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https://arca.live/b/lastorigin/20877211

2편 https://arca.live/b/lastorigin/20928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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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아, 섹스하고싶다."

  "큰 소리로 말하지 마, 병신아."


  앨리스와 리리스를 제치고 오르카 최강의 음마로 자리잡은 바이오로이드, 로열 아스널. 그녀는 사령관이 살아돌아온 이후 10년 만에 성욕을 되찾았다.


  하지만 어쩌나, 타이런트에게는 그게 없다! 봇에게는 박을 수 없다! 그걸 깨달았을 때 아스널은 좌절했다. 닥터에게 제발 인간의 육체로 옮겨달라고 애원해봤지만 그 닥터도 모른다고.


  하지만 진전은 있다. 이번에 지하 벙커에서 좋은 정보를 많이 얻어왔다고 하니, 조만간, 실로 10년 만에, 사령관과 동침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섹스하고...... 싶다......!!"

  "아, 큰 소리로 말하지 말라고...... 응? 메이?"


  웬걸, 이번 섹무새는 아스널이 아닌 메이라는 사실에 레오나는 경악했다. 아무리 자신감 없는 메이라지만, 10년 만에 사령관과 재회한 이상 없는 자신감도 생길 수밖에 없었나?


  아스널과 메이는 단호한 눈빛을 주고 받았다. 그렇게 결성된 '이번에야말로 사령관을 따먹는다 동맹'. 레오나는 안드바리나 보러 가버렸다.



23.


  "아무래도 시간이 너무 지나서 모든 기록을 복구하진 못했는데, 그래도 쓸만한 건 많이 찾았어."


  역시 닥터는 천재야. 대체 왜 가동하는건가 싶은 폐허에서 복구 작업을 성공시켰다. 그렇게 캐 온 정보들은 사령관이 사용 중인 타이런트 기체에 관한 것들이었다.


  "이 타이런트는 연합 전쟁 때 썼던 타이런트가 아니야. 철충 등장 이후에 누가 개조해서 만든 특이 개체지. 메모리에 다른 AGS들의 설계가 입력돼있는데, 로크의 설계도까지 있어."


  앙헬의 개인자산으로 제조된 로크의 설계도까지 있다는 건, 이 타이런트의 제작자는 블랙 리버 소속의 연구원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AGS들의 설계가 입력돼있기에 합체...... 그래, 합체도 가능했겠지.


  "철충 씹어먹는 건 계속 해도 괜찮을 것 같아. 애초에 그러라고 탑재한 기능이라네? 이 타이런트 만든 연구원은 멸망 와중에도 철충을 자원으로 봤나봐."


  대단한 강심장이네. 이래야 대기업 직원 하는 건가?


  다른 정보들도 몇 가지 있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인간의 신체 아니겠는가? 사령관의 몸은 바이오로이드들의 강경한 요청으로 방부 처리되어 10년 동안 잘 보존되어 있다. 정신만 옮기면 되는데......


  "미안, 이건 진짜 모르겠어. 며칠? 몇 주......? 좀만 더 머리 쥐어뜯으면 될 것 같은데, 지금은 무리야. 오빠야, 조금만 더 타이런트로 살자."

  "크릉......"


  킹룡 생활은 계속된다.



24.


  "크흠, 사령관! 짐 앞에 고개를 숙여라! 이 사이클롭스 프린세스를 머리 위에 태울 기회를 주겠다!"

  "크릉크릉."


  말투를 유지하는 게 신기할 정도로 눈을 빛내는 LRL. 타이런트는 순순히 고개를 내렸고, 좌우좌는 외피를 계단 삼아 머리 위에 올라갔다.


  "헤헤......"


  LRL의 기분이 좋아보인다. 긍정적인 일이다. 오랜만에 귀환했을 때는 오르카 호의 상태가 말이 아니어서, LRL의 옷차림도 이전에 등대에서 고립됐던 때와 비슷하게 너덜너덜했는데...... 지금은 자원이 풍족해졌기에 새 복장도 받았고.


  어린애는 어린애다. 꺄꺄거리며 타이런트의 머리 위에서 신나하는 모습에는 프린세스의 위엄(그런 거 없다)도 찾아볼 수 없으니. 옆에서 알비스와 더치걸이 부럽다는 듯 보고 있어서 태워줬다. 멀리서 안드바리도 힐끔힐끔 보길래 태워주려고 했다.


  "크릉크릉?"

  "돼, 됐어요. 저는 그런 어린애같은 거......"

  "크릉!"


  태워줬다.



25.


  닥터가 희소식이라며 사령관을 불렀다.


  "벙커의 기록대로 언어 모듈을 만들었어! 오빠야의 타이런트는 스피커 기능이 고장났다기보단 적합 모듈이 누락된 상태였거든? 워낙 탑재한 기능이 많다보니까 덜 필요한 기능들을 빼버린 모양인데, 이 닥터가 최적화에 성공했다는 거야!"


  곧바로 이식 작업에 돌입했고, 타이런트 사령관은 커다란 턱을 움직여 말을 시도했다.


  "아자아자 아자크릉?"

  "......"

  "화, 끈해진 레크릉...... "


  다시 떼어냈다.


  "미안, 오빠야. 부품 하나 빼먹었나? 다시 검수해서 새로 붙여줄게."

  "크릉크릉 크르릉."

  "응, 괜찮아. 잠 잘 자고 있어. 흐하하."


  닥터의 다크서클이 사라질 기미가 없다.



26.


  "로크 님, 최고급 리튬 배터리의 지원을 부탁드릴 수 있겠사옵니까."

  "어렵지는 않은데, 뭡니까?"

  "주인님을 위한 특식을 만들 생각이옵니다."


  소완의 얼굴에 독기가 서렸다.


  자신이 만든 요리보다도 철충 벌레들과 리튬 배터리를 더 맛있어하신다니, 주방장으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쓰라린 현실. 어떻게든 제대로 된 음식을 선보이려 했지만 결국 패배를 인정했다.


  그렇게 소완은 특이점에 도달했다. 리튬 배터리로 요리를 만들겠다는 어처구니없는 특이점에...... 로크조차 질겁하며 소완을 수복실로 데려가려 했다.


  "소첩이, 소첩이 주인님의 입맛에 맞는 요리를 만들지 못할 리가 없습니다......! 어떻게든! 무슨 재료를! 무슨 조리법을 사용해서라도!! 주인님을 만족시킬 최상의 진미를!!"

  "수복실로 가죠."


  그렇게 소완은 주방업무를 하루 쉬었고, 그러고도 로크에게서 리튬 배터리를 갈취...... 제공받았다.



27.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온 육지 탈환 시간. 이번에도 타이런트 사령관이 직접 출진하는데, 에밀리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하늘에는 로크를 대동하고 머리 위에 하치코와 에밀리를 얹은 채 육지에 상륙한 타이런트 사령관.


  상륙하자마자 냅다 브레스를 뿜었고, 덩달아 에밀리도 제녹스로 레이저를 발사했다. 두 줄기의 매서운 불길에 철충이 바스라지는 모습을 보면 일방적인 유린에 가학심을 깨우칠 위험조차 느껴졌다.


  타이런트의 전투 시스템에 정신을 맡기고 있으면 어느샌가 적이 없다. 이번에도 자원이 들어오겠구나 싶어 싱글벙글한데, 에밀리가 머리 위에서 털썩 앉으며 중얼거렸다.


  "......사령관, 나 사령관한테 필요할까?"


  에밀리는 오르카 호 최강의 포격병이었다. 이런저런 제약이 많아 필수적인 보조장비나 아자아자 아자젤의 가호가 필요하다든가 하긴 하지만, 어쨌든 화력만큼은 1등이었다.


  하지만 이젠 사령관이 더 강하다. 에밀리는 사령관에게 반지를 받은 바이오로이드로서 사랑을 주고받고, 사령관의 믿음에 상응하는 실력으로 보답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사령관이 타이런트로 귀환한 후에는 그게 약해진 모양이다.


  "크릉크릉 크릉크릉......"


  최근 유독 기운이 없었던 이유가 이거구나, 전혀 아니고 에밀리는 꼭 필요하고 소중하다고 말하는 사령관. 근데 대사가 크릉크릉이라 분위기가 다 깨진다. 하루 빨리 닥터가 언어 모듈을 완성해줘야 하는데.


  그래도 에밀리의 낮아진 텐션은 여전했다.



28.


  사령관이 없던 10년 동안, 오르카에 새로 합류했던 바이오로이드가 몇 있다. 이터니티라든가...... 조만간 멀리 나가 있던 바이오로이드가 귀환하기로 했고, 마침 사령관이 돌아왔을 때 아자젤이 그녀를 데려왔다.


  "사라카엘이다. 그대가 말로만 듣던 구원자인가...... 좀, 아니,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크군."


  안녕하세요, 킹룡 구원자입니다. 보아하니 코헤이 교단의 바이오로이드 같았기에 교단 전통의 인사법으로 인사했다.


  "크릉크릉 크르릉."

  "아자아자 아자젤이 아니다. 나는 사라사라 사라카엘이다."

  "크릉?"


  같은 교단인데도 달라?



29.


  "흠흠, 그러니까 에밀리라는 어린 양의 기운을 복돋아주고 싶다. 그런데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크릉."

  "요컨대 자신이 너무 잘난 덕에 그녀의 일자리를 뺏어버린 게 후회된다는 뜻인가."

  "크, 크릉......"


  선동과 날조입니다. 뼈가 아프지만 아무튼 날조라고.


  사라카엘은 뭔가 괴짜같지만 교단의 바이오로이드답게 사령관의 상담에 귀를 기울여주었다. 진심으로 해결책을 고려해주기도 했고.


  "단순하다. 활약시켜줘라. 구원자, 그대가 감당하지 못할 전장에서 그녀의 도움을 받아라."

  "크릉크릉 크크릉?"

  "왜, 있지 않나. 일반 개체든 연결체든 가리지 않고 수색대에 편성해서 지역을 점령하고 있는 곳. 지금까지 그대가 탈환한 섬보다는 훨씬 버겁겠지."


  아, 그러니까 지금 에밀리랑 둘이서 영원한 전장에 다녀오라고.


  괜찮은데?



30.


  타이런트 사령관의 최고 이점은 철충을 씹어먹어 에너지를 보충하는 기능이다. 덕분에 사령관은 어느 전장에서든 장기전을 벌일 수 있다.


  그런 기능을 정면으로 카운터쳐 상대하기 껄끄러운 연결체가 있으니, 레이더, 네스트, 익스큐셔너를 제치고 둠 이터 되시겠다.


  "크르라아아아아아!"

  "캬아아아아아아아!"


  철충을 먹어치워 자길 강화하는 미친놈. 자꾸 자기가 먹을 식량을 가로채는 게 성가셔서 먼저 죽이려니까, 철충을 먹어치워 허기가 차오르면 외부 데미지를 안 받는다. 화난다.


  덕분에 지금 이 전장에서 죽은 철충들의 사인 대부분은 평범한 피격이 아니라, 둠 이터와 타이런트의 포식이다. 푸드파이터 대회냐고 이게.


  에밀리도 타이런트도 열심히 놈을 공격해봤지만, 한계 이상으로 차올랐을 허기 덕분에 둠 이터는 멀쩡했다.


  "제녹스에도 꼼짝 안 해......"

  "크릉......!"


  에밀리의 상태가 좋지 않다. 기운을 복돋아주려고 데려온 전장인데 더 좌절하는 것 같다. 왜 하필 둠 이터가 여기 있냐고. 그 불멸조무사가 더 낫겠네.


  상심이 커져만 가는 에밀리. 분명 다른 바이오로이드 중에는 자기보다 잘 싸울 수 있는 이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제녹스의 손잡이마저 놓으려 했으나.


  "크릉!"

  "사, 사령관?"

  "크릉! 크앙! 크르릉!"


  통역하자면 대충 헛소리하지 마라, 너는 오르카에서 가장 강한 바이오로이드다, 나는 널 믿는다...... 이것이 세기말 열혈물임을 어딘가에서 보고 있을 탈론페더에게 강의하듯 에밀리를 혼쭐냈고.


  에밀리는 다시 제녹스를 잡았다.


  "......응, 힘낼게......!"

  "크릉!"


  에밀리는 자신감을 되찾았다. 역시 긴급상황일수록 진심은 잘 와닿는 법이다.


  그렇게 바이오로이드와 AGS(내용물은 인간)의 유대에 반응하듯, 타이런트 기체에 탑재된 그 기능이 기동을 시작했다.


  타이런트의 등갑판이 열리고 튀어나온 호스들이 에밀리의 제녹스에 연결되고, 여러 부품들이 장갑을 더해 타이런트 기체에 제녹스를 부착했다.


  타이런트가 등에 대형 레일건을 짊어진 형태. 대충 타이런트 제녹스 ver라고 명명하자. 참고로 로크와 합체했던 모습은 썬더 타이런트니 로크 타이런트니 바이오로이드들과 AGS들이 언쟁 중이다.


  "이게, 합체......!"

  "크, 크릉......"


  아니야, 뭔가 이상해. 이상하긴 한데 힘은 넘쳐흐른다.


  "......크르, 크릉!"

  "응, 알았어!"

  "캬아아아아아아아!"


  주변 철충을 모조리 먹어치워 초과된 허기에 요새 같은 방어력을 자랑하는 둠 이터.


  에밀리는 대형 제녹스의 손잡이를 잡았고, 타이런트는 입을 벌렸다. 두 포구로 에너지가 응집되어, 거대한 두 줄기의 광선이 둠 이터를 향해 발사됐다. 


  에밀리의 제녹스를, 디스트로이어의 광선을 넘어서는 아득한 화력이 둠 이터를 집어삼켰고, 그대로 전장을 가로질러 지평선을 향해 질주했다.


  질주를 끝마치고 광선이 사라졌을 때는 둠 이터도 사라져 있었다. 피해 최소화의 방벽도 뚫어버리는 화력이라니.


  이것이, 합체인가!


-




상심한 주인공이 깨달음을 얻고 새 합체기로 발전하는 건 국룰이죠


쓰는게 재밌다

분명 나는 봇박이가 아니었고 로봇을 좋아하긴 하고 댓글에도 합체얘기가 있길래 해본건데 재밌다

일주일 뒤에 굳건이 만나러 가는데 가기 전에 낙이 생겼어

올리면 재밌다고 해주는 애들덕분에 쓸맛난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