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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튼의 무게, 생명의 무게 : 전체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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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본부에서 방호복에 묻은 바이러스를 떼어낸 후, 방호복은 임시본부에 놓아두고 오르카호로 귀환하기로 했다.


귀환 도중의 상공.


"나이트앤젤, 그...우선은 고마워"

아직 실감이 잘 나지 않아서 붕 뜬듯 한 기분으로 그녀에게 감사를 전했다.


옆에있던 메이는 아직 당황 한 기색이 사라지진 않았는지, 새침한 듯 아무 말도 안 했지만.


"그래서 어떻게 안 거야? 우리 위치도 그렇고, 기동장비는 어떻게 챙겨왔고"


"으으... 힘든데 나중으로 하면 안 될까요"


팔이 너무 아파요 하면서 그녀가 통증을 호소했다.

생명의 은인인 그녀를 상대로 재촉하기도 뭐해서 더 이상 아무 말도 안 하려는데.


"사령관이 착용하셨던 기동장비, 제가 브라우니-2054 대원 구출작전 당시 사용했던 거였거든요"


그렇게 대답을 해주었다.


"원래 임시본부에 있던 걸, 옮겨온지 얼마 안 됐는데 마침 그걸 딱 고르셨더라구요. 방호복에 장착이 끝나있던 거니까, 나사만 조이면 돼서 급한 마음에 집어가셨던 거겠죠"


거기까지 말 한 그녀는 갑자기 표정을 굳히더니,


"그런 거 맞죠?! 방호복이 묘하게 슬림하다던가, 남자 체형에 어울리는 것 같다던가, 그런 이유 아니죠!?"


"왜 갑자기 추궁모드인데..."


"아무튼 연료도 충전 안 해놓은 걸 집어 가셨길래 직감했죠. 아 이건 떨어지겠구나"


나이트앤젤의 말을 들어보면 메이가 있던 빌딩에 도착한 시점에서 연료가 떨어졌어야 맞다고 한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도 그 연료가 다른 건물 옥상에 올라 갈 정도는 버텨준 거고.


"두 분이 있는 곳은 뭐, 감염체들이 몰리는 곳으로 적당히 가봤죠. 근처까지 가서는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 덕분에 손쉬웠구요"

쪼끄만게 목소리만 커갖고...아 찌찌도 크지, 하면서 메이를 힐끔 보는 나이트앤젤.


"뭐 그렇게 된 겁니다. 우리 꼬맹이 때문에 고생하셨네요 사령관"


"누...누가 꼬맹이야! 너 상관한테..."


"메이 조용해"


"...흥"


그녀도 잘못했다는 자각은 있는지 말을 잘 듣는 눈치였다.


"풉프흐흐, 저 꼬맹이가 저렇게 얌전한 것도 드문 일인데... 이건 희귀한 광경을 봤네요. 만족했어요"


"하핫 그거 다행이네"


그렇게 우리는 무사히 오르카호 귀환에 성공했다.


--


간단하게 샤워를 끝마치고 우리는 홀로그램실에 와있었다.

메이는 이전과 다르게 머리 길이가 반으로 줄어들어있었다.

샤워 중에 거울을 보고 놀라서 반대쪽도 자른 모양이다.


그리고 걱정이 되다못해 새하얗게 질려있던 닥터도 함께다.


"진짜! 오빠고 나이트앤젤이고! 그리고 메이 너는 애초에말이야..."


아까부터 쭉 이런 상태다.

연구실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닥터는 우리 얼굴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면서 다행이라고 안기더니, 이후엔 잔소리 일색이다.


"오빠 목숨이 위험한 긴급 사태지! 멋대로 다른 대원들한테 알릴 수도 없지! 기동장비도 못다루는 나는 꼼짝달싹 못하지! 어? 내가 어떤기분으로..."


닥터가 말하는 대로 이번 사건은 나와 메이의 목숨이 위태로웠던 긴급 사태이긴 했지만, 나이트앤젤과 닥터의 침착한 대처로 퍼지는 일 없이 이렇게 네 명 선에서 해결되게 되었다.

새삼스럽게도 닥터한테는 진짜 미안해진다.

얼마나 걱정이 많았을까.

긴급 사태 발령까지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고민했을 것이다.

그런 그녀의 마음이 메이에게도 전해졌는지,

메이는 줄곧 마땅한 대꾸도 없이 닥터의 잔소리를 듣더니 닥터에게 진지하게 사과를 건냈다.

허리까지 숙여가며.


"...미안"


"엥?"


정작 불만을 토해내던 닥터가 허리를 굽히며 사과 한 메이한테 의외인듯 보였다.

그녀가 평소같으면 이렇게 사과 할 캐릭터는 아니니까.


"나이트앤젤이랑...사령관한테도 재차, 미안"


그리고 우리에게까지 이어진 사과에, 나이트앤젤과 나는 서로 마주보며 고개를 갸우뚱 할 수 밖에 없었다.

당연히 의기양양하게 변명만 늘어놓는 메이를 셋이서 갈구는 그림을 예상했는데,

허리까지 숙여 사과를 해주니까 기특하기 이전에 조금 김이 샜다.

충분히 시간을 들여 허리를 숙인 그녀를 향해 어안이 벙벙해진 우리들은 아무 말도 건넬 수가 없었다.


몇 초나 지났을까.

그녀가 자세를 정돈하고 휴대하고있던 가방에서 철제 케이스로 보이는 물건을 꺼냈다.


"내가 작전지역에 간 이유는 이거 때문이야"


"그건?"


셋 다 처음 보는 물건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문인 것 처럼 바라보았고, 가장 호기심 왕성한 닥터가 대표로 질문을 했다.


"이번 철충 바이러스 사태에 대한 실마리가 이 안에 있어"


메이가 단언한다.

영문을 모르겠다. 어떻게 그 도시에 이런 케이스가 있다는 걸 그녀는 알았고,

또 그 케이스가 이번 사태와 연관이 있다는 정보는 어떻게 입수 했는가.

거기까지 생각 한 나는 한 가지 가능성에 도달했다.


"메이 너..."


내가 그렇게 말을 걸자 메이는 나와 마주친 시선을 그대로 피해버렸다.

마치 뭔가를 숨기려하듯.

아니, 정확히는 나에게 숨기려 하는 건가.


그녀의 눈은 닥터를 향한 채로 사건의 전말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맞아. 나는 멸망 전, 그 건물에서 지낸 적이 있어. 그것도 꽤 오랜 시간을"


자기가 원래 삼안산업 소속 둠 브링어 7번소대 대장이었다는 것.

명령 불복으로 인해서 실험채로 송환 됐던 것.

0245의 가장 높은 빌딩은 삼안산업의 건물이었다는 것.

도시 곳곳에 연구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일대가 삼안산업의 지배 하에 있었을 것이라는 것.

함께 수감 된 바이오로이드가 있었고, 오랜기간 실험을 받고있던 그녀가 철충 바이러스 실험에 대해 말해줬던 것.

그 바이오로이드의 도움으로 탈출할 수 있었지만, 급박한 상황 때문에 그녀로부터 건네받았던 자료를 미처 들고가지 못한 것.

이후 블랙 리버사의 보호를 받기위해 이동을 했지만, 철충 사태로 인해 도중부터 건물에 쭉 숨어있을 수 밖에 없었던 일까지.


"그런 일이..."

닥터의 얼굴이 슬픔에 잠겼다.

나이트앤젤도 생각에 빠진 모습이었다.

설명이 길어질 것을 염려했는지, 이야기는 간략했지만,


메이의 표정, 고뇌, 목소리의 떨림.


말을 할 때의 그녀는 굉장히 무리하듯 보였기 때문에.


어느 날을 기점으로 정신상태가 굉장히 불안정한채 구출 된 메이.

그녀가 거쳐온 길은 가시밭길이며 비극 그 자체였다.


회의 때 그녀가 토해낸 비탄어린 외침을 기억한다.


그녀의 눈앞에 비추어져 있던 것은 과거, 그녀와 생사고락을 함께 해온 대원들.

상냥한 그녀라면 분명 이렇게 생각하겠지.


나를 지지해준 모두의 목숨을 짓밟고 나 혼자 살아남았노라고.


그녀가 지금까지 남을 멀리하며 마음을 숨기는 가면을 쓰고 살아온 이유의 편린을 나는 목격했다.

닥터와 나이트앤젤도 같은 기분이겠지.


"그 바이오로이드가 나에게 자료를 건네줄 때 분명히 말했어. 이건 삼안산업의 약점이라고"


"...응"


메이가 철제 케이스를 닥터에게 전해준다.

고개를 숙인채 케이스를 받는 닥터를 보고는 한숨을 쉬는 그녀.


"흥, 셋 다 뭐 그리 한심한 표정이야, 사람 민망하게"

초상집이야? 라며 방금까지 사과하던 사람이라곤 믿기지 않는 어투로 쏘아댄다.


"요 근래 제작된 녀석들 아니고서야 다 나같은 사정 한 두 개쯤은 갖고 있잖아? 쓸데없는 동정은 집어치워"


"그래, 이래야 우리 꼬맹이죠"


"누가 꼬맹이야! 너, 아까는 사령관 때문에 말 못했는데 상관한테 못하는 말이 없어!"


"새삼스럽게 왜그래요 꼬맹이? 사과하고 성과물 하나 던져주면 했던 잘못이 사라지나요?"


"뭣...너...으"


"걱정했다구요"


나이트앤젤은 못말리는 아이라도 바라보듯 상냥한 표정을 띠었다.


"미련곰탱이같은 대장이니까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건지는 아는데 진짜 서운해요"


"...안하게 됐어..."


"뭐어라구요?"


"미..미안하게 됐다고! 아까부터 쭉 사과 하잖아!!!"


적반하장인지 사과인지 모르겠다.


"다음부턴 그래야돼요 안 그래야돼요"


"안...그러겠습니다..."


"소리가 작습니다"


"안 그러겠다고 이 바보 멍청이 똥구멍아!!!"


역으로 욕을 들어먹은 나이트앤젤이지만 왠지 만족하는 표정이다.

이래서야 누가 상관인지 원.

나이트앤젤한테 할 말을 다 빼앗긴 덕에 나랑 닥터에겐 순서도 돌아오지 않은채 메이 소동은 끝이 났다.


"아..아무튼! 닥터!"


"내...넷!"

나이트앤젤과 메이 사이를 훈훈하게 바라보던 닥터가 갑자기 자기에게 튄 불똥에 놀라며 한심한 소리를 흘렸다.


"너라면 백신, 꼭 만들 수 있을 거야. 믿고 기다릴게"


"헤헤... 맡겨만 주시라"

쑥쓰러운듯 머리를 긁으며 닥터는 간단한 인사만 건네고 자리를 먼저 떴다. 




그렇게 나와 메이, 나이트앤젤. 이렇게 세 명만 남았는데.




"사령관, 눈치껏 빠져주시죠. 지금부터 여자들끼리 므흐흣한 이야기를 나눌 거니까"


"뭣...므흐흣한 이야기는 또 뭔데! 아니야, 우린 그런 망측한 이야기..."


"대장은 입 다물어요 찌찌 비틀어버린다?"


"너 진짜 보자보자하니까!"


"하하핫"

평소같은 광경에 무심코 웃음을 흘린 나를향해 시선이 몰린다.

싶더니 메이는 또 눈을 돌려버린다.


"네이네이 죄송합니다~ 두 분 오붓한 시간 보내시죠~"

원래 홀로그램실은 내 특등석인데, 억울한 기분도 들지만 오늘만은 저 둘한테 양보다.

내가 간단한 인사를 건네자 나이트앤젤은 방금 전까지 눈치주던 태도는 어디갔는지 정중하게 인사해줬다.

다른 한 명은 여전히 눈 돌린채로 이쪽은 보려고 하지도 않았지만.


나는 함장 실로 이동하기위해 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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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이 자리를 뜨고, 침묵이 이어졌다.



오른 손으로 옆 머리를 꼬는 나이트앤젤. 방금 전까지 실없는 소리를 하던 분위기는 어디론가 사라져있었다.

평소와는 너무 다른 분위기가 어색해서 그녀에게 말을 걸려고 하는데,




"대장 거짓말했죠?"




"...!"

대뜸 그렇게 말을 걸어왔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흠칫 떨렸다.

나이트앤젤의 얼굴을 힐끔 바라봤지만 질책하는 기색은 전혀 없다.


"장난 들킨 애기처럼 무서워하지 좀 말아요 몇살이야 대체"


"흐...흥! 누...누가 거짓말을 했다고!"


"알아요. 십수 년간 대장 눈치 보면서 일하다보면 거짓말 할 때 버릇정도는"


그런 그녀의 말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확신에 차있었기 때문에 그 이상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대체 무슨 거짓말을 했는지까진 모르지만"

살짝 내 얼굴을 살피는 나이트앤젤.

내가 절대 말하지 않을 거란 걸 그녀도 대강 파악했는지 가볍게 한숨을 흘린다.


"뭐, 말하고싶지 않은 비밀정도야 누구나 있죠"

저한테는 사람 상처 들쑤시는 취미도 없구요, 라고 말하며 왜인지 내 가슴을 뚫어져라 본다.


사실 말을 한다고해서 크게 변하는 건 없을 것이다.

상대가 나이트앤젤이 됐던 사령관이 됐던 말이다.

하지만 변하는 게 없기에 무서운 거다.


과거와 마주해봐야 그녀석의 기억은 돌아오지 않는다.


기억이 돌아오지 않는 그 녀석을 보며 매일 상처받을 바에야, 그런 과거따위 눈 돌리고 잊어버리는 편이 좋다.

그런, 내 하잘것 없는 고집일 뿐이다.


"그리고 사실, 저도 있어요. 비밀"


"응?"


조용히 생각에 잠겨있는 내 의식에 그녀의 말이 비집고들어왔다.

갑자기 무슨 비밀 선언인가.

자기 비밀을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건가?

아니면 너도 한 번 궁금해보라는 건가?


"실은요, 저도 멸망 전에 삼안산업 소속이었어요"


"아 그랬어?"


그렇구나 나이트앤젤이 삼안...


"뭐어어어어어어?"


삼안산업 소속이었다고?


얘가?


그럼 얼굴 본적 있나?


무슨 부대 소속이었지?


그런 수 만 가지 생각이 머리를 가로질렀다.

근데 정작 언어화는 하지 못한채 벙쪄있는 나를 보고 피식 웃더니 그녀가 나를 놀려댔다.


"우리 꼬맹이 대장 오늘 표정 참 다채롭네"


"너..너! 사람을 놀릴게 따로 있지...!"


"응? 진짠데요?"


"흥, 몇 번부대 소속이었는지랑 식별번호 대봐"


"삼안산업 둠 브링어 4번소대 소속 나이트앤젤-09 식별번호 N0200543...가 맞을 거예요. 원 참, 오래 돼서 기억도 애매하네"


"지...진짜잖아!"


"그러니까 진짜래두요"


심지어 4번소대라면 우리 부대와 함께 작전을 나간 적도 꽤 많았을 것이다.

나같은 지휘개체는 본부에서 지령을 내리는 게 일반적이었기에 아마 나랑 얼굴을 마주친적은 없었겠지만.


"그걸 왜 이제 말해!"


"대장도 오늘에서야 말해놓구선"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을 흘린다.


"사실 비밀도 아니죠, 굳이 말 할 필요가 없어서 말 안 했던 것 뿐이니까요~ 대장이 삼안산업 소속이었던 것도 몰랐고"


"...그런데 말 할 필요가 생겨서 말 했다?"


"그런 셈이죠"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표정은 살짝 슬픈듯 보였다.

그리고 그 슬픈 표정은 그녀가 하고자 하는 말을 나에게 어렴풋이 알려주었다.


"7번소대는 참 특이했죠, 보통은 소대마다 나이트앤젤이 두 기 이상씩은 꼭 있었는데 7번소대만 유독 한 기 뿐이었으니까요"


"너 남의 상처 들쑤시는 취미 없다하지 않았어?"


"저는 대장이 잘못했다고는 추호도 생각 안해요"


"..."


나이트앤젤의 눈을 피한다.


"아까 말했을텐데. 쓸데없는 동정은 집어치..."


"그녀랑은 굉장히 친했어요. 함께 작전 수행도 자주했고, 뭣보다 마음이 맞았어요"


"그러니까..."


"7번소대 나이트앤젤은 유독 특이한 구석이 있는 친구였어요. 맨날 자기네 대장은 가슴만 크다느니 칠칠치 못하다느니 하면서, 악담인척 입이 닳도록 자랑했으니까요"


"...뭐?"


"자기는 밥도 안 먹어놓고 부족한 음식을 양보하더라, 미련하기 짝이없다. 대원이 무례한 말을 했는데 적당히 꾸짖고 넘어갔다, 너무 물러 터졌다. 자기가 제일 힘들면서 맨날 강한척만 하더라, 허세가 지겹다. 분명 푸념을 늘어놓을 뿐이었는데, 표정은 자랑스러운듯 했죠"


"...뭐야... 악담 맞잖아"

그렇게 말하는 내 입과는 다르게, 그 때의 그녀가 떠오른다.


"참 신기하죠. 저는 그 때 대장과 마주친적이 없었지만 대장이 그려졌어요. 그녀가 말하는 대장은 그녀 자신과도 너무 닮아있었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같이 있으면 닮는다던가요?"

나이트앤젤의 눈을 바라봤다.

웃음 짓는 그녀의 눈은 괴로운 과거를 떠올리는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그런 그녀니까, 분명 대장이 버튼을 누르지 않는다는 선택을 했단 걸 알았을 때, 이렇게 말했을 거예요"

나는 조용히 나이트앤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래야 대장이죠, 라고"



"뭐...뭐야... 그게..."

더 이상 그녀의 눈을 바라볼 수 없어서 나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고집으로 점철 된 마음을 훑고 지나가는 그리운 그 한 마디.

눈물이 말라버린줄로만 알고있었다.


살짝 코를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는지, 등을 돌린 내 뒤에서 나이트앤젤이 조심스럽게 손수건을 나한테 준다.


"우...우는 거...아니 거든!"

꼴사납게 떨리는 목소리를 주체할 수도 없이 그렇게 말하면서 손수건을 받아든다.

그녀가 살짝 쓴웃음을 흘리는 소리가 들렸다.


죄책감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하물며 대원들을 잃은 아픔이 가신 건 절대 아니다.

하지만, 후회의 감정만은 사라진 것 같았다. 내 대원을 잘 아는 그녀에게 긍정 받아서일까.

그래, 조금은 홀가분해진 것 같았다.


"고...마워..."


"뭐...뭐라구요?!"


"머머머뭐야! 왜 그렇게 놀라는데!"

나까지 덩달아 놀라서 나이트앤젤을 봤다가 엉망인 얼굴을 깨닫고 다시 획 하고 고개를 돌린다.


"잘못 먹으신 거 아닌가요? 배탈은? 식중독은? 열은 안 나요?"


"아 성가셔 진짜!!!"


나이트앤젤이 즐거운듯 소리내서 웃는다. 나도 살짝 웃음이 나왔다.

이후에는 잠시동안의 침묵. 이번엔 어색함은 없었다.

그녀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러니까 대장, 기운 내세요"


"흥, 기운 낼 것도 없어. 난 늘 기운 차니까"


허세를 부린다는 자각이 있으면서도 나는 고집을 관철했다.

거기까지 말 하고 슬슬 일어서려는데,


"뭐 저로 그녀를 대체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뭐어?"

멋쩍은듯 슬픈듯, 왠일로 한심한 소리를 늘어놓는 나이트앤젤.

방금까지 괜찮은 말을 하더니만...


내가 대답했다.


"흥, 당연한 거 아니야? 대체가 될 리 없잖아"


"..."

여진히 등을 돌리고 있어서 표정은 안 보이지만, 필시 풀이죽어 있을 것이다.


"예전 대원들과 함께 했던 십수 년은 어떻게 해서도 돌아오지 않고, 그 무엇으로도 대체되지 않아"


"...그렇죠"


기운이 다 빠진 목소리.

기세 좋게 내 위로를 해주던 그 모습은 없다.


내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설령 예전 대원들이, 나이트앤젤-48이 살아돌아와도"


뒤를 돌아 한심한 표정의 나이트앤젤을 바라보았다.

내 말이 자기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는지, 바보같은 표정을 하고있다.




"너의, 현재의 둠 브링어 대원들의 대체는 안 돼. 절대로 말이야"




"네...?


나이트앤젤의 목소리가 떨렸다.


"너는 너로서 소중한 대원이자, 가족이야"


"대장..."


"한심한 소리 말도록, 나이트앤젤"


"...네!"

나이트앤젤의 목소리에 활기가 돌아왔다.


"하하, 역시 못당해내겠네요 진짜"


후련한 듯 웃음짓는 나이트앤젤.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이래야 우리 대장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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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대장, 뭐 잊고있는 거 없어요?"


"잊고있는 거?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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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네에! 지금 가요오! 이상하다아... 메이 대장 어디갔지... 기동 장비 돌려받아야하는데"


"지니야~ 빨리 오라고~ 교대 시간이잖아"


"아...알았어요오! 당장 쓸 것도 아닌데 괜찮겠지 뭐 헤헷"


들고있던 과자를 한 웅큼 집어먹으며 태평한 소리를 흘리는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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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다음 화가 좀 늦어질 것 같다

금요일 저녁 내지는 밤에 올라갈 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