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확인 광물을 캐기 위해 중파 에밀리를 중심으로 한 분대를 보내 철충들을 몰아내고 있던 어느날. 장비의 강화가 그렇게 원활하게 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사실상 철충들이 에밀리만큼은 건드려주지 않기만을 기도하면서 싸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블러디 팬서가 틈을 잠깐보인 사이 철충들의 탄환이 에밀리한테 쏟아졌고 나는 퇴각 명령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중파. 바이오로이드들의 신체능력을 극한으로 몰아넣어 그녀들에게 숨겨져 있는 힘을 끌어내는 방법. 멸망전에 기록된 수많은 대철충 전술 기록들을 보다보면, 이미 인류는 에밀리, 소완, 메이 등 다양한 바이오로이드들이 다친 상태에서도 출격시켜 다양한 승리를 거둔 바가 있었다.

하지만 이미 기진맥진한 바이오로이드들이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하면, 아예 전투불능이 되어 돌아오기 일쑤였다. 수복실은 구인류 생명공학의 정수를 담고있는 곳이기 때문에 바이오로이드들을 쌩쌩하게 회복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었지만, 그녀들을 다시 중파시키기 위해 오리진 더스트 증폭기를 장착시킨 뒤에 전선에 내보내서 시간을 때우는 행위는 안그래도 물자가 부족한 현 환경에서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에밀리 분대를 수복실로 보낸 뒤, 문득 한 생각이 났다.

“포츈.”

“우리 사령관~ 뭐부터 도와줄까?”

”오르카호 내에 중파실을 만들면 어떨까?”

옆에서 커피를 젓고 있던 콘스탄챠의 손길이 잠깐 멈추었다. 

“흠흠, 사령관~ 미안하지만 그건 안될거같거든~ 몇 달 전에 오르카호에 자재설비 시설 추가할 때 이미 오르카호 공간은 있는거 없는거 다 끌어온 상태거든~”

그렇다. 그 때도 바이오로이드들이 600명이나 타고 있는 오르카호 내에 자재설비 공장을 설치하려고 했을 때 수도 없이 검토를 했었다. 포츈이야 엔지니어 입장에서 보수적으로 설계해야한다고 강력주장했겠지만, 아르망도 ‘이거보다 더 공간을 만들 경우 잠수함이 아니라 잠수관이 될 것입니다 폐하’라고 예측을 할 정도였으니.

“그런가... 알았어”

콘스탄차의 티스푼이 다시 찻잔을 젓는 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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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주인님이 바이오로이드들을 배려하고 있지만, 구인류들은 그러지 못하였다. 그들에게 바이오로이드들은 또 생산하면 그만인 존재였다. 불굴의 마리 2호가 남겼던 기록을 보면 목발, 깁스, 붕대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링거를 꼽고도 철충과의 전투에 나선 바이오로이드들이 개체의 대부분이었다. 그것이 전투 때문이었으면 중파실 아이디어가 이렇게 두렵진 않았을 것이다. 그 멸망 직전의 순간에서도, 구 인류는 유흥을 잊지 못했다. 어차피 바이오로이드들을 중파해서 전장에 내보낼거면, 최대한 뽑아낼 때까지 뽑아내자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주인님은 금란이 처음 비밀의 방에 들어섰을 때 혼절한 이유를 아직 모른다. 아무리 페인트칠을 다시 하고, 향수를 새로 뿌리고, 기자재를 옮겨놔도 틈 사이사이에 배어든 그때의 그 기억까지 덮을 수는 없었다. 키르케가 사령관과 동침한 뒤에 악몽을 꾸며 일어났던 것도, 라비아타 언니 휘하에 모여있던 자매들 사이에선 그런 과거 때문에 그런 것 아니겠느냐는 괴담이 돌고 있다.

중파실 아이디어를 들었을 때, 나는 주인님 또한 구 인류와 별반 달라지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다행히 이번엔 포츈 언니가 적당히 무마했지만, 전장이 확대되어감에 따라 또다시 중파의 중요성이 대두될 때, 주인님은 어떤 결정을 내릴까? 그도,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를 그저 도구로 보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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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파실 추가해달라고 예전에 떡밥 돌았을때 '비밀의 방이 원래는 테마파크 C구역같은 역할을 하는 중파실'이었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썼는데 쓰다보니 이미 누가 창작물로 썼던 아이디어 같고, 또 필력도 딸리는게 느껴져서 씁쓸하다.

이런류의 개그 나 해야지 팬픽이란 참 어려운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