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나?”

 

 온 숲에 울려 펴졌던 총격음이 걷히고 들려온 목소리에 콘스탄챠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껏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낮은 톤의 목소리였다. 워울프들이 즐겨보는 영화에 등장하는 남성 등장인물들과 닮은 목소리였다. 콘스탄챠는 넋이 나간 얼굴로 눈앞에 서있는 정체불명의 존재를 올려다보았다. 검은색 강화외골격과 하얀 해골 그림이 그러져 있는 헬멧을 착용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존재는 방금 전까지 철충들을 토막 낼 때 사용하던 칼날을 다시 양팔에 집어넣고 손을 내밀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콘스탄챠는 무엇 하나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눈앞에 보이는 자가 자신과 그리폰을 구해주었다는 것이다. 

 

 콘스탄챠는 손을 잡고 바닥에서 일어났다. 철충들의 전파는 더 이상 잡히지 않았다. 콘스탄챠는 정체불명의 존재의 뒤로 널브러져 있는 철충들의 시체들과 전투로 인해 박살난 숲의 나무들을 보며 작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적어도 수십이 넘는 수의 철충들을 강화외골격에 있는 수많은 화기들은 일제 사용하지 않고 고작 팔에 장착되어 있는 칼날 두 개로 전멸시킨 전투력에 콘스탄챠는 마른 침을 삼켰다. 콘스탄챠가 일어서자 정체불명의 존재가 말했다. 

 

 “여기는 위험하니 일단 안전한 장소로 대피하지. 저기 누워 있는 네 친구도 챙겨라.”

 

 “네...네!”

 

 철충들이 언제 다시 습격해올지 모르기에 콘스탄챠는 서둘러 뒤로 달려가 배에 총을 맞아 나무에 기대어 신음하고 있는 그리폰을 부축해 일으켰다. 그리폰은 철충들로부터 살아남았다는 것은 기뻤지만 콘스탄챠와 마찬가지로 이 상황이 당혹스러웠다.

 

 “콘스탄챠 어떻게 된 거야? 저건 누구고...?”

 

 “잘 모르겠어. 하지만 저 분이 우리를 구해주신 것 같아.”

 

 “뇌파를 전혀 감지할 수 없는데 따라가도 괜찮은 거야...?”

 

 그리폰의 말대로 콘스탄챠와 그리폰 둘 다 뇌파를 감지할 수 없었다. 바이오로이드에게도 시각이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뇌파를 통해 생명체를 구별한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존재에게서는 그 어떤 뇌파도 감지할 수 없었다. 생명체가 아닌 AGS들도 뇌파는 아니지만 뇌파와 비슷한 전파를 내뿜는다. 하지만 저 정체불명의 존재에서는 인위적으로 막혀있는 듯 미약한 뇌파나 전파도 느낄 수 없었다. 

 

 “괜찮을 거야. 분명 나쁜 분은 아닐 거야.”

 

 그리폰의 말에 콘스탄챠도 걱정이 들었지만 콘스탄챠는 저 정체불명의 존재를 따라가기로 했다. 아무런 관련 없는 자신과 그리폰을 구해준 것을 미루어봐 나쁜 자는 아니라고 콘스탄챠는 판단했다. 저 분을 따라가면 그리폰을 치료하기 위한 의약품들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만약 저 분이 인간이라면...콘스탄챠는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는 위험한 희망을 가슴에 품었다. 

 

 --

 

 콘스탄챠와 그리폰이 정체불명의 존재를 따라 철충들과 전투가 있었던 곳으로부터 10분 정도 걸어서 도착한 곳에는 별다른 특별한 것은 없었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처럼 주변에는 나무가 가득했고 몸을 숨길만한 장소는 보이지 않았다. 콘스탄챠와 그리폰이 볼 수 있는 것은 숲에는 어울리지 않는 타이어까지 전부 빠진 폐차 한 대 뿐이었다. 

 

 “안전한 곳은 개뿔. 아무것도 없잖아.”

 

 그리폰은 다 들리도록 큰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콘스탄챠는 그리폰을 말렸지만 그녀도 실망감을 감추지는 않았다. 정체불명의 존재는 그리폰의 불평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폐차로 다가가 보닛을 잡아 열었다. 보닛을 열자 그 뒤로 숨겨져 있던 계단이 나타났다. 

 

 “내려가라.”

 

 정체불명의 존재는 콘스탄챠와 그리폰에게 계단 아래로 내려가라고 말했다. 방금까지 불평을 하던 그리폰은 뻘쭘해져 입을 꾹 닫았고 콘스탄챠는 서둘러 계단을 타고 아래로 향했다. 계단을 비추는 형광등이나 불빛이 딱히 없었기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고 때문에 콘스탄챠는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은 상상 이상으로 깊었다. 거의 30초 이상 걸어 내려왔는데도 끝은 보이지 않았다. 30초를 더 걸었을까 콘스탄챠는 겨우 계단의 끝에 도착했다. 계단의 끝에는 문이 하나 있었다. 문 너머에서 작은 불빛이 세어 나오고 있었고 콘스탄챠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간 콘스탄챠와 그리폰은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깨끗이 정리되어 있는 은신처가 있었다. 은신처는 오르카호의 정비실과 그 모습이 비슷했다. 천창에는 형광등이 밝게 빛을 내고 있었고 벽에는 수많은 총기들과 총기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기계식 석궁이 있었다. 탁자 위에는 기계들을 정비하는데 필요한 장비들이 올려저 있었다. 콘스탄챠와 그리폰이 예상외의 은신처에 감탄하고 있을 때 보닛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보닛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 그 순간, 콘스탄챠와 그리폰은 동시에 무언가를 느꼈다. 뇌파였다. 철충이 내뿜는 인간과 비슷한 뇌파가 아닌 인간의 뇌파였다. 계단 위에서 누군가가 걸어 내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뇌파는 점점 강해졌다. 마침내 발걸음 소리가 멈췄고 문을 열리자 뇌파의 주인은 콘스탄챠와 그리폰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뇌파의 주인은 한 남자였다. 남자는 검은색 강화외골격을 착용하고 있었고 오른손에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헬멧을 들고 있었다. 콘스탄챠의 희망은 현실이 되었다. 기나긴 수색 끝에 그녀들은 마침내 땅 속에서 희망의 불꽃을 발견했다. 

 

 “콘스탄챠! 우리가 드디어 해냈어!”

 

 배의 상처마저 잠시 잊은 채 그리폰은 콘스탄챠에게 소리쳤다. 물론 곧바로 복부에서 오는 통증에 신음했다. 콘스탄챠는 남자는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살아있는 인간 남성, 라비아타를 따라 지난 수십 년간 수색한 존재가 오늘 자신들을 구해주었다는 것에 감정이 벅차올랐다. 남자는 헬멧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말했다. 

 

 “살아서 기분 좋은 건 알겠는데 일단 그 상처부터 지혈해야 할 것 같군.”

 

 남자는 그리폰을 침대에 눕히라고 콘스탄챠에게 말했다. 남자의 말에 콘스탄챠는 그리폰을 눕혔다. 침대 시트에 그리폰의 피가 살짝 흘러서 콘스탄챠는 남자가 화를 내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콘스탄챠의 걱정과 달리 남자는 딱히 화내지 않았다. 남자는 착용하고 있던 강화외골격을 분리시키고 침대로 다가갔다. 그리폰의 총상 부위 주변의 슈트를 찢어내어 총상 부위가 완전히 들어나게 하고 상처를 확인하면서 남자는 콘스탄챠에게 말했다.

 

 “저기 두 번째 캐비닛에 있는 구급상자 가져와.”

 

 남자는 콘스탄챠에게 손가락으로 구급상자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 벽에 있은 두 개의 하얀색 캐비닛 중 오른쪽에 있는 것이었다. 콘스탄챠는 재빨리 달려가 캐비닛 문을 열었다. 안에는 알아보기 쉽게 ‘구급상자’ 라고 적혀 있는 붉은색 박스가 있었다. 콘스탄챠는 구급상자를 들고 남자에게 건넸다. 남자는 구급상자를 열어서 주사기와 노란색 액체, 작은 핀셋을 꺼냈다. 주사기에 노란색 액체를 채운 남자는 우선 상처부위에 바늘을 찌르고 액체를 주입했다. 

 

 “마취제다.”

 

 남자는 짧게 말하고 마취제를 주사했다. 마취제를 투여하자 그리폰은 점점 움직임을 멈췄고 시간이 잠시 지나자 몽롱하게 천장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폰이 반응이 없자 남자는 알코올솜으로 핀셋의 끝을 여러 번 닦은 후 그리폰의 상처 부위로 가져갔다. 남자는 상처 부위 속으로 핀셋을 집어넣었다. 능숙하게 박혀있던 총알을 제거하고 상처부위를 마저 정리했다.

 

 “역시 바이오로이드가 참 튼튼하군. 보통 인간이었으면 이미 죽었을 거다.”

 

 간단한 응급처치를 마친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물이 탁자 앞 의자에 앉았다. 남자는 탁자 위에 있는 물이 담긴 페트병을 평소대로 병째로 마시려고 했지만 지금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정말 오랜만에 컵에다가 물을 따랐다.

 

 “한 컵 마실 텐가?”

 

 남자는 콘스탄챠에게 물이 담긴 컵을 건넸다. 콘스탄챠는 예상외의 친절함에 놀랐다. 때 마침 목이 말랐던 콘스탄챠는 감사한 마음으로 컵을 받았고 조신하게 물을 마셨다. 컵을 전부 비우고 남자에게 컵을 돌려준 콘스탄챠는 받은 컵에 물을 따르고 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정말 인간님이신가요?”

 

 “그럼 뭐로 보이나?”

 

 “이렇게 인간님을 찾게 될 줄을 예상하지 못했어요. 철충들에게 포위당했을 때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는데...”

 

 “운이 좋군. 나는 때마침 그곳을 지나가고 있었을 뿐이었다.”

 

 남자는 대화를 이어가지 않고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다시 한 모금 마실 뿐이었다.

 

 “저 녀석이 깨어나면 떠나라. 그때까지만 머물 수 있게 해주마.”

 

 남자의 말에 콘스탄챠는 애가 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눈앞에 있는 인간님을 오르카호로 모셔가야만 한다. 단 한 명의 인간을 찾기 위해 지난 수십 년간 죽은 자매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인간님...염치없지만 딱 한 가지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스스로 염치없다고 생각한다면 부탁하지 마라.”

 

 남자의 말에도 불구하고 콘스탄챠는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저희와 함께 오르카호로 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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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진짜 오랜만에 올린다...단편이 될지 중편이 될지 장편이 될지 모르는 새 시리즈 시작합니다.

사령관이 입고 있는 강화외골격은 간단하게 '엣지 오브 투모로우' 란 영화에 나오는 전투 슈트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