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그 중에서도 구정은 한 해의 첫 날을 기리는 명절이다. 그리고 군대에서 전역하지 못한 병사들에게는 일과 3일을 쉬는 날이기도 하고, 동시에 화가 나는 날이기도 하다.

 당연한 이야기지. 다른 녀석들은 밖에서 놀고먹을 때 자기들만 3일동안 나가지 못하고 있으니까.

 그것은 오르카 호의 스틸라인 인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점심은 떡국, 동그랑땡, 갈비찜, 고사리나물, 김치에 후식은 수정과입니다."


 "간만에 먹을 만한 점심이네. 이뱀, 갈거지?"


 "이걸 어떻게 참냐. 노움, 미안하지만 PX는 나중에 쏠게."


 하지만 아무런 차이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령관의 '명절의 분위기를 살려야 한다'는 주장 아래에 명절 음식을 하는 것으로 식사표를 짜둔 것이다.

 당연히 오늘 취사지원을 갈 이들에겐 눈물이 날 이야기다. 명절 음식 특성상 공도 많이 들어가고 설거지도 귀찮으니까.


 "응? 레후야, 근데 왜 애들이 이렇게 많지? 취사지원 안 보냈냐?"


 "분명 열 명 뽑아서 보냈습니다. 확실합니다."


 "이상하네. 보통 이렇게까지 길게 줄을 서진 않는데."


 오르카호의 식당은 하나뿐이다. 전체 요리 담당의 소완, 불 요리 담당인 포티아, 달콤한 디저트는 아우로라 등등 많은 인원이 있긴 하지만 결국 식당이 하나뿐이란 건 변하지 않는다.

 사령관만 특별 대우로 사령관실에서 먹을 수 있고, 놀랍게도 시간만 맞는다면 마리 대장과도 함께 식사를 하는 영광을 가질 수 있단 이야기다.

 …그걸 영광으로 생각하는 병사는 없겠지만.


 아무튼 그 많은 인원들이 하나의 식당을 이용하고, 많은 인원이 몰리는 것은 다반지사. 맛있는 점심이니 어느 정도는 납득할 줄 길이기도 했다.


 "네 명 정도가 취사지원에서 빠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나중에 기강 한 번 잡겠습니다. 저 앞에 식판 들고 서 있…"


 "잠깐만. 취사지원을 보낸 인원이 식판을 들고 있다고?"


 이프리트, 이뱀이라고 불린 병장의 머리가 순식간에 회전하기 시작했다. 레프리콘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이지만 이프리트는 계산할 수 있었다.

 같이 온 노움도 긴가민가한 눈치긴 하지만 짐작은 하는 것 같았다.


 "레후야."


 "상병 T-3 레프리콘."


 "이건 진짜 만약의 가능성인데 말이다, 만약 네 음식이 조금 마음에 안 들어도 참아라. 자세한 건 복귀한 후에 말해줄 테니까. 절대, 절대로 말하지 마. 알겠어?"


 "알겠습니다."


 설마 싶던 표정의 노움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무래도 같은 병장이니만큼 같은 생각을 했겠지만 설마 싶었던 거겠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굳이 취사지원으로 보낸 이들을 돌려보낼 필요가 없다. 안 그래도 130여 종에 달하는 바이오로이드가 수백에 가까운 만큼 굳이 주는 손을 마다할 필요가 없으니까.

 하지만, 굳이 돌려보낼 필요가 있다고 한다면…


 "취사 갔다가 돌아온 저 브라우니 얼굴 굳어있네. 맞나보다."


 "확실해. 있다가 다른 애들 입 단속시켜. 만약의 이야기지만 스틸라인 측에서 반찬 투정하는 머저리 새끼 안 나오도록…"


 "아, 이 동그랑땡 조금 탔지 말입다. 포티아씨 실수임까?"


 누가 들어도 브라우니의 목소리에 브라우니의 말투였다. 브라우니끼리 모인 조합이라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입단속도 제대로 못한 걸 보니 아무래도 분대장부터…


 "레후야. 저 새끼 몇 번 브라우니냐."


 "2,056번 브라우니입니다."


 "똑똑히 기억해둬라. 그리고 각오해라. 우린 이제 좆됐으니까."


 "저기, 이거 혹시 다시 받을 수 없슴까?"


 "쉿! 쉿! 조용히! 바꿔드릴 테니까 조용히 하는 검다."


 배식하는 브라우니는 조용하라고 몇 번이고 신호를 보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안쪽에서 취사복을 입고 있는 사람이 밖으로 나오고 있었으니까.


 "응? 탄 동그랑땡이 있었다고? 미안하다, 내가 조심하지 못했어."


 그것은 흰 모자와 흰 옷을 입은 남자였다. 그리고 이 오르카호에서 남자의 몸을 가진 것은 단 한 명.

 이 부대의 최고 지휘관…


 "사, 사사사사사사령관님…."


 "그러네. 진짜 탔구나. 처음으로 혼자 요리해보는 거라서 내가 실수했나봐. 미안해."


 그러고서는 브라우니의 탄 동그랑땡을 그냥 먹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실수를 스스로 해결하는 좋은 광경이었지만 그걸 사령관이 병사의 눈앞에서 하면 당연히 문제가 된다.

 이거 탔으니까 주방장 니가 먹어봐! 라고 말한 것처럼 되어버리니까.


 "레후야. 혹시 안쪽에 다른 부대 있냐?"


 "…탈론페더님 계십니다."


 "진짜 좆됐네."


 하필이면 사령관을 24시간 감시한다는 소문이 있는 전설의 바이오로이드다. 이 일을 호드 부대 대장인 칸에게 보고하는 건 당연지사.

 칸 대장이 마리 대장에게 '자네 부대 병사가 사령관이 준 음식에 투정을 했다더군'이라고 말한다면?


 "브라우니한테 새 동그랑땡 두 개 줘. 이건 내 실수니까 뭐라하지 말고. 알겠지?"


 "네네넵, 아아아알겠슴다."


 두 개의 동그랑땡을 받았으니 좋아해야 하지만 브라우니의 전투복은 식은땀으로 젖어들고 있었다. 그 타이밍을 완벽하게 찍은 모양인지 탈론페더는 카메라 하나를 들고 확인하고 있었고.


 사령관이 뭐라하지 말라 해도 어쩌겠는가. 벌써 그 장면을 타 부대가 영상까지 확보해서 증거로 제출할 준비가 끝났는데.

 분명 맛있는 점심이었지만 이프리트, 노움, 레프리콘은 그 따뜻한 김이 나오는 식사를 먹고 있음에도 혀가 마비된 듯 맛을 느끼지 못했다.


 "이뱀. 이거 어디까지 갈까?"


 "명절은 없다고 생각해둬."


 식사에서 복귀하고 20분 정도 지났을까, 오르카 호에서 방송이 들려왔다.


 "툭툭. 아아, 스틸라인 인원들에게 알린다. 스틸라인 인원들 중 취사지원을 하고 있는 인원들을 제외한 전 인원은 완전군장 후 오르카 호 바깥으로 나와서 정렬해라. 이상."


 "마리 대장님이 직접 방송을 하신 건 처음이네요."


 레프리콘은 넋이 나간 눈으로 그렇게 말했다. 마음같아서는 숨어서 나가지 않고 버티고 싶지만, 임펫 상사의 매서운 눈을 피할 수 있는 자신감은 없었다.

 근무취침중이던 인원들까지 끌려나온 듯 피곤함을 숨기지 못하는 인원도 몇몇 보였다.


 "내가 너희들을 불러모은 건 병사들의 실태를 타 부대에게 보고받았기 때문이다."


 마리는 평소의 어투 그대로 말하고 있었지만 분노가 섞여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본래 대장이란 항상 냉철해야 하는 법. 허나 이번 일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프리트도 노움도 레프리콘도 자신이 마리였다면 저렇게 화냈을 것이라고 인정할 정도로.


 "오늘 점심은 사령관님께서 직접 명령을 내리셨고, 명령을 내린 만큼 솔선수범하여 요리를 하셨다. 사령관님이 직접 음식을 조리했다는 걸 몰랐을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그것보다도 음식에 불평했다는 병사가 이 부대에 있었다는 사실에 이 마리 대장은 통탄을 금치 못했다."


 다른 병사들은 완전군장이라고 해 봐야 소총이다. 병장인 이프리트들은 박격포다. 뭐, 이 정도만 말해도 대충 알아들었겠지? 2,056 브라우니는 멀리서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몸이 굳어있었고. '내가 범인이에요' 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런 말을 한 것은 군인이라는 자각이 부족해서다. 고민을 거듭한 결과, 우리가 군인임을 확실히 알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무려 마리 대장 본인도 완전군장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다른 스틸라인 간부들도 아무 말 없이 마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따라서, 지금부터 이곳에 모인 전 인원은 명절 기간 동안 행군을 실시한다. 식사는 지금부터 보급되는 전투식량과 물로 제한한다."


 사실 사령관은 악마인게 아닐까?

 이프리트는 저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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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거 생각해보니 소재를 막 가져다 쓴거같은데 맘에 안드신다 하시면 삭제하겠슴...

https://arca.live/b/lastorigin/20716129?mode=best&p=1 보고 썼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