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사령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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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오늘따라 잠이 안 오는 거지."


 한 달 하고도 이틀 전, 사령관은 모두에게서 조리돌림 당하는 삶을 탈출하는 선택을 했다. 오르카호를 나가면 죽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지만, 의지 할 곳 하나 없이 800여 명에게서 모욕과 무시를 당할 바엔 죽는 게 나으리라 생각했다. 탈출하기 며칠 전부터 이미 어디로 가야 가장 살아남기 좋은지 조사를 한 결과, 괌으로 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그는 탈출 포트의 조종 방법을 몰랐고, 그저 포트가 인도해 주는 대로 가는 것으로 계획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그가 도착한 곳은 어느 해수욕장이었다. 시원한 바다가 탁 트여있고, 새하얀 모레가 뒤덮인 그곳 뒤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음식점, 숙박시설, 그리고 편의점들이 줄지어있었다. 보통 이 정도면 수십 년을 배불리 먹고 따듯한 곳에서 잘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 모든 시설은 멸망 전에 지어졌다. 최소 100년이 넘었다는 소리. 음식점의 재료들은 고사하고 편의점에 있는 통조림들이라도 건질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심약한 사령관이 선택한 방법은 그저 포트 안의 비상식량을 가지고 연명하는 것이었다. 밖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었고, 그 무지함에서 나오는 공포를 이겨낼 용기는 더더욱 없었다. 참으로 우스운 꼴이었다. 죽을 각오로 오르카호를 나왔으면서 밖에 나가지도 못하는 꼴이 본인도 우스웠는지, 혼자서 자기암시를 하면서 비상식량을 하나둘 까기 시작했다.


"저기 안에 있는 음식들은 분명 다 썩어 있을 거야. 그래 100년이 지났는데. 통조림도 무사하지 못할걸."

"그리고 밖에 나가면 매복해있던 철충들이 나를 덮칠 거야. 걔들 인간 뇌파를 느낀다잖아? 음. 개죽음은 사양이라고."

"맛은 없지만, 비상식량이 배 채우기에는 딱 아닌가? 윽. 생각보다 더 맛없네. 곡물 큐브? 무슨 고무 맛만 나는데."


 잠시 밖에 나가야 하지 않을까 고민을 했으나, 곧 그 고민도 사라졌다. 철충들과 그에 달린 기관포를 떠올리니, 곧 윤택한 삶을 위한 욕망을 버릴 수 있었다. '이렇게 버티다 보면 누구라도 날 보겠지. 레모네이드여도 상관없어. 최소한 죽지는 않을 거잖아? 어디에든 굴러도 이승보단 낫다는 말이 왜 있겠어.' 라고 생각하는 그였다.


 그리고 그는 지금, 말 그대로 반쪽이 되었다. 탈출하기 전, 사령관은 꽤 통통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음식이 떨어지면 밖에 나가야 한다는 공포가 그의 생각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하루에 하나의 곡물 큐브를 먹는 데 그쳤다. 그 결과, 함 내에선 보이지 않던 턱선과 쇄골이 눈에 띄게 두드러져 있었고, 벨트를 아무리 조여도 허리에 맞지 않았다.


"역시 난 나와도 변하지 않는구나. 변한 건 몸 밖에 없네… 하. 정말 한심하다."


 매일같이 본인의 나약함을 자책했지만, 정작 이를 고치려는 노력은 아직도 시작도 않고 있었다.



*****



 밤이 되자 숙박시설들 주변이 어두워졌다. 건물들 사이사이에서 마치 누군가 잠복하고 있듯 한 위화감이 들었다. 어느새 그는 잠에서 완전히 깨어 그 공간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한 달 넘게 철충이 나온 적 없으니까 철충은 아닐 거고. 아냐. 그건 모르지. 철충일 수도 있잖아. 그 시간 동안 매복하고 있었을지 누가 알아. 혹시 레모네이드인가? 그러면 더더욱 나가면 안 돼. 그녀한테 잡히면 뭐가 될지 모르잖아. 아니, 나가야 하는가? 아니…"


결국 이러다가 아무런 진전을 내지 못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저 핑계를 대면서 포기하기만 했다.


"하. X발. 이러니까 쫓겨났지."


순간,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도 잘 아네. 내가 생각한 거 보다 더 병신인걸?"


"어?"


잊을 수 없었다. 아니, 잊어선 안되는 목소리였다.


"X발 그러니까 처음에 좋게좋게 지휘권 넘겨라고 했을 때 넘겼어야지. 네가 병실에 있는 나를 보러 친히 와주셔서 한번 기회를 주려고 했더니 뭐? 절대 안 된다고? 그러면서 네가 원하는 색돌들은 네 방에 넣어준다고 했는데 뭐라고 했지? 그 애들을 그렇게 부르지 말라, 무사할 것 같냐."


귀를 막았지만 계속 소리가 들렸다. 그가 자지러지게 웃는 걸 볼 수 있었다.


"푸하하하하하하!!! 무사한데? X신아? 아, 무사한 걸 넘어서 이제 온 오르카호는 내 거야. 네가 원하던 건 모두 내 거야. 네가 내 생각보다 더 겁쟁이고 더 등신이었거든. 행동도 제대로 못할 만큼 어버버 거리고. 네가 생각할 땐 어때??"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무시하는 게 상책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 질문은 사령관에게 던진 질문이 아녔다.


"응...달링. 저 남자를 내가 잘못 선택했어. 저렇게 X신 같은 남자는 나에겐 어울리지 않아. 하지만 당신은, 나에게 걸맞은 사람이야. 너무나도-"


사령관이 고개를 들자, 레오나와 에릭이 눈앞에서 서로의 입을 탐하고 있었다.


"그마아아아아아아아안!!!!! 꺼져! 꺼지라고 이 XX야! 난 네가 생각한 거 보다- 아니 너보다 나아!"


"흐흐흐흐. 이 밖을 한 달 동안 나가지도 못한 주제에 뭘."


"닥쳐어어어어어!"


사령관이 있는 힘껏 열림 버튼을 주먹으로 누르자, 포트의 문이 열리며 환상이 사라졌다.


"헉...헉...헉...헉..."


'닥치라고…'



*****



같은 시각, 오르카 호의 갑판엔 아르망 추기경이 달을 보며 서 있었다.  평상시와는 다르게 한 손에 여러 개의 사탕과 빨간 장갑이 들어 있는 병을 들고 있었다. 본드로 붙인 듯 병의 표면에는 수많은 갈라진 자국들이 있었다.


"지금쯤 일 텐데요. 그녀가 올 시간이."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했나. 활공장치에서 은은한 파란색 불꽃을 내뱉으며 하늘색 머리의 바이오로이드가 착륙했다.


"당신이 여기엔 왜-"


"당신이 여기 오신 이유는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제 손에 있지요. 하나는 당신 손에 있고요."


어디서 구해왔는지 티아멧은 한 손으로 더플백을 들고 있었다.


"그 병... 누가 다시 붙여놓은 거에요?"


"저번 당신이 나가고 미나 씨가 사령관실에서 접착제를 들고나왔습니다. 제가 돌아오고 난 뒤엔 몇몇 파편들을 제외하곤 모두 붙어있었습니다. 나머지는 제가 완성했지요. 당신께 이건 매우 소중하니까요."


그녀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얼굴에서 눈물이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졌다.


잠시 뒤, 아르망은 티아멧의 더플백을 가리켰다.


"자. 그럼 이건 무엇일까요."


"해어지고 나서 바깥을 돌아다니면서 찾은 물건들이에요. 저로서는 이 물건들을 발견하니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하지만 한가지는 알겠어요. 여기서 같이 나가요, 아르망 추기경. 분명 오르카호엔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여기엔 저 빼곤 다른 아르망 추기경 개체가 없습니다. 제가 나가게 된다면 지금 자는 브라우니도 빠른 시간 안에 알게 될 것입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 아닌-"


"당신에 대한 정보는 모두 말소되어있었습니다. 제가 확인해 본 전투원 목록에는 당신이 없어요. 마치 당신이 애초에 여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전투원 목록에는 물론이고 당신이 묵던 방과 그 안에 있는 모든 물건도 사라졌습니다. 혹시 그 가방을 열어보시겠습니까?"


지익


더블백을 열자, 안에는 수많은 브라우니의 바이저들과 레프리콘의 완장, 샌드걸의 머리핀, 지나야의 날개 파편, 여러 종류의 포탄 조각들 등이 들어있었다. 몇몇은 부러져있고, 다른 몇몇은 금 가있으며, 또 다른 몇몇은 피가 칠해져 있었다. 하지만 아르망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은 건, 맨 안쪽에 있었던 주시자의 눈과 하얀색 챙을 가진 초록색 모자였다.


'사망자 0명. 부상자 0명.'


문득 월말 정산 리포트에 적혀있었던 문구가 생각났다.


"티아멧. 당장 여기서 떠나세요. 빨리!"


"ㄴ-네? 갑자기 왜-"


"시간이 없어요! 누군가 우리를 보았다면 우리 둘 다 위험에 처 할 수 있어요. 빨리!"


"그럼 같이 가는 게 맞지 않나요? 왜 당신은 여기 남아있어야 한다는 건데요?"


"시간이 없어요! 빨리 가세요! 저는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늦기 전에 이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제가 잡히든 잡히지 않든, 돌아오지 마세요. 절대로요. 자, 빨리 여기 이걸 들고 나가주세요!"


"이해가 되지 않아요. 왜 갑자기 그렇게 급해지신 건-"


"폐하! 폐하를 찾아요! 알겠나요, 티아멧?"


"네???"


"빨리! 폐하를 찾아요! 자, 시간이 없다고요!!! 빨리 가 주세요!"


아르망의 다급한 설득에 티아멧은 급히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폐하라는 말을 듣자 더더욱 갈 수밖에 없었다. 그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은 그녀에겐 기적에 가까웠다.

티아멧이 날아가 더는 갑판에서 보이지 않자, 아르망은 빠르게 갑판의 엘리베이터로 뛰어갔다. 문이 열리더니, 거대한 하얀 형체가 등장했다. 깜짝 놀란 아르망이 손에 들고 있던 망가진 주시자의 눈을 떨어뜨렸다.


"목표 포착하였다. 사령관. 어떻게 처리하겠는가… 알겠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하얀 망령.


'이미 늦어도 한참 늦었군요. 폐하. 부디 저희의 아둔함을 용서하시옵소서…부디. 이 멍청한 저희를 다시 감싸주시는 아량을 베풀어주시옵소서. 폐하…'



등잔 밑이 제일 어둡다는 걸 몸소 보여주듯, 오르카호의 밤은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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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사령관 (모음)


 일단 늦어서 정말 미안하다. 며칠 내에 올릴려고 했는데 솔직히 글이 마음에 안 들어서 못 올리겠더라.  보면 볼 수록 그냥 날림 글 적은거 같아서. 이런거 봐주고 기다려주고 하는 너희들 너무 고맙다.


 후회물 이라는 장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이걸 후회물이라고 하기엔 뭔가 이상하더라. 후회물 요소가 부족한것도 있고 빌드업도 약간 다르고. 그냥 이름만 후회물 같아. 솔직히 저 태그 달고 시작한거 약간 후회함 ㅋ. 일단 후회물 요소를 조금 더 넣는 쪽으로 후에 나올 내용들을 고치긴 했어. 이것도 시간 많이 잡아먹었어. 완급조절도 못하고 미안하다. 가뜩이나 글 긴데. 다행이도 빌드업이 조금씩 끝이 보이는 느낌이야. 


 다음엔 달달한 단편이나 야한걸로 출발해야지. 참.


 항상 봐줘서 고맙다. 이 글 보면서 추천 달라고는 못하겠고, 혹시 부족한 점 없는지 피드백 해주면 정말 고마울거 같아. 아 물론 이 글을 봐주는것 부터가 내가 절을 해야할 일이긴 하지. 이해 안되거나 묘사가 이상한 부분은 최대한 답해줄께. 항상 정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