 사령관의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하하,깜짝 놀랐지?”


예리한 감각을 가진 그녀는 문을 살짝 열고 살금살금 걷는 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위협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사령관의 손이 닿은 볼이 따뜻했기에 가만히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무언가를 바라고 있었다.


“카엔, 이런 거, 몰라.”


그녀는 감정에 능숙하지는 않았지만 사령관이 시무룩해진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무슨 반응을 해야 했던 것일까, 그가 하는 행동들은 늘 어렵기만 했다.


“음... 그냥 장난 친거야, 장난.”


카엔의 눈빛을 읽은 그는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었다. 

이런 행동이 의미가 있는 걸까?

가만히 눈을 깜빡이던 카엔은 그의 행동을 따라했다. 

볼에 닿은 카엔의 손가락을 느낀 그는 예의 개구진 미소를 지었다.


“하하, 너 생각보다 재미있구나?”


“재미, 있어?”


인간은 이런 걸 좋아하는 걸까, 

아니면 이 행동 어딘가에 그가 말하는 재미라는게 숨어있었던 것일까.

그와 자신의 볼을 번갈아 보아도 끝내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4


사령관은 술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얼마나 술을 좋아하느냐면,

술과 장난 중 하나를 금지시킨다는 콘스탄챠의 잔소리에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고 투덜거릴 정도였다.


"어라라~? 와아~ 카엔이다! 카엔!"


그래서 사령관은 그 날도 잔뜩 술에 취해 있었다.

쪼르르 달려와 카엔에게 안긴 그의 몸에서는 짙은 위스키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응, 주공, 카엔 여기,있어."


그녀는 그에게서 배운대로 꽤나 자연스러워진 미소를 지었다. 

달라붙는 그의 머리를 쓸고 마주 안아 주었다. 


"있지, 카엔은 이제 내가 좋아?"


카엔은 가끔씩 그가 말을 걸거나 작은 선물을 건낼 때마다 가슴 한쪽에서 따듯한 온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응,주공,좋아."


"응...히히. 다행이다."


그는 씨익 웃으며 카엔의 품으로 깊게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몸을 쓸고 조이던 구속구를 벗겨냈다. 


"...가슴, 좋아?


카엔은 그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녀가 인간에게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바이오로이드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고요했던 방에 열락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5


그 날 이후 그녀는 오르카호에 더욱 빠르게 적응하기 시작했다.


어눌한 말솜씨는 좀처럼 늘지 않았지만,

사령관의 장난을 능숙하게 받아주고 때로 환한 미소까지 지어주었다.


세상에 첫 발을 내딛는 어린 아이처럼,

흰 백지 같던 마음에 색이 입혀질 때마다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매일 새로운 것을 배워나가던 그녀의 도화지에 검은 줄이 그어진 것은 

사령관의 첫 서약식이 있는 날이었다.


“...”


창문 밖에서는 웃음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카엔은 귀를 막고 눈을 감았다. 

그러자 머릿속에 사령관의 모습이 떠올랐다.

장난스러운 그의 얼굴은 때로 미소짓기도 하며 그녀를 자상하게 내려다 보았다.

하지만 눈을 뜨면 보이는 것은 텅 빈 방 뿐이었다.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녀는 손을 들어 가슴을 꾸욱 눌렀다. 

이상한 감각이 느껴진 탓이다.

따끔따끔 하기도 하고 뜨겁기도 한 그 감각은 칼에 베인 통증과는 달랐으나 

눈물이 나올 것 같이 아프다는 것만은 같았다.


“..주공…”


카엔의 미성숙한 감정은 끝을 모르고 뜨겁게 타올랐다.

그것은 그녀의 칼날에서 피어오르는 불꽃보다 더 뜨거워 몸을 살라먹고 코어를 달아오르게 했다.


끝내 그녀는 마음의 불을 끄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6


텅 빈 복도는 묘지처럼 적막했다.

사령관은 당장이라도 울 것만 같은 얼굴로 미친듯이 뛰고 있었다.

그는 몇 개의 방과 복도를 거쳐 그녀와 함께 잠들었던 방 문을 열었다. 

그리고 거기서 카엔을 보았다.


“.....!”


그 방 한편, 햇빛이 들어오는 창가 아래 카엔이 쓰러져 있었다. 

그녀의 몸 주변에는 탄 냄새가 불길한 저주처럼 퍼져 있었고, 

그것에 둘러 쌓인 카엔의 모습은 마치 그녀를 실 끊어진 꼭두각시 인형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사령관을 너무도 사랑했고,

끝내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던 그녀는 빈 껍데기 뿐인 인형이 되어 공허한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7



제조기 속에서 눈을 뜬 그녀는 처음 보는 남자가 다가오자 천천히 무릎을 끓었다.


"쿠노이치 카엔, 주공의 적을 처리."


사령관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았다.

뒤늦게 흘러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녀의 모습은 자신이 사랑했던 카엔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하나의 설계도로부터 만들어진 존재니까 똑같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죽은 카엔이 다시 돌아온 듯, 그의 작은 손짓을 따라가는 눈동자도, 

끊기는 듯한 어눌한 말투도 모두 다 똑같다.


그녀는 쿠노이치 카엔이였다.

다만 어떤 색으로도 물들지 않았을 뿐이다.

그는 도저히 그녀의 눈동자를 마주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감정도 색도 숨긴 목소리로 고개를 숙이고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안녕 카엔...만나서 반가워."













읽어주셔서 감사 합니다.





+)

글을 읽고 슬퍼질 라붕이 들을 위해..

우리집 카엔은 행복하니까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쓴 이유




쓴 글 모음 


https://arca.live/b/lastorigin/203080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