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 https://arca.live/b/lastorigin/1507448 




 이란, 반다르아바스는 3월임에도 한여름같이 더웠다. 바닷가라면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 덕분에 온도가 낮아져야 했지만 중동의 바다는 다른 바다와는 달랐다. 시원한 푸른색의 바닷바람은 겨울의 온풍기 앞에 서있는 것 같이 뜨거웠다.

 반다르아바스에 있는 이란 최대의 항구, 샤히드 라자이 항에는 한 컨테이너선이 정박하고 있었다. 3천 TEU정도의 작은 컨테이너선이었지만 오랫동안 이어진 미국의 경제재제로 인해 이정도 선박도 항구에서 보기 힘든 실정이었다.

 먼 옛날, 샤히드 라자이 항은 컨테이너로 가득차 있었다. 수많은 배들이 호르무즈 해협을 드나들었고 이란을 거치는 대부분의 배는 샤히드 라자이 항을 들리곤 했다. 하지만 지금의 샤히드 라자이 항은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쓴지 오래된 크레인은 녹슬어 언제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고 얼마 없는 컨테이너들은 방치되어 원래의 색과 적혀있던 해운사명들을 알아볼 수 없게 되어있었다.

 그런 항구에 정박중인 컨테이너선의 앞에는 배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산타 마리아. 스페인어로 된 이름이었다. 그렇다고 이 배가 스페인 국적선이라는 것은 아니었다. 산타 마리아는 파나마의 국적선이었고 파나마의 배가 모두 그렇듯, 편의를 위해 파나마에 등록을 해놓은 타국의 배였다.

 표면적으로는 파나마의 해운사인 엘 마르 아줄의 배였지만 엘 마르 아줄 역시 국적이 파나마로 되어있을 뿐인 타국의 간판회사였다. 위로 몇 개의 회사를 거치면 하나의 회사가 등장한다. 블랙리버. 이 배는 블랙리버가 해외에서 공개적으로 옮길 수 없는 화물을 옮기기 위한 배였다.

 미국 회사가 사실상 소유한 배가 미국의 감시에서 벗어나 이란에 들어올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이란 역시 자신들에게 필요한 물자를 가져오는 배를 마다할 리가 없었다. 블랙리버의 배였지만 이란에 내린 짐은 거의 의료물자와 미제 식료품들이었다. 정확히는 바이오로이드 제조사인 블랙 리버의 생산품이 아닌 블랙리버의 모회사인 마고 인터네셔널 그룹에서 만든 제품들이었다.

 블랙리버는 언제나 그렇듯, 모회사의 더럽고, 하기 싫은 일을 도맡아 하는 곳이었다.


 엘 마르 아줄의 구스타포 하멜은 배의 선교 난간에 기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더운 날씨 때문에 안그래도 뜨거운 담배연기는 더욱 불쾌하게 느껴졌다. 담배가 고픈 것이 아니었다면 이렇세 바깥에서 더운 이란 날씨에 화를 낼 필요도 없을 것이었다.

 배는 어째서 시동을 거는데에 이토록 시간이 걸리는 것이었을까. 물건을 내리고 하루밤을 반다르아바스에서 보내고 출발하려는 참이었지만 선장은 출발까지 2시간이 남았다는 말을 전해왔다. 일리노이 출신인 하멜은 더위에 익숙하지 않았다. 이제는 파나마인인 그였지만 여전히 적도 근처의 무더위를 견딜 수 없었다.

 그는 보기도 싫은 바다에서 눈을 돌려 배를 바라보았다. 아직 내려야 할 컨테이너가 가득한 배의 갑판에는 총을 든 몇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들은 이란에 와서 경계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페르시아 만과 그곳에서 이어지는 아라비아해는 전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바다였다. 끊임없이 전쟁하는 주변국들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해적들은 아직도 그곳을 지나는 배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10명의 용병과 20기의 고블린은 그런 이유로 배에 타고 있던 것이었다. 그들은 이 배에 있는 유일하게 블랙리버에게 직접 고용이 된 자들이었다. 블랙리버가 자신들의 화물을 남들의 손에 맡길 리가 없었다.

 이렇게 대놓고 블랙리버가 관여한 배를 정부가 눈치 채는게 당연하다 생각할지도 모른다. 뭐,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미 미국 정보부서는 블랙리버가 타국적선을 이용해 경제제재중인 나라에 물자를 공급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블랙리버 역시 정부가 자신들의 행위를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멜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호르무즈 해협에 정박중인 군함에서 보낸 드론이 지금 자신들을 관찰하고 있거나 인공위성으로 이 배를 실시간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미국이 엘 마르 아줄을 건드리지 않는 것은 이 배가 이란에 내리는 화물이 군사물자가 아닌 평범한 공산품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의혹만으로 제재하기에는 미국에게는 명분이 없었고 작은 배에는 군사력을 동원해 막을 만한 가치도 없었다. 경제재제라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실질적 행위가 아닌 협박에 가까운 것이었으니까.

 담배 액상이 다 떨어지자 담배연기에는 탁한 맛만 났다. 조금 더 담배를 피우고 싶었던 하멜이었지만 그 이상으로 더운 곳을 피하고 싶었다. 담배를 주머니에 넣은 하멜은 선교 안으로 들어갔다. 담배를 피운 것이 후회될 정도로 시원한 공기가 하멜을 맞았다. 몸을 적신 땀이 전부 사라지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운항실은 빵빵한 에어컨이 이름 그대로 쾌적한 공기를 유지해주고 있었다. 하멜은 운항실 한켠에 있는 정수기로 걸어가 컵에 시원한 물 한잔을 따랐다.

 “선장, 출발까진 아직도 먼 거요?”

 선장은 대답대신 어깨를 으쓱였다. 그는 대답할 것도 없었다. 벽에 걸어놓은 그물침대에 누워있는 그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1시간만 기다리십쇼. 출항허가는 났으니 엔진이 돌아가는대로 출발할 겁니다.”

 대답을 대신해준 것은 자리를 지키고 있던 1등 항해사였다. 하멜은 이번이 첫 출항인 신입이 아니었다. 삶의 대부분을 바다위에서 보낸 뱃사람이었다. 배가 출발하기까지는 얼마나 걸리는 지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그저 이 더위가 답답할 뿐이었다. 하멜은 물을 마셔 입을 적시며 자리에 앉았다.

 “운항실에 TV라도 있었음 좋았을 것을.”

 선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휴게실에는 어디서나 미국 방송을 볼 수 있는 TV와 인터넷이 되는 컴퓨터가 있었지만 선교는 일을 하는 곳이라는 이유로 그런 것들이 하나도 없었다. 업무상 이유로 이곳에서 벗어나기 힘든 하멜에게는 괴로운 일이었다.

 “저희야 선사에서 달아준다면야 마다할 이유가 없죠.”

 선장은 책을 보면서 말했다. 그는 배에서는 읽으면 안될 거 같은 타이타닉을 다룬 소설을 읽는 중이었다. 하멜은 그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조합과 여러가지가 얽힌 관계였기 때문에 서로 간섭하기가 어려운 관계였다.

 -산타 마리아호, 산타 마리아호!

 무전이 들려왔다. 아랍 억양이 섞인 영어였다. 항구에서 전할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여기는 산타 마리아호. 무슨 일인가?”

 -현 시간부로 출항을 취소한다. 현 위치에 대기하라!

 “다시 말해주기 바란다. 출항을 취소한다는게 무슨 말인가?”

 1등 항해사는 당황하며 말했다. 선장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무전기로 걸어갔다.

 “산타 마리아호의 선장, 토마스 그레스손이다. 현재 무슨 문제가 있는 건가?”

 -아무튼 현 위치에 대기하라!

 무전 너머의 목소리는 막무가내로 말하고 있었다. 선장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대기를 하라는 것은 이유가 있다는 것 아닌가? 대체 뭐가 문제지?”

 -현 위치에 대기하라!

 녹음기를 튼 것인가 의심될 정도로 상대는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더 이상 말을 할 이유가 없었던 선장은 무전기를 내려놓았다.

 “선장님, 서류쪽에서 문제가 있던 걸까요?”

 1등 항해사는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물었다.

 “쓸데없는 이유를 빌미로 우리를 좀 더 붙잡아들려는 속셈이지. 언제든 출항할 수 있도록 준비해놔. 빌어먹을 이란 놈들. 물건으로 가득한 배를 쉽게 보내주지 않겠다는 거지.”

 오랜 경제재제로 이란의 경제는 파탄이 났고 서구권에서는 당연하다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지 못하게 되었다. 언제 어디서나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사치인 곳이었다. 그런 나라가 자신들이 원하는 물품으로 가득한 배를 침만 흘리며 바라볼 리가 없었다.

 -경비팀이다. 현재 정체불명의 차량이 우현에서 접근중. 확인 바란다.

 다른 무전기가 울렸다. 토마스는 무전기와 쌍안경을 양손에 들고 창가로 달려갔다.

 “용병들 전원 우현에서 대기하라. 항구에서 출항을 취소했다.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하멜은 선장의 뒤에 서서 항구를 바라보았다. 멀리서 차들이 먼지를 흩날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것을 본 그는 운항실을 나가 갑판으로 향했다.


 “들어가십시오! 이곳은 위험합니다!”

 용병의 외침이었다. 하지만 하멜은 그의 말에는 아랑곳 않고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알겠지만 이 배에는 블랙리버의 화물이 실려있어. 그러면 지켜야지 않겠나?”

 난간 뒤에 몸을 숨긴 그는 슬쩍 항구쪽을 바라보았다. 도로 위에 멈춘 세대의 차에서는 초록색 베레모를 쓴 녹색의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우르르 내렸다.

 “씨발, 혁명 수비대다.”

 혁명 수비대. 이란의 군대중 하나로 이란의 지도자인 라흐바르의 친위대나 다름 없는 조직이었다. 그런 그들이 이 배에 찾아온다는 것은 단순한 서류업무를 위함일 리가 없었다. 그들은 단순히 말로 해결할 생각이 없다는 듯 총을 들고 있었다.

 -이 배는 엘 마르 아줄의 소유물이다! 당장 물러나라!

 선장의 방송이었다. 하지만 혁명 수비대는 그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말로는 통할 상대가 아니었다.

 “거기 멈춰서라!”

 용병들이 일제히 일어나 총을 겨누며 외쳤다.

 “가까이 오면 사격하겠다!”

 혁명 수비대는 가만히 서있지 않았다. 그들 역시 용병들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무력으로라도 배에 오르려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무력을 사용하고 싶지 않다! 우리를 배에 타게 해주면 모든게 해결된다!

 혁명 수비대원 한명이 확성기를 들고 외치고 있었다. 머리와 수염이 회색인 그는 나이가 들어보였고 수비대원 중 가장 높은 계급처럼 보였다. 하멜은 다시 몸을 숙여 난간 뒤로 몸을 피했다.

 “용병, 이 배는 블랙리버의 소유다.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화물을 지켜야 한다, 맞지?”

 하멜을 바라본 용병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원 사격!”

 총성이 조용한 항구에 울러퍼졌다. 순식간에 수백발의 총탄이 서로 오갔다. 혁명 수비대의 상황은 알 수 없었지만 고블린 몇기가 총에 맞고 쓰러진 것이 보였다. 여기저기서 총에 맞아 스파크가 튀겼고 총성은 모든 소리를 집어삼켰다.

 총성이 멎은 건 고작 30초 뒤였다. 여기저기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하멜씨, 아무래도 이 배를 지키는 건 무리같군요. 전원 사격 정지!”

 용병은 난간을 기대어 앉으며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는 상처 하나 없었다. 하멜은 떨어진 탄피를 보았다. 그 탄피는 일반적인 탄피와 다른 모양이었다.

 -미국인들! 항복해라!

 확성기의 소리가 들리자 용병은 양손을 들었다. 하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혁명수비대는 배에 붙은 계단을 통해 배에 오르려 하고 있었다. 혁명수비대가 있던 곳에는 몇구의 시체가 누워있었다.

 배에 오른 혁명수비대는 긴장한 표정으로 총을 겨누고 있었다. 용병들은 분한 눈빛으로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웃으며 계단을 오른 남자가 있었다. 확성기로 소리를 지르던 군인이었다.

 “미국인들은 돈 때문에 싸우지. 죽으면 돈을 못받으니 목숨을 걸고 싸우지를 못해. 안그런가?”

 그는 아랍 억양이 강하게 느껴지는 영어로 말했다. 아메리칸이 아니 아메리깐에 가까운 발음이었다.

 “그 돈이 목숨을 걸게 만드는 거요.”

 하멜은 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수비대원은 반사적으로 하멜을 총으로 겨누었다.

 “어이, 진정하라고.”

 하멜은 양손을 들며 말했다.

 “미국인, 선교로 안내해라.”

 손을 든 하멜은 그들을 선교의 운항실로 안내했다.

 “씨발! 뭐야!”

 운항실로 들어가자 선장인 토마스는 재빨리 권총을 꺼내려 했지만 그것을 먼저 발견한 혁명 수비대원에게 제지당했다. 그 모습을 보며 하멜은 고개를 흔들며 운항실내의 사람들에게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선장, 잠시 선장실 빌리겠소.”

 하멜은 나이든 혁명 수비대원과 단둘이 선장실로 들어갔다. 두 대원이 문 앞을 지키고 나이든 혁명수비대원이 문을 닫았다.

 “여기 방음은 잘 되오?”

 그는 선장실을 둘러보며 말했다. 어느 배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선장실이었다. 방음 설비는 갖춰져 있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었다.

 “최소한 바깥에서는 듣지 못할 거요. 최소한 선장이 고추잡고 흔드는 소리는 못들었소.”

 하멜의 말에 나이든 혁명 수비대원은 웃었다.

 “구스타포!”

 그는 반갑다는 듯 하멜을 안았다. 하멜은 불쾌하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살 아지드 소령.”

 하멜은 알고 있다는 듯, 아니 알고 있기 때문에 상대방의 이름을 말했다. 기분나쁠 정도로 웃고 있는 이란 혁명 수비대 소령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