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었다. 시계가 전자음을 내며 기상 시간임을 알리자 A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바람을 막는 것도 벅찬 낡은 창문은 냉기의 침입을 방지할 방법이 없었다. ‘이불이라도 두꺼웠다면 괜찮았을까.’ A는 먼지가 날리는 매트리스 위로 정돈된 이불을 올려놓으며 생각했다.

 

 주방으로 나가 냉장고를 열자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기억나지도 않는 멸치볶음과 채소 절임이 있었다. 애써 멸치는 말린 것을 볶은 것이고, 채소는 절여놓았으니 괜찮을 것이라며 불안감을 달랬다. 무신경한 A였지만 탈이 나는 것만은 사양하고 싶었다. 밥솥에서 차갑게 식은 밥을 퍼 전자레인지에 돌린다. 그는 항상 이 시간과 소리가 싫었다.

 

 전자레인지는 그에게 있어 단절과 유대의 매개체였다. 그의 부모는 전자레인지로 많은 것을 해냈고, 그가 부모와 헤어진 것 역시 전자레인지 때문이었다. 그가 싫어하던 아니던, 그 기계는 그의 인생에 있어 큰 지분을 차지했다.

 

 상념에 빠져있던 그를 깨운 것은 낡은 전자레인지 밖으로 새어나오는 수증기의 열이었다. 그릇의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잡아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젓가락으로 반찬들을 집어 밥 위에 올린 다음 비빈다. 썩 보기 좋은 음식은 아니지만 매콤하게 양념이 된 멸치 덕에 맛은 생각보다 괜찮다.

 

 선채로 간단한 식사를 마친 그는 싱크대에서 식기를 가볍게 행군 다음 나갈 채비를 했다. 샤워를 하는 동시에 이를 닦고 면도를 한다. 남들보다 배급량이 많은 A라도 물을 아끼기는 해야 했다. 혹시라도 당에 책을 잡힌다면 곤란하다.

 

 몸을 씻은 다음에는 두피를 가볍게 말려준다. 머리카락을 전부 밀어버린 A일지언정 악취를 풍기면 안된다. 당의 집행인은 언제나 청결해야 한다. 

 

 옷걸이에서 옷을 꺼내 주섬주섬 입기 시작한다. 위생을 위해 하루에 하나씩 셔츠와 바지를 바꾸어 입지만 주변 사람들은 잘 알아차리지 못했다. 같은 옷이 일곱 벌이나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두꺼운 군용 트렌치코트와 가죽 장갑을 끼고 나서야 그의 외출 준비는 끝이 났다. 마지막으로 수도꼭지와 가스관이 제대로 닫혔는지 확인하고 불을 끈 다음 집을 나선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자 옆집에 사는 1이 그의 옆에 섰다. 뚱뚱한 체격을 가진 그는 한겨울에도 끊임없이 땀을 흘려댔다. 체질 탓에 약간의 땀 냄새를 풍기는 1이었지만 직장에서 그의 평가는 좋았다.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특유의 기민함과 노련함으로 빠르게 일을 마쳤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 입니다.”

 

 살갑게 인사하는 1에게 A는 간단하고 무뚝뚝하게 답변했다. 불안정한 전력 탓일까, 느린 엘리베이터 앞에서 엄지와 검지로 손가락을 튕기던 1이 A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냥 궁금해서 여쭤보는 건데, 요즘 일은 어떻습니까?”

 

“그저 그렇습니다. 열심히 단속을 해보아도 워낙 땅이 넓다 보니, 끊임없이 범법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며칠 전 펙스에서 새롭게 발매한 유사 인류 밀반입이 기승을 부리는데, 그것들이 요즘은 밀반입품, 그러니까 상품과 협력하여 저항하더군요. 점점 가격이 올라가니 일단 들여다 놓고 보자는 것 같습니다.”

 

“허 참, 말세군요. 스스로 그따위 것들과 섞이려 들다니.”

 

“우리를 제외한 모든 나라가 불순해졌습니다. 지금은 우리 조국만이 인류의 순수성을 간직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당신 같은 사람들이 노력하는 한 그렇겠지요. 자, 먼저 타세요.”

 

 1의 친절에 가벼운 목례로 답한 A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버튼을 눌렀다. 벽에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는데, 처음 보는 것이 새벽에 청소부들이 바꾼 듯했다. 「유사 인류는 사회를 좀먹는 악입니다.」 포스터에서는 삼대 기업을 뜻하는 거대한 세 개의 건물이 바이오로이드를 쏟아냈고, 그 바이오로이드들은 민중의 일자리를 빼앗고, 또 탄압했다.

 

 ‘홍보부에서 새로운 디자인을 뽑아낸 모양이군.’ 홍보부는 인민들에게 전달할 사항들을 홍보물을 통해 알리는 곳이었다. 예술과 언어에 재능이 있는 자들은 해마다 당에서 홍보부원들을 선발할 때마다 치열하게 몰려들곤 했다.

 

 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A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검은색 승용차에 열쇠를 꽂고 시동을 걸어 도로로 나갔다. 상당히 오래된 차였기 때문에 당에서는 A에게 새로운 차를 지급받는 것이 어떻겠나고 넌지시 물어왔지만 그는 그것을 사양했다. A가 당에 거부권을 행사한 몇 안되는 일들 중 하나였다.

 

 도로를 달리며 본 창밖의 풍경은 새벽의 색이었다. 밤이 길어진 탓에 평소 같았으면 이미 해가 떴어야 할 시간이었지만 여전히 어두웠다. 이렇게 어두운 계절에는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유독 범죄자들이 기승을 부린다.

 

 차가 멈춘다. 차에서 내린 A는 문을 열고 커다란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일할 시간이다.





시간대는 철충 침공 시작으로부터 상당히 떨어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