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잖아요, 사령관님께 반지를 받은 게.






 페어리 시리즈 중에서는 처음 받지를 받는 거라 모두 좋아했어요. 아, 페어리 시리즈라는 건 저와 저희 언니들을 말하는 거예요. 정원을 가꾸고, 재배하고, 리제 언니의 말처럼 해충을 구제하기도 하죠.

 사실 정원에서 있다 보면 사령관님하고 만날 기회가 별로 없으니까 지금까지 반지를 받았던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반지를 받았을 때 모두 기뻐했어요. 레아 언니도, 아쿠아도 드디어 페어리 시리즈 안에서도 사령관님의 아내가 생기는구나, 하고. 저는 그런 기쁨을 받아본 적이 별로 없어서 멋쩍게 그냥 웃기만 했지만요.


 행복한 일이죠, 축하할 일이죠. 제 동생인 아쿠아가 부럽다는 눈으로 다리에 안겼었는데, 그런 눈빛을 받았을 때가 언제였는지 몰라요. 저는 복원 개체니까 아마 평생 없었을지도 모르고요.

 그런데 있잖아요, 사령관님께 반지를 받은 게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니더라구요.


 알죠, 자기 눈엔 보이지 않는데 시선이 느껴지는 느낌. 어디를 가도 항상 누군가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 들고, 소중한 반지를 뺏길 것 같아 두근거리는 느낌. 분명 제가 있는 곳은 페어리 시리즈의 정원 안인데, 평소와는 달리 유난히 불안한 느낌 말이에요.

 저만 불안해 했던 건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마침 저는 반지 외에 이런저런 생각으로 최근에 유독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래, 예를 들어 리제 언니 말이예요. 사령관님의 반지인데 얌전히 계실 리가 없죠.


 아, 제가 반지 이야기를 안 했었나요?

 반지는 예쁜 금속으로 만든 반지인데, 황금 색깔로 반짝거려요. 저는 광물에는 자신이 없어서 이게 진짜 황금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진짜같아요. 중요한 건 물질이 아니라 마음이죠. 반지를 받았다는 건 사령관님의 특별한 베필이 됐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아내말이에요, 아내.

 결혼이라고 할 수 있죠. 물론 우리 페어리 시리즈는 충실한 정원사니까 사령관님의 아내가 되었다고 해서 맡은 바 임무를 소흘히 하지는 않을거예요. 그게 사령관님이 원하시는 거기도 하니까요.

 반지 위에는 보석이 박혀 있는데 무슨 보석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어요. 꽃이나 나무의 이름이라면 잘 알텐데. 레아 언니라면 알고 있을까요?


 반지를 받아서 그런지 사령관실에 들리는 일이 잦아졌어요. 너무 잦은 호출은 임무에 방해가 되지만, 사령관님과의 사생활은 누구도 방해할 수 없죠. 그런 규칙이 암암리에 퍼져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좋다고 생각 안 해요, 임무는 임무. 개인정비 시간은 개인정비만. 사령관님은 제 충실하고 똑 부러진 모습을 좋아하실 거예요. 저도 나쁜 아이가 되기는 싫거든요.


 하지만 최근, 사령관실 앞에만 가면 자꾸 머뭇거리게 되요.

 반지 때문일까요?


 반지 생각이 나고, 그 다음은... 페어리 시리즈 언니와 동생들이 생각이 나요.



 괴로워요.


 답답하고 가슴이 갑갑해서 미쳐버릴 것 같아요.

 숨도 잘 안 쉬어지고, 특히나 리제 언니. 그래 리제 언니요. 리제 언니가 반지를 받은 이후부터 저를 괴롭히고 있어요.

 아, 리제 언니가 뭔가를 잘못한 건 아니에요.


 그냥 리제 언니를 만날 때마다 보이는 왼손 약지의 반짝거리는 반지가.


 반지가 저를 괴롭게 하고 있어요.

 레아 언니도 리제 언니가 페어리 시리즈 중 처음으로 반지를 받게 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하셨나 봐요. 그래서 그런지 우리들 중 그 누구보다 축하해 주셨어요.

 아쿠아는 제 다리에 달라붙어선 리제 언니를 부럽다는 듯이 쳐다봤구요.

 저는 어쩔 수 없이 리제언니 앞에서 축하해 주는 척 했어요.


 리제 언니가 반지를 받았다구요.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려왔어요. 손톱으로 피가 나게 긁어도 시원해지지 않았어요. 정원에서 리제 언니를 만날 때마다, 언니의 왼손 약지에 걸려 있는 반지를 볼 때마다 저도 모르게 마음이 너무 아파 와서...


 사령관님께서는 제가 착한 아이로 남아있는 걸 원하실텐데. 나쁜 짓을 해 버렸어요.


 어쩔 수 없잖아요. 사령관실 안에서 리제 언니의 목소리가 들렸는걸요. 그것 때문에 사령관실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어요. 제 마음을 아시겠나요? 리제 언니와 사령관님이 단 둘이 사령관실 안에 있었다구요. 제가 그 앞에서 발걸음이 얼어붙는 게 그렇게 이상한가요?


 그래서, 리제 언니를 볼 때마다 너무 갑갑해져서...

 리제 언니가 페어리 시리즈 중 사령관님의 첫 번째 부인이라는 게 마음이 아려와서...

 뺐었어요.


 자, 보세요. 예쁘지 않아요? 리제 언니의 손가락에서 잘라 낸 반지예요. 이것만 있으면 저도 사령관님의 아내가 될 수 있어요.


 리제 언니도 참, 손가락을 자를 때 그렇게 소리를 지르시던지. 그래서 아마 오르카 호 안에 리제 언니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을거예요. 빽 빽 소리만 질러 대니까.

 리제 언니를 향해 타 준 차에 의료용 수면제를 섞어 놓았구요, 제가 일하는 의무실 안에서 리제 언니의 손가락을 잘랐어요. 마침 리제 언니는 거대한 가위를 들고 다니잖아요.

 철충도 자르는데, 리제 언니의 손가락을 자르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죠.


 그러다가 리제 언니가 깨어났는데 글쎄, 지랄 발광을 하는 거예요. 시끄럽게. 그래서 다른 손가락도 잘라 버렸어요. 리제 언니의 목소리가 그렇게 큰지 처음 알았어요. 하지만 그렇게 기분 나쁘지만은 않았어요. 저에겐 이제 사령관님이 주신 반지가 있었거든요. 제가 반지가 얼마나 예쁜지 아까 말씀드렸죠?


 그러다가 문득, 리제 언니를 이대로 내버려 두는 것도 안쓰럽다고 생각해서 제 마이크로봇으로 리제 언니를 부식시켰어요. 사람을 태울 때 나는 냄새는 생각보다 지독했어요.


 리제 언니도 갈 때는 얼마나 추하던지. 저를 저주하면서 얼굴이 부식되어 문드러지는데... 어휴, 누가 리제 언니 아니랄까 봐요. 피부가 늘어지고 근육이 다 드러나는데도 저를 욕하는 거예요. 저도 더 이상 듣기는 시끄러워서 의료용 수면제로 다시 재워 버렸지 뭐예요.


 리제 언니를 다 부식시키고 나니까 사람을 녹여서 뭉친 듯한 기분나쁜 덩어리가 하나 나왔어요. 정말 건드리기도 싫었지만 제게 사령관님의 반지를 가져다 준 장본이니까 신경 써서 오르카 호 폐기함에다가 버렸죠. 미끌거리고 악취나서, 어떻게 이런 게 사령관님께 반지를 받았는지 의문이었다니까요?


 반지는 이제 제 손에 있어요. 보이시죠? 사령관님이 주신 반지예요. 우린 이제 부부라는 뜻이죠.


 아, 혹시 저 말고 리제 언니 찾으셨던 거예요?

 이제 없어요.

 사령관님이랑 결혼했던 상대는 저인데, 혹시 착각하신 것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