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7ijMDQgvW0o

이 노래 듣고 써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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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저물어가는 주황빛 하늘 위로 뿌연 담배연기가 흩어져간다. 평소의 겨울날 도시의 배경답지 않게 오늘따라 유난히 거리에 사람이 많다. 빌딩의 벽에 기대어 입에 문 담배에 불을 피우고 손이 시려워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던 남자는 아마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얇아보이지만 의외로 탁월한 보온력을 가진 니트와 편한 바지, 그리고 겉옷으로 코트를 껴입은 남자는 흔한 영상매체에서나 볼 수 있던 여느 평범한 30대 남성으로 보이겠지만, 사실 이 남자가 과거 철의 전쟁을 종결시킨 오르카 호 저항군의 총사령관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지나다니는 행인들 중에서도 매우 드물 것이다. 남자는 인류를 구해낸 위대한 업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런 역사를 겉으로 드러내거나 자랑을 하는 성격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평온한 일상을 경험할 수 있겠다는 말과 함께 후손들과 바이오로이드들을 관리하는 고위직을 마다하고 도시의 한 구석에 바를 하나 차려 조용하게 삶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담뱃대의 절반이 채 타지 않았는데 남자는 물고 있던 담배를 간이 재떨이에 짓누르기 시작했다. 남자가 기다리던 당신은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신에 남자는 담배 연기가 아닌 폐에서 끌어올린 날숨을 쉬었다. 남자는 이윽고 빌딩의 뒤에 걸쳐있는 노을을 보며 멍하니 감상에 젖기 시작했다. 잠수함에서의 생활이 끝나고 네온의 불빛이 번쩍거리는 도시를 재건한지 얼마나 지났는지 기억이 희미해졌다. 동료들은 뿔뿔히 흩어졌고 다시금 이 행성을 유지하기 위해 각자의 길을 걸어나갔다. 남자는 자주 회상에 빠지고는 했다. 처음 안경 낀 메이드와 볼살이 통통한 기동대원을 만났던 때를 시작으로 장신의 장군과 북방의 암사자, 기동대와 포병대의 대장들... 그리고 남자와 평생을 약속한 여성을 떠올리려는 찰나, 남자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 먼저 와있었네요. 안 추웠어요?"


목소리의 주인은 보랏빛이 감도는 웨이브진 장발을 늘어뜨린, 눈물점이 돋보이는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추운 겨울에 맞게 두꺼운 코트를 입어 자세한 맵시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늘씬한 키와 더불어 굉장한 비율이 겉옷 안에 숨어있다는 것은 알아채기 쉬웠는지 행인들이 곁눈질로 여성을 흘긋거리며 걸음을 살짝 늦추는 것이 남자는 무척이나 신경쓰였다.


"도시의 중심을 지키는 대기업의 비서님이 먼걸음을 행차해주셨군."

"어머, 당신이 저녁으로 외식을 하자고 하길래 오늘의 일을 빠르게 끝내고 왔는데, 조금만 더 늦게 올 걸 그랬나요?"

"지금이면 딱 적당해. 별 일은 없었고?"


남자와 여자, 사령관과 레모네이드 알파는 작게 웃으며 서로 손을 잡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익숙하다는 듯 잡은 손을 사령관의 외투 주머니에 넣었다.


"왠일인지 사장님이 먼저 말해주셨어요. 엄마, 오늘은 왠만하면 일찍 들어가보지 그래? 라면서요."

"그 녀석이 그런 말도 할 줄 알고 말이야, 의왼데."

"그러게요, 누구 아들 아니랄까봐 서로 표현하는데 인색한 건 똑같아."

"당신한테만 그런 거야. 혹시 서운했나?"

"아뇨. 처음에는 미묘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깨달았죠. 아, 이게 당신이 표현하는 방법이구나, 라는 걸요."

"이미 간파당한건가."

"그 잠수함의 승무원들은 대부분 알았을 거에요. 첫 만남의 경계심과는 달랐던, 그 어설픈 무뚝뚝함. 저도 금방 깨달았는 걸요."

"부끄럽다. 어서 가지."

"네, 그래요."


알파는 점점 온도가 높아져가는 사령관의 손을 느끼고 기분이 퍽 좋아지기 시작했다. 오르카 호의 승무원들은 모두 매력적인 외견을 가지고 사령관에게 헌신적인 면모를 보였다. 그 중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 일 수 있었으나 사령관은 오히려 능숙하게 거리감을 조절하며 연인보다는 가족에 가까운 유대감을 형성했다. 각각의 전투원과의 완급을 조절하던 사령관이 알파의 앞에서는 한없이 어설퍼지는 것이었다. 알파는 그런 어설픈 사령관이 싫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인간적인 매력을 느꼈다. 해킹과 더불어 어두운 작업의 모의를 계획하는게 일상이었던 알파에게 사령관을 향한 감정은 언제나 새로웠고, 사령관과 함께 업무를 진행하던 매일은 순간순간이 그토록 바라던 '삶' 이었다. 철의 전쟁이 끝나고 잠수함의 함교에서 프러포즈를 받을 때에는 그동안 지내왔던 모든 순간들 중에서도 가장 으뜸으로 행복했던 시간이 아닐까 했다.


"그나저나 오랜만에 서로 시간이 맞았네."

"얼마만인지 기억이 안나려고 해요. 후후..."

"여러모로 진행하는 사업이 복잡한가 봐."

"당신 덕분에요. 원래라면 2~3년 전에 진작 끝났을 아이템들이었다구요? 지금에 와서야 기반이 잡혀서 다행이에요."

"당신도 알잖아. 이제 그런 일에는 신물이 났어."

"알아요. 그 분들도 잘 알거에요. 매일이 힘들어도 그 분들은 오히려 즐거워 보이는거 있죠? 목숨이 위험받던 그 때와 비교하면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하네요."

"...내가 무책임했던 건 아닐까?"

"당신의 선택이잖아요. 그 때 우리는 당신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맹세를 했었죠. 이렇게 지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짊어진 거에요. 그래서 그 분들도 오히려 웃으면서 당신을 배웅했었어요. 오로지 당신의 행복을 빌면서..."

"..."

"저도 마찬가지에요. 요즘은 회사의 바쁜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서 느껴지는 노곤함이 싫지만은 않더라구요. 당신과 저녁을 먹으면서 모두 해소가 되서 그런가?"

"은혜를 입은건 오히려 나였군."

"책임감을 느낄 필요는 없어요. 선택의 너머를 좌우하는 것은 우리들의 역할이니까요."

"그래..."

"그러고보니 오늘은 무슨 메뉴로 하실거죠? 이 곳까지 온 걸 보면 기대를 해도 될까요?"

"언제나 힘쓰는 우리 와이프에게 실력 발휘좀 해보려고 했지."

"어머... 기뻐요. 후후..."


이윽고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중후함이 느껴지는 칵테일 바의 문 앞이었다. White Lady 라고 써 있는 간판이 느긋하게 빛나고 있던 가게는 아직 OPEN이라는 팻말이 걸려있어 내부의 조용한 음악이 문 너머로 들리고 있었다. 사령관은 주저없이 가게의 문을 열고 알파를 안내하며 매장으로 들어갔다.


"세입자 뽀 씨, 문제는 없었나?"

"사장님~! 오늘 비번인거 아니었나요? 무슨 일로... 앗!"

"오랜만이에요 마왕님."

"오랜만이에요 사모님! 그리고 이제 마왕은 그만뒀으니 그냥 뽀끄루라고 불러주셨으면..."

"후후, 노력해볼게요."

"오늘 알파랑 같이 외식좀 하려고 했지. 아르망은 퇴근한건가?"

"사장님을 못 뵈고 가서 아쉽다고 하셨어요."

"나중에 너랑 아르망이랑 식사대접 해줄테니 안심해. 너도 이제 가봐, 나머지는 내가 정리하고 갈테니."

"네! 그럼 이거까지만 정리하고 가볼게요."

"그래."


사령관과 알파는 카운터 석에 자리를 잡았다. 선반 정리를 마친 뽀끄루를 보내고 가게 문앞에 달린 팻말을 CLOSE로 바꿨다.


"벌써 닫는 건가요?"

"오늘은 전세야. 모처럼 당신과 함께하는 건데, 이 정도는 해야지."

"후후, 좋아요."

"그럼... 잠시 기다리고 있어봐."


사령관은 카운터 안으로 들어가 묵직한 병을 만지기 시작했다. 꺼낸 병은 드라이 진과 코앵트로, 냉장 보관 되어있던 레몬 주스였다. 그는 능숙하게 병을 다루며 세 음료의 양을 조절하며 쉐이커에 넣고 흔들기 시작했다.

샤카샤카샤카...

알파는 칵테일이 섞이는 소리가 듣기 좋다고 생각했다. 적게 흔들어도, 많이 흔들어도 안되고 양 조절에도 어긋난다면 맛이 변해버리는 칵테일. 바텐더가 원하는, 그리고 손님이 원하는 맛을 내기 위해 온갖 정성을 깃들여 예쁜 글라스에 한 잔을 담는 것이다. 그들의 집에서 가끔씩 칵테일을 만들어 마시기도 했었지만 이렇게 직접 가게에서 분위기를 내며 한 잔을 즐기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알파는 칵테일을 마시기도 전에 먼저 눈 앞의 사령관과 가게의 분위기에 취하는 듯 했다. 이윽고 사령관은 마티니 글라스를 꺼내어 쉐이커의 내용물을 따라내어 알파에게 건냈다.


"화이트 레이디. 이 가게의 이름이기도 하지."

"잘 먹을게요."


사령관의 솜씨는 매우 뛰어났다. 사내 회식이 있었을 때 직원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조용한 곳에서 칵테일을 주문하기도 했었지만 지금 마시는 것 만큼의 맛이 나지는 않았다.


"소완이 여러모로 도와주긴 했었지."

"정말 맛있어요. 평생 이 것만 마시고 싶을 정도로..."

"알코올 중독에 걸리게 될 걸."

"근데 왜 화이트 레이디죠?"

"내가 왜 가게 이름을 화이트 레이디로 했을까? 흠... 글쎄, 그냥 처음부터 레몬이 들어가는 칵테일이 생각나더라고. 레몬처럼 상큼하진 않아도 무척이나 아름다운 여성이 날 사로잡았거든."

"후후... 오늘 참 기쁜 일만 일어나네요..."

"당신이 만족하면 됐어."

"네! 물론이에요!"




도시의 이른 저녁은 서서히 저물기 시작한다. CLOSE의 팻말이 달린 바의 안에서는 두 남녀가 즐겁게 나누는 담소의 소리가 오랜 시간동안 이어졌다. 추운 겨울이었고 찬 바람이 불며 사람들의 온 몸을 차갑게 했지만, 도시와 거리에서는 활력이 넘쳐나고 있었다. 건물들의 네온사인은 환하게 빛나고 있었고, 입김을 내며 두 손을 맞잡은 연인들은 낭랑한 웃음소리와 함께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이들에게 더 이상의 악몽은 없었다. 새롭게 태어난 후손들도 철의 전쟁 속에서도 살아남은 사람들도 모두 하늘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올려다 본 하늘은 이제 주황색에서 서서히 검푸른 색으로 짙어지고 있었다. 빛나는 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에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 별들에게 한 두명의 행인들이 하늘을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평화로운 하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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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처음 써봄. 똥글이지만 즐감했으면


어느 친절하신 분이 이런 대회가 있다고 해서 전에 쓴거 지우고 다시 올려봄

중복 ㅈㅅ




라비아타는 가장 아름다운 바이오로이드며 이는 과학적으로 증명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