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여, 혹시 뜨밤이란 단어를 알고 있나?"


"뜨밤?"


"그렇다. 뜨밤은 뜨거운 밤 즉"


아스날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의복을 벗어 가지런히 옆에 개어놓은 후 사령관에게 다가갔다.


"밤이 뜨거워질때까지 몸의 대화를 나눈다는 뜻이다"


"아니....그런 소릴 하면서 옷은 왜 각까지 잡아서 개어놓는건데"


"의복은 소중하네,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고"


그녀는 의복과 자신의 아랫도리를 번갈아 가리킨 후, 마치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사령관의 바지를 잡아당겼다.


"그럴 기분 아냐, 나중에 하자. 응?"


"그럴 기분은 내가 만들어주면 되는것 아닌가, 힘들면 가만히 있게. 몸에서 땀 한방울 흘리지 않고 보내주도록 하지"


아무렇지않게 침대까지 끌려가, 그녀의 말대로 땀 한방울 흘리지않은 채 정액만 흘리는 하루를 보낸 사령관은 상실감에 사로잡혔다.


자신이 그렇게도 열심히 주장했던 성적 자기결정권을 일개 바이오로이드에게 쥐락펴락 유린 당한지 벌써 수개월째, 


"아침먹고 떡, 점심먹고 떡, 창문을 열어보니 비가 오더래, 아이고 무서워. 우리 사령관"


"꼭꼭 숨어라, X지털이 보일라"


"동동동대문을 열어라, 남남남대문을 열어라"


어디서 배운건지는 모르겠지만, 멸망전 동요들을 불러대며 숨는 족족 찾아내 기어이 떡을 치고 마는 저 상변태 덕분에 사령관의 체중은

20kg나 줄어들었다. 순전히 단백질부족에서 나타나는 체중감량으로, 닥터 또한 그 정도면 섹스중독이라며 되도록 관계를 가지지 말아달라

당부하는 수준이었지만, 닥터는 모르고 있었다. 중독자는 사령관이 아니라는 것을.


섹스중독의 원인은 무엇일까, 사령관은 살기 위해 그녀의 기원을 조사해보았다. 


"철충들에 의해 괴멸, 퇴각시간을 벌어준게 고작이라...."


분명 지금의 아스날은 멸망전의 객체와는 다른 객체다. 사령관 또한 이를 잘 알고 있었지만, 이 세상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몇가지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유전자에 세겨진 멸망전의 기억들이다. 분명 본적도, 만난적도, 경험한 적도 없는 경험은 복원한 바이오로이드들 중 드물게 나타나는 현상이었으며, 아스날 또한 직접적인 말을 하진 않았지만, 퇴각 당시의 상처가 성욕으로 발산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생명체들은 목슴에 위협을 느끼게 되면, 번식욕구가 활성화 되는 객체들이 많으며, 이는 인간도 마찬가지였다.

하물며, 인간과 비슷한 인공생명체인 바이오로이드라고 다를리가 없다. 어쩌면 아스날은 자신을 쫒아다니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잊기 위해

조금은 이상했지만 자신을 덮치며 마음을 안정시키고 있는 것이라면, 사령관으로써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건 공포를 잊게 해줄 다른 방법을 제공해주면 될 것이라는게 사령관의 결론이었다.



나름대로 이론은 정리했지만, 확신은 없었다. 어떻게 해야 그녀를 만나 자연스럽게 관계없이 하루를 지낼수 있을까 생각하던 차에, 기다렸다는 듯 아스날이 들이닥쳤다.


"사령관, 점심 먹고 바로 앉으면 전부 지방으로 간다네. 시원하게 빠구리 한판 하는게 어떤가?"


"그러지말고, 우리 같이 어디 좀 다녀올까?"


"지금 이 자리에서 바로 해버리고 싶지만, 그간의 일도 있으니 일단 들어보도록 하지"


"이번에 레아가 가꾸고 있는 화단에 봄꽃이 피었다는데, 잠깐 보러 갈까?"


"꽃밭이라.....그것도 나쁘지않군"


"가는 동안 우리 손 잡고 갈까?"


"소.....손을...잡고???"


전혀 예상 밖의 반응이었다. 스킨십이라면 거칠게 없던 그녀가 어째서인지 손을 잡고 산책을 가자는 말을 듣자마자, 눈에 띌 정도로 귀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래, 손 잡고 이야기 하면서...맨날 그런거 말곤 제대로 된 이야기 해본적도 적잖아?"


"흐...흐흠....낮간지럽게, 그런걸.....어떻게...."


뭐가 그리도 부끄러운건지 아스날은 덜덜 떨리는 손을 사령관의 손에 포개었다.


"이...이건 이거 나름대로....꼴리는군"


"꼴려? 아니지, 이건 설렌다가 맞는 말이야"


"설렌...다....무슨 뜻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 말이 맞는것 같군"


호탕한줄로만 알았던 그녀에게서, 가녀린 소녀의 얼굴을 본 어느 좋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