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1)

전편(2)


"이거랑 똑같은걸로 주세요"

"결제는 일시불로 할까요?"

"네"

"선물하실거라면 포장도 해드릴께요"

"아뇨, 괜찮아요"


  철붕은 자그마한 상자를 가방에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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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스널은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머리를 싸매고 끙끙대며 답답하다는듯 아이스 커피를 단숨에 들이켰다. 머리가 얼얼해져와 얼굴을 찡그렸지만 통증이 가시고 나서도 표정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오늘은 그녀의 결혼기념일, 철붕과 아스널이 결혼을 올린 2월 이었다.


  모임의 단톡방에 결혼반지를 잃어버렸다고 말하자 모임의 멤버들은 긴말않고 늘 보던 곳에서 만나자고 이야기하곤 제각기 카페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바이크 라이딩을 갔다온 칸을 필두로 네일샵에 갔다온 레오나, 피트니스 센터에 갔다온 메이가 세면도구 바구니를 들고 나타났고 골프연습을 다녀온 용이 골프웨어에 클럽백을 메고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장바구니를 들고 나타난 마리가 자리에 합류하자 대책 회의가 시작되었다.


  "아스널....정말로 다 찾아본거 맞아?"

"다 찾아봤지...청소기 필터안까지 싹 까뒤집었어"

"철붕씨께선 알고있는것이오?"

"아니...요즘 피곤해서 콘돔도 못뜯을정도로 조출에 퇴근하고 바로 씻먹잠이야...아직 들키진 않았을꺼야..."


  레오나와 용이 그녀의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냈지만 그런다고 없어진 반지가 돌아오진 않는다. 없어진 반지가 어디있을까 생각하는것 보다 이제는 어떻게 사과할지를 이야기 하는게 더 좋겠다는 흐름이 대화를 이끌어갔다.


  "대체 언제 잃어버린거지?...항상 끼고다녔는데..."

"항상 끼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더 잃어버리기 쉬웠던거지뭐"


  끼고있을땐 아무렇지도 않지만 막상 없어지니 불안해 아스널은 미칠지경이었다. 칸의 냉정한 일침이 비수가 되어 날아와 아스널의 가슴을 쑤신다. 아무말도 못하고 커피잔에 있던 얼음을 잘근잘근 씹어대자 메이가 물기가 남은 머릿결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그냥 잃어버렸다고 솔직하게 이야기 하는게 좋겠어 그 물렁한 철붕씨가 설마 잡아먹기라도 하겠어?"

"우리 남편 물렁하지 않아"

"지금 그런 이야길 하는게 아니잖아? 근데 그렇게 침울해있는것 치곤 꽤 단장을 했네?, 철붕씨랑 약속있나봐?"

"오늘 결혼기념일이야....같이 저녁먹기로 했어....좀있다 가야해..."


  반지를 잃어버렸다는 것에 한번 놀라고 하필 오늘이 결혼기념일이라는 것에 그녀들은 두번 놀라고 탄식했다. 마리가 어쩔수 없다는듯 혀를 차며 메이의 말을 거들었다.


"철붕씨가 물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반지를 잃어버린 것을 들키지 않았을거란 생각은 접어두는게 좋아, 굳이 오늘이 아니더라도 철붕씨가 먼저 말을 꺼내기 전에 이실직고하는게 좋겠어"

"하아..."


  사실 들키지 않았을거란 생각은 희망사항이었다. 상실감에 빠져 철붕이 출근하기 전에 해주는 사랑이 듬뿍 담긴 모닝 키스와 펠라치오를 빼먹은 그녀였다. 오늘은 느긋하게 출근 할수 있겠다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표정에서 그녀에게 이질감을 느끼는 시선은 분명 무언가가 있음을 눈치챈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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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흘러 저녁약속 시간이 다가오자 아스널은 천근만근의 다리를 이끌고 약속장소로 나갔다. 퇴근후 차로 마중나온 철붕은 그녀를 태우고 약속장소와는 조금 다른 장소로 길을 돌렸다.


"원래 가려던곳은?"

"문 닫았대, 거기로 갈꺼야"


  향하는 길을 보아하니 철붕이 프러포즈 했던 그 식당으로 향하는것 같았다.


"...거기 주인 바뀌지 않았어?, 맛도 변했을것 같은데"

"지난번에 갔을땐 잘 먹었잖아? 그때도 사장은 바뀌어 있었어"

"...여보, 사실은..."

"도착했어, 내리자"


  소심하게 거기만큼은 안된다고 의견을 피력해보지만 통할리가 있나, 결혼반지를 끼지 않은채로 결혼반지를 받은 곳으로 가는 기분은 마치 오르카 컴퍼니에서 근무할때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한 채로 철붕을 유혹하러 가는 기분이었다. 날씨가 춥다는 핑계로 가죽장갑을 끼고 결혼반지가 없다는 것을 들킬까봐 노심초사 했지만 철붕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걱정 한마디도 않았다. 어렵게 입을 열려고 하는 그녀의 말문을 막아버리듯 어느새 두사람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예약하신 철붕님이시죠?, 자리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지배인에게 안내받아 자리로 가자 그날밤과 똑같은 저녁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자리에 앉아 먼저랄것 없이 수저를 들고 식사를 시작하는 두사람은 그날밤처럼 식사를 이어갔다.


"음...확실히 당신말이 맞는것같아, 맛이 변한것같아"

"그...그렇지?"


  조심스럽게 장갑을 벗고 왼손은 식탁 아래로 향한채로 오른손만을 쓴 채로 수저를 다룬다. 밥이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넘어가는지 신경쓸 겨를이 없는 그녀는 칠칠맞게 괜치리 젓가락에 잡힌 음식을 흘리기 일쑤였다. 그 모습에 농담조차 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아스널은 반지가 없는것이 들킨것이 분명하다 생각하며 겨우겨우 솔직히 말하기로 마음먹으려는 찰나.


"오늘 결혼기념일이잖아 우리, 그래서 선물이야"


  치사하다. 비겁하다. 뭐라 한마디라도 하고싶지만 아스널은 답답한 마음을 어색한 웃음으로 감추며 철붕이 선물로 건낸 종이가방을 받아들었다. 수수한 코트, 비싸지도 않고...그렇다고 너무 저렴하지도 않아 보이는 코트는 아스널의 사이즈에 딱 들어맞았다.


 "...내 옷 사이즈 알고있었어?"

"잊을리가 없지"


  그는 그날밤의 기억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날밤에 받은 반지를 잃어버린 처지였다. 그의 추억을 배신한듯한 죄악감이 그녀를 삼키려는 찰나, 죄스런 자신의 왼손을 코트 주머니에 넣자 자그마한 상자가 그녀의 왼손에 닿았다.


'...어?...'


  그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스럽게 주머니속 왼손을 더듬거리며 상자를 열자 반지가 그녀의 손에 닿았다.


"...치사한 사람...나쁜사람...나쁜새끼...너 오늘 잠 못자...안재울꺼야...사랑해...바보야..."

"밥부터 먹자, 내일은 연차도 신청해놨어"

"응..."


  잃어버렸던 반지와 똑같은 반지를 다시 구해놓은 철붕은 같이 사두었던 코트주머니에 반지를 숨겨놓았다. 그제서야 웃음보가 터진 철붕은 어깨를 들썩이며 픽픽 웃음을 흘렸고 아스널은 반지를 낀 왼손 약지를 품에 감싼채로 작게 어깨를 떨었다.


"웃지마!...이 프링글스 새끼..."

"그래...그래..."


그녀를 달래느라 음식들은 어느새 식어버렸지만 그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두사람은 그날밤, 더 뜨겁게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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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연장했다길래 막판으로


3부작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