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 뽀끄루와 봉봉 대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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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의 도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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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유령들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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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장! 오르카 유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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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플레이어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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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주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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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아닌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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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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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빛의 무도회가 끝나고 며칠 후. 드라큐리나가 병상에서 일어났다.

  

  “그!러!니!까! 인간! 나는 괜찮다니까!”

  

  드라큐리나의 병이 나았다는 소리를 들은 사령관은 병실 문을 부수듯 박차고 들어가 드라큐리나의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병세가 가볍다 해도 바이오로이드가 병에 걸린다는 초유의 사태에 사령관도 적잖이 당황했었는지 유난을 떨며 드라큐리나의 상황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내 볼은 그만 만져! 도대체 몸살이 났다는 사람의 볼은 왜 만지는 거야!”

  

  사실 상태를 살핀다는 명목으로 드라큐리나의 볼을 조물조물하고 싶었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걱정해 준다는 마음에 드라큐리나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는지 사령관의 집요한 스킨십을 별말 없이 받아주고 있었다.

  

  드라큐리나의 병에 대해 한 박자 늦게 전달받은 라비아타는 오르카 호에 비상을 선포했다. 모든 바이오로이드는 닥터의 허가를 받아야만 외부로 출입할 수 있게 되었고, 오르카 호에 돌아올 때 반드시 바이러스 검사와 소독을 받아야만 했다.

  

  허나 닥터의 연구 결과 외부의 멜퓌스 바이러스는 멸망 전의 약화된 멜퓌스 바이러스보다 훨씬 약해진 상태였고, 오리진 더스트로 어느 정도 강화된, 평범한 인간보다 조금 강화된 수준의 바이오로이드라면 병에 걸릴 걱정이 없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

  

  “사령과안!! 나도 눈사람 만들고 싶어어!!!! 사령과안!!!!”

  

  하늘이 무너진 듯한 LRL의 통곡을 들어야만 했다.

  

  인간 정도의 신체 능력의 바이오로이드라면 충분히 병에 걸릴 수 있다는데 LRL이 밖에 나갈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아니나 다를까 닥터에게 외출 금지 판정을 받았고, LRL은 눈사람을 만들 수 없다는 닥터의 판정에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자신의 앞에서 울고 있는 LRL을 본 닥터는

  

  “나도 밖에 못 나가서 이렇게 연구실에 있는 거 안 보여?! 그렇게 울 거면 오빠 앞에서 울어!”

  

  라는 분노와 억울함이 담긴 포효를 내질렀고, LRL은 사령관실로 자리를 옮겨 이렇게 사령관의 앞에서 통곡을 하는 것이었다.

  

  “알비스도 나가고 안드바리도 나가고 더치도 나가는데 왜 나만 못 나가는 거야! 사령과안! 나도 애들이랑 같이 눈사람 만들고 싶어어!!”

  

  “어이구야. 귀청 떨어지겠네.”

  

  LRL을 안아 들고 어르고 달래고 있자니 사령관실 구석에서 주스를 홀짝이는 코코의 모습이 보였다.

  

  “…너도 못 나가니?”

  

  “네… 닥터 언니가 저도 힘들다고…”

  

  하긴. 화이트쉘을 쓰는 코코가 신체 능력이 높을 필요가 없지. 왼팔에 LRL, 오른팔에 코코를 안아 들었다. 팔에 안긴 채로 과자를 오물거리는 코코가 귀엽다.

  

  “엘라도 나가지 못하고 방 안에 있을 거야. 엘라한테 가볼까?”

  

  엘라의 방에 찾아가니 의문의 조합이 눈에 띄었다. 세띠, 엠프리스, 엘라, 엘라의 머리를 빗겨주는 하르페이아, 드라큐리나, 포이.

  

  드라큐리나와 포이는 의외다. LRL과 코코를 팔에 안고 들어오는 사령관을 본 엠프리스가 손을 들어 인사했다.

  

  “야호, 사령관!”

  

  “의외의 인물들이 눈에 띄는데. 다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LRL과 코코를 내려놓자 포이가 살금살금 기어와 사령관에게 달라붙었다. 사령관이 달라붙는 포이를 팔로 밀어내며 자리에 앉자 하르페이아가 웃으며 설명했다.

  

  “엘라는 멜퓌스 바이러스 때문에 밖으로 나가지 못하니까. 다 같이 엘라랑 놀아주는 중이야. 드라큐리나도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소리를 듣고 내가 불러왔어. 포이는… 그러고 보니 포이는 왜 여기 있는 거야?”

  

  “냐하핫! 글쎄요~. 제가 왜 여기 있을까요~? 주인님이 여기 오실 줄 알고 한발 먼저 도착해 있었다거나?”

  

  그렇게 말한 포이가 사령관의 다리 위로 올라타 사령관의 가슴팍을 손가락으로 쓸며 교태 어린 소리를 내었다. 하르페이아가 황급히 LRL과 코코, 엘라의 눈을 가렸다. 사령관이 손가락을 튕겨 포이의 이마를 가볍게 때렸다.

  

  “이 녀석. 때와 장소를 가리거라.”

  

  평소 같았으면 곱게 물러나지 않는 포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애들 앞이라는 자각은 있는지 얌전히 물러났다.

  

  “자. 이렇게 모인 김에 뭐라도 하고 놀까? 뭐 가지고 놀 거 있니, 엘라?”

  

  사령관의 말에 엘라가 해맑게 웃으며 보드게임을 꺼내 들었다. 항상 너만 이긴다는 엠프리스의 지적에 얌전히 다시 집어넣었지만.

  

  “그렇다면 젠가는 어떤가요?”



  *

  가볍게 시작했던 놀이는 저녁 시간까지 이어졌다. 사실 난장판 그 자체였다. 남들이 젠가를 뽑을 때 몰래 진동 능력을 일으키는 드라큐리나, 반칙하지 마라며 달려드는 엠프리스, 이겼다고 기뻐 날뛰는 LRL, 그때를 틈타 교태를 부리는 포이, 포이를 막는 사령관, 조용히 사령관의 옆자리를 차지한 코코.

  

  포이가 사령관에게 교태를 부릴 때마다 하르페이아는 황급히 엘라의 눈을 가렸고, 엠프리스는 자신이 젠가에서 계속해서 지는 이유를 심도 있게 고민했다.

  

  “어… 벙어리장갑이 달린 펭귄 잠옷을 입고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

  

  세띠의 지적에 엠프리스는 거울로 벙어리장갑 일체형인 펭귄 잠옷을 입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았고, 경위를 깨달은 후 모든 것을 잃은 표정을 지었다.

  

  저녁 먹을 시간이 되고 모두 식당으로 향했다. 방금 밖에서 돌아와 눈에 젖은 몸을 씻고 소독하거나 밖에서 늦게까지 있겠다며 도시락을 싸간 사람이 많아 식당은 평소와 달리 제법 한산했다.

  

  “좋아. 이렇게 한산하면 소완에게 호화로운 음식을 만들어 달라고 할 수 있겠군.”

  

  “그럴 줄 알고 미리 준비했사옵나이다.”

  

  LRL을 보며 장난스레 말한 것을 들었는지 내 뒤에서 조용히 소완이 나타났다.

  

  “제발 이렇게 등 뒤로 몰래 나타나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경망스레 돌아다녀 주인님의 심기를 거스르는 행동을 할 수는 없지요. 외출하지 못하여 오르카 함 내에 남아계신 분들을 위해 특식을 준비했습니다. 부디…”

  

  그렇게 말한 소완이 우리를 어딘가로 이끌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과연 특식이라고 할 만한, 평소 보던 음식부터 이름도 모를 산해진미가 펼쳐져 있었다. LRL과 엠프리스가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달려나갔다. 접시에 음식을 적당히 덜어 테이블에 앉으니 반대편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여, 메이.”

  

  “소란스러운 등장이네.”

  

  “시끄러운 등장이긴 하지. 근데 왜 그렇게 표정이 안 좋아?”

  

  사령관의 말에 메이가 코웃음을 치며 그의 말을 무시했다. 무언가에 삐진 게 틀림없군.

  

  “설마 나를 찾았던 거야?”

  

  순간 메이의 뺨이 살짝 붉게 달아올랐다. 맞나 보군.

  

  “조금 용건이 있어서 찾아다녔어. 하지만 아무 데도 안보이더라고.”

  

  메이가 조금 투덜거리며 포크로 스테이크를 쿡쿡 찔렀다.

  

  “사령관실에도 없고, 콘스탄챠도 모른다고 그러지, 아무리 찾아도 안보이더니 너는…”

  

  “미안해. LRL이 밖에 나가지 못해서 속이 많이 상해했거든. 그래서 밖에 나가지 못하는 아이들과 같이 놀았어. 나는 무슨 이유로 찾은 거야?”

  

  용건을 묻는 사령관의 말에 스테이크를 찌르던 메이의 손가락이 멈추었다.

  

  “그! 아직 슈퍼 문은 조금 시간이 남았지만, 벌써 달이 크게 떴다고 하더라고!”

  

  “아, 그러고 보니 아침에 누가 와서 그러던데. 달이 크게 떴다고. 그게 왜?”

  

  “그… 어제 누가 바다에서 달을 보는데 그게 예뻤다고 해서…”

  

  메이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다 보러 가자고…”

  

  “엉?”

  

  얼굴을 빨갛게 만들며 고개를 숙인 메이가 우물쭈물하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같이… 바다 보러…”

  

  “아 메이로구나!”

  

  저 멀리서 음식을 고르던 LRL이 고개 숙인 메이를 보며 달려 나왔다.

  

  “후하하! 폭염의 아이야! 이 사이클롭스 프린세스께서 친히 네게…”

  

  “뭐!”

  

  “히익!”

  

  느닷없는 LRL의 등장에 말이 끊긴 것이 화가 났는지 메이가 얼굴을 붉힌 채로 LRL에게 소리 질렀다. 설마 메이가 소리 지를 줄은 몰랐는지 놀라며 물러난 LRL이 의자 뒤로 숨어 고개만 내밀며 메이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닥… 닥터가 메이 언니도 그 무슨 바이러스에 감염될 가능성이 있으니까 밖에 나가지 말라고… 나는 참치 먹으러 갈게!”

  

  그 말을 남기고 닥터는 접시를 들고 서둘러 사라졌다.

  

  남겨진 메이는 포크를 들고 멍하니 LRL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지금 LRL이 뭐라고 했지? 닥터가 내가 멜퓌스 바이러스에 감염될 확률이 높다고 했다고?

  

  “바다…”

  

  “메이?”

  

  테이블을 박차고 일어난 메이가 사령관의 목소리에도 대답하지 않고 그대로 식당을 나섰다. 덜컹거리는 식당 문을 바라본 사령관이 머리를 긁적였다.

  

  “방금 메이 울고 있었나?”



  *

  작은 창으로 달빛이 들이쳤다.

  

  침대 위에서 무릎을 끌어안은 메이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바다…”

  

  사령관과 바다가 보고 싶었다. 그저 그것뿐이었는데.

  

  메이가 창밖을 내다보았다. 세상이 달빛으로 푸르게 물들었다. 달빛에 반짝이는 파도가 해변에 몰려와 하얗게 부서지며 물러갔다.

  

  그저, 같이 바다를 보고 싶을 뿐이었는데.

  

  순간 울컥 화가 치솟았다. 이름도 어려운 이상한 바이러스 때문에 바다도 보지 못하고 이게 뭐 하는 거야?

  

  몰래 빠져나가자.

  

  사령관과 같이 바다를 보지 못하는 것은 조금 아쉽지만, 닥터에게 외출 금지 명령을 받은 자신과 같이 바다를 보러 가주지는 않을 것이다.

  

  혼자서라도 보지 않으면, 이 우울한 기분이 풀리지 않겠어.



  *

  “으그그극…”

  

  어두운 방에서 사령관이 기지개를 켰다. 오늘은 그래도 일이 별로 없어서 다행이군.

  

  사령관이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메이가 바다 이야기를 하긴 했는데. 달이 예쁘니 바다에서 보자는 이야기였을까?

  

  푸른 달빛이 잘게 부서지며 바다 위에서 빛났다. 바다가 해변을 쓸어가기 위해 파도를 뻗었다. 뻗어진 파도가 새하얗게 부서졌다. 거품이 되어 덧없이 사라진 인어공주처럼.

  

  “음?”

  

  눈처럼 새하얀 모래사장 위를 누군가가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작은 키. 푸른 달빛 속에서도 선명하게 빛나는 붉은 머리카락.

  

  “…메이?”



  *

  “아, 귀찮아.”

  

  피닉스가 터벅터벅 복도를 걸었다.

  

  “우리 간부 숙소 쪽에도 정수기 하나 설치해주면 안 되나? 새벽에 목마를 때마다 이렇게 걸어가는 거 너무 귀찮은데 진짜 사령관에게 소원수리라도 넣어야 하나…”

  

  투덜거리며 복도를 걸어가는 피닉스의 눈에 익숙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그림자 속에 숨어 어딘가를 살피는 모습. 브라우니다.

  

  “관등성명.”

  

  피닉스의 짧은 한마디에 브라우니가 피닉스를 바라보는 것보다 빠르게 경례를 올린다.

  

  “일병! 브!라!우!니!”

  

  불침번인가? 하지만 불침번을 서는 곳은 이곳과 한참 떨어져 있다. 얘는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너 불침번이냐? 불침번 서는 구역 한참 벗어난 곳에서 뭐 하는 거야. 너 이거 탈영인 거 아냐?”

  

  “죄송합니다!”

  

  “임펫이 편하게 풀어주나 보다? 니 위로 내 밑으로 한번 집합시켜볼까? 날도 추운데 애들 싹 다 불러서 눈밭에서 땀 한번 흘려볼까?”

  

  “아닙니다!”

  

  “왜 여기 있었는지 설명해. 내가 납득 못하면 너는 내일 제설 작업 숟가락 들고 할 줄 알아라.”

  

  피닉스의 서슬 퍼런 눈빛에 브라우니가 마른 침을 삼켰다. 몇 번을 고민하던 브라우니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방금 저기 밖으로 메이 대장님께서 나가시고… 그 뒤로 사령관님이…”

  

  “뭐?! 그걸 빨리 말했어야지!”

  

  피닉스가 오르카 호 입구 쪽으로 달려나갔다. 과연 저 멀리 메이와 그 뒤를 쫓는 사령관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피닉스가 뒤를 바라보니 자신의 뒤를 쫓아온 브라우니의 모습이 보였다.

  

  “오늘 본 거 다 잊어버리고 조용히 돌아갈래, 아니면 탈영으로 부대 소집할까?”

  

  “일병! 브!라!우!니! 부대 복귀하겠습니다!”

  

  그렇게 오르카 호가 떠내려가라 쩌렁쩌렁 외친 브라우니가 복도 저 멀리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피닉스가 조심스레 사령관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이렇게 재밌는 일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쳐 지나갔다.

  

  “바다…”

  

  바닷물이 달빛을 삼키며 출렁거렸다. 바다 사이로 보이는 유빙이 어둠을 받아 검게 빛났다.

  

  메이의 발치에서 무언가 반짝 빛났다. 메이가 허리를 숙여 반짝이는 무언가를 주웠다. 투명하고 반짝이는 무언가. 보석일까, 파도에 마모된 유리인 걸까?

  

  메이가 반짝이는 돌을 들어 달을 바라보았다. 달이 파편처럼 빛났다. 아름다운 광경. 될 수 있으면, 사령관과 보고 싶었는데.

  

  “사령관…”

  

  “왜 찾아?”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창백해진 얼굴로 뒤를 바라보았다.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랑하는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사령…관…?”

  

  “분명 닥터가 외출 금지 명령을 내렸던 것 같은데, 대장이 모범을 보이지 못하고 이런 곳에 나와 있어도 되는 건가?”

  

  사령관이 메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혼내려는 건가? 커다란 손이 메이의 머리를 향해 뻗어졌다. 눈을 가리는 손의 그림자에 메이가 두 눈을 꼭 감았다.

  

  사령관의 손이 메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메이가 살짝 눈을 뜨자 사령관이 허리를 숙여 메이와 눈을 맞췄다.

  

  “뭐, 그래도 이왕 바다를 보러 왔으니 한번 구경이나 할까?”

  

  사령관이 장난스레 웃었다. 울컥 화가 난 메이가 사령관의 정강이를 발로 걷어찼다. 상당히 세게 걷어찼는데도 사령관은 멀쩡한 듯했다. 오히려 걷어찬 메이가 발이 아픈 듯 발을 감싸 쥐고 콩콩 뛰었다.

  

  메이와 사령관이 잠시 해안가를 거닐었다. 새하얀 설원 같은 모래사장이 발밑에서 사박사박 밟히는 느낌이 들었다.

  

  “저기, 바위 위에서 보면 더 예쁠 것 같지 않아?”

  

  메이가 해변 구석에 놓인 바위를 가리키며 뛰어갔다. 사령관도 메이를 따라 바위로 다가갔다. 생각보다 높은 바위다. 메이가 올라갈 수 있으려나.

  

  “메이. 떨어질 수 있으니까 조심해.”

  

  “사람을 어디까지 무시하는 거야. 아무리 나라도 이 정도는…”

  

  그때, 바위 끝을 잡는 메이의 손가락이 미끄러졌다. 순간 메이의 몸이 공중에 붕 떴다. 메이가 떨어지는 것을 본 사령관이 재빨리 달려가 그녀를 받아냈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메이가 멍하니 사령관을 올려다보았다.

  

  가슴이 뛴다.

  

  붉게 달아오르는 얼굴이.

  

  속절없이 뛰는 이 심장이.

  

  더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다는 듯이.

  

  아, 안 되겠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나는 이 남자에게 빠져버렸어.

  

  “사령관… 나는, 나는 사령관이…!”

  

  “쉬잇.”

  

  달아오른 마음의 한마디를, 떨리는 입술을 사령관이 손가락으로 막는다. 메이를 안은 사령관이 재빨리 바위 뒤의 그림자로 몸을 숨겼다.

  

  “페로가 있는 것 같은데.”

  

  또 잔소리를 듣는 건 사양이지. 이틀 연속 잔소리는 버텨낼 자신이 없어.

  

  메이를 내려놓은 사령관이 쓰게 웃으며 메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안해. 바다 구경은 여기까지인 것 같네. 페로한테 들키면 안 되니까, 나는 먼저 들어가 볼게.”

  

  무어라 말하려는 메이를 두고, 사령관이 빠른 속도로 달려나갔다. 파랑새의 깃털처럼. 모래사장에 발자국 하나도 남기지 않고. 마치 무언가에 쫓기는 듯이.

  

  “사령관…”

  

  쓸쓸한 달빛을 받으며, 메이가 할 수 있는 것은 떠나간 그를 멍하니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

  피닉스가 손톱을 깨물었다. 오르카 호의 그림자에 숨어있던 피닉스는 사령관이 자신의 옆을 스쳐 지나갈 때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홀로 돌아오는 메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피닉스가 우물쭈물 홀로 돌아오는 메이를 맞이했다.

  

  “…피닉스?”

  

  “어, 오랜만이에요. 메이 대장.”

  

  한참을 생각했다. 이걸 말하는 게 맞을까? 그저, 모르는 채 넘어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렇지만.

  

  그렇지만 메이 대장이 너무 가여운걸.

  

  “저… 대장? 방금 사령관 말인데요…”

  

  “알아.”

  

  “네?”

  

  예상외의 메이의 반응에 피닉스가 숨을 삼켰다.

  

  “페로가 없었던 거, 나도 안다고.”

  

  그 말을 남긴 채 메이는 피닉스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작은 눈물방울 하나만을 남긴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