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 https://arca.live/b/lastorigin/1507448 




 마츠시타와 토모는 아침 일찍 호텔을 떠나 택시에 올라탔다. 닛코시 시내를 벗어난 택시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올랐다. 택시가 오코로가와에 도착하기까지는 몇 개의 마을과 토모의 실없는 농담, 택시기사와의 잡담을 지나쳐야 했다.

 “여기가 오코로가와에요. 논밭과 노인네들밖에 없는 곳이죠.”

 머리가 희끗한 기사가 할 말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그였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을까. 확실한 건 기사의 말대로 왼편 차창 밖으로는 논과 몇 채 안되는 집만 보였다. 논은 아직 봄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쉬는 것처럼 보였지만 잡초로 뒤덮힌 집들을 보면 논이 쉰 것은 몇 년이 되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저기 다른 것도 있어!”

 토모는 자간을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가로등을 가리키며 말했다.

 “무슨 일이 있던 건가요?”

 마츠시타는 토모의 말을 듣지 못한척 말했다.

 “평범한 농촌이죠. 젊은 사람들은 도시로 떠나고 늙은이들만 남아서 더 이상 괭이를 들지 못하게 될 때까지 죽어라 쌀을 키우는 거죠. 그렇게 한둘 죽어가며 마을은 천천히 죽어가는 겁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처럼요. 이게 지방의 현실이에요. 정부는 기계화된 농촌이다, 기업화된 농업의 5차 혁명이다 말하지만 그건 1차 산업에서 손을 놓기 싫어서 억지를 부리는 거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누가 고생해서 논밭을 일구려 하겠는가. 힘든 일은 기계나 바이오로이드에게 떠미는 시대였다. 하지만 기계와 바이오로이드는 돈이 필요했다. 돈이 없는 곳은 그저 사라질 뿐이었다. 누구도 시대의 흐름에 저항하지 않았다. 저항할 힘이 없었다. 혹은 저항할 이유를 찾지 못했거나.

 오코로가와의 중심부에 들어서자 그나마 마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이 사는 것처럼 보이는 깔끔한 집들을 지나쳐갔고 지팡이를 짚고가는 노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뭐, 덕분에 저도 돈을 버는 거지만요. 이곳의 주민들은 다들 나이가 들어서 운전을 할 여력이 나지 않지만 이곳은 대중교통이 다니지 않거든요. 저희 같은 택시 수요는 무시 못해요. 노인이라도 시내에 가야 할 일은 항상 생기니요. 시 예산이 충분했다면 버스라도 만들었겠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는 아무래도 무리죠.”

 마을에는 생기가 없었다. 그저 지금까지 존재해왔으니 존재할 뿐인,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지 못한 마을이었다. 전국에는 이런 마을이 수만개는 있었다. 하지만 모두들 그것을 저항할 수 없는 시침의 움직임이라 생각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곳의 주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여기가 말하신 오코로가와 초등학교입니다. 이제는 학생이 아무도 없지만요.”

 택시가 멈춰선 바깥에는 잡초로 무성한 초등학교가 있었다. 철제 울타리는 녹슬어 붉게 노을이 지고 있었고 화단에는 마구잡이로 자란 나무들이 있었다.

 “못해도 20년은 되었을 거에요. 이곳에 더 이상 아이가 없게 된 지가요.”

 기사는 마츠시타가 건넨 카드로 계산하며 말했다.

 “아, 영수증 끊어드릴까요? 기자시라며요.”

 “네. 월간 치바 사회부로 부탁드립니다.”

 “잠시만요.”

 기사가 단말기를 조작하는 동안 마츠시타는 학교를 바라보았다. 학교의 벽에는 스프레이 페인트로 마구잡이로 낙서가 되어있었지만 그 흔적을 넝쿨나무들이 집어삼키고 있었다. 언젠가는 이윽고 초록색 잎으로 뒤덮이는 날이 오겠지.

 “마츠시타, 귀신이 나올 거 같아.”

 “귀신은 걱정마세요. 한창일 시절에는 양아치들이 자리를 잡았지만 그것도 옛 일이거든요. 지금은 정말로 아무것도 없어요.”

 “귀신보다 무서운 건 사람의 부재죠.”

 마츠시타는 아리송한 말을 하며 기사가 건넨 카드를 받고는 문을 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원!”

 토모와 마츠시타가 차에서 내리자 택시는 어디론가로 출발했다. 마츠시타는 자연스럽게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마츠시타, 불 안붙게 조심해. 방과범이 되면 안되잖아.”

 “담배 피우는 게 한두번도 아니고.”

 그렇게 말하며 마츠시타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인쇄소 주인이 건네준 약도를 꺼냈다. 마츠시타가 학교 앞에서 내린 것은 약도는 이 초등학교, 혹은 학교였던 것에서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시작해서… 토모, 어디가 북쪽이야?”

 “해의 반대쪽이니 저쪽!”

 마츠시타의 질문에 토모는 논 건너편의 산쪽을 가리켰다. 토모의 근거는 빈약했지만 그녀의 직감은 믿을만했다.

 “그러면 이 길을 따라서 올라가면 모리오카의 집이 있을 거야.”

 모리오카 토리오. 마츠시타가 이 마을에 찾아온 이유였다. 이곳에 살고 있는 조류학자. 그가 죽은 시라이시에 대한 증거를 가지고 있었다. 그를 직접 찾아가 그 증거를 찾고 싶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를 위해서는 중요한 것이 있었다. 산길을 올라야 한다는 것.

 “마츠시타, 벌써 지친 거야?”

 토모는 마츠시타의 몇걸음 앞에서 마츠시타를 뒤돌아보고 있었다.

 “… 지쳤어.”

 마츠시타는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낮은 언덕이라고 얕본 자신의 잘못이었다. 얼마 올라가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산길은 꽤 오래 오른 것 같았지만 모리오카의 집이 보일 기미가 없었다. 숨이 찼던 마츠시타는 더 올라가기보다는 휴식을 선택했다.

 “마츠시타, 그러니까 담배를 끊으라니까. 담배를 피우는데 운동도 안하니 이렇게 약해지는 거야.”

 마츠시타는 토모의 말을 반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마츠시타는 담배를 끊을 수도, 운동할 시간을 낼 수도 없었다.

 “너는 어떻게 힘든 기색도 없냐.”

 토모는 땀 한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아니, 토모는 땀을 흘리기나 하는 걸까. 언덕을 오른 그녀는 평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바이오로이드잖아. 마츠시타같이 쉽게 지치지 않는다고.”

 그점은 확실히 부러웠다. 마츠시타도 오리진 더스트 시술을 받는다면 토모처럼 강해지고 아름다워질까. 확실한 건 후자는 아닐 거라는 것이었다.

 “뭣하면 내가 업어줄까?”

 “아니.”

 그건 사양이었다. 바닥을 기어갈 지언정 토모에게 업혀가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었다. 이대로 1시간 더 오른다면 몰라도.

 숨을 고른 마츠시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서 시간을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산을 오르다 밤을 맞이할 바보는 되기 싫었다.

 “마츠시타, 파이팅!”

 안타깝게도 토모의 응원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저 마츠시타의 오기로 그녀와 토모는 모리오카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을 집이라 해야 할까. 모리오카가 사는 곳은 철판으로 된 창고에 가까웠다. 너무나도 예상과는 다른 모습에 마츠시타는 지도를 한 번 더 확인했을 정도였다. 시간으로 풍화되어 각양각색이 된 철판들의 위에는 넝쿨이 자라 있었다. 이곳이 사람이 사는 곳일까, 아니면 그저 창고였을까.

 “마츠시타, 카메라야.”

 토모는 건물의 한켠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토모의 말대로 건물의 벽에 작은 CCTV 카메라가 달려있었다. 외부를 경계하는 것일까. 마츠시타는 카메라를 보며 문으로 다가갔다. 철문의 옆에는 초인종과 화면이 있었다. 마츠시타는 숨을 한번 고르고는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초인종은 그런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플루트 소리가 파도를 따라 출렁이는 듯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것은 마치 새 소리 같았다. 마츠시타도, 토모도 몰랐지만 그 음악은 비발디의 플루트 협주곡 D장조, 홍방울새라 불리는 음악이었다. 조류학자 다운 음악선정이라 해도 되겠지.

 하지만 그 소리는 너무나도 편안한 나머지 다른 소리에 묻힌다는 단점이 있었다. 모리오카는 아무 대답도 없었다. 마츠시타는 초인종을 한번 더 눌렀지만 반응이 없는 것은 여전했다.

 “아무도 없는 건가?”

 마츠시타는 초인종을 한번 더 누를까 했는데 왠지 실례가 되는 행동처럼 생각해 그만두려 했다. 하지만 토모는 그 타이밍을 놓칠 리가 없었다.

 “다다다다다다!”

 토모는 엄청난 속도로 초인종을 연타했다. 편안했던 플루트 소리는 엄청난 속도로 재반복되면서 클래식 음악이 아닌 전자음악처럼 들릴 정도가 되었다.

 “누구에요. 장난치러 온 겁니까?”

 토모가 멈춘 것은 화면에 남자가 나타나고 나서였다. 장발에 덥수룩하게 수염이 난 그는 귀찮은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화를 낼 표정이 아니라는 것이 천만의 다행이었다.

 “모리오카 토리오씨 되십니까? 월간 치바에서 여쭈어볼 것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물어볼 거요? 월간 치바? 잡지사인가요?”

 그는 별로 반갑지 않는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네. 저는 마츠시타 쥰일 합니다. 닛코시 소식지에 연재중이신 글을 보고 찾아뵈었습니다.”

 “연재… 제 글 말씀이신가요? 잠, 자, 잠시만요. 지금 바로 열어드릴게요!”

 모리오카는 마츠시타의 말을 듣고 헐레벌떡 달려갔다. 그리고는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늦게 나와서 죄송합니다. 초인종 소리가 워낙에 조용해서 자주 묻히곤 하거든요.”

 문에서는 짙은 새의 향기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동물원에서 흔히 맡을 수 있는 냄새였다. 토모는 본능적으로 코를 막았다.

 “아, 제가 새를 키워서 말이죠. 냄새는 어쩔 수 없네요.”

 모리오카는 토모를 보며 말했다.

 “일단 들어세요. 어떤 걸 알고 싶으신 거죠?”

 모리오카는 머리도 옷도 대충인 모습이었지만 어떻게든 잘 보이려 단정하게 정리를 하고 있었다. 마츠시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집의 안에는 여러 개의 모니터와 여러 개의 새장이 있었다. 여기저기서 새소리가 들려왔다.

 “이 기사를 보고 찾아왔습니다.”

 “기사라 할 것도… 아. 그렇군요.”

 모리오카의 얼굴에서 약간의 실망기가 느껴졌다.

 “사고에 대한 일 말입니까. 그래도 다행이네요. 이 기사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이 계셔서요. 이렇게 대놓고 경찰을 비판했는데 경찰에서 아무 말도 없을 줄은 몰랐어요. 아예 찾아와서 한판이라도 하자. 라는 마음이었는데 이제는 아무 소식도 없어서 잊고 있던 참이었죠.”

 모리오카는 모니터들 앞에 앉았다.

 “아, 편하신 곳에 앉으세요. 정말로 누추한 곳이지만 그래도 사람이 사는 곳이에요.”

 “정말 누…”

 마츠시타는 토모의 입을 막으며 자리에 앉았다.

 “소개가 늦었네요. 도쿄대학교 농학부 조류연구소의 모리오카 토리오라 합니다. 이름대로 새를 연구하고 있죠.”

 그는 익숙하다는 듯 자신의 이름의 토리를 강조하며 말했다. 토리가 새라는 건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었다.

 “연구소면 교수?”

 “그게… 좀 복잡해요.”

 토모의 말에 토리오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박사학위는 먼 옛날에 땄지만 교수는 커녕 조교도 못되는 형편이죠. 그냥 연구원이에요. 교수가 되었음 좋겠지만 매번 채용에서 떨어졌거든요. 그래서 머리도 식힐 겸 시골에 와서 연구에 전념하려 이곳에 온 거에요.”

 “나 그거 알아, 교수가 되지 못한자!”

 “토모, 너무 심한 욕은 안하는게 좋아.”

 마츠시타는 뒤늦게 토모를 막았다. 막지 못했다라는 말이 맞을지도.

 “포닥들이 흔히 듣는 말이에요. 뭐, 기왕 여기에 온 김에 지역 소식지에 제가 아는 지식을 조금 나누려고 글을 썼는데 안타깝게도 별로 보는 사람이 없는 모양이네요. 하긴 누가 새 같은 걸 좋아하겠어요. 대부분은 새는 걸리적거리고 닭꼬치 먹을 때나 새를 좋아할 게 분명해요.”

 그는 연구원답게 비관적인 성격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연구를 해야 해요. 해수면 상승 이후로 전국의 야생조류의 반 이상이 사라졌다는 연구결과가 있어요. 그나마 남은 종들마저 점점 줄어드는 형편이죠.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두지 않는다면 이 땅에 있었다는 것조차 모를 새들이 생길 거에요. 연구자로서 그런 일은 막고 싶은 거죠.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이곳에 무엇이 있었다는 증거를 남기는 것이 연구자의 일이죠.”

 그리고 동시에 연구원답게 자신의 분야에 깊은 관심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연구 성과는 나왔나요?”

 “성과가 나왔으면 동대로 돌아갔겠죠. 대신에 관찰중인 폐쇄회로에 새가 아닌 다른게 찍힌 거에요.”

 “차 사고 말인가요?”

 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마츠시타가 알고 싶은 정보였다.

 “네. 연구를 위해 이 주변 숲에 여러 개의 카메라를 설치해놓았죠. 카메라는 24시간 녹화중이기 때문에 별의 별게 찍히죠. 산에 옷 벗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거 아세요? 저는 증거도 있어요. 하지만 이건 지금 중요한 건 아니죠.”

 궁금하긴 했지만 모리오카의 말대로 마츠시타에게는 더 궁금한 것이 있었다.

 “며칠전 녹화된 영상이에요.”

 모리오카는 화면에 영상을 띄웠다. 화면은 까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노이즈에 불과한 화면이었다.

 “아무것도 안보이는데, 재생중이야?”

 토모는 화면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며 말했다.

 “밤이라 그래요. 시골의 밤은 칠흑같이 어두워서 하늘의 별밖에 안보이죠. 그리고 카메라는 그 별을 잘 찍지 못하고요. 아, 여기 나오네요.”

 멀리서 차의 전조등 불빛이 보였다. 그 전조등이 커지는 와중, 화면 반대편에서도 전조등 빛이 빛났다. 그리고 그 두 빛이 교차한 순간, 전조등이 벼랑 아래로 떨어졌다.

 “아.”

 마츠시타는 시라이시가 사고를 당하는 장면을 보고 탄식을 했다. 너무나 일순간이었다. 너무 일순이라 허무하기까지 했다.

 “이게 다가 아니에요.”

 조금 지나자 한 전조등 빛이 난간위에 멈추어섰다.

 “이게 무슨 말인지 아세요?”

 “몰라, 하나도 안보였어.”

 토모는 토모다운 말을 했다. 마츠시타는 곰곰히 생각했다.

 “저 사람이 신고자인가요?”

 잠시를 멈추었던 차가 출발한 것은 산속에서 불길이 솟아오른 뒤였다.

 “아뇨.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모리오카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밝힐 것이 많이 남아있었다. 시라이시의 죽음에 대한 조사는 이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