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출처 : http://bravo.etoday.co.kr/view/atc_view.php?varAtcId=9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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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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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월 X일


처음으로 일기를 써본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처음 깨어나자마자 철충들과 만나 사투를 벌였으며,

변화하는 철충들과 새롭게 등장한 별의 아이, 레모네이드와 같이 적들은 늘어나며 강해지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새로운 동료들을 찾으며, 힘을 키우고 있었다.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우리들은 발전하고 있다.


그러던 와중 약간의 불안함이 있었다.

만약,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

내가 죽게 된다면 그 때는 아무런 답이 없다고 다른 아이들이 얘기해주었다.

나도 죽고싶지는 않으니 최대한 그런 상황은 피할 것이다.

다만, 죽지 않고도 생길 수 있는 문제가 있다.

저번에 마키나와 마리를 만났을 때처럼 내 기억과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면 어찌되는가.

만약에 내 기억에 문제가 있을 때를 대비하려고 이 일기를 쓰는 것이다.

조금이나마 내 기억에 도움이 될 수 있길


내 이름은 OOO이다.

철충이라는 외계 생명체와 영원히 잠드는 휩노스 병에 의해 인류는 멸망했지만

어쩌다보니 이 지구에 남은 마지막 인간이 되었다.

또한, 오르카호의 사령관이며, 남아있는 바이오로이드와 AGS들과 함께 인류 재건을 위해 싸우고 있다.

이 사실만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다. 잊지 않도록 하자.

잊어버린다 해도 반드시 기억해내자. 소중한 우리의 추억을






X월 X일


오늘은 육지 근처를 순항하며 자원을 확보했다.

철충들과 조우했지만 다들 능숙하게 지시를 따라줘서 문제없이 물리쳤다.

주변에서 화원을 발견해 오르카호 내부에 심기로 했다.

다양한 꽃들이 있어서 나도 방문해봤는데 정말 아름다웠다.

무슨 꽃인지 잘 몰랐지만, 다프네가 잘 알려줬다.


내가 꽃에 빠진 탓인지는 몰라도 다른 아이들도 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특별히 각자 키우고 싶은 꽃을 가져다 각자 잘 길러보도록 하라고 했다.

한동안 치열하게 마음에 드는 꽃을 선점하려는 다툼이 있었다.

다들 꽃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X월 X일


아직까진 별다른 일 없이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조금 특이한 일이 있는데, 매일 일하러 함장실로 가면

내 책상에 꽃 한 송이가 놓여져있다.

새하얀 꽃잎에 저항하듯 존재감을 표하는 빨간 암, 수술이 인상적이었다.


처음에는 어찌해야할지 몰라서 책상 한 구석에 가지런이 두었는데

다음 날 와보면 치워져있었고 새로운 꽃이 올려져 있었다.

마음은 고맙지만 이렇게 꽃이 널부러져있는 것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아프달까

그래서 결국 적당한 꽃병을 가져와서 꽃을 꽂았다.

이후로는 꽃병에 계속 꽃을 꽂아주곤 한다.


누군지 모르지만 고맙다고 생각한다.






X월 X일


오늘은 큰 실수를 했다.

자원 확보에 욕심을 내버렸고, 결국 출동한 인원들이 부상을 입었다.

다행이게도 큰 부상은 아니라지만, 내 개인의 욕심때문에 다른 이들이 다쳤다는 것이 괴로웠다.

다들 괜찮다며 위로해주었지만 내 마음은 쉽게 낫질 않았다.

혼자 함장실에서 끙끙대고 있었다.

그 날의 꽃은 시무룩한 내 모습처럼 조금 축 처져있었다.






X월 X일


최근에 와서 알게된 사실이 있다.

이전에 다양한 꽃의 모종을 각자 키우고 싶은대로 키우기로 했었는데

대부분이 제대로 키워내지 못했다고 한다.

매일 내 책상에 올라오는 이 꽃을 보아하니 원예에 능숙한 사람인가보다.

아마 페어리 애들이겠지? 싶은 마음에 다프네에게 언제나 꽃 고맙다고 살짝 인사를 건냈다.

다프네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으로 보아 다프네가 맞나보다.

다프네에게 물어보니 부끄러운듯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조그맣게 '리제 언니랑'라고 말한걸 보면 리제와 함께 가꾸었나보다.

그 밤, 나는 리제와 다프네를 안았다.






X월 X일


어제 리제와 다프네를 안았고, 나는 오늘도 함장실에서 업무를 봤다.

오늘은 좀 색다르게 까만 꽃이었다.

수비력이 약한 리제가 아직도 우왕좌왕하며 까만 꽃을 꽂은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변화를 주는 것일까?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매일 보던 하얀 꽃과는 달리 까만 꽃도 마음에 든다.






X월 X일


리제와 다프네를 안은지 벌써 1달이 다되어간다.

그 날 이후로 내 책상을 장식하던 하얀 꽃은 까만 꽃으로 바뀌었는데

까만 꽃도 충분히 이쁘고 변화를 주는 것도 괜찮았다.

다만, 아주 사소한 문제가 있는데 꽃이 교체되지 않는다.

말 그대로 까만 꽃이 계속 쌓이고 쌓인다.

처음에는 계속 꽃병에 넣었지만, 더이상 들어가지 않아서 다발처럼 묶고있다.

한 송이씩 한 송이씩 새로운 꽃이 추가될 때마다 함께 묶는다.

오래된 꽃은 썩거나 말라버려서 버리기로 했다.






X월 X일


지금 벌써 몇 송이째지?

리제와 다프네를 안은 날로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까만 꽃이 새로 추가되고 있다.

지금이 그 때로부터 99일째다.

99일동안 계속 꽃이 추가되고, 썩어버리거나 말라 비틀어졌기에 버린 꽃도 많다.

조금 당황스러운 사실이 하나 있다.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리제와 다프네에게 따지러 갔었다.

리제는 꽃을 장식한 기억이 없다고 한다.

다프네의 말로는 자기가 장식하고 리제에게 뒷처리를 부탁했다고 한다.

다프네에게 주의를 해달라고 했다.






X월 X일


무언가 잘못된 일이 일어났다.

어제까지만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는데 갑자기 날뛰기 시작했다.

대체 왜지?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지?

그녀는 갑자기 다프네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리제는 다프네를 지키려고 그녀를 막다가 결국 완전히 부셔져버렸다.

다행이게도 그녀는 곧바로 제압되어 다프네는 살릴 수 있었지만

닥터의 말로는 리제는 더이상 기대하지 말아달라고 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다른 애들이 조사해줄 것이다.

오늘은 단지 아무 것도 하고싶지 않다.

다만, 기록하는 버릇이 있기때문에 이렇게 남길 뿐이다.

오늘은 꽃이 늘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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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잉위잉


오르카호에 사이렌이 울려퍼진다.

일기를 쓰다 말고 무슨 일인지 통신을 시도해본다.


"얘들아? 무슨 일이야?"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는다.


"얘들아? 내 말이 들리면 대답해!"


통신이 고장나기라도 한 듯하다.


콰앙


누군가가 함장실 문을 파괴했다.


자욱한 연기 속에서 하나의 실루엣만 보일 뿐이다.


"누구야?"


실루엣은 점점 다가와 연기 너머로 내게 무언가를 건넨다.


"이건... 까만... 꽃?"


나는 말없이 건넨 까만 꽃을 받는다.


"그렇구나. 네가 그동안 나를 위해..."


어리석은 나 자신을 한탄하며 그녀를 끌어안는다.


"미안하다. 내가 정말 미안하다."


서로 부둥켜 안으며 흐느낀다.


철컥


그녀의 총이 내 뒤통수에 닿았다.


나는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저 그녀를 껴안으며 울 뿐이었다.

그녀의 마음을 알아채지 못한 어리석은 나를 탓할 뿐이었다.


"사랑해. 리리스"


"저도 사랑해요. 주인님.

하지만 너무 늦었어요."


타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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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_____의 회고록]


처음에는 단순한 욕심이었다.

나만 바라봐주었으면, 우리 자매들을 바라봐주었으면 하는 욕심.

언니의 라이벌이 나에게 꽃을 기르는 방법을 물어보았을 때는 무슨 일인가 했었다.

자기처럼 하얀 그 꽃을 열심히 키우던 모습이 놀라웠다.

알고보니 자기가 키운 꽃을 매일 함장실에 장식해 사령관님에게 선물하는 것이었다.

부러웠고, 질투했다.

항상 꽃을 키우던 내가 그런 일을 생각하지도 못했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빼았았다.

그녀가 몰래해왔던 것을 마치 내가 한 일인듯이.

어쩔 수 없잖아?

사령관님은 하나 뿐이니까. 독차지하고싶은건 당연한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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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기록 : X월 X일]


오늘 주인님께서 원하는 꽃을 마음껏 길러보라고 하셨습니다.

화려한 색, 향기로운 향 등등 다양한 특징을 가진 꽃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 꽃들 중에서 제 눈에는 하나만 들어왔습니다.

그 꽃을 꺾어 다프네에게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백합이라는 이름을 가진 꽃. 영어로는 Lily라고 하더군요.
꽃말은 사랑이라고 하네요.

저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꽃이니 잘 길러야겠습니다.

그리고 주인님께 매일 선물해서 쌓을겁니다.

The lilies of my love. (제 사랑이 담긴 백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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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 하얀 꽃입니다.


처음 블랙 리리스의 이름을 들었을 때

와! Black Lilies? 흑백합? 시발 중2병 감성 자극하네 크크큭 딱대라

라고 했었는데 Black Lilith였더군요.

그래서 백합을 주제로 블랙 리리스의 이야기를 만들어보자하고 썼습니다.


때마침 흑백합의 꽃말이 사랑과 저주더라구요.
끊임없이 사랑을 주다가 절망한 리리스는 사령관을 저주하게 되었습니다.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