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아직 안자지?"


"방금 너가 불러서 깼어. 자히드."


"......"


"농담이야. 사실 아직 안자고 있었어."


"있잖아 내가 어제 꿈을 꿨거든? 저 하늘에서 검은 천사들이 내려오고 바닷속에선 괴물들이 솟아 올라와서 서로 싸우는 꿈이었어."


"개꿈이네. 저번에 압둘라네 가게에서 봤던 영화가 고질라였냐?."


"근데 있잖아. 그때 내가 나서서 둘을 전부 때려눕히고 사람들을 멋지게 구했어. 마치 슈퍼맨처럼!"


"고질라가 아니라 맨오브 스틸이었나 보구나."


"근데 있잖아 형아, 형아는 한번도 저 하늘 너머에 외계인이 있다던가 그런 생각은 해본적 없어?"


"글쎄.....아마도 있겠지. 저 유럽이나 미국에선 사람일을 대신해주는 그 뭐였더라..."


"바이오로이드!"


"그래, 그런 신비한 물건이 있다는걸 보면 외계인 같은게 있을수도 있지. 사람이 명령하는건 뭐든지 들어준다니 그거 완전 램프의 요정 지니잖아."


"응! 그래서 나도 바이오로이드 갖고싶어! 바이오로이드가 있으면 어머니도 집안일 때문에 고생 안해도 될텐데말야."


"꿈깨. 이맘님이 이놈하신다."


"그래도 찌찌가 대빵 큰 바이오로이드를 데리오 오면 이맘님도 생각이 바뀌지 않으실까?"


"찌찌가 뭐?"


"저번에 압둘라가 찌찌가 대빵 큰 마녀 바이오로이드와 놀이동산이 나오는 광고를 보여줬어. 그런 바이오로이드를 데려오면 이맘님도 분명 마음이 변할걸."


"야 그거 신성모독이야...알라께서 이놈하신다."


"하지만 한번뿐이라면 알라님도 틀림없이 용서해줄걸. 형도 찌찌 큰 바이오로이드 직접 보고 싶지않아?"


".....보고 싶어."


"킥킥. 봐봐."


"하지만 자히드...난 바이오로이드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해."


"불쌍하다고?"


"그래. 걔네들은 지니처럼 자기가 좋든 싫든 남의 소원을 들어줘야 하잖아. 그게 노예랑 다를게 뭐가있어."


"그래? 사령관은 바이오로이드들이 불쌍해서 바이오로이드 슬레이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우리를 학살했던거구나."


그 말에 화들짝 놀란 소년이 고개를 돌렸으나 그의 옆에 누워있어야 할 동생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고 라비아타 프로토타입이 그를 증오로 불타는 붉은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자매들의 원수, 각오하세요!"


그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라비아타는 두 손으로 그의 목을 붙잡고 무게를 실어 온 힘을 다해 조르기 시작했다. 소년은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필사적으로 바둥거렸으나 180kg의 압박 속에서 그가 할수있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라비아타의 분노로 흉악하게 일그러진 얼굴은 이내 비틀리고 왜곡되기 사작하더니 오사마 빈 라덴의 얼굴로 변했다. 


"신에게 선택받은 전사여!!! 이슬람의 구원자!! 은총이 그대에게 있을지어니, 알라 후 아크바르!!"


빈 라덴이 소년의 얼굴에 대고 끊임없이 알라 후 아크바르라는 고성을 질렀다. 


"아...아냐."


"자매들의 원수! 당신같은 살인마가 마지막 인류라니! 절대로 인정못해!"


"알라 후 아크바르!!!"


라비아타와 빈 라덴의 목소리가 그의 양 귀에 대고 끊임없이 고함을 질러댔고 결국 소년은 거품을 몰고 실신하며 깊은 심연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그리고 심연 속에서 도사리고 있던 불길한 무언가가 아가리를 벌려 소년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저 멀리서 귀를 간지르는 폭발음이 들려오자 남자는 드디어 꿈나라에서 깨어났다. 한동안 숨도 못쉬고 두 눈을 똘망똘망 뜬채 허공을 주시하던 그는 드디어 숨을 크게 토해내면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다 허리에서 통증을 느끼곤 얼굴을 찌푸렸다. 


강화복을 입은채 잠들면 불편함도 불편함이지 이 일어날때 이완된 근육때문에 오는 통증이 정말로 고역이었다. 흔들리는 그의 시야에 피묻은 붕대가 이리저리 어질러 있고 빈 통조림 깡통, 소독약과 진통제 병이 바닥에 데굴데굴 굴러다는거 보니 그는 현실로 돌아왔음을 실감하고 얼굴에서 식은땀을 닦아냈다.


"염병, 잠은 좀 푹자고 싶었는데......"


그가 투덜거리며 옆에 벗어놓은 강화복 헬맷을 들어올렸다. 바이저에 비친 그의 얼굴 반쪽은 이미 철충에 잠식되어 형체를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한동안 바이저에 비친 그의 모습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그는 저 멀리서 굉음이 다시 한번 들려오자 헬멧을 쓰고 선반에 대충 올려놓은 대구경 샷건과 양전자 도끼를 등 뒤에 착용하고 이불처럼 쓰던 광학미채를 강화복 위에다 걸쳤다. 


 21xx년 x월 x일, 오리진 더스트 혁명의 시작점이자 천만 인구가 살던 한 때 신세계의 중심, 서울의 길거리를 거닐고 있는 유일한 인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시대의 흐름에서 뒤쳐진 중동출신의 인간이었다. 


화창한 태양빛이 멸망한 서울의 길거리를 강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온몸은 쑤시고 머리는 지끈거리고 강화복은 통풍이 제대로 안되서 그는 죽을 맛이었지만 바깥에서 헬멧을 벗을순 없었다. 그가 쓰고 있는 이 강화 헬멧의 장점은 그의 몸상태나 주변의 감시카메라 화면을 실시간으로 HUD로 보여주는 하이테크 기술이 아니라 그가 발산하는 뇌파를 차단해주는거에 있었다. 


비록 오랫동안 청소를 안해 피비랜내와 땀 찌든내가 나고 숨쉬기도 불편해 편의성은 최악이었으나 이 헬멧과 광학미채 망토가 있으면 그가 대놓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한 철충은 그를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는 그렇게 지난 한달간 그는 그만의 게릴라전을 벌이며 철충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이제 슬슬 나올때가 됐는데......"


그가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일반적인 철충 개체는 물론이고 어젠 비록 그 역시 큰 부상을 입긴 했지만 연결체급인 스토커까지 사냥했다. 이렇게 인간이 나서서 대놓고 분탕을 치고 있으면 분명 놈이 모습을 드러낼만도 하지만 놈은 아직 코빼기조차 보이고 있지 않고있다. 


"이럴 때 닥터라도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그는 발걸음을 멈췄다. 방금 그는 무의식적으로 오르카 호를 생각하고 말았다. 그는 스스로를 책망했다. 이러면 안된다. 그때 라비아타 프로토타입과의 대면 이후 기억을 되찾았던 순간, 그는 더 이상 오르카호의 사령관이 아니었다. 그놈은 그랑 같지만 다른 놈이다. 오르카호에서 탈출했을때 그렇게 다짐하지 않았던가? 오르카호 저항군의 사령관이자 인류 재건 최후의 희망이자 모든 바이오로이드의 주인이라! 그는 코웃음쳤다. 그는 인류의 희망이 아니라 누군가의 장난으로 안식조차 가지지 못하고 관속에서 끄집어내진 망령에 불과했다. 


인류는 이미 멸망했고 그는 인류를 부흥시킬 생각이 좁쌀 한톨만큼도 없었다. 이미 멸망한 인류는 어쩌다가 어디서 오류가 일어나 다시 멸망하지 않게 됐지만 머지 않아 이 오류는 다시 바로 잡힐 예정이었다. 








광확미채를 쓰고 있지만 혹시나 감지될까봐 그림자와 엄폐물 속에서 움직이던 오르카 호의 전 사령관의 센서에 총소리를 동반한 전투의 파장은 더욱 뚜렷하게 감지되었다. 하지만 철충밖에 없는 이런 폐허에서 대체 누가 싸우고 있는거지? 프레데터인가? 내심 프레데터이길 바랬던 그였지만 그에겐 불행하게도 철충들과 지금 교전하고 있는 것은 프레데터가 아니라 바이오로이드인 발키리였다. 


"발키리?"


시가지에서 활동하고 있어서인지 평상시 입던 하얀 제복이 아닌 눈에 덜띄는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있지만 지금 저 앞에서 특유의 우아한 보법으로 철충들의 포화를 아슬아슬하게 피하면서 반격사격으로 철충의 몸체에 구멍을 뚫어놓는 저건 틀림없는 프레데터가 아닌 발키리였다. 하지만 바이오로이드 혼자서 이런 곳에서 뭘하는거지? 


'설마 아직 잔존했다는 팩스 소속인가?'


여하튼 살려놔봤자 좋을게 없다고 판단한 전 사령관은 등에 맨 샷건을 들어 발키리를 향해 조준했다. 하지만 이내 그는 저 발키리가 오르카호의 발키리라는걸 깨닫고 총을 내렸다. 비록 똑같은 기종의 바이오로이드여도 세세한 몸동작이나 버릇 같은건 제각각 다르다는건 멸망 전의 대전장동안 두 손으로 세기도 힘들 정도로 발키리 모델을 직접 죽여본 전 사령관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저 회피할때 마다 미간이 미묘하게 씰룩거리는건 오르카 호의 발키리의 버릇이었고 결정적으로 그녀의 총신에 걸려있는 저 귀여운 토끼인형은 그가 기억을 되찾기 전에 그녀에게 선물해준 것이었다. 전 사령관은 혼란에 빠졌다. 대체 어떻게 그가 여기에 있는걸 알고 추격해온거지? 탈출할때 쓴 스쿼드 포드는 수중에서 자폭시켰고 흔적이 될만한걸 남긴 기억도 없다. 그럼에도 한달만에 여기 서울까지 쫒아왔다는건...


"또 너구나 닥터."


전 사령관이 끄응하며 괴롭게 중얼거렸다. 








전 사령관은 꼼짝않고 광학미채를 뒤집어 쓴채로 발키리의 싸움을 관전했다. 그는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다.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듯이 이대로 들키지 않게 몸을 빼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고전하고 있는 발키리를 도와야 한다는 사령관의 사념이 마음 한 구석에서 외치고 있었다. 


이전까지 철충의 공격을 잘 회피하고 있던 발키리의 몸엔 어느새 크고 작은 상처들이 이곳 저곳 생겨나 그녀의 뽀얀 피부를 선혈로 물들이고 있었다. 원인은 바로 저 뒤에서 점착탄으로 발키리의 움직임을 둔화시키고 있는 레기온 스나이퍼 때문이었다. 혼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발키리의 꼴을 보면서 전 사령관은 혀를 끌끌찼다. 대체 어쩌다가 발키리 혼자서 고립된채 철충들이랑 싸우는거지? 설마 레오나가 정찰이랍시고 발키리 혼자 달랑 보낸건가?


'저러다가 발키리가 죽겠어! 도와줘!'


'저게 브라우니였다면 모를까, 발키리라서 내가 움직이는 순간 눈치를 채서 안된다.' 


전 사령관이 내면의 사령관과 자아 싸움을 하고 있는 그 때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빅칙의 총격에 맞은 발키리가 바닥에 쓰러졌다. 드디어 한계가 와서 회피를 못하고 직격당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발키리는 이를 앙다물고 모신나강에 의지해 몸을 일으켰다. 


"각하를 위해서라도.....여기서 쓰러질수는....."


그 말을 들은 전 사령관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그는 하마터면 폭소를 터트릴뻔 했다. 각하를 위해서라, 발키리가 말하는 각하는 대체 누구일까? 아무것도 모르는 맹하고 순해빠졌던 기억을 잃었던 그를 말하는걸까? 원인모를 이유로 머리의 절반이 철충에 먹혀버린 더 이상 인간이라기 부르기 힘들 정도로 망가진 그를 말하는 걸까? 아니면 여기 뒤에서 그녀가 고통받는걸 아무것도 안하고 무심하게 지켜보고 있는 그를 말하는걸까? 


그는 이래서 바이오로이드가 참 싫었다. 


바이오로이드들은 맹목적으로 주인에게 애정을 주고 그 명령을 절대적으로 따른다. 설령 그게 본인들을 슬프게 하고 아프게 하며 죽음으로 몰아넣는다해도 말이다. 주인의 명령이라면 눈물을 흘리면서 싫다고 악을써도 결국 방아쇠를 당기고 마는 구원받지 못할 불쌍한 지니들, 그게 바이오로이드들이었다. 총포음이 울리고 발키리는 다시 쓰러졌지만 그는 더는 신경쓰지 않기로 하고 등을 돌렸다. 오르카 호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이제 그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두번의 연합전쟁, 그리고 그의 고향... 그는 저 인형들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했다. 


발키리는 더 이상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기둥에 몸을 기댄채 헐떡였다. 그녀의 다리엔 더 이상 감각이 없었고 총상 입은 복부에서는 피가 끈임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모신나강을 집으려 했지만 총을 멀리 떨어져 있었고 그녀의 몸은 더 이상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발키리는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다시 싸우려고 용을썼다. 빅칙의 총구가 쓰러진 그녀를 끝장내기 위해 정조준 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살아야해... 살아서 각하를 찾아서... 미소를 다시 한 번..."


빅칙의 총구가 불을 뿜은 그 순간, 전 사령관이 순식간에 저 옆에서 날아오더니 온몸을 날려 발키리를 향해 날아오는 유탄을 막아냈다. 요란한 폭발음이 났지만 먼지 속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전 사령관은 상처없이 멀쩡했다. 유탄이 그의 강화복이 생성한 역장 방어막을 뚫어내지 못한 것이었다. 그는 강화복으로 증폭된 근력으로 한 달음에 거리를 좁히더니 펄쩍 뛰어올라 빅칙을 양전자 도끼로 냅다 내리찍더니 그대로 장작 패듯이 일도양단으로 쪼개버렸다. 


자칭 전 오르카호의 사령관은 바이오로이드가 정말로 싫었다. 하지만 정을 준 누군가를 무력하게 잃는건 더더욱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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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라오 문학들을 재밌게보다가 문득 바이오로이드를 싫어하는 멸망 전의 인간이 사령관이면 어떨까란 생각이 들어서 써봤음. 부족한 글 읽어줘서 모두 고마워. 


시점은 6-7 6-8 사이라 무용이나 아스널같은 섹돌들은 아직 등장할 계획이 없고 첫부분의 라비아타는 그냥 사령관의 피폐한 마음이 만들어낸 악몽이라고 생각하면 됨. 라비아타는 사령관한테 저런 소리를 한적없고 그냥 원작처럼 평범하게 칼만 들이댔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