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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

4편




한강 변의 깊은 지하에 위치한 어느 방공호. 인류연합 정부가 철충들로부터 서울을 일시적으로 탈환하고 만들었던 이 작은 군사 기지는 벽면부가 뇌파를 차단하는 특수한 재질로 코팅되어 있어 철충들로부터 몸을 지키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인류연합은 이런 방공호를 역습의 발판을 위한 전초 기지로 쓰기 위해 전 세계 곳곳에 만들었지만 철충은 막아도 휩노스 병은 막지 못했기에 결국 부질없는 짓이 되고 말았다. 



모처럼만에 그 갑갑한 강화복에서 해방된 사령관은 퀭한 눈으로 세면대 앞의 거울을 보면서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거울로 그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하는건 참 오랜만이었다. 동면에 들어가기 전에 그의 나이는 이미 다 큰 손주를 바라볼 정도로 많았지만 그의 얼굴은 노화의 영향은 크게 받지 않아 나이는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단순한 강화 인간을 능가하는 궁극의 초인병으로 진화하기 위해 개조된 그의 육체는 이미 한계점을 맞이한지 오래였다. 그의 손발톱은 이미 오래전에 비틀릴대로 비틀리다 전부 뽑혀버린지 오래고 치아는 전부 임플란트를 박아넣은 가짜였다. 척추와 관절 곳곳엔 수술의 흔적이 남아 있고 경추 부분에는 바이오로이드처럼 이상한 칩 같은것도 박혀있었다. 부상을 입을때 마다 행해진 무리한 재생 촉진으로 그의 피부는 마분지처럼 거칠고 빳빳해진데다 탈색되고 변색되어 미이라처럼 변했고 철충이 그의 머리 절반을 갉아먹고 있으니 거울에 비친 그의 모습은 도저히 정상적인 인간의 외형이 아니었다. 


"이러니까 라비아타가 기겁할만했지."


그가 쓴웃음을 지으면서 혼잣말했다. 그가 만약 라비아타였다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의 머리통을 그 자리에서 날려 버렸을텐데 콘스탄챠는 그가 정상이고 라비아타는 비정상인것처럼 반응했다. 장님의 나라에선 장님이 정상이고 눈이 보이는 사람이 비정상이라는 옛 말이 있었다. 나름 상식적으로 대처한 라비아타는 역적으로 낙인찍혀 죽도록 갈굼 당했겠지... 그는 아주 조금 연민을 느꼈다. 






[매지컬 모모는...절대로 악에 지지 않아요!]


사령관은 소파에 길게 늘어져 앉아 인근 굿즈 스토어에서 가져온 8월의 만월야를 시청하고 있었다. 사실 그는 어렸을때 부터 마법 소녀 매지컬 모모 시리즈의 팬이었다. 하지만 어렸을때 '멋진 형'의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감이 있었던 그는 그런건 여자애들이나 보는 거라면서 멀리했고 나이를 먹고나선 이런 취미를 즐길 여유도 별로 없었고 사람들 앞에서 공개할 만한 환경에서 살지도 않았다. 바이오로이드의 존재 자체를 신성모독, 하람으로 간주했던 이슬람 세계에서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들의 성전을 승리로 이끈 알라의 검이 덴세츠가 만든 마법 소녀들이 사악한 마왕을 무찌르고 꿈과 희망을 온 세계에 전파하는 티비쇼를 좋아한다는게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세상에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는 불보듯 뻔했다. 



하지만 지금 이 최후의 시기에 이르러 그는 드디어 자유로워 졌다. 이제 죽을 때가 다가와서 그런가 그는 그가 어린 시절때부터 좋아했지만 현실 때문에 외면했던 매지컬 모모 시리즈를 아무거나라도 좋으니 보고 싶다는 욕구가 미친듯이 들었다. 그래서 모모 굿즈 스토어를 발견했을때 그는 이건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각설탕 하나를 집어들어 초콜릿 페이스트에 휘적 휘적 저은 다음 맛깔나게 입에 넣고 오도독 씹어 먹었다. 그가 좋아하는 로쿰이나 바클라바 하고는 억만 년만큼 떨어져 있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소름돋는 맛이었지만 그래도 느낌 정도는 그럭저럭 낼 수 있었다. 정도를 넘은 달달함에 목구멍이 탈거 같자 그는 유통기한이 50년 지난 커피 가루를 재활용해서 만든 급조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퀴퀴한 곰팡이 향이 가미된 쓰디 쓴 커피가 아찔한 당분으로 감각이 마비된 그의 입안과 목구멍 속으로 들어오자 그 옛날 아프간의 정겨움이 물씬 느껴졌다. 



결말부가 누락된 8월의 만월야를 다 본 그는 TV를 끄고 공방으로 들어갔다. 최후의 만찬도 즐거움도 끝났으니 이제 진지해질 시간이었다. 외장 갑부가 완전히 해체된 마크 5 헤라클레스 타입 파워 수트의 내부 프레임이 전면부가 개방된채로 거치대에 걸려 있었다. 먼저 그는 내부 프레임 등짝에 달려 있는 자동 주입 장치 튜브에 의료용 세포 재생 나노봇과 전투 자극제를 주입했다. 튜브를 꽉 채운 다음 그는 내부 프레임에 그의 등을 갖다댔다. 안감에 달린 센서가 그의 접촉을 감지하자 프레임이 스르륵하고 움직여 그를 몸을 감쌌다. 내부 프레임을 입은 그는 거치대에 있는 보조팔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외장 갑옷을 하나 하나 조립하듯이 착용했다.  



강화복의 정비가 끝났으니 이제 무기를 선택할 일이 남았다. 무기고에서 한참 동안 고민한 그는 대용량 자동 샷건 한 자루, 출력 조정으로 연발과 단발 사격으로 전환이 가능한 레이저 카트리지 돌격 소총, 고주파 시미터, 권총 한 자루를 꺼내고 플라즈마 수류탄, 섬광탄, 연막탄과 와이어를 챙겼다. 마지막으로 그는 숄더 캐논으로 사용하도록 개조된 접이식 81mm 활강포를 가져와 강화복 백팩의 오른쪽 옆면에 장착했다. 


"이건 더 이상 못쓰겠군."


사령관이 어젯밤 매머드의 포격에 휘말려 너덜너덜해진 광학미채 망토를 쓰레기통에 쳐박으면서 중얼거렸다. 마지막으로 그는 강화복의 헬멧을 머리에 눌러 쓰고 방공호 바깥으로 나왔다. 








바깥으로 나온 사령관은 그대로 에바 프로토타입이 보내준 좌표를 따라 여의도로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즐감했던 8월의 만월야의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아른거렸다. 멺망 전 그들의 동료들 중 몇몇은 행운의 부적이라면서 문신을 새기거나 강화복이나 무기에 핀업걸 같은 스티커를 부착했다. 그는 지금까지 그런걸 그냥 미신으로 치부했지만 오늘은 왠지 앞으로 있을 전투를 위해선 그만의 부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는 그가 저번에 털었던 모모 굿즈 스토어로 다시 되돌아왔다. 그는 거기서 모모 스티커를 손에 들고 한참 동안이나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막상 여기서 다시 돌아와서 이걸 그의 강화복 갑옷에 붙일 생각을 하니 얼굴이 화끈거려서 차마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이성과 동심 사이의 내적 갈등에 시달리고 있을 때 바깥에서 인기척 소리가 들리자 그는 재빨리 돌격 소총을 뽑아 들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놀랍게도 모습을 드러낸 것은...


"으엑!! 수상한 놈이다!! 플리즈 풋쳐핸접!!"


토모가 그에게 총을 겨누자 안심이 된 사령관은 안도의 한숨을 작게 쉬곤 총구를 위로 올렸다. 


"드라코! 여기 수상한 놈이있어!"


"정말로 이상한 놈이잖아? 플리즈 풋쳐핸접!! 킥킥킥 나도 한 번 해보고 싶었어. 근데 뇌파가 감지되지 않는데 누구지?"


"큭큭큭 골든하고 데인져러스한 이 천재 미소녀의 직감에 의하면 이건 ASG가 분명해. 뇌파도 없고...딴딴하잖아."


토모가 손가락으로 그의 흉갑을 손가락으로 땅땅 튕기면서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뜻하지도 않게 오르카 호의 덤 앤 더머와 조우하자 사령관은 그도 모르게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게 ASG라고? 하지만 난 이런 모델 본 적이 없는데..."


"아니. 난 AGS가 맞다. 난 이 도시를 지키기 위해 삼안에서 제작한 원 오프 타입, 코드 네임...아이언 가드다."


이 둘이라면 쉽게 속여 넘길 수 있다고 판단한 사령관은 즉석에서 AGS 연기를 하면서 이들의 장단에 맞춰주기로 했다. 헬멧이 그의 목소리를 기계톤으로 변조하기에 이 둘을 속여넘기는건 일도 아니었다.


"바이오로이드를 만나는 것은 인류가 멸망하고 나서 처음이군. 이런 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건가?"


"에......우린 집 나간 사령관을 찾으러 왔는데 그만 길을 잃을 버려서... 헤헤헤."


머리를 긁적이며 해맑게 웃는 토모를 보면서 사령관은 참 그녀 답다고 생각했다. 


"대장들은 사령관을 찾았는지 모두 돌아오라고 그랬는데 통신기도 망가져서 둘이서 나머지 팀원들을 찾고 있었지."


에바가 어떻게든 잘 설득했나보군. 최대의 고민거리가 해결된 사령관은 한시름을 놓았다.


"근데 손에 그거 뭐야? 모모 스티커네? ASG도 이런걸 좋아하는 거야?"


드라코가 그의 손가락 사이에 끼인 모모 스티커를 가리키며 물었다. 당황한 그는 얼른 모모 스티커를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뭐야? 이 ASG. 모모의 팬이었어? 이상한 ASG네."


"뭐가 이상하다는 거냐. AGS는 모모를 좋아하면 안되는 법칙이라도 있나?"


"에? 뭐라고?"


"AGS도 모모를 좋아할 수 있다는거다."


"그걸 이상하다고 하는거야 킥킥. 오르카 호의 ASG들은..."


"세상에 얼마나 많은 AGS가 있는데 함부로 일반화를 하는거지? 너희들의 그 편견과 고정관념이 세상을 병들게 한다! 이거...이것은 용납할 수 없는 로봇차별이다!"


"로봇차별?!!"


토모와 드라코가 입을 모아 외쳤다.


"그렇다! 그리고 로봇차별은 AGS를 상처 입히는 아주 못된 짓이다. 그러니까 나한테 사과해라."


"죄...죄송합니다."


"다신 안 그러겠습니다."


토모와 드라코가 그에게 공손히 사과했다. 오랜만에 살짝 흥분하니까 너무 오바하고 말았군.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굿즈 샵에서 나왔다. 


"어이. 누가 가도 좋다고 그랬지? 킥킥킥."


"우리는 불가사리한테 두 다리로 움직이는 모든 것을 잡아오라는 테스트를 받았지 큭큭큭. ASG씨 당신은 체포됐어."


드라코와 토모가 각각 그의 왼팔과 오른팔을 붙잡으면서 말했다. 


"...테스트가 아니라 퀘스트겠지. 그리고 두 다리로 움직이는 것을 말하는 거라면 저 위에 있는 것도 포함되는건가?"


 사령관이 위를 올려다 보자 토모와 드라코도 고개를 위로 들었다. 건너편 건물 옥상 위에서 태양을 등지고 서있던 무언가가 보였고 그 순간 사령관은 두 사람을 끌어안고 몸을 옆으로 날렸다. 무언가 거대한 물체가 쉬익하고 날아오면서 귀청을 찢는 날카로운 소음이 나더니 굿즈샵의 창문들이 와장창 산산조각이 났다. 사령관이 만약 조금만 늦었다면 세 사람은 목이 잘려 머리가 바닥에 뒹굴고 있을 것이었다. 


"저...저거저거저거저거!! 저게 대체 뭐야!!"


토모가 기겁을 하면서 외치자 드라코는 잔뜩 긴장하고 겁먹은 표정으로 땅에 떨어진 방패를 얼른 들었다.


"뭐긴...저건 악마다."


사령관이 촉수처럼 생긴 혓바닥을 낼름 거리면서 그 특유의 기분 나쁘게 생긴 째진 눈초리로 붉은 빛을 번뜩이고 있는 트릭스터를 노려보면서 레이저 라이플의 안전장치를 철컥 풀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홍련이 아직 합류하지 않은 시점이라서 불가사리가 대리 노릇을 하고있고 토모는 일종의 객원멤버란 설정임. 전개가 너무 엄근진한거 같아서 분위기 전환을 위해 살짝 개그씬을 넣어봤음. 부족한 시리즈를 추천해준 모두들 정말 고맙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