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발탄 - 1

불발탄 - 2

불발탄 - 3

불발탄 - 4

불발탄 - 5

불발탄 - 6

불발탄 - 7

불발탄 - 8



(그림 출저 : https://arca.live/b/lastorigin/7810354?p=1) 


머리 위에서 미친듯이 반짝거리는 붉은 빛은 기괴함의 상징같았다.

속에서 구역질이 올라오듯이 역겨움이 전신을 덮쳤고, 손발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진짜 좆됬다.


이제 곧 사방에서 몰려올 철충에게 인수분해 당하는 것으로 끝난다.

브라우니도 이제야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안절부절 못하고 뒷걸음질치고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길은 하나밖에 없다.


"브라우니!"


주사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면 떨어진대로 굴려보는 수 밖에.


"참호 밖으로 달려요!"


나는 참호 밖으로 몸을 던지며 외쳤다. 브라우니도 뒤늦게 참호 밖으로 올라와 나를 뒤쫓아오기 시작했다.

이대로 23호 참호까지 달리는 것은 힘들다. 그렇다면 아까전과 같은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31호 참호와 23호 참호가 이어지는 길목까지 일직선으로 달린다. 그 곳도 철충들이 공격하고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2.5km에 가까운 거리를 아무런 엄폐도 없이 달려가는 것보다는 안전할 것이다.


문제는 하늘에 날아다니는 저 날파리들이다.


"레프리콘 상병님! 저놈들 따라오는데 어캄까?"


브라우니의 말대로 스카우트들은 우리를 비웃는 듯이, 우리의 머리 위로 날아다니며 그 색적 경보를 마음대로 울리고 있었다.

이래서는 도망쳐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이 개자식들은 우리를 먹이로 사냥게임을 즐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달릴 수 밖에 없는 신세가 한탄스러울 뿐이다.

23호 참호 길목까지의 거리도 어림잡아 1.5km가량. 아까와 다르게 발포 수류탄에 기대는 것도 불가능하다.

오리진 더스트로 강화된 신체라도 4분은 전력질주해야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게다가 평탄한 길도 아니고 울퉁불퉁한 흙길임을 감안하면 그 이상으로 걸릴 것이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철충들이 우리에게 몰릴까?


순간적으로 머리속에 노움 병장이 스쳐지나갔다. 


'벌을 받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노움 병장은 마지막까지도 전우를 위해 죽어갔다.

그렇지만 나는 끝까지 나의 목숨을 우선했다. 부대원의 죽음에서 눈을 돌렸다.

자신의 안위만을 챙긴 더러운 년이다.


미친듯이 놀리던 발이 무거워진다.

이제 1분이나 막 지났을까? 점차 가슴을 짖누르듯이 숨이 차오르고 있었다.

쓸데없이 커다란 가슴의 탓에 더 힘든 것 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솔직한 심정으로 이제 죽어도 되지 않을까, 고민도 했었다. 

이제 벌을 받아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살짝 고개를 돌려보았다.

브라우니도 격한 호흡을 내뱉으며 내 뒤를 바짝 따라오고 있었다.

나의 죄는 내가 갚아야 한다. 

그러나 저 아이는? 생산된지도 얼마 되지 않은 저 브라우니에게는 무슨 죄가 있지?

브라우니 23776. 적어도 우리 막내만큼은 살아도 되지 않을까.

나는 차츰 속도를 늦추며 브라우니를 앞장서도록 페이스를 조절했다. 뒤따라오는 스카우트는 어떻게든 내가 묶어둬야 한다.

브라우니만큼은 23호 참호로 도착할 수 있도록. 

다행히도 브라우니는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앞만 바라보는 경주마처럼 달려나가고 있었다. 


'달려요.'


나는 마음속으로 작게 말하고는 그 자리에 멈춰 경기관총을 하늘로 향했다.

여전히 스카우트들은 하늘위에서 우리를 추격해오고 있었다. 놈들은 충격탄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발도 우리에게 쏘지 않았다. 여전히 몰아넣기의 미학만을 즐기고 있었다.


"이 개새끼들이..."


전장에 서고 욕만 늘어간다. 머리속으로 열을 올리며 고글을 내려쓰고는 앞장서서 날아오던 스카우트를 향해 조준한다.

어두운 밤의 시야가 점차 밝아지더니 조준선이 확보되었다. 이걸로 명중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여기에 두 마리를 묶어둔다, 그 생각만을 하며 각오를 다졌다.

스카우트는 발을 멈춘 나를 바라보는 듯이 내 머리위에서 빙글빙글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때,


- 쉬이이...


어디선가 흰 연기를 내뿜으며 불꽃이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많이 들어본 소리다.

불꽃은 곧 나의 머리위에서 고도를 유지하던 스카우트의 날개에 명중했고, 요란스러운 폭발음을 내며 스카우트의 전신채로 터져버렸다.


"뭔..."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디선가 날아온 AA-7 임펫이 모습을 드러냈다.


"뭐하고 있나!"


임펫은 하늘을 날아다니며 내게 소리쳤다. 연기를 뿜어내는 로켓 런처를 짊어진 그녀는 어느샌가 나의 주변으로 다가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열압력탄을 장전하고 있었다. 

남은 스카우트는 한 개체 뿐.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다시 하늘을 요란스럽게 날아다니는 남은 스카우트에게 조준선을 맞췄다.

사냥놀이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지 혼란스러운 듯한 움직임을 보이던 스카우트는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브라우니의 총탄에 엔진이 격발당해 땅으로 곤두박질하였다. 

스카우트 개체는 특히 기생체를 추격하기 어려운 탓에 처리하기 쉽지 않다. 특히 이런 야밤에 기생체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기생체를 찾는 건 포기하고 서둘러 전장을 이탈할 준비를 하였다.


"이쪽으로 따라와!"


어느샌가 다가온 임펫은 다시 허벅지에 달린 프로펠러를 돌리며 낮은 고도로 하늘을 날며 우리를 이끌었다.

원래 가려던 방향에서 옆으로 새는 루트였지만 먼저 앞장서서 날아가는 그녀를 무시할 수는 없었기에 결국 그녀를 따라 다시 참호쪽으로 몸을 돌렸다.

곧 참호 안으로 다시 들어간 우리는 임펫의 안내에 따라 참호의 외각에 준비된 작은 창고에 도달하였다.

그곳은 소량이지만 탄약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많은 탄약을 소비했던 나와 브라우니는 물론이고, 아까 쏴버린 로켓을 보충하려는 듯 임펫도 손을 놀려 포탄들을 챙겨넣고 있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뒤늦은 감사 인사를 건네자 임펫은 가벼운 웃음소리를 내며 나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뭘. 설마 그 위를 전력질주하는 머저리들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재밌는걸 봤네?"


아까의 모습이 우습기라도 한 듯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역시 바닥에 떨어진 주사위는 굴리는게 아닌가. 다른 이들이 보기에도 꽤 불리한 도박이었던 모양이다.


"그... 스카우트에게 적발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나도 정상적인 작전은 아니라고 생각되었기에 당당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도박에 뇌가 취해버린 것은 아닐까.

노움 병장과 건넜던 그 말도 안되는 외줄타기에 내성이 생겨버려서 목숨을 건 도박을 해버린 것일까.


"후후후... 괜찮다. 참호가 이렇게 습격받고 있는데 안전한 곳이 어디있겠어."


이제야 우리는 이 빌어먹을 전쟁이 굴러가는 방향을 아는 자와 만날 수 있었다.










일이 있어서 더 못쓰겠당.

애매하게 끊어서 진짜 찜찜하네; 검수도 제대로 못하고 올리는 거 같아서 부끄럽다; 담에 더 노력해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