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무표정한 가면을 쓴 공안들이 A에게 시선을 날렸다. 가지고 있는 권력의 차이는 명확할지언정, 그들 위에 군림하는 자는 오직 한 명.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석이었다. 이런 점에서 A와 그들은 같았지만, A는 조금 더 큰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달랐다.

 

 A의 업무는 유사 인류, 그러니까 바이오로이드를 색출하여 애정부에 넘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인공 생명체라 할지라도 그것들 역시 사람의 외형을 가지고 있었기에, 변장을 하면 평범한 사람들의 눈썰미로는 구분하기 어려웠다. 공안들이 직접적인 수색에 나서지 않고 사용인들을 제압하기만 해놓은 것이 바로 그 이유다. 하지만 A만은 어째서인지, 유사 인류들을 손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응접실의 문을 여니 A를 반긴 이는 국무원 총리의 비서, 2였다. 정치에 무관심한 A일지라도 그녀가 국무원 총리를 뒤에서 조종하고 있으며, 사실상 공화국의 2인자인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당원들이 가장 두려워한다는 A를 보고도 그녀는 전혀 거리낄 것이 없다는 듯 고고하게 다리를 꼰 채 녹차를 마시고 있었다. 2에게 가볍게 인사한 A는 손으로 방의 벽을 훑으며 한 바퀴를 돌았다. 묵직한 구두 소리가 멈춘 곳은 당의 허가가 없는 한 공화국의 인민이라면 반드시 켜두어야 하는 스크린의 앞이었다.

 

 21세기 초반에 공화국은 이미 모든 인민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서구 세력의 견제 때문에 인민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적용하지 못하고 가벼운 감시만 하는 정도였지만, 지금 그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탐욕스러운 기업들이 세상을 점령하고 생긴 몇 안되는 순기능이었다.

 

 아래에 달린 버튼을 누르자 잠시 지직거리더니 곧 약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굳이 약한 빛을 내게 한 것은 주석께서 제안하신 것으로, 모든 인민들이 항상 감시되고 있음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스크린이 꺼져있었군요.”

 

“뭔가 문제라도 있나요? 제가 알기로는 분명 저에게 스크린을 끌 정도의 권한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렇습니다. 저도 약한 빛이 잠에 드는 것을 방해할 때는 가끔씩 꺼놓고는 하죠.”

 

“그러면 왜 이런 무례를 저지른 것인지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설마 정말로 스크린 때문에 온 것은 아니겠죠?”

 

“물론 이런 사소한 이유 때문은 아닙니다.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겠지만, 사실 이런 스크린은 당에서 중간 정도의 직책에 오르면 누구라도 끌 권한을 받게 됩니다.”

 

 업무용 책상에서 의자를 꺼내 2의 앞에 앉는다. 분명 그녀가 일정을 착실히 따랐다면 방금 전까지 업무를 보고 있었을 터. 하지만 의자는 차가웠다.

 

 A가 다리를 꼬고 턱을 괸 채 방 구석구석을 둘러본다. 적갈색 카펫이 인상적인 이곳은 알아차리기 힘든 위화감이 있었다. 벽에서 벽까지, 천장에서 바닥까지의 거리를 눈으로 가늠한 A가 의자를 2의 앞으로 가져간다.

 

“스크린을 끌 권리를 받는다는 것은 당의 신뢰를 얻었다는 것. 그런데 만약, 당신이 그럴리는 없겠지만 당의 신뢰를 배신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침묵이 이어진다. 살짝 떨리는 손을 애써 진정시킨 2가 차로 입을 적시고서 답을 말한다.

 

“애정부.”

 

“잘 알고 계시는군요. 그러고 보니, 내년이면 벌써 서른 살이 되시지 않습니까? 시간이 참 빠른 것 같습니다.”

 

“어머, 벌써 그렇게 됐나요? 사무실이 무너지는 바람에 시간 가는 줄도 몰랐네요.”

 

“여전히 아름다우십니다만, 입가에 주름이 하나 생기신 걸 보니 나이는 피하지 못한 모양이십니다. 그런 짓까지 하셨는데 말이죠.”

 

“무슨 말씀이신지...”

 

 뻔뻔하게도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는 그녀를 보자 A는 2의 면전에 토사물을 내뱉고 싶은 심정이었다. 치밀어오르는 역겨움을 겨우 참아낸 그는 시계를 보았다. 10시 48분. 시간이 살짝 모자랐다. 그녀가 밀반입한 양을 생각했을 때, 보고서 작성을 위해 자료를 정리하여 넘겨주는 시간까지 고려한다면 11시까지, 늦어도 11시 30분까지는 일을 마쳐야한다. 더 이상의 심문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

 

“전부 알고 왔습니다. 어찌나 많은 유사 인류를 사용하셨는지, 대문 밖에서부터 피 냄새가 진동을 하더군요.”

 

 희미한 얼룩이 그리는 선을 따라 걷는다. 굳은 피의 색깔과 비슷한 카펫 덕분에 알아차리기는 힘들지만, 미묘한 질감의 차이를 A는 놓치지 않았다. 2는 A의 손아귀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이런 눈속임을 마련했으나 자신도 파악하지 못한 핏자국 덕에 잡히게 된 것이다.

 

 A의 발이 업무용 책상의 앞에서 멈춘다. 자세를 낮추어 책상의 아래를 두드리자 이질적인 금속음이 울린다. 카펫을 찢고 철판을 뜯어낸다. 탐욕의 아가리에서 불어온 바람은, 피 냄새를 머금고 있었다.

 

 장신인 A에게 비밀의 방은 높이가 조금 낮았다. 낮은 구두 소리와 미세한 모터 소리만이 공간을 점령한다. 한 구, 두 구, 세 구, 네 구, 다섯 구. 피를 뽑히며 죽음을 기다리는 바이오로이드는 모두 각양각색이었다. 등대지기 대용으로 사용하는 저가형 모델부터, 바이오로이드가 허용되는 나라에서조차 소유한 자가 몇 없다는 경호용 바이오로이드 까지. A는 역겨운 듯 수첩을 펼쳐 방에 있는 바이오로이드의 수를 적었다. 51구 생존, 79구 사망.

 

 메모를 마친 A는 무전으로 신호를 보냈다. 잠시 후, 신호를 받은 공안이 2를 애정부로 연행하느라 바깥이 소란스러워진다. 철판에 가로막혀 잘 들리지는 않지만, 어차피 들을 가치도 없었다. 항상 같았다. 그가 지금까지 잡아낸 당의 핵심적 인물들은 하나같이 A를 모욕했다. 더러운 피니 동족 학살자니.

 

 A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유사 인류를 체포하는 것이 왜 동족을 학살하는 일인가? 저 역겨운 배반자들은 정녕 유사 인류를 같은 사람으로 보는 것인가? 그렇다면 왜 저들은 유사 인류를 착취하는가? 정답은 간단했다. 애정부로 간다는 사실에 절망해 이성을 놓고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것이었다.

 

 2가 연행되고, A는 바이오로이드들을 한데 모아 트럭에 싣기로 결정했다. 공안의 도움을 빌릴 수도 있겠지만 그들은 할 일이 많았다. 같은 주석을 모시는 한, 그들의 업무를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것이 공안에 대한 A의 배려였다.

 

 화물칸에 한 구, 두 구씩 바이오로이드가 쌓여간다. 처음에는 공간이 모자라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대다수의 바이오로이드들은 체구가 작았다. A가 바이오로이드 생산 기업을 혐오하는 수많은 이유중 하나였다.

 

 이제 비밀의 방에 남은 바이오로이드는 한 구뿐이었다. 쥐죽은 듯 조용히 숨만 내쉬는 주황색 머리의 조그마한 소녀에게 다가가는 순간, 갑자기 기억이 떠오른다. 가족, 미사일, 전자레인지, 가스, 스파크, 폭발. 파편화된 기억이 연쇄적으로 밀려들자 A는 머리를 움켜잡았다.

 

 시간이 지나고, 물밀려오듯 들어온 기억들은 일부분만 남고는 나타난 것처럼 해일 같이 사라졌다.

 

“분명 주석께서도 숫자가 딱 맞는 걸 좋아하시겠지.”

 

 A는 그렇게 혐오해 마지 않는 유사 인류를 데려가기로 결정했다.




문체에 힘을 줘서 쓰고 있는데 어떰?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러운데.


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