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발탄 - 1

불발탄 - 2

불발탄 - 3

불발탄 - 4

불발탄 - 5

불발탄 - 6

불발탄 - 7

불발탄 - 8

불발탄 - 9

불발탄 - 10

불발탄 - 10.5


(사진 출저 : https://arca.live/b/lastorigin/6009861) 브라우니 개커여워


"역시 거기서 오른쪽이었어요..."


입안에서 느껴지는 흙먼지의 내음을 뱉어내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펫 상사의 귀에 들어가기엔 충분한 소리였던 모양이다.


"어느 쪽이든 도착만 했으면 된 거 아니겠어? 심지어 22호 참호라잖아. 더 안전한 곳까지 도착했네."


"그 과정이 너무나도 힘들었잖아요..."


임펫 상사는 당당하게 우리를 갱도의 아래까지 안내해냈다. 그 이후에도 자신은 갱도 지도를 몇 번이고 봤다면서 자신을 믿을 것을 당부하며 자진하여 길 안내를 자처했다.

그리고 두, 세 시간이면 도착했어야 할 참호에 반나절이 넘게 지나고 나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진짜 이제 죽는 줄 알았지 말입니다..."


브라우니는 거적대기 같은 몰골을 하고 비틀거리며 우리의 뒤를 따라걸었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도 못하고 거의 18시간을 움직여왔으니,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을 테니...

정말로 그 초코바가 마지막 식사가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레드후드 연대장님을 만나 복귀 신고를 하고 난 후, 우리는 임펫 상사의 부대로 편입되었다. 연대장이 보여준 그 놀라운 표정이란... 33호 참호의 생존자가 나타날 것이라고는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야말로 시체가 살아온 기분이겠지.


"일단, 가벼운 식사라도 하고 오도록. 잠깐이라면 눈을 붙여도 좋다. 아마 곧 근무에 투입될 수 있으니 약간이라도 휴식을 취해."


임펫 상사는 우리에게 막사의 위치를 대충 말해주고는 손을 휘저으며 우리를 보내주었다. 아마 본인도 상당히 피곤하리라.


"감사합니다!"


우리는 가벼운 경례를 보내고 그녀가 말한 막사로 이동하였다. 다행히도 남은 전투식량이 있었던 덕에 이른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가벼운 식사로 몸을 데운 나와 브라우니는 막사의 안으로 들어갔다. 간이 천막으로 이루어진 막사는 흙먼지로 매캐한 공기를 가득 채우고 있었지만, 침낭과 이부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도 편안한 공간으로 보였다.


"이제야 쉴 수 있겠슴다..."


브라우니는 쓰러지듯이 침낭의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첫 전투에서 격전을 겪은 탓에 체면치레도 갖추기 힘든 모양이다.


"정말 고생 많았어요, 브라우니."


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으니 그녀를 건드릴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레프리콘 상병님은 안 쉬십니까?"


"저는 잠시... 바람 좀 쐬고 오려구요."


"있다가 다시 전투해야 할지 모르니 지금이라도 잠시 주무시지 말입니다."


"곧 잘거에요. 먼저 자고 있어요."


"넵! 알겠슴다!"


브라우니는 사양도 하지 않고 순식간에 침낭의 안까지 몸을 뉘우고는 순식간에 코까지 골며 잠에 빠졌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잠시 허탈한 미소를 짓고는 막사의 밖으로 나왔다.

해가 떠오르며 참호의 안에도 햇빛이 드리우고 있었다. 곳곳에서 바쁜듯히 움직이는 자매들이 물건을 옮기거나 장비를 점검하고 있었고, 식사를 준비하거나 세면을 시도하는 자매들도 눈에 들어왔다. 


평소에 보았던 참호의 모습. 

어제까지만 해도 나도 함께였던 풍경이다. 이제는 그때의 자매들이 없다는 것이 이제야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마치 브라운관 너머를 통해 영상을 보는 듯이 느껴졌다. 나와는 다른 공간에 있다는 느낌이 전신으로 받으며 이질감이 몸 안을 가득 채우자 현기증이 피어올랐다.

머리를 흔드는 현기증의 탓에 나도 모르게 발을 헛딛은 것일까. 몸이 옆으로 기울듯이 흔들리자 균형을 잡으려던 찰나,


"어이쿠."


누군가가 내 어깨를 지탱해 주는 것을 느꼈다.

고개를 돌려보니 처음 보는 얼굴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니, 어느 개체인지는 알고 있다. 앵거 오브 호드의 T-75 워울프다.

다만 33호 참호에는 방어전이 주로 이루어지는 전선이었던 탓에 앵거 오브 호드가 활약할 일이 없었고, 그녀들은 동부전선이었던 4호 참호 쪽에 배치된 것으로 알고 있다.


"아, 감사합니다."


나는 몸을 다시 지탱하며 그녀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녀는 가벼운 미소를 띄우며 입에 꼬나문 담배를 뱉어내듯이 땅에 튀어보내며 내 어깨에서 손을 떼었다.


"별말씀을. 많이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네?"


"아... 그런가요?"


아무래도 피로가 얼굴로도 티가 나게 보이고 있었던 모양이다. 부끄러운데...


"하긴, 보아하니 다른 참호에서 온 모양이지? 철충놈들을 피해서 왔을 텐데 피곤할만 하지."


그녀는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 오른쪽 어깨를 주무르듯이 손을 올렸다. 왠지 손길이 끈덕진 게 기분이 이상한걸.


"하하... 워울프... 님도 다른 참호에서 오셨나요?"


"2258 워울프야. 그냥 워울프라고 불러. 나는 원래 22호 참호 소속이야. 해안가 쪽를 탐사하는 정찰부대에 속해있거든."


"그러셨군요. 1699번 레프리콘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워울프."


이렇게 말했지만 우리들끼리도 얼굴을 구별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오래 지내다 보면 분위기나 약간의 외견의 차이로 구분할 수 있지만 지금 막 본 그녀를 다음에 봤을 때도 구분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 나도 잘 부탁해."


그녀는 밝은 미소를 보이며 당당하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거절할 이유도 없었기에 가볍게 악수를 받아 손을 흔들자 이번에는 그녀에게서 질문이 날라왔다.


"그런데 어느 참호에서 왔길래 이렇게 지쳐 보인데?"


"아, 33호 참호에서 왔습니다."


"33호? 거기 아직 생존자가 있었어?"


워울프는 진심으로 놀랐다는 듯이 리액션을 취해왔다. 이미 사령부까지 밀린 상황에서 최전방에서 생존자가 왔다는 소식은 쉽게 믿기 어렵겠지. 


"네. 갱도를 통해서 합류할 수 있었어요."


"아! 너희구나!"


너희? 우리가 벌써 인기인이 되었나?


"내 친구 중에 노움이 있거든. 복귀 중에 갱도에서 올라온 바이오로이드를 보았다고 하던데, 이야 별일이 다있네! 하하!"


노움이라는 말에 순간적으로 몸이 굳고 말았다. 앞으로도 많이 볼 개체들인데 뇌 안쪽까지 트라우마가 생긴 것처럼 가슴 깊숙히 이질적인 감성이 파고들었다. 

그 탓에 그녀가 이어서 말을 걸고 있었지만 그 무엇도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미칠 듯이 뛰는 심장소리와 가빠지는 호흡만이 귀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진정해야한다고 머리속으로는 생각해도 쿵쾅거리는 심장의 탓에 모든 생각이 잡념처럼 바뀌고 말았다. 제대로 사고를 이어나가기가 힘들었다.

점점 커지는 심장소리는 폭발적이다 못해 고막을 부수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울려 퍼졌다. 눈이 조금씩 멀어지듯이 멍해져가려던 그때,


"어이? 괜찮아?"


몸을 흔드는 충격에 정신이 돌아올 수 있었다. 눈앞에는 워울프가 어깨를 흔들며 내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제서야 온몸을 적시는 식은땀과 마르다 못해 타들어가듯이 목 안이 바짝 말라있다는 것을 느꼈다.


"아, 네. 괜찮아요. 네..."


나는 손으로 눈가를 쓸어내리며 땀을 닦아냈다. 다시 가벼운 현기증이 스쳐갔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몸을 지탱할 수 있었다.


"... 이거, 내가 힘든 친구를 붙잡고 있었던 모양인데."


그녀는 살짝 눈을 찌푸리듯이 나를 바라보고는 내 어깨에서 슬며시 손을 떼며 나를 보내주었다.


"일단 들어가서 좀 쉬어.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있다가 철수할 때 참가해야 할지도 모르니까."


"네. 감사... 뭐라고요?"


나는 그녀의 배려에 몸을 돌리려던 찰나에 다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나의 시선에 오히려 고개를 갸웃거리며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마치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한 행동을 보이며 나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뭐냐니... 아까 말했잖아?"


그녀는 손가락으로 한참 바삐 움직이는 자매들을 가리키며 이어서 말했다.


"21호 참호가 최종 방어선이 될 거라고. 사령부에서 그렇게 정했다잖아. 이제 곧 여기도 철수할 테니까. 그때까지는 쉬어야지."








이제 3화 정도 남았습니다. 아마 분량조절 실패하면 4화 정도까지 늘어날수도 있겠네요.


과거에 스토리에서 봤을때에는 바이오로이드도 정신적으로 충격이 크면 시스템으로 규제된 사항들에도 오류를 일으킬 수 있다고 본 적이 있는 것 같더라구요. T-1 고블린이 민간인 학살을 할 수 있었던 이유도 호르몬의 영향도 있지만 그 탓에 분노로 이어져 인간을 해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같아서요. 


가능하면 이번화 전체로 노움의 죽음이 레프리콘에게 얼마나 크게 심적인 상처를 주었는지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원래라면 한 화 전체를 통틀어서 지나가던 노움을 보면서도 중증인 불안증세 보이는 등, 레프리콘의 PTSD가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표현하고 싶었지만 글이 10화를 넘어가는 탓에 조금 진도를 빠르게 빼고자 여러모로 표현을 많이 삭제했습니다. 혹시라도 차후에 '엥? 존나 극단적인데? 이런 개연성이 있었나?'라고 생각이 드시더라도 조금 양해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1화부터 가능하면 레프리콘의 심적 변화를 보여드릴 수 있도록 대사보다도 감정과 사고의 변화에 집중하고자 독백이 많도록 글을 적었으나 표현력이 부족해서 잘 전달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대사가 적은 탓에 집중하기 어렵지 않았나 생각되네요. 다음에 글 쓸때는 좀 더 가벼운 글로 써봐야겠습니다 ㅠ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남은 설 연휴도 즐거운 시간되시고 올 한해도 건강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