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구라고 사실 티아멧 vs 에밀리 세계관 최강자들의 싸움 보고 싶어서 씀


시간 상으로는 초중반부는 2편에서 3편 사이에 벌어진 일, 후반부는 4편 중간에 벌어진 일







이것은


내가 그 지옥같은 연구소에서


아직 정신줄을 놓지 않았던 때의 이야기.


그 날도 평소처럼 실험실에 들어갔고


평소처럼 기동장치를 등에 멨고


평소처럼 닿을 수 없는 기록을 향해 몸을 내던질 줄로만 알았다.






"...누구?"


무표정하게 나를 바라보는 반 쯤 감은 분홍색 눈동자.


아니, 정확히는... 멍때리는 쪽에 가까운가?


입을 살짝 벌린 채 멍하니 나를 쳐다보는 그 아이의 길고 새하얀 생머리가 나풀거렸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누가봐도 대충 입혀놓은 티가 팍팍나는 면티와 회색과 노란색의 시크릿 투톤 코트가 보였다.


이제 옷도 입히기 귀찮다 이건가.


그보다는 그 아이가 손에 들고 있는 것에 눈길이 끌렸다.


자기 몹집보다 커다란 무기. 형태는 레일건에 가까워 보인다.


아마 내 대검보다도 훨씬 무거울텐데 한 손으로 거뜬히 들고 있는 걸 보면 눈 앞의 아이 역시 보통 인간이 아니겠지.


이 아이가 왜 여기서 나랑 눈싸움을 하고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X-05 에밀리 시험기 성능 테스트를 시작하겠다"


지금부터 서로 죽이라는 거겠지.










인격 모듈이 달려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행동가지.


그러나 명령 한 방에 바로 자세를 고쳐잡는 걸 보면 역시 실험체는 실험체가 맞았다.


1대1로 싸우게 한 걸 보면 아마 나와 동급 혹은 그 이상의 성능을 가졌으리라.


일반적인 중화기라면 격발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도 회피기동으로 탄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저게 진짜 레일건이라면 발사 장면이 눈에 비치는 순간 빛의 속도로 날아온 에너지에 내 몸은 그대로 산화할 것이다.


답은 하나. 탄을 쏘기 전에 먼저 몰아세우고 단기전으로 끝내야한다.


등에 매단 기동장치에서 푸른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찰나의 순간 가속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태도를 든 채 거리를 좁힌다.


목표는 레일건을 든 팔. 무기 사용을 봉인해야한다.


"텅!!"


금속끼리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


상대는 내 공격에 반응해 레일건을 들어올려 검을 막아섰다.


첫 타에 쉽게 끝날 거였으면 처음부터 싸우게 하지도 않았을 거다.


아래를 노린 두 번째 공격.


"깡!!"


역시 막혔다.


검격의 속도를 올려야 한다.


몸 속에 오리진더스트가 퍼지는 감각은 몇 번을 겪어도 적응되지 않았다.


입 속에 쓴 맛이 감도는 걸 느끼며 연달아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참격을 넣는다.


모두 막히긴 했지만 상대는 무기를 제대로 충전하지도 못했기에 아직 내가 유리하다.


오른쪽 아래를 노린 여섯 번째 참격.


공격을 막기 위해 상대의 두 팔이 아래로 쏠렸다.


태도를 거두고 등에 맨 대검을 꺼내듦과 동시에 힘껏 내려찍었다.


방어하더라도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강력한 한 방.


"쿠웅!!"


폭음과 함께 휘두른 대검이 바닥에 꽂혔다.


거미줄을 닮은 균열과 함께 움푹 파인 하얀 타일.


상대는 대검이 찍히기 직전 거리를 벌렸다. 현명한 판단.


눈으로 상대를 쫓자 레일건에 전하가 모이기 시작하더니 곧 노란색으로 점멸했다.


손가락이 방아쇠에 닿기 직전, 출력을 상승시켜 옆으로 크게 돈다.


"콰앙!!"


굉음과 함께 내가 있던 자리로 폭발적인 에너지탄이 지나갔다.


상대의 눈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내 위치를 놓친 모양이다.


뒤를 잡은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태도를 뻗은 채 출력을 후방에 집중시켰다.


순식간에 가속이 붙고 상대를 향해 돌진했다.


뒤늦게 알아차린 상대가 회피를 시도했지만 칼끝으로 팔을 스치는데 성공했다.


속도를 유지한채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공중에서 360°로 크게 원을 그리면서 목표를 향해 대검을 내리꽂는다.


"쿠과앙!!!"


더 큰 굉음과 함께 아까보다 넓게 퍼지는 균열.


피할 것은 예상했다. 노리는 것은 직후 역동작에 걸린 상대에게 들어갈 일격.


푸른 기운에 휩싸인 대검으로 바닥을 그으면서 상대가 있을 곳을 향해 에너지를 방출시켰다.


"...앗..."


전방을 휩쓰는 충격파. 미처 피하지 못한 상대가 급히 레일건을 들어 방어해보지만 뒤로 밀려나며 한 쪽 무릎을 굽혔다.


날개 사이에 납도된 쌍검을 꺼내들며 먹잇감을 덮치는 맹수처럼 달려들었다.


동시에 승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오리진더스트를 더욱 포화시켰다.


타는 듯한 작열감과 함께 몸이 더 빨라지는 게 느껴졌다.


육중한 레일건 하나로는 모든 공격을 막아내는데 한계가 있다.


쉴 새 없이 휘몰아치면서 최대한 충전할 틈이 없게 해야한다.


연격이 이어질 수록 집중을 잃는 상대. 미처 막지 못 한 공격이 상대를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돌연 노란 빛이 감도는 레일건. 휘두른 왼손의 검이 닿자 강한 척력에 몸이 팅겨나갔다.


자기장인가. 골치아픈 무기다.


나를 향해 똑바로 겨눈 레일건. 공격이 나오기 직전을 예측해서 피해야한다.


파직거리는 전류가 발사구까지 차오르는 순간, 미리 장전해놓은 출력을 집중해 공중으로 솟아오른다.


발끝을 스치는 에너지탄.


연달아 차탄이 들어온다.


역방향으로 섬광을 분사하며 아래로 회피기동했다.


머리 위로 지나간 차탄이 머리카락 끝을 태웠다.


타는 냄새에 정신이 또렷해진다. 제대로 하지 않으면 죽는다.


다시 레일건의 빛이 점멸했다.


허벅지에 낀 단검을 집어 상대를 향해 내던졌다.


"...읏..."


조준이 흐트러진 상대. 저 멀리 날아간 에너지탄이 벽에 부딪히며 구덩이를 만들었다.


다시 돌아온 기회. 대검을 쥔 양손에서 기화한 오리진더스트가 새어나왔다.


푸른 빛에 휩싸이는 대검. 내장된 핵융합로가 반응하며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뿜어냈다.


그대로 공중에서 목표를 향해 찍어내렸다.


"쿠과아앙!!"


연구소 전체을 진동시키는 충격과 함께 바닥이 완전히 박살날 정도의 일격.


흩날리는 먼지와 타일 조각 때문에 보이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아직 상대는 살아있다. 


재차 반응하는 융합로. 한 번 달궈놓은 덕에 출력을 올리는 데 드는 시간이 절반으로 줄었다.


크게 한 걸음 내딛으면서 몸을 회전시켜 다시 한 번 전방을 내려찍었다.


강한 충격에 날아갈 뻔한 두 다리를 억지로 붙잡았다.


미처 방출하지 못 한 에너지가 기둥처럼 솟구쳤다.


각종 파편과 먼지로 뿌옇게 되어 상대의 위치를 가늠할 수 없는 상황.


연기 사이에서 번쩍이는 빛이 보였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저절로 움직이는 신체. 반사적으로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머리 위로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에너지탄. 전격에 스친 정수리가 따끔거렸다.


그대로 부스터를 최대 출력으로 끌어올려 섬광이 번쩍인 곳을 향해 돌진했다. 


동시에 태도를 빼들어 아래에서 위로 크게 베어올렸다.


하지만 이 공격은 미끼. 방어를 유도하고 날개에서 쌍검 중 하나를 뽑아 앞으로 힘껏 내질렀다.


지금껏 날 죽지 못하게 붙잡은 본능적인 감각이 이끄는대로 칼을 내질렀다.


일련의 과정이 이루어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0.5초도 채 되지 않았다.


찝찝한 액체가 손에 튀겼다. 부드러운 고기를 찢고 들어가 단단한 뼈를 깎아내는 감각이 손끝에 전해졌다. 희미하지만 분명히 얕은 신음소리가 들렸다.


출력을 더욱 집중하면서 칼에 꽂힌 상대를 벽까지 끌고 갔다.


"콰앙!!"


굉음과 함께 벽에 격돌했다. 먼지가 걷히자 입가에 피를 흘리는 상대가 보였다.


어깨를 정확히 관통한 일격. 깔끔한 유효타.


칼을 뽑아내자 상처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언뜻 보기에도 심각한 치명상.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바이오로이드라도 생명이 위험할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마음속으로 승리를 확신했다.


그러나 실험 종료를 선언해야할 그 놈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무리 그 놈들이라도 이런 비싼 실험기를 쓰다버릴 장기말 취급할 리가 없다. 무언가 이상했다.


그 순간, 하얀머리 여자애의 심장 부근에서 노란색 스파크가 튀기더니 파직거리는 전격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몸에 걸리는 과부하. 강한 자기장의 영향으로 제대로 서있기조차 힘들어졌다.


맙소사, 이게 정말 바이오로이드 하나가 내는 힘이라고?


노란색 아우라를 뿜어내는 상대. 기화한 오리진더스트가 안개처럼 형성되는 현상이다.


전신으로 퍼지던 전격은 불타듯이 여자애의 몸을 감싼 채 주변에 고압 전류를 흘리고 있었다.


달라진 분위기. 마치 만화 속 주인공의 각성 장면과도 같은 위압감.


물론 각성한 주인공에게 박살나는 악당 역할은 나였다.


상대가 레일건을 들어 나를 향해 조준했다.


나는 그걸 어떻게 피한 걸까.


눈을 깜빡이고 나니 난 공중에 떠있었고 방금 전까지 내가 있던 곳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의 레이저가 지나가고 있었다.


순식간에 대량의 에너지가 훝고 지나간 궤적에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정신이 아찔했다. 


내가 인식하기도 전에 충전을 끝내고 말도 안 되는 위력의 레이저를 발사하는 상대.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꼈다.


앞으로 몇 합, 그 안에 끝내지 않으면 난 죽는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벌기 위해선 내 한계를 뛰어넘어야한다.


허리에 매단 앰플의 제어장치를 해제했다.


곧 전신으로 퍼지는 작열통과 함께 마약이라도 한 것처럼 몽롱해짐을 느꼈다.


침 속에 섞여 나오는 까끌까끌한 가루. 몸 전체의 수분이 빠져나가는 감각과 함께 피어오르는 옅은 보라색 안개.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가벼워진 신체와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걸로 착각할 정도로 빨라진 두뇌회전.


이미 충전을 마친 상대는 차탄을 발사할 자세를 잡았다.


급강하하면서 태도를 빼들어 아래에서 위로 강하게 베었다.


그 순간 상대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설마 그 위력에 속도까지 올라간다고? 괴물이야?


하지만 여유부릴 시간이 없다. 조준-충전-발사를 1초만에 해내는 상대에겐 더더욱.


전류 흐름으로 위치는 알 것 같다. 7시 방향에 있는 상대.


바닥을 박차고 떠오르며 상대가 있을 위치로 쇄도했다.


이번에도 회피한 상대. 서서히 레일건에 출력을 모으기 시작한다.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생각이 있다.


갖고 있는 무기들을 번갈아서 모두 꺼내들며 숨 쉴 틈 없이 공격을 계속한다.


상대가 모두 회피하긴 했지만 이 쪽도 대검에 에너지가 모이기 시작했다.


상대가 내뿜는 전격, 나의 운동 에너지, 무기가 지면과 충돌할 때의 충격, 모든 걸 고스란히 흡수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상대의 레일건이 충전 완료된 걸 보자마자 대검을 꺼내들었다.


부스터에 출력을 집중하고 정면으로 돌진했다.


자기장으로 방어막을 두르고 조준을 시작한 상대.


노리는 것은 이번 공격이 아니다. 바닥에 깊은 칼자국을 남기면서 끌어온 대검을 힘껏 부딪힌다.


방어막이 깨지면서 그 반동으로 높게 치솟았다.


모든 출력을 대검에 집중했다. 푸르게 빛나는 대검에서 아우라가 풍겼다.


그대로 자유낙하 하면서 목표를 향해 내리꽂았다.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상대. 발사를 위해 멈추는 그 순간을 노린 낙하.


이제 남은 건, 그 공격을 정면으로 버티는 것 뿐이다.


노란 섬광과 함께 보기만 해도 어지러울 정도의 에너지가 나를 향해 사출되었다.


최대한 아래로 뻗은 대검이 레이저와 맞부딪히며 사방으로 엄청난 전격이 퍼졌다.


귀를 찢는 것 같은 날카로운 긁히는 소리와 함께 레이저를 가르면서 대상을 향해 낙하했다.


동시에 빠른 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하는 대검의 출력. 바닥까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대로 밀릴 수는 없다.


남은 힘을 부스터에 쥐어짜면서 억지로 돌파를 시도했다.


마침내 에너지의 근원, 레일건에 칼끝이 닿는 순간


연구소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폭발과 함께 푸른빛과 노란빛이 섞인 거대한 에너지의 기둥이 둘을 감싼 채 솟구쳤다.


그 후폭풍에 실험 관찰용 강화 유리창이 덜커덩하는 소리를 내며 거칠게 흔들렸고 책상 위에 놓있던 커피가 바닥으로 쏟아졌다.


연구원들은 분주하게 움직이며 방금 전 측정한 각종 지표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끝났다.


누가 이겼는지는 모르겠다.


눈 앞이 새햐얘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몸을 혹사시킨 대가가 뒤늦게 찾아왔다.


온몸의 장기들이 고통을 호소하며 산소를 요구했다.


아무리 숨을 들이마셔도 더 많은 공기를 독촉하는 폐와 심장.


동시에 목구멍에서 울컥하는 느낌과 함께 찐득한 무언가가 토해졌다.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는 탈력감에 휘감긴 채, 아득해지는 정신을 서서히 떠나보냈다.










눈을 떴다.


반 쯤 감은 분홍색 눈동자가 날 반겼다.


정갈한 흰색 와이셔츠와 감색 교복치마. 어깨에 걸친 갈색 블레이저.


귀에 꽂은 이어폰 선은 가슴 주머니 안까지 연결되어있었다.


품에 안은 연녹색 가방에 달린 활짝 웃는 뱃지가 짤랑거렸다.


맹한 표정으로 평소 들고 다니던 레일건을 탄 채  둥둥 떠다니는 아이.


한 때 나와 생사를 걸고 싸우던 그 아이가 이어폰을 뽑으면서 말했다.


"...같이 탈래?"


내가 의도적으로 피해다닌 걸 아는지 모르는지 속편한 그 질문에 인상이 구겨졌다.


"...싫어? 이거 재밌는데..."


"...당신은..."


"...응?"


"어떻게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상대를... 아무렇지도 않게 대할 수 있죠?"


태평한 모습에 화가 나서일까,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튀어나왔다.


"친하게 지내면... 안 돼...?"


"그런 게 아니라..."


"티아멧은... 아직도 내가 싫어?"


"......"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이 아이는 어째서 이렇게 정곡을 찌르는 말만 골라서 할까.


"나 말이야... 인격 모듈이랬나? 아무튼... 그게 없데... 그래서인지... 싸우는 것 말고... 잘하는 게 없었어...


그래도 사령관이 말했어... 에밀리는 실험체가 아니라 에밀리니까... 예전에 내가 뭐였든지... 얽매이지 말고... 이제부터 천천히 알아가면 된다고... 


티아멧도 이제... 실험체가 아니라... 티아멧이니까... 더 이상... 얽매이지 않아도 괜찮잖아...


그러니까... 우리 친구하면 안 돼...?"


고개를 살짝 기울이는 에밀리.


그 사령관이란 사람이 무슨 바람을 불어넣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옛날 일에 대한 앙금은 남아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러면 나만 아직도 과거에 연연하는 것 같잖아.


너는 보란듯이 털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하고 있는데...


나만... 뒤쳐지는 것 같잖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런 의도가 아닌 걸 알았지만 에밀리의 말은 아직도 과거에 멈춰있는 나를 비웃는 것만 같았다 


"...지금은 별로 타고 싶지 않네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타볼게요"


그렇게 말하면서 난 도망쳤다.


"...타고 싶어지면 언제든지 말해..."


그 말에 잠깐 멈칫했지만 뒤를 돌아보진 않았다.


돌아봤다간, 도저히 못 참고 질질 짤 것 같았으니까.


하얀머리 소녀는 티아멧이 복도 너머로 모습을 감출 때까지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