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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져 있던 계단은 꽤나 깊은 곳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 캄캄한 지하실에는 간단한 전기시설조차 설치되어 있지 않았고,

때문에 앞은 커녕 내려가는 계단을 바라보기조차 힘들었다.


원형으로 만들어진 지하실의 계단 구조상 소년은 같은 곳을 뱅글뱅글 맴도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몇번이고 소년을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라 고민하게 했다.


하지만 끝없이 이어진 계단의 끝을 보고야 말겠다는 소년의 집착에 가까운 의지는 그의 발걸음을 돌리지 못하게 하였고,

라이터의 불빛에 의존하며 어느덧 계단의 끝에 도착했다.


소년의 눈 앞에는닫혀 있는 철문 하나가 덩그러니 나타났고,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삐걱거리는 손잡이를 돌려 힘겹게 문을 열어젖히자

소년의 눈 앞에는 새로운 광경이 펼쳐졌다.


신전, 소년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마치 신전에 가까웠다.


목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자, 드높은 천장의 한가운데에서부터 푸른 빛이 흘러나와 벽 사이사이가 채워져 있었고,

거대한 원형으로 이루어진 공간에 수많은 석상들이 굳게 서 있었다.


석상은 대부분 금이 가고 이끼가 꼈지만 구체적인 형상은 짐작할 수 있었다.


무언가는 제복차림에 칼을 차고 있는 듯한 여성의 모습이었으며, 

또 다른 무언가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권총 두 자루를 들고 있는 여성의 모습이었다.


이 석상들의 공통점은 모두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는데, 

거대한 신전을 원형으로 둘러싼 수많은 석상들의 가운데에는 한 책상이 놓여 있었다.


그 책상 위에는 [오르카호의 바이오로이드]라고 적힌 초록색의 책 한권,

그리고 [사령관의 일지]라고 적힌 검은색의 낡은 공책 한 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책상 옆에는 신전의 분위기에 맞지 않는 성인 남성의 모습을 한 마네킹에 제복이 단정히 입혀져 있었고,

소년은 호기심에 그 제복을 입어본다.


"켈룩! 콜록!! 우엥취!!!!"


제복은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관리가 되어있지 않았는지를 알려주듯이,

소년이 제복을 입자마자 털어져 나오는 수많은 먼지에 기침을 한다.


소년은 코와 입을 막고 눈을 감은 뒤에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먼지들을 털어내었고,

너무 커서 몸에 맞지 않는 제복을 보며 소년은 괜히 헤실헤실 웃어본다.


너무 큰 탓에 흘러내려 한쪽 눈을 가리는 모자와, 소년의 손목을 아득히 지나 파닥거리는 소매, 

바닥에 끌리지 않으려고 잔뜩 구겨입은 바지, 바닥에 질질 끌리는 겉옷에다가 소년의 콧등과 뺨 이곳저곳에 붙은 밴드,

소년은이 모습을 모친이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하는 상황을 상상하면서 자신이 몰래 들어왔다는 사실을 잊은 채로

지상으로 달려간다.


이곳에서 발견한 책 두권을 끌어안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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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뒤뜰의 나무판자가 들썩이더니 이내 들어올려진 판자 밑에서 제복을 입은 한 소년이 튀어나온다.


아직도 깜깜한 밤이었지마 어느새 비는 그쳐 있었고, 소년은 지하실에서 나오자마자 누군가를 애타게 찾고 있는 

자신의 모친을 발견하고는 달려간다.


"엄망!!!!!!"


소년은 익숙한 목소리를 듣고 돌아보는 모친의 품에 안긴다.


"너 여태까지 어ㄷ...."


하나뿐인 자식을 찾았다는 마음에 안도하면서도 한밤중에 몰래 뛰쳐나간 것에 대해 훈계를 하려던 그녀였지만,

소년이 입고 있던 제복을 보고는 말을 잇지 못한다.


"네가.. 그 옷을...ㅇ..왜..."


소년은 모친의 분위기가 달라졌음을 직감하고는 긴장하며 변명거리를 떠올리려는 도중, 모자 위에 무언가가 뚝뚝 떨어진다.


소년은 그 물체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들어 올리려고 했으나 모친이 소년을 끌어당겨서 

껴안아버리는 바람에 소년은 꼼짝없이 모친의 품 안에 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소년은 모친의 품 안에서 느껴지는 익숙하고도 편안한 향기와 포근함 때문에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멀어지는 의식 중에 들려오는 모친의 울음소리에 소년은 "내가 잘못했구나.. 죄송해요"라는 말을 되뇌이면서 

소년은 곤히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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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소년은 모친의 품 안에서 잠들었다는 기억과는 달리 침대에서 일어났으며 

입고 있던 제복은 옷걸이에 가지런히 걸려 있었고, 옷도 갈아입혀져 있었다.


늦게까지 깨어 있던 것의 반동인지 일어났을 때의 시간은 어느새 오후였는데,

소년은 어젯밤의 일 때문에 좀처럼 마음이 편해지질 않았다.


"으으... 내가 속 썩여서 울었던 게 분명해... 어떻게 말하지..."


소년이 머리를 쥐어싸고 혼란스러워 하는 도중,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고 

이내 소년의 모친이 쟁반 위에 우유와 직접 구운 듯한 쿠키를 올려서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일어났어?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는데 시간 돼?"


양갈래로 머리를 묶은 뒤 핑크색 스웨터를 입고 방에 들어온 모친은 온화한 미소로 말했지만

소년의 마음 속에는 혼날까봐 두려운 마음과 처음보는 모친의 복장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이런 소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년의 옆에 앉은 모친은 책상 위에 올려놓은 쿠키를 하나 집어서 소년에게 건낸다.


"혼내려는 건 아니야, 그냥 진짜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해서 그래."


"...정말루?"


혼내지 않는다는 말이 들리자마자 소년은 안심하였지만, 

받아든 쿠키를 이빨로 갉아먹으면서 표정을 애써 담담한 채로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그래, 솔직히 말해선... 너한테 고마워."


"닁? 왜?"


모친은 잊고 싶었던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듯 잠시 아랫입술을 깨물면서 표정을 찡그렸다.


하지만 이내 한숨을 내쉬면서 담담히 입을 열었다.


"어차피 숨겨도 언젠가는 알겠지, 내가 지금 말하려는 이야기는 내 남편과 나의 이야기이자 네 부모에 관한 이야기다."


소년의 표정은 금세 풀어지며 눈을 똥그랗게 뜨고 집중하기 시작한다.


"말은 잠깐이라고 했지만 꽤나 길어질거야, 따라올 수 있겠어?"


"(...끄덕)"


"이런 점에서는 멋지네, 자.  이리로 와."


모친은 소년을 자신의 무릎 위에 앉힌 후에 매일 밤처럼 밝고 명량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프롤로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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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아 수발 키르케야설 마무리해야 하는데 좀처럼 써지질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