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https://arca.live/b/lastorigin/20867348 

2 : https://arca.live/b/lastorigin/20876515

3 : https://arca.live/b/lastorigin/21087179



 

 

9

 

 

 

  일병 브라우니, 병장 이프리트, 상병 레프리콘. 셋만으로 이루어진 분대는 일반적인 분대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셋 중 계급이 가장 높은 이프리트가 군기반장 역할을 맡아야 했지만, 천성이 군기반장과는 동떨어진 터라 요원한 일이었다. 하여 하숙집에서 동거하는 느낌으로 지낸 날이 그렇지 않았던 날보다 훨씬 길었다.

 

  돌이켜 보면 이프리트가 우리에게 쓴소리하지 않은 것은, 그녀의 천성뿐만 아니라 외팔이라는 장애에서 오는 어떤 자격지심이 그녀를 위축시켰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세상살이 어느 직업이 그렇지 않겠냐마는, 군인에게 팔 한 짝이 없다는 것은 치명적이었다.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당장 전역을 시켰겠지만 어디 그때가 일반적인 상황이었는가. 외팔이 이프리트가 전역할 방법은 팔다리를 한 짝 더 잃거나, 아예 죽거나 둘 중 하나뿐이었다.

 

  외팔이 이프리트의 보직은 포병이었다. 박격포를 발사하기까지 과정에 있어 외팔이치고는 빠른 편이었으나, 사지 멀쩡한 다른 이프리트에 비해서는 한참이나 느렸다. 그 탓에 이프리트는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시절 이프리트가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니던 말이 ‘내가 팔만 멀쩡했어도…….’였다.

 

  박격포 발사가 늦어지면 시달리는 건 나와 브라우니였다. 차마 외팔이 이프리트를 닦달할 수는 없었는지, 옆에서 구경만 하느냐, 고생하는데 너희가 거들어야 하지 않겠느냐, 온갖 구박이란 구박은 그때 다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도 이프리트는 나와 브라우니의 도움만은 한사코 거절했다. 때문에 부대에서 나와 브라우니는 모자란 새끼들이었고, 이프리트는 자존심만 센 병신이었다. 그러나 수군거림에도 불구하고 이프리트는 당당했다. 심지어는 자신이 외팔이 이프리트 중 최고라며 말하고 다니기까지 했다. 브라우니의 속내는 잘 모르겠으나 나는 그 자신감이 마음에 들었다.

 

  사건은 그 해 여름에 일어났다. 유난히 더운 날씨와 더불어 전날 내린 비 탓에 습기가 자욱한 날이었다. 나와 브라우니, 이프리트 셋으로 된 분대는 해변에서 멀리 떨어진 산지에서 대기 중이었는데, 드물게 있는 내륙에서의 전투라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며 초조하게 시간을 확인했다. 이프리트는 포를 설치하고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브라우니는 평소와 같이 옆에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헌데 이상하게도 이프리트의 안색이 피를 다 빨린 것처럼 창백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눈동자에 힘이 풀리고 다리를 휘청이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레프리콘 상병님, 저거 말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브라우니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없었는데, 이프리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나도 마찬가지로 이프리트가 보일 반응을 짐작했기 때문에 확신 없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네가 가서 말려 봐라.”

 

  브라우니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느냐며 투덜거렸다. 이후의 일은 확실치 않다. 아마 이프리트가 발사를 하는가 싶더니 번쩍하고…….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땅을 뒹굴고 있었다. 온몸이 얻어맞은 듯 아팠고, 귀에는 이명이 맴돌았다. 입에선 흙 맛과 더불어 쇠 비린내가 진하게 났다. 가슴이 턱 막혀 숨이 쉬어지지 않았고, 눈을 뜨려 애썼으나 정신을 까무룩 잃었다 깨길 반복할 뿐이었다. 귀를 막은 이명 너머로 브라우니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묵직한 통증 너머로 몸이 질질 끌리는 것이 느껴졌다. 직후 몇 번의 폭음이 뚜렷하게 들렸는데, 그 덕에 정신이 들어 눈을 간신히 뜰 수 있었다. 눈앞에 흙먼지가 자욱했다. 이명이 조금 가라앉자 브라우니가 횡설수설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레프리콘 상병님, 정신이 좀 드십니까? 큰일입니다. 곧 철충이 몰려올 겁니다. 그보다 더 큰 일이 뭔지 압니까? 무전이 요란합니다. 빨리 대답 좀 하라며 아우성입니다. 저는 도저히 말 못 하겠습니다. 상병님이 해주시지 말입니다…….”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괴로웠으나 다행히 사지는 멀쩡했다. 나는 브라우니의 부축을 받고 간신히 일어나 이프리트의 생사를 물었다. 브라우니는 고개를 저었다. 죽었나 싶어 묻자 그건 또 아니란다. 죽었다면 죽은 거고, 살았다면 산 거지 그건 무슨 말이냐며 묻자 브라우니는 말없이 손가락으로 옆을 가리켰다.

 

  고개를 돌리자 과연 브라우니의 말이 맞았다. 얼른 보아도 이프리트의 상태는 심각했다. 온몸에 화상 자국이 가득했고, 그중 대부분은 검게 타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나는 형체를 알 수 없이 짓물러진 이프리트의 오른 다리를 보고 불현듯 깨달았다. 이제 이프리트는 군인 노릇 하기엔 글렀구나. 다행이라면 다행이었고, 불행이라면 불행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산등성이 곳곳에서 총성이 요란하게 퍼졌다. 무전기가 요란했다. 나는 브라우니에게 무전을 부수는 게 어떻겠냐 말했다. 브라우니는 고개를 저었다.

 

  “그보다 철충이 문제입니다. 곧 여기까지 들이닥칠 겁니다. 어떻게든 오르카 호까지 도망쳐야 합니다.”

 

  “기습이고 뭐고 우리가 다 망쳐버렸는데, 좋다고 받아주겠다.”

 

  “죽기야 하겠습니까? 사는 게 우선입니다. 산다면 그다음은 어떻게든 될 겁니다.”

 

  “병장님은?”

 

  브라우니는 잠시 말을 고르는가 싶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버릴 순 없지 않습니까. 데리고 가야지요…….”

 

  결과적으로, 다른 바이오로이드의 아우성을 뒤로 한 채 오르카 호까지 복귀한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허나 숨만 붙어있다뿐이지 우리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순간의 실수로 모든 것을 망쳐버린 셋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프리트가 눈을 뜬 것은 그로부터 삼 일이 지난 낮이었다. 이프리트는 자신의 몰골을 살피는가 싶더니 나와 브라우니를 붙잡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브라우니는 대답하지 않았기에 내가 그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었다. 자초지종을 모두 들은 이프리트는 몇 분 사이에 폭삭 늙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래도 이프리트는 일말의 희망이라도 가지고 있었던 듯했다. 그녀는 작게 말했다. 그래도 나는 아직 싸울 수 있다. 애석하게도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오르카 호는 말했다. 팔다리 합쳐 둘을 잃은 바이오로이드는 싸울 수 없다. 이프리트는 강하게 반발했으나 지휘부는 완고했다. 이프리트는 끝내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이프리트의 마음을 꺾어버린 것은 그녀의 실수도, 텅 빈 팔다리도 아닌, 전역증이라 적힌 종이 쪼가리였다.

 

  병상에 누운 채 전역증을 받아든 이프리트는 우리에게 나가라며 손짓했고, 나와 브라우니는 그녀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병실 문을 닫자 곧 억누른 흐느낌이 들렸다. 브라우니는 어색한 표정으로 먼저 가보겠다며 떠났다. 나는 한참을 병실 문 앞에 앉아 그녀의 울음을 들었다.

 

  이프리트는 그 후로도 오르카 호 내에서 생활했다. 달라진 것이라곤 군인이 아니란 사실 뿐이었다. 허나 이프리트가 의지를 갖고 무언가를 하는 일은 없었다. 아마도 군인의 자격을 박탈당한 순간, 이프리트라는 바이오로이드는 죽은 것인지도 모른다. 미련을 버리지 못했는지 군부대 주변을 서성이기도 했으나 오래 가지 못했다. 군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린 날, 이프리트는 나를 붙잡고 말했다.

 

  언젠가 묻지 않았느냐, 왜 싸우냐고. 그때 나는 위에서 시키기 때문이라 답했다. 이제 생각해 보면 그건 사실이 아니다. 내가 싸우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그저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싸우기 위해 만들어져서 싸우다 죽는다. 날 봐라. 난 싸우지 못한다. 그다음은? 싸우지 못하는 바이오로이드의 다음은? 다음이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싸움뿐이다.

 

 

 

10

 

 

 

  “이프리트 병장도 죽고, 레프리콘 상병도 죽었으니 남은 건 나뿐이군요.”

 

  다짜고짜 포장마차에 끌고 와서 소주 두 병을 연달아 비운 브라우니가 처음 한 말이었다.

 

  “이프리트가 죽었다고요?”

 

  나는 멍청히 되물었다. 브라우니는 고개를 끄덕이고 소주 한 병을 더 시켰다.

 

  “왜 죽었답니까?”

 

  브라우니는 내 앞에 놓인 소주잔을 채우며 말했다.

 

  “내가 어찌 압니까. 레프리콘이 떠난 것과 관련이 있지 않나 짐작만 할 뿐이죠. 그녀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름시름 앓다 죽어버렸으니……. 이프리트에 대해선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레프리콘 씨가 쓴 글에서 옛날 일을 좀 읽은 정도입니다. 다리를 잃고 굉장히 우울해하셨다고…….”

 

  “그 양반이 그런 것도 썼답니까? 그럼 이프리트를 무슨 인생 다 끝난 폐인으로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조금 다릅니다. 군 생활이 끝나고 나서도 이프리트의 삶은 얼마간 이어졌습니다.”

 

  의도치 않게 끝나버린 군생활을 뒤로 한 채, 이프리트는 한평생 자신의 쓸모를 찾아다녔다고 한다. 이프리트는 곧 자신의 쓸모를 찾아냈는데, 브라우니와 레프리콘의 뒷바라지였다. 전 상관의 뒷바라지는 몹시 부담스러웠으나 오랜만에 생기를 되찾은 이프리트의 모습을 짓밟기 싫어 순순히 뒷바라지를 받았다고 한다. 그 생활은 브라우니와 레프리콘이 전역하고 나서도 이어졌다.

 

  “실제로 이프리트는 꽤 행복해 보였습니다. 모든 게 문제없어 보였죠. 다만 이프리트가 걱정했던 건, 무엇도 아닌 나와 레프리콘의 미래였습니다.”

 

  브라우니는 연거푸 잔을 비웠다. 소주 한 병이 순식간에 비워졌다. 나는 브라우니가 너무 취하는 게 아닌가 싶어 말리며 물었다.

 

  “그게 이프리트의 죽음과 관련이 있습니까?”

 

  “전역 후 한동안 괜찮았지만, 문제는 항구로 옮기고 난 후에 일어났습니다. 항구에서는 막노동에 장애인을 쓰지 않았죠. 이프리트는 어떻게든 일거리를 찾으려 했지만, 배운 것 없고 팔다리 없는 바이오로이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없었습니다. 하릴없이 시간은 지나가고, 이프리트의 불안감은 커져만 갔죠. 혹시 내가 쓸모없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 그 불안은 대체로 맞았습니다. 레프리콘이 떠난 밤, 다툼이 있었습니다. 레프리콘의 기행 탓에 공사판에서 쫓겨난 저는 화가 났었죠. 저는 레프리콘에게 말했습니다. 아직도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했느냐, 그 시절을 잊지 못해 만나는 브라우니마다 경례를 시키느냐…….”

 

  감정이 격해진 탓인지 브라우니의 목소리는 이상하게 떨리고 있었다. 브라우니는 소주병을 비우고 말했다.

 

  “레프리콘은 대답했죠. 나는 단지 궁금했을 뿐이다. 글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었다고……. 하지만 글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당장 굶어 죽게 생겼는데. 저는 레프리콘의 말을 끊고 소리쳤습니다. 봐라. 우린 입이 셋이고, 그중 하나는 보살핌이 필요하다. 우리가 막노동조차 못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 것 같나? 누워있는 이프리트를 생각해서라도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니냐. 이제 돈이 없다. 네가 우릴 죽이고 있다. 네 글이 정말로 그럴만한 가치가 있냐……. 그 순간 말다툼은 끝났고, 레프리콘은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2주 뒤, 이프리트가 죽었죠. 그녀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뭔지 압니까? ‘어쩌면 내가 죽는 게 나을지도 몰라.’ 제 생각엔 이프리트가 저희 다툼을 들었던 것 같습니다…….”

 

  브라우니는 숨죽여 흐느꼈다.

 

 

 

  11

 

 

 

  사령관이 싸우는 이유를 싸우고 싶기 때문이라는 말로 미뤄뒀지만, 그건 진정한 이유가 될 수 없었다. 그가 싸우고 싶다 생각하게 만든 것이 존재함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건 너무나도 좁은 개인의 영역이기에 내가 알 도리는 없었다.

 

 이미 죽은 사령관에게 물어볼 수도 없거니와, 묻는다 해도 대답을 얻기는 요원한 일이었다. 겉으로는 인류의 부흥과 바이오로이드의 해방을 부르짖었을지 몰라도 그 내면에 어떤 이유가 도사리고 있을지는 오직 그 자신만이 알 뿐이었다.

 

 하여 나는 마침내 깨닫고 말았다. 우리, 바이오로이드 뿐만 아니라 철충까지, 우리가 싸우는 이유는 결코 알 수 없다.

 

  또한 그 이유를 안다 해도, 나와 같은 개인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그들이 싸우는 이유와 우리가 싸우는 이유는 전혀 달랐다. 그곳에 개인은 없다. 우리는 그저 끌려가 싸울 뿐이었다. 길게 이어진 질문이 끝나자 남은 것은 오로지 내가 싸웠다는 사실과, 낡은 훈장뿐이었다.

 

 

 

  12

 

 

 

  ‘저희는 이렇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동정은 마십쇼. 각자 사는 방식이 다를 뿐 아닙니까. 사회가 저희에게 맞출 순 없는 노릇이니 저희가 적응해야죠. 그뿐입니다. 정말로 그뿐입니다…….’

 

  브라우니의 마지막 말이었다. 나는 출판사로 돌아가 겪은 일을 낱낱이 전했으나 편집부장은 고개를 저었다. 너무 장황하다는 것이었다.

 

   “내용은 알아서 쓰지. 고생했네. 들어가 쉬어.”

 

  며칠 뒤 본 초안은 과연 사실과는 달랐다. 그곳에는 이프리트를 부양하기 위해 희생된 레프리콘과, 그런데도 꽃을 피운 문학적 재능에 대한 눈물겨운 줄글이 담겨 있었다.

 

  나는 레프리콘이 남긴 두 개의 원고와 초안을 번갈아 보다 원고를 서랍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