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자신의 개인 숙소에 들이닥쳐온 사령관을 보고 메이는 적잖이 곤혹스러워했다.


사실, 보통 개인 숙소를 배정받을 정도의 권한을 지닌 지휘관이나 부관급 개체들의 개인실 청소는 메이드나 각 부대의 하급 바이오로이드들이 도맡아서 하고 있었다. 물론 예외는 몇 있었다. 호드의 칸은 메이드들이나 묘하게 음흉한 표정의 탈론페더가 들어오려고 해도 뿌리치고 자신이 직접 하는 편이었고, 발할라의 레오나는 개인 공간을 남에게 맡기기 싫다는 이유로 개인 숙소에 함부로 들어오는 것조차도 꺼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스틸라인 못지 않게 수직적인 분위기의 둠 브링어는 예외가 아니었다. 사령관에게 이미 소녀심과 심약한 부분이 다 탄로났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여전히 둠 브링어의 대장이었다. 자신의 권위와 카리스마를 세우기 위해 어느 정도는 그런 대우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었고, 멸망의 메이는 자신의 위신을 높여주는 접대를 마다할 개체가 아니었다. 하지만, 메이도 레오나처럼 자신의 사생활이 듬뿍 묻어나오는 개인실의 청소를 지니야들이나 면식도 없는 배틀 메이드의 바닐라에게 맡기는 것은 싫었다. 그리고, 그런 복잡하면서도 모순적인 여자의 마음을 완전히 만족하는 개체가 바로 그녀의 부대에 있었다.


바로 나이트앤젤이었다.


메이를 잘 알고 있어서 사생활을 공유하더라도 상관이 없고, 아무리 틱틱대더라도 어디까지나 부관이었다. 메이 다음가는 지휘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방청소나 맡기는 것을 나이트앤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되긴 했으나, 의외로 흔쾌히 받아들여줬다.


"하~ 진짜 생긴 것처럼 땅꼬맹이같아서는... 혼자선 방청소도 못해요? 내가 보모를 하러 온 건지, 부관을 하고 있는 건지..."

"야! 말 다했어? 내가 방청소 하나 못해서 이러는 줄 알아? 우리 부대 특성상 내 명령권이 느슨해지면..."

"네~ 네~ 그러시겠죠~"


...물론 메이의 의도를 다른 식으로 해석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결과는 같으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처음에는 군말없이(어디까지나 나이트앤젤 기준으로) 청소를 해 주던 나이트앤젤도 거의 일주일도 안 되어서 막혀버리는 화장실의 수챗구멍에 질색을 하고 말았다. 잠까지 줄여가면서 관리하는 메이의 자랑이었지만, 나이트앤젤에게는 어디까지나 악마의 붉은 지렁이 뭉치였다.


"아니, 대장! 이건 좀 심한거 아닌가요? 같은 여자니까 이해해주는것도 한도가 있지, 머리 만지는 시간을 좀 줄이든가!"

"같은 여자니까 더 이해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부관? 내가 얼마나 신경쓰고 있는지 뻔히 알면서! 손질에 쓰는 시간을 줄인다는 그런 타협은 절대 못해!"

"아, 때려쳐요! 내가 대령 짬 먹고 수챗구멍이나 들여다보고 있어야 해? 최소한 화장실은 대장이 하든가!"


그 말과 함께 문을 세차게 닫고 폭풍처럼 떠나버린 나이트앤젤이었다. 이번 주는 혼자서 해야 하나 싶었는데, 뜬금없이 사령관이 강습한 것이었다.


"나이트앤젤이 부탁하던데, 뭐 이것저것 옮길 게 많다면서? 뭐, 겸사겸사 간만에 이야기도 좀 하고..."

"그, 그~ 그! 조, 조금만 기다려!"


사령관은 닫힌 문 너머로 들리는 쿠당탕탕! 하는 소음과 이따금씩 들리는 메이의 꺄아악! 하는 새된 비명 소리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먼저 치우고 있는건가? 내가 도와주러 왔는데? 그렇게 컵떡볶이 두 개를 조리할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메이는 가쁜 숨을 가다듬으며 방문을 열었다.


"그... 들어와! 바, 바닥 청소는 내가 할 테니까, 사령관은... 채, 책상 정리만 좀 도와줘!"


어색하게 방에 들어서자, 급하게 뿌린 체리향 방향제 냄새가 비강을 간질였다. 그리고, 살풋 묻어나오는 메이 특유의 새콤한 체취가 희미하게 감돌고 있었다. 평소에는 메이를 놀리는 입장이었지만, 크게 당황하는 메이를 보니 사령관도 덩달아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음, 아... 알았어!"


메이가 방구석에 충전된 청소기를 집어들자, 사령관도 책상에서 작업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어지러이 쌓여 있는 두꺼운 공중전 전술 교본들을 차곡차곡 쌓아 분류해두자, 교본들이 치워진 빈 공간에서 뭔가 카테고리가 다른 듯한 발랄한 표지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어디다가 분류해 둬야 하지? 제목이... <연애의 정ㅅ...?"

"와와와와와와와와!"


귀신같이 끼어든 메이는, 사령관의 손에서 책을 빼앗아들고 등 뒤에 감췄다. 콧잔등과 광대까지 달아오른 메이는, 쏘아붙이듯 말했다.


"멍, 멍청아! 남의 물건을 함부로 보면 어떻게 해? 채, 책상은 그냥 내가 할테니까 청소기나 돌려!"

"아, 미안..."


허둥대는 메이에게서 청소기를 패스받고 사령관은 딱딱하게 몸을 돌려 안쪽으로부터 바닥을 밀기 시작했다. 아무리 주기적으로 청소한다고 하더라도 메이의 길고 붉은 머리카락은 눈에 띄었다. 바닥 모서리 틈새에 끼인 가닥을 잡아당기니 감탄스러울 정도로 길게 뽑혀져나오는 것을 보고 사령관은 메이도 재난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샬럿이나 미호가 자고 갈 때에도 비슷하면서도 특징적인 흔적을 남겼기 때문에, 이제 와서 크게 놀랍진 않았다.


그리고, 그런 사령관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어...? 이건...?"


청소기를 돌리다 말고 사령관은 그 생소한 것을 두 손가락으로 집어들었다. 그것 역시 털이었으나, 지금까지 봐온 머리카락과는 달랐다. 뽑혀져 나온 단순한 한 가닥임에도 불구하고, 비단결같이 윤기가 흐르면서도 집어들면 자신의 무릎께까지 늘어지는 메이의 붉은 모발과는 이질적이었다.


그것은 머리카락과 같은 색이면서도 길이가 현저히 짧고, 심이 꽤 굵으면서도 질감이 거칠거칠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메이에게 없는 특징이 하나 있었다.


"메이가... 곱슬이었나?"


털을 주워들고 의문에 빠져있던 사령관은, 어느새 자신 옆에서 어깨를 부들부들 떨고 있는 메이를 눈치챘다.


"...나가."

"어?"

"나가라고오오오오오오오오!!!"

"아, 아얏! 메이야, 왜 그래!"

"꺼져! 꺼져! 멍청이! 바보! 빨리 내 눈앞에서 사라져버리라고!!!"

"어, 어어, 어엇!"


자신의 머리카락보다 붉어진 얼굴에는 눈물이 잔뜩 고여있었고, 그렇게 사령관의 허리께와 정강이에 고무망치같은 주먹과 수수깡같은 발길질이 쏟아졌다. 소나기처럼 퍼부어지는 처녀의 침범당한 상처로부터 오는 타격에 사령관의 발이 한발짝, 두발짝씩 방문을 향해 나아갔다. 홱! 하고 방문이 열리고, 메이는 사령관의 엉덩이를 발바닥으로 힘껏 밀어내고 문을 세게 닫았다. 문이 비명을 지르며 쾅! 하는 소리가 울렸다. 오늘로 두 번째였다.


난데없이 쫓겨난 사령관은 여전히 영문을 모른 채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직 엄지와 검지 사이에 끼워져 있는 사건의 실마리를 유심히 보던 사령관은, 문득 그 정체를 도출해버리고 말았다. 거의 매일 보는 것이었음에도, 장소가 바뀌니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었다.


후웅!


"허억?!"


조심스럽게 그 귀한 기념품을 주머니에 넣으려던 사령관은, 갑자기 방문을 세게 열고 태풍처럼 나온 메이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짝!


"아얏!"


쾅!


사령관을 손등을 후려쳐 목적한 물건을 회수한 메이는, 나왔을 때처럼 세차게 들어가고 말았다. 과연 둠브링어의 대장다운 강습과 후퇴였다. 그리고, 숙소의 방문은 오늘로 세 번째로 비명을 질렀다.


사령관은 묘하게 아쉬운 여운을 남기며 그렇게 문 앞에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병신같은 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