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르페이아는 며칠째 의무실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이마와 목과 가슴 모두 붕대와 약냄새 풍기는 거즈로 덮여 있었고, 

부목까지 고정시킨 오른팔은 말할 것도 없었다.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쉽지 않은 중상을 회복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고,

덕분에 그녀는 수복실 한 구석에서 한가하게 침대 신세를 누릴수 있었다. 

이렇게 푹 쉬어본 것은 오르카 호에 탄 뒤로 처음이었다.


“...하르페이아, 있어?”


사령관, 식사와 새로운 책을 든 그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하르페이아가 철충의 공격에 의해 격추된 이후, 

그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며칠째 그녀의 간병을 해주고 있었다.


“.....”


“하르페이아? 몸은 좀 어때.”


“...신경쓰지 않으셔도 되요, 어차피 곧 나을 테니까요.”


“아..그 빵을 좀 가져 왔는데, 먹지 않을래? 전에 보고싶다던 책도 가지고  왔어.”


그가 작은 식탁에 쟁반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달콤한 빵 냄새가 풍겼다.

물자가 한정되어 있는 오르카호에서 갓 구운 빵은 상당히 귀한 음식이였다.

하지만 그녀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하하..그럼 이 책은 어때?”


그것은 하르페이아가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의 호의를 일부러 거절하는것은 아니였지만, 머릿속에서 쾅쾅 울리는 포격소리 탓에 도무지 책장을 넘길수가 없었다.


“...정말 괜찮은 거야?”


“..네.”


그녀는 손으로 얼굴을 가린채 중얼거렸다. 사령관에게 자신의 표정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사령관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반쯤 남은 빵이 담긴 접시를 치웠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그의 목소리가 섞인다.


“...그러면.. 다행이네, 더 할말은 없는거야?”


“....그러네요.”


그 대화를 마지막으로 한동안 병실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는 이곳저곳에 늘어진 물건을 정리한 뒤에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때 하르페이아가 고개를 돌린 채 물었다.


“...사령관님.”


“응?”


“...정말 저를 사랑하긴 하셨던 걸까요.”


잔뜩 갈라진 목소리였다.

뻔한 말일지라도 그의 입에서 확실한 대답을 듣고 싶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응. 사랑해, 사랑하고 말고.”


“...”


“사랑” 이라는 단어가 그녀에게 있어 그 마력을 잃어 버린것은 꽤 오래된 일이다.

그녀는 책을 읽으며 그토록 궁금해 하던 그 단어의 의미가 ‘끝없는 노동과 싸움을 통해 고통을 주는 것’ 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의 대답에도 여전히 그늘진 하르페이아의 얼굴은 본 사령관은 우울한 얼굴로 방 밖으로 나섰다.

하르페이아는 그런 그를 보며 아무말 없이 손바닥에 놓인 반지를 만지작 거리며 잠시나마 행복했던 과거를 회상했다.





2




꽃잎이 흩날리는 갑판 위, 하르페이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에게 반지를 내미는 사령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이걸, 나한테 주는 거야? 소설 속 이야기인줄로만 알았는데....”


“응..하하, 하르페이아 에게 이걸 꼭 주고 싶었어. 어? 설마 지금 우는건 아니지?”


아, 아냐! 너무 기뻐서...사령관은 내 내면을 봐주는구나? 자, 이 책이 내 대답이야. 꼼꼼하게 읽어줘? 나중에 검사할테니까.”


수줍게 내민 그녀의 손에는 남녀가 입을 맞추고 있는 그림이 그려진 책이 한권 들려 있었다.

사령관은 기쁘게 웃으며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이어진 입맞춤은 그녀가 읽었던 그 어떤 로맨스 소설보다 더 달콤하고 황홀했다.


“....그랬었는데.”


하르페이아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멍한 얼굴로 텅 빈 병실 안을 바라보았다.


약혼식을 마친 그날, 그녀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사령관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예상대로 곧 사령관은 그녀를 불렀다. 

다만 그 장소가 비밀의 방이 아니라 전장이였다는 것이 예상과 달랐다.


처음에는 자신만이 수행할 수 있는 임무라 어쩔수 없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그렇게 5일이 지나자 그 생각은 점점 사그라들었다.


“...사령관님…”


그는 그 뒤로 그녀의 얼굴을 보지도 않고 계속해서 같은 전장에서의 전투만을 요구했다. 

싸움,싸움, 그리고 또 싸움…. 쉼없이 이어지는 노동과도 같은 전투에 

그녀는 사령관에게 밉보여 버림받았다는 수근거림까지 들어야 했다. 

너무도 마음이 아팠으나 사령관은 이야기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계속해서 그녀를 전장으로 내보내는 명령을 반복할 뿐이였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


두달 뒤의 어느날, 하르페이아는 그날도 어제와 같은 명령을 받고 출격 포트 위에 서 있었다. 

출격포트에서 사출되기 30초전, 

무언가를 망설이던 하르페이아는 왼손 약지에 끼워져있던 반지를 빼 그것을 조용히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런 것을 둘도 없는 보물로 생각했던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스러웠다.

사랑을 잃고 외롭게 반짝이는 반지를 뒤로 하고 하르페이아는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3



‘반지에 바이오로이드의 몸을 강화하는 기능이 있다’ 는 사실은 그녀들 사이에서 그리 널리 알려진 내용은 아니였다.

평소보다 느려진 몸은 피로에 쌓인 하르페이아의 전투를 더욱 힘들게 했고,

결국 그녀는 등 뒤에서 날아온 총알을 피하지 못하고 잔해 속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놀란 사령관이 급히 구조대를 편성한 탓에 그녀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몸 이곳저곳에 깊이 입은 상처만은 어쩔 수 없었다.


“음...언니, 이건 한 일주일은 쉬어야겠는데? 상처도 상천데, 몸에 피로가 엄청 쌓였어..”


닥터의 조언에 그녀는 그제야 휴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일주일간, 사령관은 매일같이 병실에 찾아오며 그녀를 정성스럽게 돌봤다. 

하지만 일주일은 이미 돌아선 그녀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너무도 짧은 시간이었다.


다음날 그가 돌아왔을 때 하르페이아의 침대 위는 인위적일 정도로 깔끔하게 정돈 되어 있었다.


“..하르페이아..?”


벌써 퇴원한 걸까?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피어난 불안감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하르페이아?? 어디에 있는거야!!” 


그는 큰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외치며 병실 안을 헤매었다.

정돈된 이불을 들추고 침대 밑을 살피자 말끔히 정돈되었던 방 안이 점점 어지러워진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로 방을 살피던 그는 탁자 한가운데에 놓인 흰 종이를 발견하고 우뚝 멈추어 섰다.


“...하르페이아..”


그는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누르고 있던 반지를 들었다.

하르페이아의 고운 글씨로 쓰인 편지를 천천히 읽어내려가는 그의 눈가에 매달려 있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니 분명 개그엔딩을 쓰려고 했는데 내용이 슬퍼져 버림…

다음엔 진짜 해피엔딩으로 들고올게요….


쓴 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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