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가 반지를 잃어버렸다00,01

02

"으..우..음..."
제조설비의 배양액이 빠져나가고,
신생아가 빛에 반응하듯 에밀리도 갑작스러운 자극에 반응한다.


"정신이 드니?"
처음 듣는 낯선 목소리

"여기..어디..야
인간..님..?"
본능적으로 눈앞의 존재가 인간임을 알아챈다.

"반가워 에밀리. 여긴 오르카호야. 인류재건의 시작점이지.
근데 닥터, 에밀리 언어모듈에 문제가 생긴거 같은데."

"설계당시에 언어모듈이 제대로 완성되지 않아서 그런거같아, 오빠"

"에밀..리?"

"그래, 에밀리. 네 이름은 에밀리야.
잘 부탁할게"
손을 내미는 눈 앞의 인간

그녀가 하염없이 쳐다보기만 하자

"?"
고개를 기웃거리는 인간

이윽고

"잘..부탁해..인간..님.."

에밀리는 인간이 내민 손을 잡으며 일어난다.

'따듯하다'

처음으로 본 사람
처음으로 느낀 사람
처음으로 불러준 사람

에밀리의 기억은 그 때부터 시작이었다.






03

"저기..사령관..

아파..?

미안..해..잘못했어"



"아직도 신경 쓰이는거야? 괜찮대도.
이래봬도 엄청 튼튼하거든 ㅎㅎ"

"튼튼해도 사령관님은 좀 더 조심하셔야해요"

"알겠어 다프네, 걱정해줘서 고마워.

에밀리 이리오렴"






불현듯 떠오르는 사령관과의 기억

도망치고 싸우고 또 도망치고를 반복하다 겨우 찾아낸 피난처에서 피곤에 지쳐 잠깐 잠들었다가 계속된 통증에 깬 듯하다.

'.... 아파'
'사령관도 이렇게.. 아팠을..까..'

동료와 떨어졌다.

철충이 몰려온다.

자신은 다쳤다.

절망적이다.

"..제녹스..."
그녀의 반신이라 할 수 있는 제녹스만이 그녀의 옆을 지키고 있다.
"고마워..같이 있어줘서.."


'미안해..사령관..'
손바닥에 놓인, 부서진 반지를 꼭 감쌀 뿐이었다.








04

사령관 사령관

왜그러니

아스날이 가르쳐줬어
팡 팡 여기서 인..
왜그래?

에밀리, 아스날이 가르쳐준거 아무거나 따라하면 안돼요

? 알겠어.
근데 나 옷 답답해

다 벗지는 말고 외투만 벗자


근데 왜 다 벗으면 안돼?

...

응? 사령관?

감기, 감기걸려서 그래
옷 다벗고 자면 감기걸려

바이오로이드는 감기 안걸린대
사령관 그것도 몰라?

 ...








눈이 번쩍 뜨였다

'꿈이구나'

에밀리가 실종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온지 4일째다.

제아무리 오리진더스트로 강화된 신체라지만 정신까지 강화된것은 아니다.

아슬아슬하게 제정신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반대로 말하면 자칫잘못하면 쓰러져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기에, 사령관은 참모진의 판단하에 강제로 휴식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하다.
당장 에밀리를 구하러 가야한다.
그러나 구하러 갈 수가 없다.
아니, 구하러 가선 안된다.


철충 본대는 너무나 위협적이고,
자신 휘하 병력을 총 동원하더라도 오히려 피해를 입는건 이쪽이다.

에밀리의 연인으로서는 구하러 가야하지만

오르카의 총 사령관으로서는 에밀리라는 대원 한명의 목숨과 나머지 오르카호 대원의 목숨을 저울질 해야만 하는 것이다.



자신이 너무나 무력하다.

사랑하는 이가 위험한데, 정작 자신은 가장 안전한 장소에서 걱정만 할 뿐이라니

그 속에서 홀로 남겨진 에밀리는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 살아있다면 다치진 않았는지, 배는 안고픈지,




세력이 보다 컸더라면,
애초에 철충의 행동을 더 조심히 접근했더라면
만약 좀 더 일찍 작전을 수행했더라면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수 많은 가정과 수 많은 생각이 자신을 갉아먹는다


왜 철충이 돌아왔을까
분명 철충이 본거지를 비우는데 2주, 복귀하는데 2주의 주기가 있다. 이는 수개월간 관찰로 도출해낸 사실이다.
왜 왜 어째서 어째서 왜 왜 왜

아니다

지금 중요한건 '왜'가 아니다

'에밀리를 구해야한다'
지금 중요한건 그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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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착한 라붕이들은 영전을 미리미리 돌아둡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