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령관은 사이다충이다


구체적으로는 별 좆도아닌 새끼처럼 보였던 놈이 사실은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자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간?! 이라는 상황을 한번쯤 겪어보고 싶었다


자신을 따라주고 헌신해주는 바이오로이드들에겐 늘 고맙고, 더 잘해주고 싶은 생각이 가득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한번쯤은 자신을 우습게 보던 상대가 내 정체를 알게되자마자  죄애앳쏭합니다! 닷-씨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고개를 쳐박는 모습을 보는것이 사령관의 작은 욕심이자 로망인 것을 어쩌겠는가

그러나 이런 시추에이션이 벌어지기에는 오르카호의 상황이 너무나 부적절했다


함내에 유일한 남성, 바이오로이드들이라면 단번에 알아챌 수 있는 인간의 뇌파, 사령관이라는 직함 때문에 자신의 얼굴을 모르는 선원이 없는 상황까지,

어디가서 힘(권력)을 숨긴 찐따 코스프레를 하기에는 자신은 너무 특징적인 존재였다


결국 로망은 로망에 불과하다며 단념하고 일상 업무로 돌아가려할 때 쯤, 오늘의 부관인 아르망이 조심스레 운을 떼었다


"폐하, 일탈을 원하신다면 제가 제안드릴 수 있는 방법이 몇가지 있습니다"


혼자 멍때리며 하던 생각에 그녀가 답변해주듯 던진 서두는 사령관의 속을 뜨끔하게 만들었다


"...내 속마음이라도 읽은거야 아르망? 네 연산 기능으로는 그런 것까지 예측해낼 수 있는거니?"


"폐하께서 안고계신 고민을 해결해드리는 것이 추기경으로서 해야하는 일이니까요. 흥미가 동하신다면 자세한 내용을 말씀드려도 될런지요?"


아르망은 빙긋 웃으며 그 물음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 대신 애매모호한 말을 돌려주었다

그녀의 제안을 듣게된다면 눈앞의 부관의 손에 놀아나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애당초 해가 될 일이라면 아르망이 이렇게 말을 꺼내지도 않았을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여태까지 보여줬던 모습대로라면 자신의 작은 소망을 실현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놓칠 수 없었다


"좋아, 네가 생각한 바를 말해줘 아르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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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쾅! -쾅!!!


메이는 자신이 앉아있는 옥좌를 계속해서 내리쳤다


“이 씨발 어떤 개간년인지 게임 진짜 좆같이 하네!!”

“씨발 [하치코의 미트파이]를 4장이나 넣고 다니는게 말이 돼?! 나 저격한거야 지금??”

“심지어 듀얼 등급 3?? 3렙따리가 무슨 필수카드가 이렇게 많아 씨발!"

“아니 패가 저렇게 나오는게 말이 되냐 씨발 이거 핵쓰는거 아냐?!”


그녀가 말 한문장 한문장에 씨발을 빠트리지 않을 정도로 분노한 이유는 지금 하고 있는 게임 때문이었다


-오르카 듀얼

엘라가 기획하고 닥터가 개발하여 유미가 보급한 온라인 TCG 게임

오르카호에 몇 없는 유흥거리로, 철저하게 익명이 보장되는 ID 코드를 사용하여 오로지 덱과 실력으로만 승부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지휘관 개체부터 양산형 개체까지 모두가 즐기는 게임이다


메이는 이 게임을 오픈 초기때부터 즐기던 고인물 유저였는데, 이유인 즉슨 밤에 사령관에게 불려갈 일이 없다보니 나날히 늘어만 가는 킹치만과 찐따력으로부터 외면할만한 도피처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만큼 게임에 대한 이해도도 남다른 수준이었고, 자연스레 지금 자신과 맞붙은 상대방의 이상한 점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첫째로 듀얼 등급은 현저하게 낮은데 현메타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 카드로 덱을 꽉 채웠으며,

둘째로 차근차근 스택을 모았다가 한번에 상대방의 라이프 포인트에 타격을 주는 자신의 빌드업이 이상하리만큼 철저하게 견제당하고 있으며,

셋째로 상대방의 채팅으로 미루어봤을 때 상대방은 이 게임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고 할 정도로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것이...그냥 나오는 대로 냈던건데...이렇게 잘 풀릴지는 몰랐네요 ㅎㅎ;]

  [아니…이게 이렇게 되네요...운이 좋았읍니다 ^^]

  [이게…그렇게 좋은 카드인가요..? 그냥...뽑다보니까...잔뜩 나오던데...]


특히나 이 채팅들이 메이의 속을 거하게 긁어놓았다

채팅마다 ...을 안쓰는 적이 없으며 구체적인 전술이라곤 1도 찾아볼 수 없는 대답에, 심지어 타이핑이 느린건지 문장 하나 치는데 2~3분씩 걸리는 모양새에 저 새끼가 자길 놀리나 싶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 것이다


오르카 듀얼은 매번 접속할 때마다 ID 코드가 바뀌고 데이터는 각자의 디바이스에 연동되어 저장되기 때문에 상대가 누구인지는 알 방법이 없지만, 추측 정도는 가능했다

저레벨에 필수카드를 전부 다 모을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재화(참치캔 과금)을 쏟을 수 있는 위치

최근까지 오르카 듀얼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사람

틀딱마냥 고리타분한 채팅에 독수리 타법이 연상되는 느린 타자

페어리 시리즈의 맏언니 오베로니아 레아


“레아 이 씨발년…!! 스정게에서 호감고닉질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레아는 온라인 컨텐츠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어 극히 최근까지 스정게의 존재조차 몰랐다고 하며, 다프네의 도움을 받아 몇주 전부터 누구나 레아임을 알아볼 법한 고닉을 파서는 되도않는 비틱기만질과 틀딱체, 네덕 이모티콘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호감스택을 쌓고 있었다

아마 오르카 듀얼도 페어리 시리즈의 누군가에게 소개받아 이제서야 시작한거겠지. 최근 작전 수행도 잦았으니 과금할 참치캔은 썩어날 정도로 많았을 것이다


메이에게 오르카 듀얼은 스트레스 해소용 도피처였다

지휘개체로서의 압도적인 연산능력과 자신의 입맛에 맞는 화력덱으로 상대방을 압도적으로 유린하는데서 나오는 쾌감

그 쾌감으로 하여금 킹치만의 메이 라는 굴욕적인 별명과, 사령관과의 관계 문제에 대한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잊게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와중에 레아(로 추정되는 상대방)을 만나 발암 가득한 게임을 하다보니 메이는 눈이 뒤집히고 말았다


[게임 진짜 좆같이 하네 과금으로 풀덱 맞춰서 비틱양학질 하면 재밌냐?]

  [그것이...그냥 나오는 대로 냈던건데...이렇게 잘 풀릴지는 몰랐네요 ㅎㅎ;]

[하다보니까고 자시고 너 옆에서 누가 훈수두고 있지? 3렙뉴비 새끼가 이런 플레이를 하는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제가 게임이 오늘이 처음이라...도움을 좀 받고있긴 한데 양해좀 해 주십시오 ㅜㅜ]

[애밐ㅋㅋㅋㅋ 대리하는건 또 부정을 안하네 골때리겤ㅋㅋㅋㅋ]

[실력으로 승부하는 게임에서 대리질한게 자랑임??] 

[너 어디냐? 이 판 끝나고 수복실 앞 휴게소로 나와라]

[게임 가이드가 필요하면 내가 면전에서 해줄게 시발련아]


평소라면 기분 좀 잡쳐도 대충 끝내고 넘어갔겠지만 상대방이 레아로 추정되는 이상 이렇게 끝낼수는 없었다

최근 스정게에 출몰해서 호감고닉질로 갑분싸 만들어놓는 것도 그렇고, 정정당당하게 실력을 겨루는 오르카 배틀에서 핵과금과 대리로 불합리하게 승리를 거머쥐는 꼬락서니를 같은 통솔개체로서 도저히 넘길 수 없다는 자기합리화 끝에 나온 결론이었다


메이에게 있어 이것은 더이상 게임으로 인한 갈등이 아닌, 통솔개체로서의 위신이 걸린 문제가 되었다


비록 듀얼에선 졌지만 오늘 직접 대면해서 그 버릇을 고쳐주고 말리라


그렇게 다짐한 메이는 자신이 지정한 장소를 향해 옥좌를 움직였다


아무리 합리화해봤자 결국 그것이 게임에서 진 찐따의 열폭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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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복실 앞 휴게소


멸망의 메이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심판의 옥좌에 앉아 조금 전 듀얼을 했던 상대방을 기다리고 있었다


상대방이 정말로 나올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의 분이 풀리지 않으며, 또 자신이 여기에 있다는 사실이 입소문을 타고 퍼지면 당사자였던 레아(로 추정되는 누군가)는 자신이 누굴 화나게 했는지를 깨닫게 될 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만약 나온다면 면전에서 면박을 주면 되고, 나오지 않아도 자신의 분노와 경고를 간접적으로 전할 수 있으니 손해볼게 없다

자신은 합리적이며 대의명분 가득한 판단을 내렸다

메이는 속으로 그렇게 자평하며 페어리 시리즈의 거주구역과 이어진 복도를 조용히 노려보고 있었다

원래 이곳에 진을 치고 있던 브라우니와 레프리콘들은 무언의 압박으로 쫒아냈으니, 지금 이 휴게소를 찾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자신이 불러낸 상대방 밖에는 없을 것이다

채팅에 욕설까지 섞었으니 화가 잔뜩 난 채로 올까? 아니면 옆에서 훈수두던 페어리 시리즈의 누군가를 대동할까?

아무렴 무슨 상관이람. 자신에겐 행실 똑바로 하고 다니라고 말할만한 명분이 있다고 자기합리화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옥좌 뒤에서 또각 또각 하며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뭐지? 페어리 시리즈의 거주구역은 뒷쪽이 아닌데...’

이상하게 생각하는 한 편, 찾아온 상대방을 있는 힘껏 노려보기 위해 눈에 힘을 주며 뒤를 돌아본 순간


“안녕 메이, 어제 지휘관 회의 이후로는 처음이네"


들려온 것은 사령관의 목소리였다


앻…?


너무 당황해서 옥좌를 조작할 생각도 못한채 상반신을 돌려 뒤를 본 메이는 자신을 찾아온게 틀림없는 사령관임을 깨달았다

뭐지? 설마 내가 상대한게 사령관인가? 아냐 그럴리 없어 채팅하는 모양새가 영락없이 틀딱 레아줌마였는데

사령관은 오르카 배틀같은거 관심도 없다고 그랬었는데? 설마 사령관이 이런 게임에다가 참치캔을 들이부었겠어 말도 안되지

그냥 수복실에 일이 있어서 왔나보다


“안…녕 사령관. 여기엔 무슨 일이야? 수복실에 볼일이라도 있나보지?"


메이는 속으로 온갖 생각을 다 하면서 애써 태연한 모습으로 사령관에게 인사를 건냈으나 돌아온 대답은 그녀의 멘탈을 산산조각냈다


“그게, 오늘 오르카 듀얼이라는걸 처음 해봤는데 나 때문에 상대방이 화가 난 것 같아서”

“온갖 욕을 다 하면서 날 여기로 불러내더라고”

“잘은 모르겠지만 나 때문에 그러는 것 같아서 우선 얼굴이라도 좀 보고 이야기하려고 했지”


앻….어앟……..

메이는 머리가 새햐얘져서 지금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지조차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았다


“그..그치만 사령관...오르카 듀얼엔 관심도 없다고...한번도 해본 적 없다고...”

“아아...주변에서 하도 해보라고 권하길래, 유미한테 좀 부탁해서 관리자 계정으로 오늘 하루만 체험해보려고 했지”

"늘상 전자 패널만 사용하다가 키보드를 사용하려니까 채팅 치는것도 되게 익숙하지가 않더라"

“어…아…그, 사령관…”

“그런데 이정도로 감정이 격해질 소지가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어...딱 한 판 했을 뿐인데 상대방이 나한테 온갖 인신공격을 다 하더라고”


좆같이...뉴비새끼...애미....시발련.....

자신이 썼던 인신공격성 채팅을 떠올리자 메이는 자신의 얼굴이 창백해지다 못해 새파래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좋은 취지로 오르카 듀얼 보급을 허락한건데 이런 일이 자주 벌어지는 게임이라면 재고를 해봐야할수도 있겠네”

“...그런데 혹시 방금 그 상대방이...메이, 너니?"


메이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막판에 찍쌈

사령관이 바이오로이드 상대로 힘숨찐하는걸 써보고싶었는데 그런 상황을 쉽게 못만들겠다


https://arca.live/b/lastorigin/20354234?target=all&keyword=%EC%8A%A4%EC%A0%95%EA%B2%8C&p=1

스정게 호감고닉 레아 문학에서 나온 레아 설정이 너무 친숙해서 멋대로 섞었음

혹시 원작자 보기에 불쾌하다면 말해주어...그 내용은 싹 도려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