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한 사령관의 하루 (4)

 

 

 

 

오라버니의 그림은 그릴 수 없어요. 그런 건, 그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 메리

 

 

 

 

12.

 

3일차.

 

어제 주사한 수면제의 약발이 좋았던 건지, 주인님은 하루 종일 푹 주무셨어요.

 

잠에서 깨어나신 주인님께선 침대 주위를 서성거리셨습니다.

 

“주인님, 약 드실 시간이에요.”


“마침 잘 왔습니다. 다프네, 뭐든 좋으니 할 것을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일은 안 돼요.”


“일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하루 종일 이러고 있으니 상당히……지루하군요.”


아, 거기까진 생각을 못 했습니다. 

 

확실히 수복실에 갇혀 아무것도 할 게 없으면 지루할 것입니다.

 

“읽을 만한 책이 있으면 가져다주시겠습니까? 종류는 상관없습니다.”


“네. 그래도 밤새서 읽고 그러시면 안 돼요.”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저는 수복실에 비치된 책들을 가져와 주인님께 드렸습니다.

 

대부분 수복을 기다리는 동안 읽을 만한 소설이었는데, 주인님께선 곧장 책을

 

들고 읽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럼 전 일하러 갈 테니 필요하면 불러주세요.”


“감사합니다, 다프네.”


이걸로 얌전히 쉬시겠죠……? 저는 다시 일을 보러 갔습니다.

 

사실 수복실 일이라고 해봤자 크게 할 일은 없습니다.

 

누가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복귀하는 일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두통이나 가벼운

 

복통, 근육통에 쓸 진통제를 받아가는 정도입니다.

 

일과 시간의 대부분은 수복실을 깨끗이 정리하고 언제든지 환자를 수복할

 

준비를 하는데 쓰이고,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 적당히 책을 읽거나 쉬는 게

 

제 일과입니다. 솔직히 다른 분들에 비하면 일은 편합니다.

 

‘그나저나 슬슬 식사를 가져다드려야…….’

 

한 5시간 정도 지났을까, 저는 주인님께 점심 식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주인님, 점심 드실 시간-”


“아무데나 두고 가십시오. 저는 지금 바쁩니다.”


주인님께선 침대에 앉아 책을……분해하고 있었습니다.

 

찢어진 페이지들이 온 바닥과 침대에 깔려있었고, 주인님께선 그걸 하나하나

 

읽어보며 분석하고 계셨습니다.

 

“뭐, 뭐하고 계세요?”
 
“책의 요점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페이지와 중요하지 않은 페이지를 

 

구분하는 중인데……아, 겸사겸사 화자의 의도를 분석하는 것도-“


“책은 압수에요.”
 
“……일하지 않았습니다. 저 일 안 했습니다, 그러니 책이라도…….”


“어지간하면 저도 이렇게 안 해요. 이건 주인님의 목숨이 걸린 문제라고요!”


저는 책을 모조리 빼앗아 도로 들고 나왔습니다.

 

주인님께선 마치 장난감을 빼앗긴 강아지처럼 처량하게 절 보셨지만, 솔직히

 

불쌍해서 다시 돌려줄까 고민했지만 꾹 참았습니다. 

 

“어휴, 정말이지……리제 언니보다 피곤한 사람은 처음이에요…….”


차라리 리제 언니는 잘 타이르면 듣기라도 하는데, 주인님은 무슨 말을 해도

 

귓등으로 흘려들으니 저로서도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역시 그것밖에 없겠네요.”


제가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시도할 가치는 있을 겁니다.

 

저는 기록 보관소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13. 

 

4일차.

 

“주인님, 오늘은 주인님이 그토록 좋아하시는 일을 가져왔어요.”


“정말입니까?”


힘없이 침대에 누워계시던 주인님이 벌떡 일어나셨습니다.

 

“오늘은 주인님의 심리 상태를 알아보기 위한 검사를 할 거에요.”


“아, 심리 검사로군요. 좋습니다, 뭐든 할 게 있으니 훨씬 낫군요.”


사실 저는 심리학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습니다.

 

그래도 어제 밤을 새서 심리학 관련 책과 논문을 공부해 어설프게나마 검사할 수 있게

 

됐습니다. 물론 수박 겉핥기식으로 배운 거지만요…….

 

“우선 제가 몇 가지 질문을 할게요. 그 질문에 바로 떠오르는 대답을 해주시면 돼요.

 

자, 나의 인생은?”

 

“톱니바퀴다.”

 

“나의 소원은?”

 

“임무를 완수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일을 해서 성과를 내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저는 주인님께 여러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그리고 질문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편이 무거워졌습니다.

 

뭘 질문하든 결국 대답은 ‘일하는 것’이고, 사적인 내용은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질문이에요.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


“주인님?”
 
“죄송합니다. 그 질문엔 답하지 못하겠습니다.”

 

“어째서죠?”


“답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 모르시겠단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저는 저입니다, 그 이외의 무언가가 될 필요는 없겠죠.”


주인님이 엄지와 검지를 비볐습니다.

 

“주인님, 이건 검사랑 별개로 질문하는 거예요. 왜 그러시는 거예요?”

 

“무슨 말씀입니까?”


“왜 그렇게 일에 집착하시냐는 거예요.”


이미 강박증 수준으로 일에 집착하시게 된 이유.

 

결국 제가 듣고 싶은 건 그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제가 하나 질문 드리겠습니다. 훌륭한 조직이란 무엇입니까?”
 
“네?”


“당신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조직의 형태를 말씀해주십시오.”

 

이런 질문은 왜 하시는 걸까요? 하지만 분명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겁니다.

 

“모두가 서로 협력해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조직……아닐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전 그 이상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직이란 하나의 기계와 같습니다. 조직원은 부품이며 그 부품이 올바르게

 

작동해야 기계가 작동되죠. 하지만 어설픈 조직일수록 부품을 적절한 곳에

 

배치하지 못하거나, 적절한 방향으로 힘을 쓰지 못하죠.”


“어려운 이야기네요…….”


“즉, 반대로 말하자면 훌륭한 조직이란 조직원을 적절한 곳에 배치하고

 

그렇게 생긴 동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겁니다. 오르카는 조직입니다,

 

저희는 모두 그 조직의 부품이죠. 그리고 제가 완성하고자 하는 조직이란

 

설령 부품과 조직원에 결함이 생겨도 작동하는 조직입니다.”

 

“그건…….”


“결론만 말하자면, 저는 제가 없어도 이 오르카가 작동하도록 설계하는 중입니다.”

 

그 한 마디에 모든 것이 이해됐습니다.

 

주인님은, 자신이 없어져도 무너지지 않는 조직을 만들려고 하시는 겁니다.

 

“현재 저는 오르카의 사령관이란 직책을 맡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제가 죽는다면

 

오르카는 또 다시 분열되겠죠. 아마 제가 쓰러진 직후에 그런 일이 있었을 겁니다.”

 

“……네.”


실제로 그랬습니다. 주인님이 쓰러지자마자 대장들은 서로 싸웠습니다.

 

“제가 콘스탄챠에게 명령권을 일부 나눠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전 이런 식으로

 

여러분께 자율성을 주고, 또한 완벽하게 작동되는 조직을 설계할 겁니다.

 

설령 제가 없어져도 무너지지 않을 만큼 단단하고 굳센 조직을.”

 

마치 내일 당장에라도 죽을 것 같은 말씀이었습니다.

 

“제가 왜 일에 집착하느냐고 당신은 질문했습니다.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제가 일하지 않는 매 순간이 여러분의 죽음과 파멸로 직결될 수 있습니다.

 

제가 잠든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 조직의 강도 또한 약해집니다.

 

제가 나태한 마음을 가질 때마다 여러분의 불행 또한 커집니다. 제가-”

 

저는 주인님을 꽉 끌어안았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했는지는 저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에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아서- 참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해야 합니다. 저뿐입니다, 결국 전 이런 식으로밖에 살 수 없으니까요.”

 

“뭐라고 말씀드려야할지 모르겠어요. 주인님, 전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요?”


“아무것도.”


주인님이 제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습니다.

 

“여러분은 그저 절 믿고 따라주시면 됩니다. 그게 제 임무니까요.”


어쩌면 이게 처음이고, 마지막일지도 모릅니다.

 

주인님께선 아주 희미하게 웃고 계셨습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희미하게.

 

 

 

 

 

14. 

 

마지막 날.

 

주인님께선 그 날 이후로 얌전히 수복실에서 쉬셨습니다.

 

“몸은 좀 어떠세요?”
 
“좋습니다. 두통도 사라졌고, 식욕도 돌아왔습니다.”


“다행이네요. 또 안 좋아지시면 언제든지 오세요.”


“사양하겠습니다. 저는 일해야 하니까요.”

 

곧 콘스탄챠 씨가 수복실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왠지 피곤해보이셨습니다.

 

“안색이 좋아지셨네요, 주인님.”


“콘스탄챠 S2, 제가 없는 동안 아무 문제도 없었습니까?”


“아……바쁘긴 했지만 괜찮았어요. 주인님이 평소에 열심히 해주신 덕분에요.”

 

“다행이군요. 하지만 분명 어디선가 놓친 게 있을 테니 어서 돌아가야겠습니다.”

 

“저기, 주인님!”


저는 돌아가려는 주인님을 불러 세웠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아뇨, 그건 아니고……이거요.”


저는 주인님을 위해 준비한 건강관리 비법이 적힌 책을 드렸습니다.

 

“주인님께선 이 오르카에 없어선 안 될 분이세요. 그러니 평소에

 

건강을 철저히 관리하시는 것도 업무의 일종이니까…….”

 

“과연, 새로운 일이로군요.”


주인님이 책을 펼쳐 쭉 훑어보셨습니다.

 

“확실히 아파서 일하지 못하는 기간이 늘어나는 건 비효율적이군요.

 

고맙습니다, 다프네. 역시 당신께 일을 맡겨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천만에요.”


역시 저로선, 주인님을 바꾸는 게 불가능했습니다.

 

아마 그 누구라도 불가능할 것이고 주인님께선 돌아가실 때까지 쭉

 

이렇게 사실 겁니다. 저는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인님이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언제든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저희가 곁에 있다는 걸 잊지 않으시도록.

 

“돌아갑시다, 콘스탄챠 S2. 오늘도 내일도 일입니다.”


“어휴……다 좋으니까 제발 무리만 하지 마세요.”


“이번에 확실히 배웠으니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 주인님은 떠나셨습니다.

 

……그 뒤에 정말 수복실을 12가지 방법으로 개선하셨지만.

 

이번만큼은 나무라지 않기로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다 죽고 혼자 살아남아서 인류 재건해야 하는데 압박감 장난 아니겠지

원작처럼 야스하고 놀 거 다 노는 것보단 차라리 이쪽이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