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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다. 낯설면서도 낯설지 않은 천장이다. 그야, 그럴 것이 의무실이니까 그렇겠지. 내가 다치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아 하니까. 잠깐, 내가 왜 의무실에 있지? 손목에는 누군가 세게 붙잡은 흔적이 남아 있다. 그래, 가짜들. 사건은 종료된 건가?

 

바깥 상황에 귀 기울였다. 누군가가 걸어 다니는 소리가 종종 날 뿐, 조용한 상황 같이 느껴졌다. 마지막 기억을 떠올렸다. 아자젤이 나타나서, 가짜들에 충격을 줬다. 그렇다면, 그녀가 이 사건을 해결한 거라 생각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의무실을 나섰다. 아직, 조금은 통증이 남아 있지만, 그것보다도 사건이 어떻게 끝났는가를 알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 끔찍한 일에 관해서 조금 더 자세히 기록을 남겨둘 필요가 있다. 그런 의지로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예배소. 코헤이 교단과 그들의 행사를 위해 마련해둔 곳이니, 교단 관련자 중 누군가는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정갈한 걸음걸이 소리. 누구인가, ‘누구’인가. 중요한 문제다.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보려고 했으나,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는 또 어떨지 모르겠다. 거기엔 레모네이드 알파가 서 있었다.

 

“어디를 그렇게 가시는지요?”

평소라면 그녀의 질문에 웃음기 가득하게 대답해줄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녀의 질문도 의심스러웠다.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반응하겠지마는, 조금은 미안한 감정도 있었다.

“안색이 안 좋으시군요. 의무실이라도 가셔야 하는 게 아닌지요?”

그녀가 어느 쪽이든 간에, 곱게 넘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괜찮아. 필요한 일 있으면 따로 부를 테니까. 지금은 자리를 비켜 줄래?”

“그렇게 하죠.”

 

그렇게 알파를 보내고서 마저 힘든 걸음을 옮기고 나서야 예배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자젤은 그 안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었고, 그 옆으로 베로니카와 사라카엘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자젤.”

“어쩐 일이십니까, 구원자님.”

“어떻게 일이 마무리되었는지 듣고 싶어서.”

 

그녀의 모습에서 이상한 모습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그녀의 말은 내게 오한을 안겨 주기에 충분했다.

“…무슨 일 말입니까?”

베로니카와 사라카엘도 내 질문이 이상한 듯,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내가… 잘못된 거라고?

 

그다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다. 뭐가 어찌 된 일일까. 꿈이었나? 아니, 그렇다면 내 손에 있던 자국은 뭐가 되는가. 지금이 꿈인 건가? 아니면…

 

생각나는 시나리오는 다양했다. 사실, 무엇이든지 가능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더욱이 어떻게 되는 것인가에 관해서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는 그녀들의 표정이 걱정으로 바뀌었다. 말을 걸어오는 건, 베로니카였다.

 

“고민이 있으시다면 말해주세요. 언제든지 함께 기도드리겠습니다.”

그녀의 말은 너무도 따듯했다. 그래, 어쩌면 기나긴 악몽이었을지 모른다. 지금은, 조금은 쉬는 게 나나, 그녀들에게나 필요한 일이리라 생각하며 그녀에게 몸을 기댔다. 그녀들은 내 모습에 잠시 놀라는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받아들여 주었다. 그래, 좋은 게 좋은 것이겠지.

 

긴장을 놓았다.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진 것 같았다. 이런 내 머리를 베로니카가 쓰다듬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술래에게 잡혔으니, 게임 오버겠지요?”

 

욕이 나올 뻔했다. 아니, 욕이 나왔다. 상대를 자극하는 일을 만들 것 같아서 내뱉지는 않았지만, 속에서는 분명히 욕이 나왔다. 마치 컴퓨터가 재부팅을 하듯, 풀어져 있던 내 정신 상태도 돌아왔다. 그러나, 정신 상태가 돌아온다면, 어쩌겠는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괴물 같은 녀석들을 대체 어떻게 상대해야 한단 말인가. 빛을 다루는 아자젤이 있는 이 교단마저도 함락당했다는 것은, 빛이 약점이 아니었단 말인가? 약점을 극복했다는 말인가. 온갖 생각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어 왔다. 그리고는 굉장히 강한 무력감을 느꼈다.

 

“그런 거려나.”

의도치 않게 중의적인 의미의 문장을 만들어버렸다. 그 말을 들은 그녀는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되물었다.

“그럼,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구원자님?”

구원자라는 말에 미묘하게 비꼬는 태도가 들어가 있었다. 말마따나, 희망이 있을는지.

 

그렇지만, 쉽사리 끝날 운명 또한,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문 앞에 LRL의 모습이 보였고, 이윽고 강한 빛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아, 내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