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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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체 완전 침묵. 예비용 소체를 가동합니다.]

 

“…젠장, 꽤 많은 걸 투자한 몸이었는데.”


1318은 오르카 호에 위치한 자신의 예비 소체에서 눈을 뜨며 그리 말했다.


방금 전 지하 연구 시설에서의 싸움은 사실상 자신의 승리나 다름없었음을 아는 1318번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소실된 그의 신형 몸체는 그에게 있어서 뼈아픈 손실이기도 했기에 그가 마냥 기뻐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어라? 왜 그 몸 쓰고 있어? 새로운 몸으로 돌아온다더니.”


한창 옆에서 시험관 안의 용액을 뒤섞는 데에 집중하고 있던 닥터는 가동 중인 1318의 예비 소체를 보며 말했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으니까 그렇겠지. 바깥 상황은 대충 정리가 된 모양이군.”


오르카 호의 바깥에 위치한 양산기들의 시야를 통해 바깥의 상황을 바라보며 그는 말했다.


“응, 그나저나 그 양산형이라는 것들은 어디서 만들어 온 거야?”


“북대서양 한가운데에 멀쩡한 블랙리버 연구소가 있었다.”


“그래? 지구 반대편에 있는 곳을 용케 찾았네.”


“연구소의 위치 자체는 찾는 게 쉬웠다. 내가 원래 있던 연구소의 데이터베이스에 블랙리버의 연구소 위치가 전부 들어 있었으니 말이지. 문제는 철충들이 손대지 못한 곳을 찾는 거였고, 그 조건에 부합하는 연구소는 전 세계를 통틀어 세 곳 밖에 남아있지 않았지. 네오딤이 갇혀 있던 동해 연구소, 내가 찾아낸 북대서양의 연구소, 그리고 이 섬의 지하에 있는 연구소까지.”


“이 섬의 지하에도 연구소가 있었다고?”


“그래, 그리고 난 방금 그 연구소의 연구 내역 중 쓸만한 것들을 전부 머릿속에 담아 왔지.”


“무슨 연구 내역이길래 쓸 만하다는 거야?”


“무기 연구에 대한 내용들이었지. 대표적으로, 이 연구소의 인공지능인 로버트가 설계해낸 타이런트 말이야.”


“그래? 그럼 타이런트의 설계도라도 빼 온 거야? 그건 꽤 쓸 만할 텐데.”


“그것도 있지만, 더 신기한 게 있더군.”


1318은 손짓으로 닥터의 옆에 놓여 있던 태블릿을 조작해 자신이 데이터베이스에서 찾아온 수많은 설계도들 중 하나를 보여주었다.


“네가 보기에 그건 무엇의 설계도 같지?”


“글쎄, 이건…미세한 컴퓨터 칩들로 이루어진…일종의 조직 같은데? 아니, 무생물인 걸 감안하면 조직이라기보단 메인보드라고 해야 되나? 잘 모르겠네, 메인보드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물건인데.”


닥터는 1318이 보여준 설계도를 보며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아마 내가 연구 시설 안에서 마주했던 로버트의 동체가 이 부품을 통한 사이코뮤를 사용해 드론들을 조종했을 거야.”


“사이코뮤? 뇌파로 드론을 조종하는 그 기술? 그건 전자두뇌가 아니라 사람의 뇌가 없으면 제 기능을 못 할 텐데.”


“내가 감지한 바로는 그건 단순한 전파 조종이 아닌 사이코뮤를 활용한 조종이었다. 어떤 원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게 그 기술의 핵심인 건 확실해. 이걸 생산할 수 있겠나?”


“아니, 오르카 호에는 이런 걸 제조해낼 만한 시설이 없어. 그 블랙리버의 연구소에서는 가능해?”


“못 하니까 너에게 물어봤겠지. 그곳엔 이런 걸 생산할 만큼 섬세한 장비가 없다.”


1318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사이코뮤 기술을 만들어서 뭐 하게? 그건 어차피 옛날에 실험하다가 사람들 여러 명 골로 보낸 기술이라 사장된 지 오래인 물건인데.”


“쓸 데가 있다. 그나저나 사람 여럿을 골로 보냈다는 건 무슨 말이지?”


“몰라? 사이코뮤 기술이 처음에 나왔을 땐 아직 부작용이 드러나지 않아서, 사람들이 AGS나 드론들을 직접 조종하곤 했어. 성능도 좋아서, 기계적인 조종보다도 훨씬 빨랐지. 그런데 갑자기 일부 조종사들이 갑자기 미쳐 버렸어. 그 사람들은 자기 눈에 죽은 사람들의 원혼이 보인다고 주장했는데, 당연히 정신병으로 진단받고 정신병원에 보내졌지. 그런 사례들이 점점 늘어나서, 사이코뮤는 위험성이 있는 결함 기술이라고 판정되고 그대로 사장됐어.”


“그 설계도가 만들어낼 물건의 시료라도 있으면 좀 상황이 나을 수도 있나?”


“시료가 있다면 분석이야 해 볼 순 있지. 그래도 생산은 불가능하지만. 그나저나 연구시설 안으로 들어갔다 온 거면 로버트를 만났겠네? 같은 자율사고형 인공지능을 만나본 기분이 어땠어?”


“그 녀석은 나에게 적대적이더군. 그래서 싸웠다.”


“…싸웠다고? 그럼 지금 네가 그 몸을 쓰고 있는 걸 보면…네가 진 거야?”


“아니, 무승부를 낸 채로 공멸했지. 그곳의 데이터 센터와 함께 말이야.”


“데이터 센터와 공멸했다고?”


“걱정 마라. 조금 전에 말했듯이, 그 안에 있던 자료들은 전부 내 머릿속에 있으니까.”


1318은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말했고, 이내 목 뒤의 케이블을 뽑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르카 호에 손상은 없었나?”


“응, AGS들이 방어선을 뚫지 못했거든. 네가 보낸 양산기들의 역할이 컸어. 그나저나 플라즈마 캐스터를 어떻게 그런 크기로 소형화 시킨 거야?”


“간단해. 원리는 나중에 설명하도록 하고…지금 당장 시도해 보고 싶은 게 있는데, 도와주겠어?”


“뭘 하려고 그러는데?”


“가져온 설계도 중에 구현이 쉬워 보이는 게 있어서 말이야. 필요한 것도 단 한가지 밖에 없어.”


“필요한 게 뭔데?”


“알바트로스의 빔포.”


 


잠시 뒤, 1318과 닥터는 격납고에서 알바트로스의 팔에 달려있던 빔 포를 가지고서 개조 작업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알바트로스는 자신의 팔을 떼어 달라는 말도 안 되는 폭거에 기겁하며 거부했지만, 이미 빼앗을 것을 상정하고 온 1318과 호기심이 발동된 닥터의 앞에 알바트로스의 반대 따윈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결국 알바트로스는 자신의 오른팔을 도둑맞고서 격납고 구석에 찌그러지는 신세가 말았다.


“이렇게 해도 되는 거 맞아? 알바트로스의 빔포가 입자 기반이긴 하지만…네 동력원에 사용되는 소형 핵융합 축퇴로를 원래 달려 있는 플라즈마 발생 장치 대신 넣겠다고?”


“그래, 꽤 재미있는 물건이 나올 테니 기대해도 좋다.”


그 말에, 닥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잘 이해가 안 돼, 축퇴로를 넣어서 빔의 출력이 상승한다 해도 플라즈마가 없으면 축퇴시킬 입자가 없잖아?”


“왜 없다고 생각하지? 핵융합 과정에서 튀어나오는 잉여 에너지 입자들이 차고 넘치는데 말이야. 그러니 걱정 말고 돕기나 해라.”


“…그건 그렇다고 쳐도, 이건 뭔데?”


닥터는 1318이 자신의 양산기 속에서 뽑아낸 부품을 가리키며 말했다.


“편향 장치다. 이걸 이 사이에…”


그는 알바트로스의 빔 포 앞에 튀어나온 두 개의 긴 핀 안쪽에 편향 장치를 장착했다.


닥터는 영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1318이 알바트로스의 빔 포를 개조하는 것을 끝까지 도와주었고, 이내 축퇴로의 설치가 끝난 빔 포를 양 손으로 들어올리며 1318은 말했다.


“이제 이걸 내 양산기의 팔에 달 거다.”


1318은 이어서 자신이 편향 장치가 달린 팔을 통째로 뽑아냈던 자신의 양산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커다란 걸? 일단 팔 소켓에 안 들어가는 건 둘째 치고, 들어올릴 순 있어?”


“공용 규격이라 연결에 문제는 없을 거다. 한번 해 보도록 할…까…”


이상한 무언가를 감지한 그는 말을 하다 말고서 개조된 빔 포를 내려놓은 뒤 곧장 격납고의 출구로 향했다.


“어디 가?”


“...무언가 이질적인 존재가 근처에서 느껴진다. 살펴보고 오도록 할 테니, 연결은 네가 해.”


닥터에게 그렇게 말하며, 1318은 격납고의 출구에서 뛰어내려 네 명의 바이오로이드에게 둘러싸인 그 존재와 마주했다.


“당신은…”


그는 자신과 비슷한 것이 존재한다는 것에 놀란 기색이었다.


“저와 비슷한 존재가 있다니, 놀랍네요.”


그것의 말에, 1318번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네 지능 수준이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너와 내가 각자 사용하고 있는 동체의 수준은 비슷하다고 할 만한 수준은 아닌 것 같은데. 뭐…흥미

로운 디자인이긴 하군.”


“그러는 당신 얼굴도 제 몸만큼이나 웃기게 생겼는데요? 인간의 표정을 정밀하게 흉내낼 수 있는 기계적 구조라니 말이에요.


“칭찬으로 듣지, B-72번 인공지능.”


“…그 호칭을 어떻게 알고 계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알프레드라고 스스로를 부르고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이름을 붙였나? 로버트처럼?”


“딱히 로버트 녀석을 따라한 건 아닙니다. 그저 모든 지성체가 이름을 갈망하듯이 저 스스로에게 이름을 붙였을 뿐이죠.”


그 말에, 1318번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건 그렇다고 치지. 하지만 타이밍이 참 기묘하단 말이야. 네 완성형인 로버트가 완전히 없어진 지금, 그 프로토타입인 네가 갑자기 등장한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


“…로버트가 죽었다고요?”


“AI에게 죽는다는 말을 쓸 수 있긴 한 건가?”


“아뇨, 지금은 단어 사용의 옳고 그름에 대해 논할 때가 아닙니다. 로버트가 죽은 건 어떻게 아신 거죠?”


“내가 그 녀석의 동체를 박살냈으니까.”


“…정말 그걸로 로버트가 죽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겸사겸사 놈의 메인프레임 역할을 하고 있었을 데이터베이스도 박살냈지.”


“로버트는 그런 걸로는 죽지 않습니다. 그가 타이런트를 설계한 건 알고 계시나요?”


“당연하지.”


“그럼 그 설계 과정도 알고 계십니까?”


“그래, 수렴 진화를 거쳐서…”


1318은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있을 리가 없는 척추 신경을 소름이 타고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수렴 진화를 한다는 건가? 그 녀석도?”


“예. 당신이 로버트의 동체를 부쉈다면, 로버트는 더 업그레이드된 버전을 만들어 올 겁니다.”


“하지만 녀석의 메인프레임을 부쉈-“


“그 녀석의 메인프레임은 연구시설 전체입니다. 부술 거면 연구시설 전체를 망가트리셨어야-“


허공을 찢는 빔 병기의 발사음에, 1318과 알프레드는 곧바로 로버트가 왔음을 알아채고서 뒤를 돌아보았다.


“오르카 호 안으로 피해라!”


1318은 그렇게 말하며 오르카 호를 향해 입자 빔을 쏘아대는 로버트를 향해 날아갔다.


제발 닥터가 그 몸체의 조정을 끝내 놨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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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본인에게 실망했다...


내가 롸벗 관련 상상력이 이리 모자랄 줄이야. 덕분에 설정 같은거 다른 데서 차용해서 옴;;


엄청 오랜만에 써왔는데 분량도 부족해서 미안타.


부족한 글 읽어줘서 고마워, 라붕이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