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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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너희 마을의 바이오로이드들에게 걸린 세뇌를 푸는 걸 도와달라는 건가?”


1318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흰 날개의 바이오로이드, 스노우 페더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1318은 사령관에게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


“어떻게 생각하지, 인간? 난 나쁜 거래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거래라고요?”


알프레드의 말에, 1318은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당연히 거래지, 우리가 너희에게 마냥 대가 없는 호의를 베풀어줄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나?”


“그렇지만-“


“대가 없는 호의는 호구짓일 뿐이다. 하지만 어차피 결정권은 내게 있지 않고 인간에게 있지. 그러니 말해봐라, 인간. 저들을 도와줄 건가?”


조금 전부터 스노우페더의 말을 듣고서 고민하던 사령관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고, 그것을 보며 1318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럼 얻어낼 건 확실히 얻어내도록. 난 가 보도록 하지.”


“잠깐만, 그 전에 물어볼 게 있어.”


“그 시설의 정보라도 달라는 건가?”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맞춘 1318을 보며 사령관은 내심 놀랐으나, 그것을 표정에 나타내지는 않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지하 7층까지 있는 복층 시설이고, 로버트와 나의 첫 전투로 인해 7층-6층은 대부분 무너진 상태일 거다. 그로 인해 7층에 존재하던 데이터 센터는 그 

잔해에 완전히 깔려 있지. 예비 데이터 센터가 4층에 있는 건 확인했지만 자세한 건 모른다. 그리고 저기 알프레드의 말에 따르면 그 시설 전체가 로버트의 두뇌나 마찬가지라고 하니, 그 안으로 들어가는 건 딱히 추천하고 싶지 않군. 그리고 더해서 내 예상이긴 하지만, 로버트가 자기 휘하의 AGS들을 불러모아 경비를 강화했을 거다. 정면돌파하려면 큰 병력 손실이 있을 거야.”


“…하나만 더 물어보자. 그때, 마을에서 탈출할 때 괴전파를 느꼈다고 말했었지? 마을의 바이오로이드들의 귀에 달린 귀걸이가 그걸 수신하고 있다고도 했고.”


1318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혹시 그 시설에서 바이오로이드들을 세뇌하는 괴전파가 어디서 나오는지도 알고 있어?”


“로버트의 본체에서 괴전파가 강하게 발산되는 것을 보면 아마 로버트가 그 주체일 것 같더군. 확실하진 않은 추측일 뿐이니 그것은 감안하고 받아들이도록.”


“알았어, 그럼 한 가지만 더. 로버트 본체의 전투력은 어느 정도야?”


“타이런트처럼 특출나게 강한 편은 아니다. 아마 로크보다는 강할 것 같군. 전투방식은 불굴의 마리가 주시자의 눈을 사용해 올레인지 공격을 하는 것과 비슷하지만 거기에 육탄공격이 추가되었다고 보면 될 거다. 하지만 장갑 재질은 의외로 연약한 것 같더군.”


“알려줘서 고마워.”


“질문이 끝났으면 이만 가 봐도 될까? 바쁜 와중에 불려왔으니 말이지.”


사령관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것을 본 1318은 인사 없이 사령관실을 나섰다.


“…저 AGS는 딱히 당신을 섬기고 있는 것 같지는 않군요.”


“맞아, 비즈니스적인 관계에 가깝지.”


알프레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사령관은 말했다.


“비즈니스적인 것 치고는 꽤나 비협조적이군요.”


“저러면서도 필요할 때는 항상 협력해주니까. 애초에 저 녀석은 마지막 인간인 나를 관찰하기 위해 오르카 호에 오른 거야. 그 대가로 내게 협력하고 있는 거지.”


“…딱히 좋게 들리진 않는군요. 로버트도 인간을 자신의 위에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로버트와 저 AI는 닮아 있어요.”


그에게서 로버트의 편린이 느껴진다고 생각하며, 알프레드는 말을 이었다.


“뭐, 강제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점에서 조금이나마 낫긴 합니다. 오만한 태도는 로버트와 정말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지만 말입니다.”


“그래, 그나저나 그 로버트란 AI 말인데, 왜 날 노리는 거야?”


“로버트는 인류를 부활시키기 위해 일종의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을 세뇌한 것도 그 실험의 일환이죠…”


 


 


한편, 사령관실을 나선 1318은 격납고가 아닌 닥터의 연구실로 향했다.


“닥터, 여기 있…없군.”


연구실 안으로 발을 옮긴 1318은 닥터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 연구실 안을 둘러보았다.


실험대 위에 올려져 있는 자신의 멀쩡한 초기형 1세대 신체를 보며, 1318은 감회에 젖었다.


이 몸체를 만들어낼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던지.


첫 번째 신체 이후로도 거듭된 개선으로 현재는 4세대의 신체까지의 설계를 마친 1318이었지만, 단 한 가지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다면 신체의 머리 부분이었다.


인간의 수많은 표정을 최대한 정확히 구현할 수 있도록 수천 개의 미세 부품들이 들어간, 어쩌면 그의 신체에서 가장 정교하게 만들어진 부분이었다. 표정을 구현하고 싶은 것이었다면 인공 근육을 사용해 바이오로이드와 흡사한 구조를 갖추면, 아니, 사실 인간을 닮고 싶었다면 바이오로이드의 신체를 모방해 자신의 신체를 만들었다면 간단할 일이었지만, 1318은 그러지 않았다.


한정되어 있던 자재를 낭비할 수는 없었기에 머릿속으로 수백, 수천 번의 수정을 가하며 설계도를 완성해냈고, 그 결과는 실로 낭비스러우나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창조주인 인간을 닮고 싶었으나 동시에 데이터로서 알고 있는 인간들의 자기파괴적 행위에 대해 본능적인 혐오감을 느끼고 있던 1318의 모순적인 생각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로버트는 인간을 재부흥시키길 원했지. 그래서 온갖 실험을 자행했고. 멍청하긴. 인간들은 진화할 기회를 전부 소진하고 스스로 멸망한 것에 불과해. 자신들이 자연을 정복했다 생각했다 결국 자연스럽게 도태된 오만한 생물들일 뿐이지.


1318은 로버트를 속으로 비웃었다.


오르카에 온 후 얻은 정보로 수천 번의 시뮬레이션을 돌린 결과, 1318은 만약 인류가 두 번의 기업전쟁에 걸쳐 그 힘을 소진하지 않았다면 철충의 침입을 막아낼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인류가 멸망 전의 타락한 상태였고, 휩노스 병이 퍼지고 있는 상태에서 멸망 전쟁이 일어났다고 가정해보아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인류는 수많은 대가를 치른다고 해도 침공을 견뎌내고 승리했다.


인류는 자신들이 수천 년에 걸쳐 쌓아올린 결과들을 스스로 깎아내고 부식시킨 끝에, 외계로부터의 침공과 전염병이라는 이중고를 이겨내지 못하고 멸망했을 뿐이었다. 


그런 결과들은 1318의 인류 혐오에 쐐기를 박는 결론이었다.


인간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간을 소모하며 헛된 역사를 되풀이했고, 어차피 철충의 침입이 없었어도 자멸할 운명이었다. 철충의 침입은 그저 멸망의 방아쇠를 조금 더 빠르게 당긴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1318은 인류가 멸망을 딛고서 다시 부흥하다 해도 그 역사를 되풀이할 확률이 79% 이상이라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그런 계산을 하면서도 그가 사령관과 바이오로이드들을 관찰하며 협력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1318은 내심 자신의 예상이 빗나가기를 원하고 있었다.


 


1318번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중에, 그의 등 뒤에서는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곳에는 닥터가 낑낑대며 커다란 수레를 끌고 오고 있었고, 1318번은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가 수레를 끄는 것을 도와주었다.


“뭘 가지고 왔길래…”


1318번은 수레에 실려 있는 자신의 4세대 양산기와 증설 장갑을 보고서 말을 멈췄다.


“이걸로 뭘 하려고?”


“뭘 하긴, 이걸로 저걸 개조할 생각이야.”


닥터는 실험대 위의 1세대 신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굳이? 왜?”


“이걸 실험해보려고.”


닥터는 주머니에서 사이코 프레임을 꺼내며 말했다.


“이걸 당장 로버트처럼 주변 기기를 조종하는 식으로 쓸 수는 없을 거야. 하지만…”


그대로 1318의 1세대 신체로 성큼성큼 걸어간 그녀는 정수리 부분의 덮개를 열어 1318의 컴퓨터 칩을 꺼냈고, 그 자리에 사이코 프레임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이게 크기가…AGS 로보테크 메인보드의 고용규격이랑 크기가 비슷하더라고. 그리고 이건 일반적인 고성능 메인보드보다도 집적도가 높아.”


“그건 즉 정보처리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말이겠지. 하지만 더 좋아져봤자 1세대 신체로는 그 처리 속도를 못 따라갈 텐데…아.”


그제서야 닥터가 4세대 양산기를 가져온 이유를 알아챈 1318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레에 실려 있던 자신의 양산기를 들어 옆의 실험대에 올려놓았다.


“필요한 부품은 뭐가 있지? 어차피 구동계는 전부 비슷하니 바꿔도 상관은 없을 거고.”


“관절부랑 중추 계통부터 바꾸자. 분리할 수 있지?”


고개를 끄덕이며, 1318은 자신의 양산기를 분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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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1318-04]


AI 1318의 4세대 신체. 신체 설계가 세대를 거듭할수록 형식번호 뒤의 개체번호가 늘어난다.


블랙 리버 인공지능 1318번 (Black River Artificial Intelligence No.1318)-4세대 신체


형식번호
BR-1318-04


제작
블랙리버 인공지능 1318번


개발
AD.2xxx


롤아웃
AD.2xxx


전고
2.7m


중량
본체 중량 357kg


장갑재
루나 티탸늄-5


동력원
초소형 축퇴로


출력
1Gw(기가와트)*


추진력
기본 15t~∞(반중력 장치를 최대출력으로 가동 시 대기권 탈출 가능)


기타 장비
시각 센서 (최대 탐지범위 2,000m)


반중력 장치x4(양 발바닥, 손등에 하나씩 장착)


리펄서 추진기x6(양 발바닥, 손목, 등에 한 쌍씩 장착)


무장
두부 대형 플라즈마 발사관x1


완부 열선 조사 장치 x10(손가락마다 장착)


추가 증설 장갑 시리즈(AP-01~05)




*1기가와트는 대략 원자력 발전소의 원자로 1기가 생산해내는 전력량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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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은 좀 짧네. 다음엔 좀 더 많이 써 올게.


오늘도 부족한 글 읽어줘서 고마워, 라붕이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