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전 까지 둘을 태웠던 소형 보트가 파문을 내며 저 멀리 멀어져갔다.

여기까지 왔으니 끝장을 봐야하는데, 대체 어떻게 하나... 하고 사령관은 한숨을 푹 내쉬고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쨍쨍한 태양 아래 바닥까지 투명하게 비치는 바다와 새하얀 모래사장, 높은 야자수의 그늘과 그 밑에 번듯하게 차려진 간이 숙소.

먹기좋게 정리 된 식재료들과 음료들이 담겨져 있는 냉장고...

그리고 자신의 머리카락 색 만큼이나 얼굴이 새빨개진 메이가 있었다.



사령관이 오르카 호에 승선한 이후, 수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이 모이면서 사령관과의 성관계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단순히 서로간의 애정을 확인하는 것 뿐만이 아닌, 바이오로이드와 바이오로이들간의, 더 넓혀서 부대와 부대간의 미묘한 자존심 싸움의 영역까지 의미가 확대된 것이었다.

말단 브라우니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상위 계급, 그 중에서도 지휘관 급 개체들은 모두 사령관과 관계를 가졌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들에게는 자존감의 향상을, 소속 부대원들에게는 우리 부대가 '무시당하거나 뒤쳐지고' 있지 않음을 증명하였다.

단 하나, 둠브링어의 지휘관인 멸망의 메이를 제외하고 말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놀리면 부끄러워하는 것이 귀여워서 그녀를 일부러 가까운 듯 멀리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최근 풀이 좀 많이 죽은듯한 메이의 모습과, 그녀가 거의 매일 남몰래 숨죽여 운다는 나이트 앤젤의 제보를 들은 후

자신의 장난 아닌 장난이 너무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렇게 기회를 마련한 것이었다.


이 곳은 오르카 호가 부상 후 정박한 육지와 약간 떨어져있는 작은 무인도였다.

섬의 규모가 워낙 작아 철충이 존재할 확률은 없었고 스캔을 통해서 위험요소도 없음을 확인했다. 애초에 바다로 둘러싸여 있기도 하였다.

애초에 저 멀리 맨눈으로 아슬아슬하게 오르카 호의 선체가 보일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기도 했고, 오르카 호의 감시 레이더 망 안이었으며, 혹시 모를 비상사태 시 수십 초 내로 언제든지 기동 전투원들이 날아올 수 있을 만한 거리였다.


이런 천국같은 곳에서, 사령관과 메이는 단 둘이서 3일을 보내야 한다.

단순히 하룻밤의 관계를 넘어선, 이제까지의 행적에 대한 미안함의 의미를 담은 3일이었다.

처음에 사령관이 이 3일간의 '허니문' 계획을 떠올렸을 때, 사령관은 혹여나 메이가 자신을 거절할까 봐 신경이 쓰였다.

그렇게 걱정하면서 둠브링어 대원들을 소집하고 그 앞에서 조심스럽게 자신의 계획을 공개했는데...


사령관의 계획 설명이 끝나기가 무섭게 둠브링어 대원들 일동에게 환호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그 중에서도 특히 나이트 앤젤은 앉아있던 의자에서 용수철처럼 튀어나와 연신 허공에 주먹질을 하며 '예스! 드디어!' 등의 짧은 감탄사를 연신 내뱉었다.

그렇게 몇 초간 환호로 시끌벅적하던 둠브링어 일동은 자연스럽게 당사자인 메이에게 시선이 쏠리고 순식간에 조용해졌는데...


메이는 양 주먹을 꼭 쥐고 시선을 완전히 땅바닥에 고정시킨 채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평소같았으면 부끄러움에 순식간에 방을 뛰쳐나갔을 지도 모르겠지만, 둠 브링어 대원들의 존재가 그녀를 아슬아슬하게 이 자리에 남겨두고 있었다.

이것은 더 이상 단순한 나만의 문제가 아니야, 이건 지휘관끼리의, 더 나아가서 부대 간 자존심 싸움이야- 이런 마음으로 간신히 부끄러움을 억누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사실 사령관이 굳이 메이만 불러서 따로 말하지 않고 이렇게 대원들 앞에서 공공연히 말한 것도 의도된 것이였다, 치사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그녀의 확답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래, 내 계획은 이런데, 메이 너의 생각은 어때?"


사령관은 그녀의 답을 듣고자 질문했다, 아무리 그녀가 쑥맥이라고는 해도 강압적으로 그녀와 관계를 가지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였다.

그렇게- 죽을 정도로 길게 느껴진 약 10초간의 침묵 후에, 메이가 들릴 듯 말듯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좋아."


후일 나이트 앤젤은, 메이가 그 때 한 대답이 핵 미사일의 발사버튼을 누르는 것을 포함해서 그녀의 생애 통틀어서 가장 용기있는 행동이었다고 평가했다.


메이가 3일 씩이나 사령관과 동침을 한다는 것에 대해 다른 부대에서 반발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둠브링어 대원들이 반발 시 내전이라도 일으킬 법한 기세로 허니문 '작전'을 지지하고 있기도 했고, 놀랍게도 꽤나 동정여론도 일어났기 때문에, 생각보다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무인도에 3일치 식량과 꽤나 멋들어진 숙소와 편의시설들이 준비되는데는 놀랍도록 짧은 시간밖에 소모되지 않았고 그 결과-


지금 여기 무인도에 사령관과 메이가 덩그러니 서있는 것이다.


그래, 서 있기는 하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할까? 사령관은 고심하며 메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작은 체구에 그렇지 못한 흉악한 가슴, 당황해서 그런지 더워서 그런지 모를 땀 한방울이 이마에서 목을 타고 그녀의 가슴골로 흘러내렸다.

꿀꺽, 하고 사령관은 침을 삼켰다.

이 계획은 메이에 대한 사과와 자신감 고양을 위한 허니문이었지만 그녀와 섹스하고 싶다는 욕망 또한 사령관의 마음 속에 분명히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욕망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 5할?6할? 아니 7할일까? 모래사장에 선 채로 부끄러움에 시선을 발 밑에 고정하고 있는 메이를 보자 사령관은 서서히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메이."


흠칫 하고 그녀의 몸이 튀었다, 그녀는 아주 슬쩍 고개를 들어 사령관 쪽을 쳐다보았다.


이렇게는 안 된다, 이래선 3일 내내 땅만 쳐다보고 있다 끝나겠어! 사령관은 초초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와 3일간의 성관계를 위해 다른 바이오로이드와 관계를 참은 지가 벌써 몇 일이나 되었다.

매일같이 섹스를 하다가 그만두니 그 몇일이 정말 길게 느껴졌는데... 그 인내의 보상을, 지금 얻을 때가 되었는데...!


안 되겠다, 좀 강하게 나가야겠어


"메이."

사령관이 다시 그녀를 불렀다.


"우리... 여기서 지금부터... 오늘 밤 하고 내일... 모레 저녁까지 그..."

사령관 또한  입으로 직접 말하자니 부끄러운 건 마찬가지였지만, 욕망이 이성을 앞질렀다.


"계속... 계속... 그 섹스... 할 건데...?"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사령관은 말했다, 애초에 지금 판단의 주체는 것은 뇌가 아니라 하반신이었다.


짧은 침묵 후에 메이가 시선도 채 마주치지 못한 채로 천천히 말했다.

"...으...으응."


별 것 아닌 대답일 수 있으나 그 말은 날뛰는 황소같은 사령관에게 있어서 고삐를 풀어준 것과 같았다.

사령관은 말 없이 다가가서 메이의 허리에 손을 감았다.


꺄악 하는 작은 비명과 함께 메이는 몸을 흠칫 떨었으나,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지금 수십 수백가지의 생각이 급류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다.

대부분 부끄러움, 동료들 생각, 사령관 생각, 그리고 자신의 솔직한 마음.

메이는 생각했다, 사령관이 3일간의 무인도행을 자신에게 말했을 때... 정말 부끄러움에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동료 생각만큼이나 자신이 그 자리에 있게 해준 것은 매번 숨겨왔고 말하지 못했던 그녀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사령관과 이어지고 싶다, 사령관의 그 따스한 품 안에 안길 수만 있다면-

매일 외로움에 홀로 울며 달래고 잠든 게 벌써 얼마나 되었던가! 이제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용기를 낸다면...

그녀의 눈 앞에 그녀가 바라던 소원이 아른대는 것 같았다, 이미 여기까지 왔어! 메이는 가슴 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끓어오르는게 느껴졌다.


메이는 사령관이 허리에 두른 손을 거절하지 않고, 사령관의 품 안으로 자신의 몸을 기댔다.

쿵, 쿵, 쿵 하고 심장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다. 살과 살이 맞대어져 느끼는 뜨거움은 남국 무인도의 열기보다도 더 뜨거웠다.


그렇게 그 둘은 잠시동안 서로를 껴안은 채 해변에 서 있었다.


"갈까?"

잠시 후 사령관이 말했다.


메이는 말없이 사령관의 품에 기댄 채로 함께 해변에서 숙소 쪽으로 걸어갔다.


앞으로 3일간, 무슨 일이 얼마나 벌어질 지는 알 수 없지만, 이미 둘의 관계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나아갔음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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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알거 다 아는 메이랑 요즘 아무것도 모르고 나애앵만 하는 메이의 중간지점을 잡아 써봤음


모든 스토리를 다 본것은 아니라 설정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너그럽게 넘어가 주시면 감사하겠음


근데 19문학이라고 해도 분량상 1편에선 야스장면 적을 틈이 없었는데 다음에 2편에서 가져오도록 그러도록 하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