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출처 : https://www.pixiv.net/artworks/75698452 )

【 이겼다! 오늘 저녁은 참치캔이다! 】

오르카 호에서 가장 있기 있는 게임, '스틸라인 온라인'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 했을 때 뜨는 메세지가 모니터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평소의 레프리콘이라면 브라우니와 부둥켜 안고 1등을 자축하고 있을 테지만 지금 이 순간 만큼은 그러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레프리콘이 게임을 함께 한 사람은 브라우니가 아닌 최후의 인간이자, 오르카의 사령관인 '그' 였기 때문이다.

' 어쩌다가 이렇게 된거죠······? '

힐끔. 브라우니가 있었어야 할 자리에 앉아서 만족하고 있는 그를 확인하고 레프리콘은 잠시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불과 수십분 전까지만 해도 언제나와 같은 일상이었다.
오늘도 열심히 일과를 끝마치고 소등시간 전까지 주어진 자유 시간 동안 스틸라인 온라인을 하며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첫 판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브라우니가 조심하지 않고 돌진하다 죽었고, 브라우니 덕에 위치가 발각된 레프리콘도 허무하게 쓰러져 패배하는 평소와 같은 패턴. 하지만 이변은 두 번째 판에서 찾아왔다.

천운이 따라준 것인지 브라우니가 막무가내로 돌진하며 가한 공격에 경쟁자들이 쓰러졌다.
무려 트리플 킬, 그것도 전원 헤드샷.
'우오오!!! 뭠까!? 뭠까!?' 하고 브라우니 본인조차 놀라서 감탄할 정도였다.

시작부터 경쟁자들을 쓸어버렸기 때문에 넓은 공간을 둘이서 마음껏 파밍 할 수 있었다.
평소에 써보지 못한 귀한 장비들도 파밍 할 수 있었고, 맨날 부족함을 느끼던 약품들도 풍족하게 배분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제 남은 건 귀한 장비들과 풍족한 약품들을 기반으로 경쟁자들을 제압하며 순위권에 드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때 터졌다.
브라우니에게 갑작스러운 복통이 찾아온 것이다.

" 으으, 역시 그걸 먹는 게 아니었슴다······. "
" 뭘 또 잘못 먹은 건가요? "
" 그게······냉동 만두인데······조금 차가웠지 말입니다. "
" 또요? 제가 그런 건 제대로 댑혀서 먹으라고 저번에도······ "
" 모, 못참겠습니다! 죄송함다! 부탁함다! "
" 자, 잠깐!? 브라우니-!! "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브라우니는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 복통은 어쩔 수 없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일이었다.
브라우니 만큼은 아니더라도 레프리콘 또한 승부욕이 있었다. 좀처럼 구경도 하기 힘든 장비를 파밍하기까지 했는데 제대로 사용도 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게임을 끝내야 한다니······. 분하고 억울한 감정마저 생길 정도였다.

" 저기······ 레프리콘? "

그때였다.

" 브라우니가 급한 일이라고 해서 와봤는데 무슨 일 있니? "

예상치 못한 지원군이 찾아온 게.

" 레프리콘? "
" ······. "
" 레후야? "
" 아, 네!? "

잠시 회상하는 것에 정신이 팔린 레프리콘은 그가 자신을 불렀다는 것을 뒤늦게 인지하고 급히 대답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꿈 같은 일이었다.
사령관 각하가, 실물로 볼 기회조차 없는 그 사령관 각하가 자신의 옆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게임 패드를 쥔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니!
아니, 잠깐. 그보다 방금 뭐라고 하셨지? 레후?

" 미안해. 나 때문에 즐기지 못한 것 같은데. "
" 아, 아아아아닙니다! 무척이나 즐거웠습니다! "
" 그래? 하지만 표정이 뭔가······ "
" 아닙니다!! 무척이나 재밌었습니다! "
" 그러면 다행이긴한데······. "

솔직히 말하면 그의 기분이 상할까 싶어 즐기긴커녕 재미라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혹여나 실수라도 할까 봐 최선을 다해 집중하고, 최선을 다해 그의 뒤를 서포트 해주었다.
마치 실전에서 철충과 싸우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걸 보고 접대 게임이라고 하는구나- 하고 새로운 걸 배운 레프리콘이었다.

" 그래? 그럼 한 판 더해도 될까? 브라우니가 돌아올 때까지만. 같이 하니까 재밌네. "
" 네, 네? 무, 물론입니다! 영광입니다! 사령관 각하! "

그렇게 시작된 그와의 두 번째 판.
게임의 로딩이 진행되는 동안 레프리콘은 전 판에 있던 일들을 생각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보다는 정신이 없었던 것 같았다.
집중하고 그의 지휘를 아니, 오더를 따르다보니 게임을 이겼다. 그렇게 요약할 수 있었다.

" 레프리콘은 평소에 무슨 캐릭터를 해? 지금처럼 브라우니? "
" 아, 네. 저는 평소에 브라우니를 합니다. "
" 그래? 나는 레프리콘을 좋아하는데. "
" 네? 아, 음······감사합니다. "

대체 뭐가 감사한거냐. 자신의 발언에 마음속으로 딴지를 걸었다.

" 평소에도 브라우니랑 같이 게임 하는 거야? "
" 네. 그렇습니다. "
" 그럼 레프리콘이 오더를 내려? "
" 아뇨. 처음에는 그랬지만 브라우니가 말을 잘 안 들어서······. "

현실에서도 돌진을 좋아하는 바보인만큼 게임에서도 그 성향이 들어난다.
오죽하면 돌진하다 죽고나서 다른 경쟁자가 채팅으로 " 너 브라우니지? " 하고 알아차릴 정도다.
처음에는 브라우니를 다독여가며 오더를 내렸지만 좀처럼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정확히는 안들린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말보다 행동이 더 빠르게 나오는 것도 문제다보니 이젠 그러려니 하고 레프리콘의 쪽에서 브라우니에게 맞춰주고 있었다.

" 그래? 그럼 레프리콘이 오더를 내려볼래? 모처럼이잖아. "
" 그, 그래도 될까요? "
" 물론. 넌 잘할 수 있을 거야. 게다가 좀 더 즐기기도 좋을 거고. 실수해도 괜찮으니까 해봐. 게임이잖아? "
" 그렇다면······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

사령관은 레프리콘과 게임을 즐기고 싶었다.
그렇기에 그녀에게 게임의 전반적인 흐름을 결정할 수 있는 오더의 자리를 준 것이다.
이기지 못해도 괜찮다. 게임의 본질은 즐거워야 하는 것. 즉, 즐기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건 브라우니의 계정이다.

" 이, 일단 여기에 자리를 잡죠. 주변에 아무 것도 없으니 우선 파밍을 하고 옆 마을에서 넘어오면······ "

그는 레프리콘의 오더를 군말 없이 따라주며 간단한 브리핑을 해주었다. 처음에는 부담감에 말을 더듬고 굳어 있던 레프리콘도 어느 정도 게임에 몰입한 것인지 한결 편해 보이는 모습을 보였다. 오히려 자신의 심기를 거스르는 브라우니가 없고, 자신의 계획대로 게임이 흘러가니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족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어느덧 게임은 후반부를 향해 가고 있었다.

" 전방에 3명 있네요. 다행이 저희를 보지 못한 것 같아요. 마침 이동경로에 다른 적들도 있으니─아! 각하! 뒤에 따라 붙었습니다! 소음기를 가지고 있는 제가 처리할게요. "

레프리콘의 깔끔한 에임은 경쟁자들을 대응하기도 전에 탈락하게 만들었다.
고도의 집중력으로 발휘해낸 레프리콘의 멋진 플레이에 사령관은 오~ 하는 감탄사와 함께 박수를 쳐주었다.

" 엄청 잘하네? 내가 보고 배워야겠는 걸? "
" 칭찬 감사합니다! 자, 아까 하던 말을 계속할게요. 우선 전방에 있던 적들은 저희들의 위치를 모르니까······ "

완전히 물이 오른 레프리콘은 사령관과의 게임을 완전히 즐기고 있었다. 즉, 몰입 할대로 몰입해 평소의 말버릇이 나온다는 뜻이기도 했다. 예를들면 지금처럼 말이다.

생존인원 총 3명. 1명의 경쟁자만 제거하면 1등을 할 수 있는 상황이다.
연속으로 참치캔을 먹을 수 있다니, 레프리콘은 흥분되는 감정을 애써 억누르며 게임에 집중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쨍! 하고, 마치 도자기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레프리콘의 캐릭터인 브라우니가 쓰러졌다.
완전히 탈락한 건 아니고 기어다닐 수 밖에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 아, 머릴 맞았─저기,저기,저기!! 각하 저기입니다! SE 방향이요! "

비록 2대1 이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상대는 나무를 엄폐물 삼아 공격하고 있는 반면 이쪽은 엄폐물로 쓸만한 게 없다.
정밀형 관측 장비를 착용하고 있는 사령관이기 때문에 적은 사령관의 유효범위 안에 있었지만 제대로 맞추려면 멈춰서 쏴야하는 상황이다. 설상가상 그의 체력은 그리 많지가 않아 적의 공격을 한방만 맞아도 쓰러지는 상태다.

극적인 상황이 덮쳐온 그때, 사령관과 레프리콘의 말이 겹쳤다.

" 레프리콘! "
" 각하! "
──몸 좀 대줘!
──제 몸을 대드리겠습니다!

사령관이 조종하고 있는 캐릭터, 레프리콘이 중파되어 엎드려 있는 브라우니를 엄폐물 삼아 엎드렸다.
마지막 경쟁자의 총알은 레프리콘을 노렸지만 아쉽게도 맞은 건 엎드려 있던 브라우니였다.
중파 상태였던 브라우니는 공격을 맞고 그대로 리타이어! 하지만 브라우니의 뒤에 있던 레프리콘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격했다.
그리고 그 결과-

【 이겼다! 오늘 저녁은 참치캔이다! 】

" 우와아아아!!! "
" 꺄아아아!! "

1등 했음을 알리는 문자가 화면을 가득 채우자 두 사람은 꽉 쥐고 있던 게임 패드를 아무렇게나 던져 버리며 일어서서 환호했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2연속 1등과 극적인 우승. 레프리콘은 말로 설명하지 못할 쾌감을 느끼며 방방 뛰어다니다 사령관에게 달려들어 안겼다.

" 이겼습니다! 각하! 이겼다구요! 저희 둘이서 1등했어요! 그것도 두 번이나! "
" 잘했어, 레프리콘! 진짜 잘했어! "

사령관은 레프리콘을 안고 몇바퀴 빙글 돌아주었다. 하지만 이때, 두 사람에게 문제가 생겼다.
아무렇게나 던져둔 게임패드의 줄이 다리에 걸린 것이다.
빙글빙글 몸을 돌리던 다리에 줄이 걸리자 당연하게도 사령관은 넘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건 그에게 안겨있는 레프리콘 역시 마찬가지였다.

넘어지는 와중에 레프리콘이 다치지 않도록 그는 자신이 아래로 가도록 몸을 돌렸다.
그 결과 레프리콘은 사령관에게 꼭 안긴 상태로 몸을 겹치고 쓰러지게 되었다.

" 읏···괜찮습니까? 사령관 각하? "
" 나는 괜찮은 것 같아. 넌? "
" 각하 덕분에 저도 괜찮습니다···아! 죄송합니다! 어, 어서 비켜드리겠습니다! "

레프리콘은 어서 비켜준 다음 그를 일으켜 주려고 했지만 다리에 감긴 게임패드의 선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아무래도 좋다고 방방 뛰어 다닐 때 발에 걸린 모양이었다. 다시 말해 결과적으로 넘어진 원인은 레프리콘이 제공 했다는 뜻이다.
자신이 잘못했다. 그를 넘어지게 만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레프리콘은 다급해졌다.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연신 낑낑거렸지만 재촉한다고 쌀이 밥이 되진 않는 것처럼 줄은 풀리지 않았다.

다급해하는 레프리콘과는 달리 그는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에 이성이 잡아 뜯기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든 일어서 보려고 하는 레프리콘의 행동은 의도치 않게 그를 유혹했다.
양산형 모델이라곤 하나 그녀의 가슴은 어지간한 고급 바이오로이드를 압도할 정도로 크고, 아름다웠다.
그런 가슴이 자신의 가슴에 맞닿은 체 위아래로 출렁이고 있다. 게다가 붉은 머리칼 너머로 보이는 저 엉덩이를 보아라.
레프리콘 모델을 좋아하는 그가 과연 참을 수 있을까?

" ······레프리콘. "
" 죄, 죄송합니다! 그, 금방 비켜드리겠─힉!? 사, 사령관 각하?! "

아니, 못참는다. 단언컨데 참을 수 있는 남자는 없을 것이다.

그는 팔을 뻗어 레프리콘의 엉덩이를 양손으로 꽈악 붙잡았다.
타이츠의 질감과 그 너머로 느껴지는 레프리콘의 부드러운 살의 느낌이 손을 타고 느껴지자 약간 남아 있던 이성의 끈이 완전히 끊어져 버렸다.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자신의 발에 걸린 선을 대충 다릴 움직여 치워내 버리고 몸을 굴려 레프리콘의 위에 자리 잡았다.

" 사, 사령관 각하? 그러니까 이게 지금··· "
" 레프리콘. "
" ······네? "
" 아까 분명 몸을 대준다고 했지? "
" ······그, 그렇죠. 하, 하지만 그런 의미로 한 게······ "
" 해도 되지? "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에 레프리콘은 직감했다. 아, 당할 수 없겠구나- 하고 말이다.
그녀는 수줍게 달아오른 얼굴을 옆으로 슬쩍 돌리며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 처음이니까 부드럽게 부탁드립니다······. "


-


환호성이 가득했던 그 방은 쾌감에 찌든 두 남녀의 목소리가 대신하게 되었다.
만일 레프리콘의 목소리를 자막으로 출력한다면 이런 (♡)가 붙어서 나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녀의 신음소리는 농염하고 또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그런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문틈 사이를 막고 있는 두 개의 눈동자와 하나의 렌즈,

" 이것보십쇼 페더님. 제가 된다고 하지 않았슴까. "
" 진짜네요 브라우니 1004번. 이런 각을 만드신다니······. "

호드의 참모인 탈론 페더와 레프리콘과 함께 게임을 하던 1004번 브라우니였다.

" 저러다 바닥 뚫리겠어요······ "
" 그러게 말임다. 아, 그래서 이건 얼마에 쳐줌까? "
" 자, 잠시만요······ 그건 나중에 말씀 드릴게요. 와, 진짜 야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