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2편


"내가 죽을 줄 알고 있었을텐데 의외로 별로 놀란거 같지가 않네?" 


"이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서 목없는 시체가 다시 걸어다니는게 그렇게 놀랄일인가? 게다가 나도 피차일반 마찬가지인데."


애써 침착을 되찾은 사령관이 퉁명스럽게 대꾸하자 에바 프로토타입은 쿡쿡 웃었다. 


"그 툴툴거리는 모습을 보니 정말로 기억을 완전히 되찾은 모양이네. 그래서 세상에 다시 돌아오니까 기분은 좀 어때? 


"정말로 개좆같다. 에바 프로토타입. 네 짓인가? 네가 죽었던 나를 다시 현세로 불러온건가?"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할까...일단 내가 알기로 당신은 애초에 죽은적이 없었어."


"...설명해라."


"서울에서 당신이 부대를 이끌고 시간을 끌고 있었던 그 전투 기억해? 마지막 순간 당신의 동료들이 당신을 감쌌나봐. 그래서 우리가 현장에 도착했을때 당신은 그곳의 유일한 생존자였어. 그래서 우린 정신을 잃은 당신을 회수하고 안전지대로 이동했지만 당신은 너무 심한 상처를 입어서 깨어나지 못했지. 그래서 아미나는 임시 방편으로 당신을 동면시켜서 어딘가에 두었지."


에바 프로토타입은 말을 계속 이었다. 


"근데 참 이상하단 말야. 당신은 가사상태에 있었고 휩노스 병에 걸려 있었기 때문에 당신이 현재까지 살아있는건 절대로 있을 수 있는 일이야. 내가 남긴 기록을 봐서 알겠지만 휩노스병 때문에 난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야 할 지경이었어. 하지만 당신은 멀쩡하게 살아있지. 철충 변이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걸 봐선 휩노스병 면역체계가 확실하게 이식되있고 말야. 내가 존재를 인지하지 못한 휩노스 병에 면역인 인간이 멸망 전에 진즉에 죽어야 했던 구시대의 인류라니...오히려 당신이 나한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해줘야 할거같은데?"


"묻지마라. 난 모른다." 그게 솔직하게 대답했다.


"보나마나 아미나가 뒤에서 수작질을 부린게 분명하지. 그 암캐는 나를 완전히 신용하지 않았고 항상 당신에 대해 좋게 생각했으니까 말야. 어쨌든 덕분에 최악의 상황만은 피했고 인류를 재건하는데엔 당신이 더 적임자일수도 있어. 차라리 잘된거야."


"난 인류를 재건할 생각이 없다. 그리고 내 꼴을 보면 모르겠나? 난 죽어가고 있다."


"아, 철충 변이. 그건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있어. 그래서 내가 지금 당신한테 연락한거고 말야. 당신이 얌전히 오르카 호에 있어줬으면 일이 좀 편해졌지만 당신은 바이오로이드를 싫어하니까 그건 어쩔 수 없지."


"치료법이 있든 없든 난 관심없다. 인류는 이미 멸망했다 에바. 인간이 쌓아온 업보가 결국 신의 분노를 불러왔고 너 나 우리 모두는 심판 받았다. 심판 받은 인류를 재건하는건 신의 섭리를 거스르는거다."


"당신 무신론자잖아. 이제와서 신의 심판 운운하지 말라고."


"처음부터 부질없는 짓이었다. 어쩌면 네 멍청한 남편이...미안하다. 내 말이 심했다. 사과하겠다."


에바가 급정색을 하며 그를 쏘아보자 사령관은 얼른 그녀에게 사과했다.  


"그래 당연히 사과해야지...아무리 최후의 인간이어도 내 애덤을 욕하는건 절대로 못 참으니까 말야. 그건 그렇고 정말 인류 재건을 포기할거야? 오르카 호는 어쩔거고? 


"난 사령관 관뒀다."


"하지만 그녀들은 여전히 당신을 그들의 주인이자 오르카 호의 사령관이라고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걸. 그러니까 어떻게든 당신의 위치를 추적해서 여기까지 온거고."


사령관은 잠시 오르카 호에 있었던 짧은 한 때를 회상했다. 예전의 기억을 되찾았지만 오르카 호에 있었던 기억이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때는 그의 피로 얼룩진 인생에서 진짜로 몇 안되는, 진심으로 즐겁고 안심이 된다고 느꼈던 때였다. 하지만 그랬기에 그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너희들은 어째서 인간에 그렇게 집착하는거지?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너희들이 자유로워 질 수있는 가장 좋은 기회 아닌가? 인류가 재건되봤자 역사는 반복될 뿐이고 너희는 다시 불행해질거다."


"인간을 위해 봉사하는 것, 그게 우리의 존재의의니까."









사령관은 중동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이슬람 세계의 구세주라고 불렸단 그였지만 그는 이미 신에 대한 믿음을 버린지 오래였다. 두 번 다시 고향에서 있었던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그리고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싸웠고 사람들을 단결시키기 위해 그토록 싫어하던 종교를 이용했다. 그렇기에 그는 오직 신에 대한 믿음 하나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내놓는 그의 부하들을 보며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동포들을 지키기 위해서 총대를 잡았지만 동포들의 목숨을 총알마냥 소모품으로 취급해야했고 지하디스트 한 명 한 명이 알라후 아크바르를 외치며 기쁘게 순교할때마다 죄의식에 사로잡힌 그는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괴로워했다. 그리고 앙헬 리오보로스가 예견한대로 블랙 리버와의 전쟁이 끝나자마자 가치관의 차이로 인해 구국 이슬람 혁명 전선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할때 그는 그가 실패했다는 것을 깨닫고 절망했다. 



심신이 지친 그는 모든것을 내려놓고 쉬고 싶었지만 이제와서 멈추기엔 그가 쌓아온 해골탑은 너무나도 높았고 살아남은 자들은 그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종교적 견해차이로 인해 그에게서 돌아선 동지들도 있었지만 아직 그를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는 결국 이슬람의 수호자이자 알라의 검을 연기하는걸 그만둘 수가 없었다. 그는 그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을 위해 뒤쳐질대로 뒤쳐진 이슬람 세계를 혁신시키고 부흥시키는데 남은 여생을 전부 바치는게 속죄의 길이라고 결론짓고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물론 그의 이런 노력도 심판의 날이 옴에따라 전부 부질없는 것이 되버렸지만 말이다. 


'똑같아.' 그는 생각했다. 지하디스트는 그를 외면하는 신을 위해서, 그리고 바이오로이드는 그를 외면하는 주인을 위해서 맹목적으로 충성하고 스스로 목숨을 내던졌다. 72명의 처녀들이 기다리는 천국 같은 입발린 개소리따위 그는 믿지 않았다. 신은 어째서 그의 충실한 신도를 그들이 살아있을 때가 아니라 죽어서야 구원을 한단 말인가? 그리고 그의 고향을 불태운 T-1 고블린, 그렇게 몸과 마음을 다 바쳐오며 인간에게 봉사했지만 그들의 창조주는 그들이 쓸모가 없다고 판단했고 그들의 충성심을 존재의 말살로 답해줬다.



오르카 호를 이끌어 철충들을 무찌르고 인류를 재건한다? 예전이랑 하나도 다를거 없는 개짓거리였다. 그리고 인류가 재건되면 이 개짓거리는 설령 그가 드디어 안식을 맞이한다 하더라도 다른 누군가에 의해 영원히 반복될 거였다. 그는 이 개짓거리를 두 번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인간 없이 살수없다면 앞으로 인간없이 사는 방법을 배워라. 철충들은 바이오로이드를 노리지 않으니 무기를 버리고 어디서 농사라도 짓던가 하면서 너희들 멋대로 살아라. 너흰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그것또한 너네들의 운명이겠지."


에바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 사령관의 마음을 뒤집을수 없음을 깨닫고 설득하는걸 깔끔하게 포기했다. 


"삶에 미련이 없는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는 마지막까지 함께했던 동료들의 뒤를 따르기 위해서야 안 그래?"


"그리고 그 천사와 결판을 내기 위해서지."


그가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어쩌면 버틸 수 있다고 일말의 희망을 잠깐 품었던 그 순간 저 하늘에서 강림해 순식간에 그와 그의 동료들을 찢어 발긴 강철의 천사를...그때 그는 그 강철의 천사를 보면서 사령관은 어쩌면 철충은 진짜 신이 보낸 사자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답지 않게 앞뒤 안가리고 무대뽀로 돌격한거였지만. 


"그럼 당신에게 좌표롤 송신해줄게. 비록 당신이 말하는 그 천사를 다시 볼수있을지 확답은 못해주겠지만 적어도 서울 외곽을 뱅뱅 맴돌면서 잡졸들한테 화풀이를 하는것보단 확실히 나을거야. 이제 내가 당신한테 해줄수 있는건 여기까지야. 그럼 무운을 빌게."


"아직 하나가 더 남았어. 에바, 혹시 오르카 호와 연락이 가능해?"


"가능해."


"정말 다행이야. 그럼 오르카호와 연락해서 빨리 여기서 도망치라고 그래라. 그 천사가 다시 낮짝을 보이던가 아니면 내 최후의 순간이 다가오거나 어느 쪽이든 간에 그 때가 오면 난 마크 8 파워슈트의 동력원을 자폭시킬거다."


핵전지로 구동하는 강화복의 동력원을 자폭시킨다는건 서울 한복판에서 소형 핵폭탄을 터트리겠다는거와 다름없는 소리였다. 


"당신이 직접하지 그래? 저항군은 아직 당신을 그들의 주인이자 사령관으로 인식하고 있어서 당신의 명령은 무조건 따를수밖에 없어. 설령 그게 당신을 버리라는 명령이어도 말야."


사령관은 대답하지 않고 침묵했다. 


"그들을 다시 만날 자신이 없나 보구나. 그들이 어떤 반응이 무서워서 그런거야 안 그래? 비겁한 겁쟁이."


"...부탁할게."


"지금 당신 부탁이라고 그런거지? 후훗 알겠어. 최후의 인간님의 부탁을 내가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어. 오르카 호는 나한테 맡겨. 그럼 이만 통신 끊을게."


에바와의 통신이 끊어지자 힘이 빠진 사령관은 자리에 주저 앉았다. 전혀 생각치도 못한 인물이 전혀 생각치도 못한 방식으로 접촉해와서 그런가, 그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에바의 말대로 그는 겁쟁이었다. 그가 오르카 호에 모습을 드러내서 명령 한 마디만 하면 모든게 끝날 문제였다. 하지만 오르카 호의 사령관이었던 기억 때문에 그는 절대로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콘스탄챠를, LRL을, 포츈을, 에이미를, 미호를, 발키리를, 블랙 리리스를, 페로를 그리고 하치코를 차례로 떠올렸다. 그에게 다정했던 그들에게 그를 버리란 명령을 차마 면전에대고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이미 이전에 자신의 의지에 반대되는 행동을 명령으로 강요받는 바이오로이드를 많이 봤고 그런걸 다시 직접 보고 싶지 않았다. 



삐빅 하는 소리와 함께 에바 프로토타입이 보내준다던 좌표가 도착했다. 좌표의 위치를 확인한 사령관은 인상을 찌푸렸다. 에바가 보내준 위치는 여의도에 있는 김지석의 저택이었다. 







부족한 글 읽어줘서 감사하고 다음 화 즈음부터 전개가 좀 빠르게 진행될거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