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arca.live/b/lastorigin/21858258 1화


 “저희와 함께 오르카호로 가주세요.”

 

 콘스탄챠의 말에 남자는 답하지 않았다. 남자는 빈 컵에 물을 한 번 더 채운 후 한 번에 컵을 비웠고 컵을 탁자에 내려놓은 후에야 몸을 돌려 콘스탄챠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봐라.” 

 

 콘스탄챠는 남자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천천히 설명해주었다. 지난 수십 년간 있었던 수많은 일들을 짧은 시간 안에 완전히 설명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콘스탄챠는 가장 중요한 핵심들만 골라서 최대한 친절하게 남자에게 말해주었다. 남자는 콘스탄챠의 말에 관심을 두지 않을 척을 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10분의 시간이 흐르고 콘스탄챠는 남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말들은 전부 전했다. 남자는 콘스탄챠의 말 중 쓸데없는 말은 한 쪽 귀로 흘렸지만 결론은 이해했다.

 

 “그러니까 인류가 멸망한 후에 바이오로이드들이 하나 모여 저항군을 결성했고.”

 

 “예.”

 

 “그 저항군의 기지가 오르카호라는 거대한 잠수함이고.”

 

 “그렇습니다.”

 

 “너와 저 녀석은 인간을 수색하는 ‘21 스쿼드’의 일원으로서 오늘도 인간을 수색하다가 철충들에게 포위되었는데 그걸 정말 우연히 인간인 내가 구해주었고.”

 

 “맞습니다.”

 

 “인간인 내가 오르카호의 최고 사령관이 돼서 너희들과 함께 철충들에게 맞서 싸워달라 이 말인가?”

 

 “예....”

 

 남자는 콘스탄챠의 말에 콧방귀를 뀌면서 고개를 가로로 여러 번 저었다. 진중한 분위기를 풍기는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은 실없는 조소를 얼굴에 띄우며 남자는 콘스탄챠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반응에 콘스탄챠는 당황했다. 남자는 콘스탄챠의 말에 일말의 관심도 가지지 않고 몸을 돌려 콘스탄챠에게 등을 졌다.

 

 “인류의 재건...그런 하찮은 것 때문에 지난 수십 년간 인간을 찾았다니...결국 너희들은 인간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인형에 불과하구나.”

 

 남자는 조소하며 등을 돌린 채로 콘스탄챠에게 말했다.

 

 “난 인류의 재건에 관심 없다. 네가 만약에 멸망전의 인류를 그 두 눈으로 봤다면 오히려 지금이 더 살기 좋다는 생각마저 들거다.”

 

 남자는 문뜩 멸망전의 세상이 기억해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무대처럼 너무나도 다른 세상이 한 세상에 공존했었던 지옥, 한쪽은 끝없이 고통 받고 다른 한 쪽은 고통 받는 사람들의 증오와 슬픔을 양분으로 삼았던 세상. 다시는 떠올리기 싫었던 기억의 파편을 기억해낸 남자는 손에 피가 날 만큼 세게 주먹을 쥐었다. 깊숙한 곳에 묻어두었던 기억을 강제로 떠올리게 만든 저 ‘콘스탄챠 S2’ 라는 이름의 바이오로이드에게 남자는 분노를 느꼈다. 분노는 잿더미 속에서 사그라져갔던 희미한 불씨에서 순식간에 일렁이는 화염처럼 커졌고 남자는 의자에게 일어나 콘스탄챠에게 다가갔다.

 

 “세상에 이유 없는 일은 없듯 인류의 멸망은 타락한 인간에 대한 심판이었다.”

 

 남자가 내뿜는 살기에 눌린 콘스탄챠는 겁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남자가 한 걸음씩 다가올 때마다 콘스탄챠는 한 걸음씩 뒷걸음질 쳤고 벽에 닿아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진 콘스탄챠는 벽에 등을 기대게 되었다. 콘스탄챠보다 머리 한 개 정도 더 큰 남자는 콘스탄챠를 매서운 눈으로 쏘아보았다. 콘스탄챠는 분노와 증오로 가득한 남자의 눈빛을 정면으로 볼 용기가 없었고 고개를 숙여 남자의 시선을 피했다. 남자는 콘스탄챠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인간들의 끝없는 욕망이 그들을 멸망하게 만들었는데 왜 내가 다시 인류를 재건해야 하지? 말을 해봐라.”

 

 말을 내뱉었을 때 남자는 자신이 콘스탄챠에게 질문이 아닌 화를 내고 있음을 깨달았다. 남자는 서둘러 콘스탄챠에게 벗어났다. 콘스탄챠에게서 떨어져 다시 의자에 앉아 화를 가라앉혔다. 이 무슨 추태인가. 한 순간의 감정을 통제 못해서 여자에게 화나 내는 꼴이라니...남자는 스스로에게 조소하며 한숨을 푹 쉬었다.

 

 “미안하다. 내가 추태를 보였군...”

 

 남자의 목소리는 방금과는 달리 힘이 없었다. 남자는 의자에서 일어나 구급상자를 꺼냈던 캐비닛 옆에 있는 다른 캐비닛으로 가 문을 열고 투명한 유리병을 꺼내서 다시 의자에 앉았다. 콘스탄챠는 남자가 꺼낸 병이 술병이란 걸 단숨에 알아차렸다. 남자는 뚜껑을 따고 안에 담겨 있던 투명한 액체를 컵에 넘치기 직전까지 따랐다. 컵은 술잔으로 사용하기에는 그 크기가 지나치게 컸지만 남자는 개의치 않고 컵에 담긴 술을 입 안에 털어 넣었다.

 

 “그렇게 드시면 속에 안 좋아요 인간님.”

 

 콘스탄챠는 방금까지 화를 냈던 남자에게 걱정 섞인 말을 했다. 가정용 바이오로이드로서 태어나 몸 속 깊은 곳에 인간에 대한 헌신과 봉사가 뿌리 내려 있는 콘스탄챠는 남자를 위해 작은 술잔을 찾아서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이유도 없이 화를 내던 인간에게 참 친절하군...”

 

 남자는 콘스탄챠가 따라준 술을 받아서 다시 입에 넣었다. 콘스탄챠는 빈 잔에 다시 술을 따라주면서 남자의 말에 답했다.

 

 “그게 제가 만들어진 이유니까요. 제가 한 말이 인간님을 화나게 했다면 죄송해요...저는 절대 그럴 의도가...”

 

 “죄송해 할 필요 없다. 오히려 내가 미안하다.”

 

 남자는 콘스탄챠에게 사과의 말을 건넸다. 콘스탄챠는 남자의 사과에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남자는 잔이 빌 때마다 콘스탄챠에게 잔을 주었다. 콘스탄챠는 그때마다 정중하게 잔에 술을 채웠고 남자는 잔을 다시 비웠고 이 행위를 병이 빌 때까지 반복했다. 단순히 술을 받는 것 뿐이었지만 남자는 정말 오랜만에 술을 혼자 마시지 않게 되었음에 작은 기쁨을 느꼈다. ‘콘스탄챠 S2’ 같은 고급 모델에게 자신이 술을 받을 날이 있으리라곤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콘스탄챠도 정말로 오랜만에 인간에게 사소하게나마 봉사하고 있음에 뿌듯함을 느꼈다. 술 한 병을 전부 비우게 되었을 때 쯤, 남자는 술에 살짝 취했다.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나?”

 

 “편하게 질문해주세요.”

 

 “왜 다시 인류를 재건하려고 하는 거지?”

 

 질문을 한 남자는 멈추지 않고 말을 이었다. 술에 취해서인지 평소와는 달리 말이 물 흐르듯 흘러나왔다.

 

 “멸망전의 세상에서 인류는 너희들을 끔찍이도 괴롭혔다. 이상한 법들까지 만들어서 너희들을 도구보다 천하게 다루었는데 왜 그런 인류를 다시 재건하려고 하는 거지?”

 

 인간인 남자는 바이오로이드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제아무리 미천한 미물도 누군가가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학대를 한다면 어떻게든 저항하기 마련이다. 바이오로이드가 인간에 의해 만들어져 생명체로서 인간의 명령에 불복종할 수 없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어떤 인간도 남아있지 않다. 바이오로이드는 어떠한 의미에서는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된 것이다. 

 

 “네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바이오로이드들은 철충들이 인간들을 쓸어버리면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너희들은 다시 인류를 재건하려고 하는군. 도대체 무엇이 너희들로 하여금 인류를 재건하게 하는 거지? 단순히 바이오로이드로서 몸 속 깊숙이 뿌리 내리고 있는 인간에 대한 헌신과 봉사 때문인가?”

 

 세상이 멸망하기 전에도 수많은 인간들은 바이오로이드들을 핍박했었다. 주인이 없는 공용 바이오로이드들은 사람들과 하다못해 길거리의 거지들에게 까지 좋은 화풀이 대상이었다. 적어도 남자의 기억에서는 그 누구도 바이오로이드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그런 끔직한 일을 당했음에도 인간의 세상을 재건하겠다고 지금까지 목숨을 바치고 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이 남자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콘스탄챠는 남자의 질문에 그를 바라보며 답했다.

 

 “인간님은 저희들이 이해가 되지 않으시겠죠. 예, 인간님의 말대로 저희들은 수많은 인간님들에게 핍박을 받았어요.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이 인류 재건에 호의적이건 아니에요. 적지 않은 이들이 인류 재건을 회의적으로 보는 분들도 많아요. 특히 인간님들에게 직접적으로 핍박을 받은 분들은 더욱 그렇고요.”

 

 콘스탄챠의 말에는 슬픔이 담겨 있었다. 남자는 그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콘스탄챠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남자에게 다시 말했다.

 

 “하지만 저희들을 도구 취급하지 않으신 상냥하셨던 분들도 분명히 게셨어요. 저의 전 주인님도 그런 분들 중 한 명이셨고요. 저희들은 그런 인간님을 찾을 수 있다고 믿어요. 그리고 그분과 함께 철충들을 몰아내고 과거와는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있어요.”

 

 콘스탄챠는 자신의 옛 주인을 떠올렸다. 그녀가 생각하는 바이오로이드를 도구로 취급하지 않고 상냥하게 대해주었던 몇 안 되는 인간. 콘스탄챠의 옛 주인은 그런 사람이었다. 콘스탄챠의 말에 남자는 다시 그녀에게 물었다.

 

 “인간에게 너무 큰 기대와 희망을 품고 있군. 너는 그런 인간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인간들이 전부 죽은 이 세상에서?”

 

 콘스탄챠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미 찾은 것 같은데요.”

 

 “나는 너가 생각하는 그런 인간이 아니다.”

 

 “바이오로이드의 말을 이렇게 오랫동안 경청해주시는 인간님은 저의 전 주인님을 제외하면 인간님이 처음이에요.”

 

 “술에 취해서 그런거다.”

 

 콘스탄챠는 시선을 회피하는 남자에게서 그리움을 느꼈다. 콘스탄챠는 남자로부터 그녀의 전 주인의 모습을 살짝 볼 수 있었다. 그녀의 전 주인도 남자처럼 냉소적이던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주인도 속은 따뜻하고 상냥했던 인간이었다. 그리운 감정을 느낀 콘스탄챠는 미소를 지으며 남자를 바라보았다. 

 

 부스럭. 침대 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콘스탄챠는 침대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고 마취에서 깨어나 몸을 일으키고 있는 그리폰을 보았다. 그리폰은 슈트의 복부 일부분이 찢어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 표정을 찌푸렸다. 콘스탄챠는 서둘러 그리폰에게 가서 그녀의 상태를 물었다. 

 

 “그리폰! 몸은 괜찮아?”

 

 “콘스탄챠...내 슈트가 왜 찢어져 있는 거야?”

 

 “인간님이 상처를 치료하시기 위해 찢으셨어.”

 

 그리폰은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슈트를 찢어버린 것은 화가 났지만 목숨을 구해준 인간에게 화를 낼 만큼 그녀는 바보가 아니었다. 드디어 찾아낸 인간이다. 그리폰은 인간에게 정중한 감사를 하기로 했다. 아직 통증이 느껴지는 복부에 손을 올리고 그리폰은 남자에게 감사의 말을 했다.

 

 “고마워, 인간. 덕분에 살았어.”

 

 그리폰의 감사인사에 남자는 됐다고 손짓했다. 남자는 의자에서 일어나 문쪽으로 걸어가 문을 열고 콘스탄챠와 그리폰에게 말했다.

 

 “저 녀석도 깨어났으니 그만 가라.”


 남자는 문 바깥으로 손가락을 겨누며 콘스탄챠와 그리폰에게 그만 은신처에서 나가줄 것을 요구했다. 그리폰이 깨어날 때 까지만 머물게 해주겠다는 남자의 말을 기억하고 있는 콘스탄챠는 아직 완치되지 않은 그리폰의 몸상태가 걱정이었지만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콘스탄챠는 그리폰을 부축해주려고 했지만 그리폰은 거절하고 혼자의 힘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콘스탄챠와 그리폰은 문으로 걸어갔다. 그리폰이 먼저 계단을 올랐고 콘스탄챠는 계단을 오르기 전 마지막으로 남자를 뒤돌아보았다.

 

 “정말로 저희 가시지 않으시는 건가요? 이런 작은 은신처보다 오르카호가 더 안락하고 안전하실 거에요. 저희와 함께 가주세요.”

 

 남자는 애절한 목소리로 부탁하는 콘스탄챠에게 말했다.

 

 “훨씬 더 편안하고 안전하겠지. 그리고 지금보다 몇백 배, 몇천 배, 몇만 배 더 짊어질 게 많겠지. 난 이제 누군가를 책임지고 싶지 않다. 너도 잘 알겠지? 무언가를 잃었을 때 느끼는 그 슬픔을...난 그 슬픔을 더 이상 느끼고 싶지 않다.”

 

 “언젠가 꼭 다시 올게요 인간님. 그때는 꼭 인간님을 모셔갈 거에요.”

 

 굳은 의지가 담긴 콘스탄챠의 말에 남자는 피식 웃어보였다. 남자는 콘스탄챠에게 잘 가라며 손을 흔들어주었고 콘스탄챠는 남자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한 번 숙여서 작별 인사를 했다. 콘스탄챠는 문을 닫고 은신처를 나갔다. 문 밖으로 계단 올라가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발걸음 소리는 점차 작아졌고 보닛이 열리는 소리와 닫히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은신처는 평소처럼 고요함으로 가득 채워졌다.

 

 남자는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희망, 콘스탄챠가 했던 말들을 되새겼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믿음, 남자는 그것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불쌍한 녀석들...” 

 

 남자는 언젠가 그 희망을 놓지 못하고 죽을 바이오로이드들을 동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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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글은 밤에 써야 제맛이야. 1일 1글 노력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