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문학에 맞을거 같아서 + 야밤에 / 일하는데 외로운 라붕이들을 위해서


외로운 사령관 (모음)


(이번화는 아주 조금 더 매울수도?)


*****



 침대에 누워있는 레오나의 배 위에 닥터가 초음파기를 대고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배 위에 발라진 차가운 젤이 괜히 레오나를 더 긴장하게 했다.


 "어? 여기 있네? 꽤 큰데 말이지… 잘 움직이고 있네. 언니도 보여?"


 "뭐?"


 "언니 축하해! 이 정도면…11주 정도 됐을까나?… 전혀 이상한 느낌 같은 거 없었어? 약간 배도 나왔는데 말이지, 히히."


 닥터가 키득거리며 젤로 인하여 젖은 레오나의 아랫배를 휴지로 닦았다.


 "응...? 아-아니. 그런 거 별로 못 느꼈어."


 사실 요맘때 몸의 상태가 이상하단 걸 진작 알고 있었다. 그저 갑자기 오르카호를 휩쓴 사건들 때문에 피로가 쌓인 줄 알고 있었지만. 그리고 사령관의 무사한 복귀를 위해선 자신의 몸 정도는 어느 정도 희생해도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생각의 방식이 잘못 됐을 뿐, 그를 사랑하는 건 맞기에.


 "미리 와서 안정을 취했어야지. 언니. 지금 아기가 살아있는 게 기적에 가까운 거 몰라? 가뜩이나 우리 몸에 있는 오리진더스트가 태아에 악영향을 주는데, 거기에다 매일 밤 자지도 않고 여러 군데 돌아다녔잖아. 안 되겠어. 언니 당분간 여기 있어."


 "너, 그걸 어떻게…?"


 "이 연구실은 오르카호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야. 여기서 내가 주도하는 실험과 기밀 프로젝트가 몇 개인데. 그걸 숨기기 위해서 바깥에 카메라 장비들은 필수-아, 이런. 방금 프로젝트가 하나 더 늘어난 거 같네. 언니 아기 말이야."


 닥터가 이마를 탁 치며 한숨을 쉬었다. 레오나는 급 침울해하는 닥터의 눈치를 보며 자신의 배에 손을 갖다 데었다.


 '아기…나와 달링의… 달링의 아기?'


 불안한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과연 이 아기가 그토록 사랑하는 달링의 아기일까? 아니면 증오하는 에릭의 아기일까. 자신이 생성되고 본 남자는 그 둘이 전부였다.


 '현재까지 리앤과 내가 봤던 대로면… 에릭이 나 모르게 했던 건 아닐…'


 불안감이 엄습한다. 요즘 적지 않은 수의 바이오로이드들이 건망증에 시달린다. 어떠한 전조도 없이. 어떠한 위치에 있든 간에. 본인도 모르게. 가능성은 아주 작지만- 아니, 아주 적지는 않다. 그는 어떤 짓이라도 눈 깜빡 않고 할 것이다. 갑자기 구역질이 올라온다.


 "우욱! 우웨엑! 으엑…우웨엑!"


 "어? 언니 왜 그래?! 언니? 언니!"


 '안돼…달링…'



*****



 "...레오나! 레오나! 지금 8시 반이야! 레오나! 우리 이미 30분이나 늦었다고!"


 "음...?"


 "일어나라니까? 우리 지휘관 회의에 가야 하잖아?"


 사령관의 방. 사령관? 레오나가 바로 목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봤다.


 "달링? 달링, 어디 갔었어!"


 자신이 알몸인지도 모른 체, 살짝 미소를 짓는 사령관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꽉 껴안았다.


 "갑자기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그냥. 나쁜 꿈을 꾼 거 같아. 지금 생각하면 정말 바보 같은 꿈이지."


 "그래. 레오나가 바보 같다고 하니까, 바보 같은 거겠지."


 "지금 몇 시야? 9시 반? 빨리 준비 안 하고 뭐해 달링! 옷부터 챙겨 입어야지! 그리고, 머리에 기름이 또! 빨리 화장실 들어가서 샤워하고 나와! 사령관으로서 용모부터 철저하게 해야지."


 "아니, 이미 30분이나 지났어. 빨리 가야-"


 "당신을 위해서야, 달링. 빨리 화장실로 들어가 줘."


 "아...알겠어. 레오나."



*****



 준비를 다 마친 레오나와 사령관이 지휘관 실에 입장하였다.


 "흠. 1시간이나 늦었구려. 아무리 신혼이라도 자제했으면 좋겠소. 결혼했다고 해서 사령관의 직책을 져버리는 건 아니오?"


 "아...아냐. 그럴 리가. 미안해. 빨리 시작하자."


 "오늘은 특별히 리앤 양이 같이 참여한다, 그대여. 시티가드가 요즘 징벌의 사디어스를 필두로 빼어난 실적을 보이니."


 "참. 안팎의 악조건을 뚫고 이렇게나 많은 자원을 가져오다니. 우리도 누군가가 지휘에 끼어들지만 않았으면 이 정도는 쉬울 건데."


 "메이, 그건 실피드가 스피커의 사거리에…"


 "하급 병졸까지 그렇게나 신경 쓸 겨를이 있어? 작은 것만 보고 큰 걸 보지 못하잖아, 사령관!"


 "그래도 무의미한 병사의 희생-"


 "무의미한? 나 멸망의 메이를 뭐로 보는 거야, 지금? 불꽃놀이 한번 어울려 줬다고 너랑 동급인 줄 알아?"


 빠직


 '응? 이게 무슨 소리야?'


 레오나가 갑자기 갈라지는 소리를 들었다. 정작 유리창도, 원탁도, 디스플레이도 모두 무사했다.


 "내가 보여준 정보 안 봤어? 실피드 정도면 스피커의 공격을 받더라도 충분히 적을 회피 할 수 있어! 그 녀석이 시간을 3분만 끌어준다면 우린 지금쯤 3배, 아니 10배 이상의 자원을 손에 넣었을 거야!"


 분위기가 싸해졌다. 화기애애하던 사령관실의 분위기는 깨진 지 오래. 이를 보며 레오나가 중얼거렸다.


 "그래. 내가 도와주기 전엔 다들 이런 분위기였지…"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난다. 예전 지휘관 회의는 분위기가 살벌하다 못해 온 곳이 가시로 뒤덮인 것 같았다. 건수가 잘못 잡히면 지금 역정을 내는 메이 뿐만 아니라 어떤 지휘관이든 사령관에게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사령관은 본인이 부족한 탓이라며 이 행위를 용인해 주었다.


 "참. 하긴. 그렇게 10배 자원을 벌면 뭐 하겠냐. 결국 상은, 이 멍청이랑 밤에 추접스럽게 교접하는 거 뿐인데. 흥."


 빠직


 또다시 소리가 난다.


 "그렇게 억지로 신음 내면서 할 거 다 하고 나면, 뭔가 원하는 걸 들어주기라도 하니 다행이지. 운이 좋아서 아기가 생기면 더 좋고. 아무도 못 건드릴 거 아냐? 그거 두 개 아니었으면 딱히 너랑 있지도 않았을 거야."


 빠직


 '분명 깨지는 곳은 없는데 말이지. 그런데 메이 조금 심한 거 아냐?'


 충신의 쓴소리를 듣는 건 사령관으로선 아주 바람직하다. 그 의자왕이 초년 무난하게 나라를 통치하고도 나라가 망한 까닭은 가면 갈수록 충신들의 간언을 듣지 않은 탓도 있었다. 오르카호의 번영을 위해선 각 분야 전문가들의 조언이 분명히 필요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바이오로이드들은 일반인 출신이면서 지휘를 기초부터 배우는 상관을 모셔보기는 처음이었다.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조언과 간언이 필요했다. 처음엔 약한 사령관의 맘을 상하게 할까 봐 발언의 수위에 주의했지만, 좀처럼 늘어나지 않은 사령관의 실력과 쪼들리는 오르카호의 자원 상황 속에 지휘관들은 점점 발언의 수위를 높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들이 고하는 건 조언인지 매도인지 구분을 못 하는 수준까지 다다랐다.


 "왜 너희들은 말이 없어? 나만 나쁜 사람 만드는 거야? 마리? 칸? 아스널? 용? 라비아타? 말해. 눈치 보지 말고. 내가 알기로는 딱히 나만 느끼는 건 아닐 텐데 말이야."


 "각하. 메이의 말은 확실히 지나쳤으나, 장병들의 기강이 해이해지긴 했습니다."


 "이런 운송 작전엔 우리 부대를 더 사용했으면 하네. 사령관."


 "요즘 보급이 많이 힘들어졌다. 사령관. 조금 더 노력했으면 좋겠네."


 관심도 없는 듯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말을 억지로 짜내는 지휘관들을 보자, 무적의 용이 화를 내었다.


 "오늘 이야기 할 거라고 하지 않았소? 그렇게 돌려 이야기한다면 사령관께도 모욕이란 걸 모르오? 당신들이 이렇게 나올 줄 몰랐소."


 그러면서 자신이 든 보고서를 탁자 앞에 놓으며 말을 이어갔다.


 "이게 무엇이오? 사령관?"


 보고서는 단단히 잠겨있었지만, 잠금장치 사이로 크고 굵은 글씨가 보였다.


 [요리대회 mk. 1]



*****



 자원이 점점 부족해지는 이 시점에 자원을 대량으로 사용하는 요리대회를 시작으로, 여러 기계의 도입, 실내 VR 랩 신설, 카페 건축 등등 편의를 위한 계획들의 보고서가 우수수 사령관의 눈앞에서 쏟아졌다.



 "이런 것들을 지금 이 상황에서…"


 "그대는 지금 오르카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진정 모르는가…"


 "사령관. 조금이라도 이 오르카를 신경 써 주는 거 같았는데 말이다."


 "각하께선 진정 이것들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부상자들을 줄이기 위해 밤을 새워 전술 교본을 읽어도 모자랄 판에! 제 수업 때 졸고 계신 이유가 고작 이것들 때문이었습니까?"


 "네 지휘 때문에 지금 얼마나 많은 인원이 병실에 있는 줄 알아? 하급 인원 부터 고급인원들까지! 팔도 다리도 부러진 녀석들이 태반이야! 자원이 남아나지를 않는다고!"


 "미...미안해. 다음부터는 더-"


 '다음'이라는 한마디가 나오자, 아스널이 탁자를 쾅 치며 사령관을 노려보았다.


 "다음. 다음, 다음, 다음! 그놈의 다음부터! 그저 넘겨버리려고만 하는 건가 그대? 책임은 그저 미래의 자신에게로 넘겨버리면 그만인가? 그대의 그 안일한 생각이 지금 중환자실에 누구를 넣었지? 누구를 넣었냐는 말이다… 그 녀석, 아직도 눈을 뜨지 못하고 있..."


 마치 초원의 사자 같은 우렁찬 목소리로 시작했지만, 점점 목소리가 가늘어지더니 어느새 아스널의 눈에는 눈물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에밀리… 그래. 그저 자신만을 위한 여가시설 확충만 생각하고 있는 그대는, 이 정도쯤은… 신경도 안 쓰겠지."


 빠직


 무표정을 유지했던 신속의 칸도 이를 악물고 있었다. 오랜만에 탐색을 나갔던 탈론페더가 팔과 다리에 중상을 입고 목 주변을 총에 맞았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옆에 피격당했다면 바로 사망했을 것이라는 진단이 나왔었다.


 "병실에 누워있는 브라우니만 해도 몇백 명이 됩니다, 각하. 안일한 지휘 덕분에 병실이 모자라 그를 넓히는데 또 많은 자원이 들어갔습니다. 또 얼마나 많은 장병을 다치게 할 것입니까? 다 잘되고 있는 작전에 엉뚱한 명령을 넣어 그들을 모두 다치게 하는 게 몇 번째 입니까? 언제까지 그러실 겁니까? 그러면서 이런 쓸데없는 것부터 생각하고 계시는-


 빠직 빠직


 "너 내 옥좌가 부서질 뻔했다고! 네가 말한 좌표에 매복해 있던 철충이 몇 기였는지 알아? 내 옥좌가 터지면 우리 부대 모두가 다 사라졌을 거라고! 그리고-"


 빠직 빠직 빠직


 "소인이 보았던 것보다 전술적 실책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의지가 나약하여 수정하시지도 않고-"


 빠직 빠직 빠직


 점점 수위가 강해지기 시작했다. 사령관은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말들을 듣고만 있었다. 처음엔 부상자 수, 자원 등 객관적인 지표를 가지고 비판하였다. 하지만 그 보고서들이 기폭제가 되었는지, 어느새 그들은 사령관의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고 있었다.



 빠직 빠직 빠지직


 '분명히 들려. 이 정도면 오르카호 전체가 박살 난다고 봐야…어?'


 레오나의 시야가 점점 흐려졌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곧 시야의 구석에서부터 깨진 자국이 보이더니, 점점 커지고 있었다. 마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깨지는 유리를 통하여 보는 것 같았다. 수십초 후, 아직 지휘관들의 독설이 끝나지 않았지만, 레오나는 눈앞에 가득 차 있는 금들 때문에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이젠 톡 건드리면 와장창 깨질 것 같았다. 분위기가 점점 위험해져 구부정하게 힘없이 앉아있는 사령관을 건들자, 그가 벌떡 일어났다.


 "..."


 그는 그러곤 회의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



 사령관의 예상과는 달리 붕대와 거즈, 그리고 여러 약품으로 티아멧의 중상을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일단 뼈가 보일 정도로 매우 깊게 베인 상처였기에, 의료용 실로 부위를 봉합해야 했다. 하지만 실과 바늘의 실물조차 제대로 보지 못한 사령관은 당연히 이를 실행 할 수 없었다. 자칫하면 안 그래도 상처가 빼곡한 몸에 또 다른 상처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별로 없었다. 이를 봉합하지 못한다면 티아멧은 더는 일어날 수 없을지도 몰랐다.


 "아자즈! 맞지?"


 "네. 인간님."


 "혹시 살을 봉합해 주는 기계를 만들어 줄 수 있어?"


 "음...주변의 잔해를 이용한다면 어렵지 않을 거예요. 원래는 15분 걸리지만, 상당히 급한 상황인 거 같으니 3분 안에 만들어 올게요."


 어떻게 15분이 걸리는 작업을 3분 안에 다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살짝 들었지만, 곧 잡생각을 떨치고 상처를 지혈하고 그 주변을 알코올 솜으로 소독하는 데 열중하였다.  다행히 약국엔 소독약과 솜, 거즈가 차고 넘치도록 있었다. 티아멧을 어떻게든 살리리라 다짐한 그는, 새하얗던 본인의 제복이 선홍빛 붉은색을 띌 때 까지 말 한마디 없이 상처를 거즈로 누르고 있었다.


 "헉...헉...이러실 필요 없어요…사령관. 사령관 무사한 거 봤으니까…난 여기… 어떻게 되어도-"


 "말하지 마. 조금만 기다리면 아자즈가 바로 치료 할 수 있을 거야. 죽지 마. 명령이라고. 알겠어?"


 아차 싶었다. 티아멧은 이 '명령'이라는 단어를 매우 싫어했다. 그녀는 인간들의 불합리한 명령 때문에 자그마치 백 년을 넘게 지옥 같은 실험실에서 빠져나갈 수 없었다.


 "아..아냐. 방금 건 취소. 부탁이야. 티아멧. 네가 여기서 죽으면 누가 나를 보호해 준다고. 저기 철충들 보이지? 지금 무사하다고 해서 내가 5분 뒤에 무사할 거란 보장은 없어. 그럴 때 마다 네가 날 살려줘야지."


 "무슨… 소리인지 알겠어요. 하... 난 여기서 죽으…면 안 되죠? …끄아아아악!"


 그녀가 갑자기 몸부림치며 단말마를 부르짖었다.


 "미-미안해! 상처에다 알코올 솜을 실수로 댔어, 정말 미안해!"


 "여기 기계를 들고 왔어요. 인간님."


 아자즈가 어느새 탄창 부분이 밝은 초록빛으로 빛나는 노란색 매그넘을 들고 왔다. 의료기기라기엔 너무나도 무기를 닮은 이 기계를 보고, 사령관이 황당하다는 듯이 물었다.


 "이거. 이거 어떻게 쓰는 거야?"


 "총구 부분을 상처에 노리고, 방아쇠를 손가락으로 잡아당기면 돼요. 이 바이오로이드가 당신을 사령관이라고 부르길래 가장 당신의 신분에 어울릴 법한 모양을 선택했어요. 처음엔 그냥 자동권총의 디자인을 따라가려고…"


 그녀는 계속 기계의 디자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논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들어줄 시간은 없었다. 사령관은 빠르게 티아멧의 어깨 아래쪽을 조준하고,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탕!


 발포 음과 동시에 총구에서 총알 같은 무언가가 초록색 김을 내뿜으며 티아멧의 상처에 들어갔다. 고통이 너무 심해 소리를 낼 수도 없는지, 티아멧은 자신의 부들거리는 손으로 사령관의 손목을 쥐어짜며 입에서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꽉 물었다. 상처에서 초록색 김이 올라오는 것이 마치 끓고 있는 마녀의 솥 같았다. 곧 피가 멈췄고 연기도 어느새 초록색에서 노란색으로 변하였다. 수십초 정도 뒤, 언제 있었냐는 듯 연기가 감쪽같이 사라졌고, 상처도 성공적으로 봉합되었다. 다만 상처가 있던 자리엔 연갈색의 흉터가 남아버렸다.


 "헉...헉...헉...헉..."


 "성공적으로 봉합되었네요. 다행히 기계가 잘 작동해주어서 기쁘네요."


 태연하게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는 아자즈와 달리, 사령관은 입이 떡 벌어졌다. 사실 오르카호엔 아직 아자즈가 없다. 그녀의 능력을 활용하기 위해 많은 양의 자원들을 투입했지만 결과적으로 사령관이 본 건 울고 있는 안드바리와 옆에서 그 아이를 달래주고 있는 레오나 뿐이었다. 한동안 창고 블랙리스트에 사령관이 오른 건 덤. 그녀의 능력은 처음으로 본 사령관은 그녀의 이명은 해체자가 아닌 대마법사로 불리는 게 적당하지 않냐고 생각했다.


 "그 연기…뭐야? 그거 뭐냐고?"


 "아주 잘게 가루가 된 약품들을 옮기는 나노로봇들이에요. 초록색 약품은 잠시 피를 멎게 해 주고, 노란색 약품은 조직의 회복을 가속하죠."


 "약물도 만들 줄 안단 말이야?"


 "여긴 약국이잖아요, 인간님. 용기에 효과가 적혀있었어요. 음..."


 갑자기 말하다 말고 아자즈는 티아멧의 대검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잠시만요. 이 검을 잠깐 들고 갈게요. 좋은 원료를 이렇게 썩혀둘 순 없어요."


 "응? 어디가, 아자즈? …아자즈?"


 검의 주인은 본인의 검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사실 그녀를 업어가도 모를 만큼 깊게 잠이 들었다. 아무래도 피를 많이 흘리고 있었는데 약까지 드니 잠이 올만도 했다. 사령관은 자신의 붉게 변한 웃옷 안의 셔츠를 벗고 티아멧의 위에 덮어주었다. 아무래도 피가 잔뜩 묻은 재킷으로 그녀를 덮는 건 좋게 보이지 않았다. 곧 그녀는 셔츠를 안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사령관의 기운이 그녀를 조금 달래주는 것 같았다. 사령관도 힘이 들긴 마찬가지였지만, 주변 상황이 무조건 안전하다고 볼 수 없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눈을 뜨고 있었다.



*****



 30분 정도 지났을까, 아자즈가 약국으로 돌아왔다.


 "하암…너 어디 갔다가 온 거야? 아자즈."


 "저 해변에 있던 불탄 잔해를 뒤져 보고 있었죠. 불탔다고 해도 쓸만한 재료가 있을지 몰라요. 실제로 이걸 찾았어요."


 저 불탄 잔해는 아무래도 사령관의 탈출정이였던 무언가 같았다. 아자즈가 은은한 빨간색 불빛을 내는 직육면체 물건을 내밀었다.


 "이게 뭐야? 난 이런 거 본 적 없어."


 "이거, 신기하게도 여러 전파를 뿜고 있어요. 잠시만요."


 이젠 설명도 없이 시야에서 사라져가는 아자즈가 딱히 놀랍지 않았다. 확실히 오르카호에서도 보지 못한 캐릭터임은 확실했다. 어느새 일어났는지 등 뒤에서 티아멧이 들썩대고 있었다.


 "킁킁…사령관의 옷. 킁킁."


 "티아멧, 일어났어?"


 "예에에에에에? 네. X-00 티아멧! 기상하였습니다!"


 본인이 하던 행위가 부끄러웠는지 하지도 않았던 자기소개를 했다.


 "그게…저...그...이 옷이 그냥…따뜻해서. 아니 아니, 보드라워서 저도 모르게- 어? 사령관, 이걸 왜 사령관이 들고 있어요?"


 말을 이리저리 돌려보다 그녀가 사령관 손 위에 있는 직육면체 물체를 발견했다.


 "이거 포츈 언니께서 준 신호기입니다. 사령관. 위험한 임무가 될 테니까 이걸 들고 가라고 하셨어요."


 신호기라는 말에 사령관의 눈이 커졌다.


 '신호기…라고? 설마 내가 계획했었던 장거리 의사소통 프로젝트가 완료 된 거야? 포츈이 일을 잘한 모양이네.'


 "그런데 여기서 빨간 불빛이 나는 건 처음 봅니다."


 "으잉?"


 콰아아아아아앙쾅 쾅콰아아앙


 갑자기 큰 폭발음이 울리더니, 어느새 철충 여러 마리가 약국을 둘러싸고 있었다.


 "사령관, 제 뒤로 오세요. 제 검으로…? 제 검 어디 갔어요?"


 사령관과 티아멧이 산 넘어 산이란 게 이 상황을 보고 말하는 건가 생각하던 그때, 아자즈가 돌아왔다.


 "자. 티아멧. 당신의 새 무기에요."


 그녀가 크롬으로 가장자리가 도금된 10개의 군청색 반지와 7개의 화살 같이 생긴 검은 막대기들을 내밀었다.


 "이게 뭐예요! 내 검 어디 갔어요?"


 "그 검은 당신이 쓰기엔 너무 커요. 합과 합 사이의 빈틈이 너무나도 클 것 같아서 상대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빠르게 속공할 수 있는 무기를 마련했지요. 티아멧."


 "하지만 난 이걸 어떻게 쓰는지 몰라요! 지금 철충들이-꺅!"


 "그리고 불과 30분 전에 수술한 당신의 어깨로 그 큰 대검을 휘두른다면 아마 어깨가 다시 다칠걸요? 자. 일단 이 반지들을 손가락에 다 끼우세요. 사령관님, 어서."


 어느새 그를 사령관이라고 부르는 아자즈가 반지 몇 개를 내밀었다.


 "어..."


 반지를 끼우다 보니 티아멧의 오른손 약지가 남아있었다.


 "어..."


 "자. 끼워 줄게."


 사령관이 오른손을 살며시 잡고 반지를 끼워주자, 티아멧의 얼굴이 붉어졌다.


 "저...이거 서약식때 반지를 끼워주는 거 같습니-"


 "자. 다 끼웠네요. 티아멧. 이제 이 화살들이 날아갈 궤적을 머릿속에 그린 다음 손가락을 움직여 주세요. 마치 양손에 큰 구슬을 굴리는 거처럼요."


 각 막대기의 중간 부분에 빛이 들어오면서 둥둥 뜨더니, 일제히 슛하고 쏜살같이 흩어졌다.


 퍼버버버버버벅


 둔탁한 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막대기들이 모두 돌아와 티아멧의 주변에서 공전하고 있었다.


 쾅! 콰콰쾅! 콰콰콰쾅! 쾅!


 "주변 적신호…없음. 이게 뭐죠?"


 "아까도 말했듯이 당신의 새로운 무기랍니다. 티아멧. 당신의 연산회로 정도라면 7개의 화살 정도는 동시에 다룰 줄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자, 사령관. 여기 이거요."


 잠시 얼어있는 사령관에게 아자즈가 노란색 매그넘을 건네주었다.


 "이제 탄창을 돌리면 특수한 연막탄이 나갈 거예요. 티아멧씨의 말과 행동으로 봐선 사령관의 안전이 가장 중요한 거 같아서요. 자, 전 다시 티아멧씨의 비행 장치를 좀 빌릴게요. 이것도 고칠 게 많네요."


 사령관은 혹시나 오르카호로 돌아간다면, 함 내의 자원을 모두 들여서라도 해체자 아자즈를 꼭 여럿 생산해야겠다고 다짐하였다.



*****

외로운 사령관 (모음)


저 노래 딱 사령관이 탈출하고 한달 / 티아멧 구출 중에 들어갔어야 하는데 이 노래를 생각 못헸네 ㅋㅋㅋㅋㅋ


일단 늦어서 정말 미안하다! 처리해야 할 학교 과제가 갑자기 늘어나서 말이야. 수요일까지 올리기로 했는데.


사죄의 의미로 이번엔 분량이 만자가 조금 넘어. 한 1.5화 정도 분량이라고 할까. (사실 분량 조절 실패해서 이렇게 된건 안비밀)

이제 주말 까지 한편 더 올라 갈거야. 한동안 이 정도 분량으로 갈려고 하는데 혹시 너무 길거나 하면 끊어 줄게. 넘 길어도 피곤해서 말이야.



역시나 항상 그렇듯이 질문이나 이해 안되는 부분 있으면 바로 댓글 올려줘! 피드백 올려주면 더 고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