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공기는 매우 푸르고 차갑다. 아직 비행기에 오르지도 않았으나 품속으로 파고드는 한겨울의 바람이 켜켜이 껴입은 점퍼 안을 파고든다. 집으로 오랜만에 돌아가는 길이지만 날씨만큼은 날 무사히 돌려보낼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비명까지 질러대며 악수를 청하는 바이오로이드들의 행렬을 AGS들의 도움으로 겨우 뚫고 지나 전용기에 올라탔다. 비행기 안엔 그 누구도 탑승하지 않았다. 덕분에 도시의 끔찍한 소음에서 벗어나 아늑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이미 데워진 기내에서 몇 분이 지나자 몸이 녹았다. 잠시 잠이라도 잘까 생각했으나 뇌리를 스치는 무언가를 떠올리고 전화기를 꺼내 든다. 이미 꽁꽁 얼어있던 전화기의 전화를 켜자 레몬 마크가 화면에 떠올랐다가 이내 사라진다.

 

곧 메뉴 화면이 켜지고 곧장 전화 버튼을 눌러 그녀에게 전화를 건다. 몇 분이 흘러도 고요한 음악만 흘러나올 뿐, 그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초조한 기다림 끝에 전화기를 내려놓으려 생각하자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자기야! 무슨 일 생겼어!?”

 

나의 아내 에밀리다. 내가 전화를 거는 것은 보통 출장을 가거나 업무가 연장되었을 때뿐이었으므로 그녀의 반응은 타당하다.

 

“아하하, 아니. 일 끝나고 집 가는 길이야. 여보 목소리 듣고 싶어서.”

“휴... 또 휴가 연기된 줄 알았잖아. 나 많이 보고 싶어?”

 

스피커 너머로 땅이 푹 꺼질 정도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안도한 에밀리가 나에게 물어왔다.

 

“하~나도 안 보고 싶었어.”

 

마음에 있지도 않은 거짓말을 했다. 집에 가자마자 키스를 나누고, 그녀가 차려준 밥을 먹고, 함께 목욕하고, 또 살을 섞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내 장난기는 막을 수 없었다.

 

“풋, 이제 안 속아. 그걸 거짓말이라고 하는 거지?”

자랑스럽게 어깨를 으쓱하고 있을 그녀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하하, 그래그래. 많이 컸네요, 에밀리 양.”

“애 취급하지 마. 이제 나도 어엿한 어른이니까.”

“그렇네. 당신도 이제 엄마지. 애는 재웠어? 벌써 10시가 넘었는데.”

“하아... 말도 마. 겨우 재웠더니 또 일어나서는...”

 

바쁜 나머지 연락조차 못 했던 것에 대한 한이라도 풀 듯이 한동안 그녀와 담소를 나누었다. 동네 마트에서 고등어를 물어가는 고양이를 재빨리 붙잡아 주인장에게 쓰다듬을 받았다든지, 아이가 나를 닮아 힘이 넘쳐서 고생이라든지, 요즘 들어 모모가 주연인 드라마가 재밌다든지... 한 번 이야기를 시작한 에밀리의 입담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있잖아.... 앗, 또 일어났네. 자기야, 미안해. 애 깼다.”

 

에밀리가 조잘조잘 이야기를 시작하고 몇십 분이나 흘렀을까, 

갑자기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렸다.

 

“으음, 아쉽네. 자기야. 저녁 차려둘 테니까 빨리, 아니, 조심히 와~”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전화가 뚝- 끊겼다.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잠시, 그녀와 떠드는 사이 비행기는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나긋나긋한 목소리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름 아래로 천천히 하강했다.

 

얼마나 커다란지 거의 1분이나 계속된 구름 띠 아래로 내려가자 나는 감탄사를 내고 말았다.

시야가 걷히자 환상적인 도시의 야경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공중에는 기동형 바이오로이드와 각종 이동수단이, 도로에는 바퀴가 제거되어 둥둥 떠다니는 자동차-그것을 자동차라고 불러야 할지는 의문이지만-들이 가득했다. 

 

과거 즐거운 토모와 함께했던 VR 게임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그러나 훨씬 더 화려한 빌딩의 조명과 네온사인이 비행기의 표면에 반사되어 산란했다. 

 

그것들을 감상하자 피로가 날아감과 동시에 황폐했던 과거의 풍경이 오버랩되며 감동마저 느껴졌다. 이 모든 것이 단 2년 만에 이뤄진 것이라고 한다면 그 누구도 믿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해냈다. 지구는 다시 100년 전의 찬란한 문명으로 뒤덮여가고 있었다.

 

우리가 사는 작은 주택 주변으로 높게 솟아오른 빌딩들을 감상하며 사색에 잠겨있으니 비행기가 활주로 위에 멈춰있었다. 짐을 챙겨 문 앞에 서자 천천히 열리고 아까보다도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땅에 발을 딛자 비행기에 타기 전보다 발걸음이 급해졌다. 조금이라도 빨리 그녀를 보고 싶어 갈 길을 재촉했다. 역시나 내게 몰려드는 바이오로이드 무리를 겨우 지나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자동차에 탑승해 집으로 향했다. 

 

도로 옆에 가지런히 선-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은-빌딩들의 벽면에는 수없이 많은 광고와 예술가들의 그림이 띄어져 있었다. 창가에 턱을 괴고 그것들을 보아하니 대부분은 바이오로이드가 모델인 광고였다. 각자 개성을 뽐내는 그것들을 보니 오르카에서의 생활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따뜻한 차 안에서 몸이 다 녹으려 하자 자동차가 멈춰 섰다. 고개를 돌리니 보이는 익숙한 풍경. 거의 한 달 만에 오는 나의 집이었다. 

 

얼른 문을 열고 내려 아담한 주택으로 달려갔다. 2층짜리 집의 굴뚝 위로 하얀 연기가 송글송글 솟아나고 있었다. 도시의 중심부에 위치한 이곳은 의외로 한산했다. 이곳은 도시에서 가장 거대한 빌딩으로 둘러싸인 작은 동네인데, 대부분의 인프라는 외부에 있었으므로 번잡할 리는 없었다.

 

집과 가까워질수록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대문을 열고 작은 정원을 지나, 마침내 익숙한 분홍빛 철문에 가볍게 노크했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안에서 조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문이 열리고 그토록 그리웠던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셨어요? 아이는 재웠어요.”

 

문이 열리자마자 익숙한 체취와 함께 고소한 쌀밥, 아니 보리밥의 냄새가 후각을 덮쳤다.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부끄러움도 잊은 사람처럼 고스란히 드러난 맨살과 뒤엉킨 머리카락. 알몸에 앞치마 하나만 두른 채 반쯤 감긴 눈으로 나를 반기는 에밀리의 모습은 예전의 조신했던 소녀와는 조금 거리가 멀어 보였다.

 

“오늘도 많이 피곤했지? 밥 차려놨어. 같이 먹자.”

 

그녀의 파격적인 옷차림에 굳어있기도 잠시, 에밀리는 방긋 웃으며 내 손을 잡아 이끌었다.

 

강한 완력에 이끌려 뒤를 따라가자 천 쪼가리 하나 걸치지 않은 풍만한 엉덩이가 눈에 들어왔다. 발걸음에 맞춰 산뜻하게 흔들리는 그것은 시각적으로 큰 자극을 가했다. 그 위로는 전에 비해 더 살집이 붙은 러브핸들이 특징인 허리가 드러났다. 

 

출장 전, 운동을 열심히 해도 잘 빠지지 않는다며 고민을 털어놓았으나, 그날 밤에 그것의 사용법을 알려주자 굳이 빼려고 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전쟁이 끝난 이후 에밀리는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크게 성장했다.

닥터의 말로는 오리진더스트의 각성과 그로 인한 호르몬의 과다 분비로 인해 성장한 것이라고 하는데, 때문에 에밀리는 인간과 바이오로이드의 혼혈 자식이 수술을 받듯이 골격 교체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성장한 에밀리는 전과는 다른 매력을 뽐내었다. 그녀의 대장에게도 꿀리지 않을 만큼 탄력 있는 가슴은 한 손에 다 잡히지 않고 흘러내릴 정도로 커졌고, 어린 소녀에 가까웠던 얼굴형은

전보다 갸름해지고 길쭉해져 어엿한 아가씨처럼 되었다.

 

물론 그에 맞게 키도 커졌다. 성장이 끝난 지금도 나보다는 작으나 충분히 보기 좋게 큰 에밀리는 내적으로도 크게 성장했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행동하고, 스스로 선택하는 방법을 깨우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인간도 아니고 바이오로이드, 그것도 태생적인 결함으로 인해 미숙한 면이 가미된 그녀가 그것을 해내다니. 

 

그녀는 스스로 나를 사랑했고, 스스로 나와 혼인하는 것을 선택 해주었다. 청혼했을 때, 아직 청순했던 에밀리는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로 나의 프러포즈를 흔쾌히 받아주었다. 

훗날, 황혼이 스민 바닷가를 지나가던 어느 날, 나의 청혼에 고민하지는 않았었냐고 묻자 말없이 내게 입을 맞추고 멋쩍게 웃을 뿐이었다. 

 

전부터 에밀리의 그런 속 깊고 솔직한 면이 좋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에밀리도 많이 바뀌었으나 그 마음씨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관심을 쏟으면 쏟을수록 그녀는 그 호의에 보답하고자 노력했고 결국 크게 성장한 것이다.

 

“여보, 무슨 생각해?”

 

훌륭하게 성장해준 에밀리를 생각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식탁 앞이었다. 그녀는 멍하니 서 있는 내가 걱정스러웠는지 어깨를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아, 아니야. 옛날 생각이 좀 나서.”

“옛날? 누굴 생각했는데?”

 

“너.”

 

“엇... 바, 밥 먹자.”

 

싱긋 웃으며 대답하자 에밀리가 빨갛게 익은 얼굴을 뽀얀 손으로 가리며 식탁에 앉았다. 잠시 집안에 침묵이 맴돌았으나 그것이 불편하지는 않았다. 

 

침묵을 틈타 밥상 위를 잠깐 둘러보니 익숙한 메뉴가 눈에 들어왔다. 에밀리와 처음으로 대화를 열었던 음식, 커틀릿이었다. 워낙 말수가 적은 탓에 말을 붙이기 힘든 그녀였지만 커틀릿 이야기에는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것이었다.

 

나도 그것을 좋아했기에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마음이 통한 우리는 밤을 지새며 이야기를 나눴고, 그것이 에밀리와 말을 튼 계기였다. 그러니 우리에게 커틀릿은 단순한 음식 이상의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모양이 이상했다. 닭가슴살 하나를 반으로 갈라 만들어진 커틀릿은 하트 모양으로 튀겨져 있었다. 건강을 위해서인지 푸른 여린 잎채소 몇 개가 보기 좋게 올려진 그것은 기름기가 쪽 빠지고 노릇하게 익어 고소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한 입 베어 물면 바삭- 하고 부서질 것처럼 잘 튀겨진 커틀릿의 유혹을 참지 못하고 젓가락을 들어 그것을 맛보았다.

 

겉은 바삭하고 안은 촉촉하다. 처음 먹었던 그녀의 요리와 비교하면 비약적인 발전이었다. 고기는 닭가슴살의 풍미를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촉촉하게 익어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아 사라졌다.

 

튀김옷도 물론 두말할 것도 없이 맛있었다. 탄 부분 하나 없이 보기 좋은 갈색으로 튀겨진 그것은 약하게 간이 되어 있어 굳이 옆에 놓인 소스를 찍지 않아도 커틀릿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훌륭한 메인디쉬였다.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맛나고 정성이 스민 커틀릿에 열중해 걸신들린 것처럼 밥을 먹다가 은밀한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다.

 

“신경 쓰지 말고 먹어. 먹는 모습이 귀여워서 계속 보고 있었어.”

에밀리는 숟가락도 내려놓고 턱을 괸 채 날 강아지 보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여보는 안 먹어?”

“난 바이오로이드잖아. 배 별로 안 고파. 내 것도 줄까? 오늘 밤에 힘내야 할 텐데.”

 

에밀리가 자기 그릇을 내 쪽으로 밀며 말했다. 

뒷말이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아서라, 아서. 같이 먹어야 맛있다는 거 벌써 잊었니?”

 

나는 다시 그릇을 에밀리 쪽으로 밀었다.

 

“... 이러니 안 좋아할 수가 있나.”

“뭐?”

“아, 아니야. 아무것도.”

 

에밀리가 뭐라 중얼거렸으나 애석하게도 내게 들리지는 않았다. 

 

“아, 여보.”

 

밥을 반쯤 먹어갈 때가 돼서야 나는 무언가 깨닫고 에밀리를 불렀다.

 

“그 옷은... 뭐야?”

 

앞치마는 팔까지 흘러내려 에밀리의 볼륨감 있는 가슴의 한가운데를 장식한 연분홍빛 유두를 서슴없이 내게 보여주고 있었다. 내 말에 그제야 가슴이 삐져나왔음을 알아챈 에밀리는 허겁지겁 앞치마를 올려 입었다.

 

... 이미 볼 거 다 본 사이에 새삼스럽게.

 

“으으, 가슴 봤어?”

“응. 밥 먹는 내내.”

“그걸 왜 이제 말해!”

 

에밀리는 홍당무가 돼서 밥상에 엎드려버렸다. 알몸으로 다니면서도 부끄럼조차 못 느끼던 예전과는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었다.

 

“네 가슴 보면서 먹으니까 군침이 싹 돌더라.”

 

아이에게 젖을 먹이느라 여기저기 손자국과 빨갛게 빨린 자국이 남은 에밀리의 가슴은 아이와 나의 공동 소유였다. 관계를 가질 때면 가끔 나에게도 가슴을 빠는 것을 허락해 주고는 했기 때문이었다.

 

“.... 예뻤어? 가슴.”

 

에밀리가 어깨를 움츠리고 새침하게 물어왔다.

 

“당연한 거 아니야? 누구 아내인데.”

“진짜? 커져서 이상하지 않아?”

“... 바보야. 그게 더 좋은 거야.”

“헤헤, 다행이다. 자기가 좋으면 나도 좋아.”

 

아무리 성장했다지만 이렇게 가끔 보이는 순수한 어린아이 같은 면은 숨길 수가 없었다. 다만 진심으로 기뻐하는 그녀를 보면서도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끝나고 에밀리가 갑자기 신체적, 정신적으로 크게 변화하는 기간을 거치는 동안 그녀의 곁에 있어 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세계를 재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는 해도, 사춘기나 다름없는 기간에 그녀와 오래 함께 지내지 못한 것은 지금까지도 뼈아픈 후회로 남고 말았다. 그럼에도 에밀리가 밝고 착한 여성으로 자라주었던 것은 역시 ‘그녀’ 덕분이었다.

 

“그것보다, 그 옷도 아스널이 알려준 거야?”

 

아스널 준장. 에밀리가 대장이라고 부르는 그녀는 흔쾌히 에밀리에게 정실 자리를 넘겨준 것은 물론 내가 자리를 비울 때면 나의 자리를 메워주기도 했다. 의외로 큰 힘이 되어주었다는 모양이다. 

 

처음에 아스널이 에밀리의 보모 역할을 자처했을 때, 나는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중재자가 있을 때조차 온갖 추잡한 말을 서슴지 않았던 그녀가 성장기의 예민한 에밀리에게 악영향을 미칠까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걱정이 무색하게도 그녀는 훌륭히 자신의 역할을 완수했다. 가사를 가르치고, 올바른 성과 육아에 대해 가르치고...

덕분에 에밀리는 단순히 육체적인 관계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는 온정의 중요함에 대해 아는 멋진 숙녀로 성장할 수 있었다. 

 

에밀리가 가죽옷을 입은 채 채찍을 들고 나를 유혹했을 때는 조금 놀라기도 했지만, 오르카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해보면 그 정도는 애교였다. 그 뒤로도 종종 그녀는 아스널에게 배운 것이라며 여러 가지 플레이를 요구해왔고 항상 새롭고 즐거운 관계를 가질 수 있었다.

 

오늘의 에이프런 의상도 그것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 아니.”

“엥?”

“이건.... 내가 생각한 거.”

 

에밀리의 눈빛은 어느새 눅진하게 녹아내려 있었다. 덮쳐지기를 바라는 암컷처럼 얕은 신음을 흘리며 내게 다가오는 그녀. 

 

이렇게 나오면 그냥 넘어갈 수가 없지 않은가.

 

숟가락에 들려있던 마지막 밥 한 숟갈을 입안으로 밀어 넣은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빙긋 미소짓는 에밀리를 번쩍 들어 올려 침실로 데려갔다.

 

“꺄... 자기야, 무서워....”

 

말은 그렇게 하지만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바쁜 연말이라 거의 한 달 동안이나 관계를 가지지 못한 우리였다. 내일은 휴일이고, 아이는 벌써 잠들었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하트 모양 커틀릿과 알몸 에이프런의 의미를 깨닫고 말았다. 

 

에밀리는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얕은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심장 박동 소리가 서로에게 들릴 정도로 고조되었다. 아이가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안방을 지나 침실에 다다라 문을 열었다.

 

“이게... 뭐야?”

 

문이 열림과 동시에 취해 잠들어 버릴 것처럼 진한 꽃향기와 아로마 오일 향이 확 풍겨왔다.

 

“자기, 이런 거 좋아한다고 들었어. 아니야...? 꺄악!”

 

하트 모양으로 수놓인 장미밭을 지나 에밀리를 푹신한 침대 위로 던져버렸다. 반려가 남몰래 이런 서프라이즈를 준비했을 모습을 상상하고 욕정을 참을 수 있는 남자는 드물 것이다. 앞치마의 끈은 풀려 제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어깨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채로 은밀한 곳들을 여실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가슴, 아이를 낳고 나서도 성장이 멈추지 않는 부드러운 젖가슴. 그 끝을 조화롭게 장식하고 있는 단단하게 선 그것. 아직 연한 분홍빛을 잃지 않은 유두는 깨물면 단맛이 날 것처럼 정욕을 자극해왔다. 

 

그 아래로 시선을 옮겨 하반신을 훑는다. 조금 군살이 붙었으나 그 자체로 아름다운 배. 근육과 살집이 사랑스럽게 뒤섞여 보기 좋게 익었다. 고된 훈련을 거듭한 탓에 딱딱하기만 하던 예전과는 또 다른 매력이었다. 

 

얼굴을 묻으면 어떤 감촉이 느껴질까. 숨을 들이키면 어떤 향이 느껴질까. 조금 거칠게 주무르면 어떤 소리를 들려줄까. 일련의 의문들이 뇌리를 스쳤다.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의문이요, 나만이 해결할 수 있는 비밀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하복부에 피가 쏠리는 것이 느껴졌다.

 

조금 더 시선을 내리면 마침내 비밀의 문이 모습을 드러낸다. 입을 꾹 닫고, 사랑하는 남자의 애욕을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를 마친 그것. 기다림에 지쳤는지 이따금 뻐끔거리며 정욕을 쏟아내어 줄 것을 간절하게 외치는 것 같았다. 땀인지, 체액인지 모를 것으로 가볍게 젖어 윤기가 흐르고 있다. 

 

후각에 집중하니 아로마 향에 뒤섞인 야릇한 향이 느껴진다. 복숭아 향과 비슷한, 그러나 훨씬 농밀한 여성기의 냄새는 굶주린 수컷의 애욕을 몇 번이고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마지막으로 부여잡고 있던 이성의 끈을 놓게 만든 것은 따로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에밀리의 음부는 몇 번이고 꼼꼼히 확인한 것처럼 제모 되어 있었다. 성장과 함께 조금씩 자라난 체모를 신경 쓰고 있었던 것일까. 욕실에서 익숙하지도 않은 면도기를 고사리손으로 잡고 사용했을 모습을 생각해보라. 어쩌면 아스널이 왁싱을 시킨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자기야.”

 

언제든 달려들 준비를 마치자 말을 걸어오는 에밀리.

 

“어서... 하자.”

“....!”

 

에밀리가 침대에 널브러진 채로 싱긋 웃어 보였다. 

그와 동시에 다리를 슬쩍 벌리는 모습은 새로운 충격으로 다가왔다.

에밀리 위로 뛰어올라 어깨에 걸려있던 앞치마를 침대 밑으로 던져버렸다.

 

“흐응...! 응... 좋아. 나, 많이 참았으니까... 오늘 밤 내내 사랑해줘.”

 

걸신들린 사람처럼 애무를 시작한 나를 상기된 낯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혓바닥이 깊은 곳을 찌르면 몸을 부르르 떨고, 대음순을 가볍게 훑으면 사랑스럽게 신음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여체의 호르몬 냄새가 의식을 점점 흐리게 만들었다. 

이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단지 눈앞의 암컷을 행복에 겨워 비명 지르게 만들고, 쌓여있던 모든 욕정을 그녀에게 쏟아부어야 한다. 무의식중에서 알 수 있었던 것은 그것뿐이었다.

 

음부에 입을 마개처럼 씌우고 힘차게 빨아대었다. 이빨로 음핵을 건들고, 혀를 집어넣어 휘저어놓았다. 입구일 뿐인데도 혀끝에서 질의 조임이 느껴질 정도였다. 넣고 싶다. 한계까지 부풀어 오른 분신을 과격하게 욱여넣고 싶다. 그런 추잡한 생각들이 파도처럼 몰아쳤다.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미 절정에 다다른 에밀리는 애틋한 눈빛으로 더 많은 애정을 갈구하고 있었다.

 

“너무... 좋아... 더, 원해.”

 

이성의 끈은 끊어진 지 오래였다. 에밀리의 음부는 보기 좋게 익어 야릇한 냄새를 풍겼다. 침과 체액으로 뒤덮인 분홍빛 조개... 이젠 나의 색으로 물들여줄 차례이다. 흥분한 나머지 거칠게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며 허벅지를 잡고 벌렸다. M자로 천박한 자세가 되어버린 에밀리는 부끄러움조차 잊고 삽입을 기다렸다.

 

잠시나마 잃었던 이성을 되찾고 에밀리와 눈을 맞췄다.

그러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오늘 밤은 날뛰어도 된다는 신호.

 

마침내 결합이 시작되려던 찰나....

 

“아, 애 깼다....”

 

누굴 닮았는지 우렁차게 울려퍼지는 울음소리.

하필 분위기가 최고조로 달아올랐을 때 깨다니, 아이가 조금은 밉게 보일 정도였다.

 

“하아... 하아... 조금만... 기다려. 흐읏... 빨리 재우고 올 테니까...”

 

에밀리는 아까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았는지 옷도 입지 않고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붉게 물든 뺨, 차마 닦지 못해 흘러나온 침이 묻은 입가, 오똑 솟은 잘생긴 코. 귓가에서 그녀의 신음소리가 하염없이 맴돌아 미칠 것 같았다. 

 

혼자 있기에는 몸이 근질거려 가만히 있기 힘들었으므로 뒤를 쫓기로 했다.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바닥에 뚝뚝 물을 흘리며 걸어가는 에밀리. 비부에서 애액이 줄줄 흐르는 것은 생각도 못 하는 것 같았다. 엉덩이를 그대로 드러내고 비틀대는 에밀리의 모습은 묘하게 고혹적이고, 또 음란했다. 

 

그 와중에도 아이는 울음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엄마를 보자 조금 진정한 듯하다가도 오히려 더 크게 울부짖기 시작한 것이다. 에밀리는 아이를 능숙하게 품에 안고 부둥부둥 달래었다. 

 

“열도 안 나네... 후후, 배고팠구나?”

 

에밀리는 기저귀를 확인하고 열도 재더니 이내 젖을 물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어엿한 엄마가 되어 있었다. 

 

“읏... 잠깐... 이게 아닌데...”

 

평온하게 젖을 물리던 에밀리의 얼굴이 일순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민감해진 가슴에 자극이 가해진 탓에 그런 모양이었다. 아이가 방긋방긋 웃는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다가도 잇몸이 유두에 닿기라도 하면 몸을 부르르 떨며 고개를 숙였다. 아이가 놀라기라도 할까 봐 입술을 깨물고 필사적으로 신음을 참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생명에게 먹이를 먹이는 신성한 광경에 아이의 자극으로 인해 흥분하는 음탕한 모습이 겹쳐 보이니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신선한 자극이 뇌리를 관통했다. 조금 수그러들었던 분신이 다시 뻣뻣하게 고개를 쳐들었다.

 

아이는 배가 불렀는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잠들었다. 아이의 하루는 끝났으나 우리의 밤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에밀리는 새근새근 잠든 아기의 이마에 입술을 맞추고 한동안 바라보았다. 쉽사리 보기 힘든 그 미소에서는 아이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느껴졌다. 

은은하게 생글거린다. 자신의 배에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나왔다는 것이 여전히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이가 완전히 잠든 것을 확인하더니 침대에 눕혔다. 내가 바깥에 서 있던 것을 눈치채고는 방금까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으로 내 물건을 감싸왔다.

 

“하아... 이제 못 참아.”

그러더니 혀를 섞어왔다.

 

“둘째, 만들자.”

 

서로의 체취에 몽롱해진 상태로 침실로 향했다. 맞닿은 입술은 떨어뜨리지 않았다. 뱀처럼 혀를 휘감으며 타액을 교환하고, 뜨뜻한 숨결을 느끼며 더 흥분한다. 침실에 다다랐을 때 에밀리의 비부는 다시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침대에 밀어 넘어뜨린 에밀리가 생각할 새도 없이 날 덮쳐버렸다. 에밀리와 하나가 되었다. 학수고대하던 이 순간, 우리는 지고의 쾌락을 맛보았다. 속이 축축하게 젖은 덕분에 걸릴 것도 없이 쑥 들어갔다. 

 

격한 쾌감에 내 몸 위로 쓰러져버린 에밀리. 그녀의 등을 야릇하게 쓸어내리며 천천히 허리를 움직이자 오랜만이라 익숙하지 않은 탓에 앓는 소리를 내었다.

 

“읏, 조금만 천천히...”

 

애달픈 목소리에 조소하고 말았다. 육봉을 끝까지 밀어 넣은 채로 가만히 서로의 온기를 느끼고만 있었다. 움직이지 않는데도 주름들이 꿀렁꿀렁 움직이며 그것을 고루 자극해왔다. 애태우듯 밀려오는 자극에 더 이상은 참기 힘들었다.

 

“자, 잠깐..! 응....!”

 

위치를 바꾸어 위에서 내려찍으니 에밀리는 대처할 새도 없이 절정 해버리고 말았다. 뇌수를 타고 흐르는 폭발하는 자극에 천박하게 허덕이는 에밀리. 그녀의 신음이 커질수록 움직임은 더욱 거칠고 빨라졌다.

 

그럴수록 간드러지게 유혹해왔다. 초점이 흐려진 상태로 연신 내 이름을 불러오기도, 목덜미에 한참이나 키스하며 표식을 새기기도 했다. 예전 같지 않은 그녀의 모습에 심술이 나서 음핵을 자극하기라도 하면 들으라는 듯이 교성을 내뱉었다.

 

전투를 위해 오감이 민감하게 설계된 에밀리는 성적인 자극에도 민감했다. 덕분에 몇 번이나 조수를 뿜어대고, 또 밀려오는 성감에 젖어 헐떡이기도 했다. 반응이 좋을수록 정복감은 크게 불타올랐다. 전장을 휩쓸던 그녀를 굴복시켰다는 쾌감, 무뚝뚝한 그녀를 행복에 젖게 만들었다는 만족감이 공기를 달구었다.

 

축축하게 젖어 제 역할을 못 하게 된 침대 시트, 방안에서 몇 번이고 메아리치는 두 남녀의 교성, 살결이 찰지게 맞부딪히는 소리, 비부가 마찰하는 끈덕진 물소리, 몸을 흥건하게 적신 끈적한 체액, 구석까지 베어버린 에밀리의 체취... 

 

모든 것이 사랑스럽게만 보인다. 에밀리의 알몸에서는 다른 바이오로이드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강렬한 에로스가 느껴진다. 내 몸에 맞게 형태가 변해버린 질, 내 이빨 자국이 그대로 남은 부드러운 가슴, 내 이름을 부르는 앵두빛 입술...

 

더 기쁘게,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다. 

단지 그 생각만으로 피스톤질을 계속했다.

 

땀인지 타액인지 구별할 수 없는 무언가로 흥건히 젖은 에밀리의 몸 구석구석을 맛보았다. 간지러운 것인지 몸을 비틀었다. 그 반응이 재밌어서 오히려 더 열성적으로 핥아댔다. 내 가학심만 자극할 뿐이었다. 에밀리도 잘 아는지 장단에 맞춰 가볍게 저항했다.

 

“하아... 하아... 기운이 없네? 벌써 지쳤어? 후읏... 원래 이 정도였나...”

 

열락에 젖어 가쁜 숨을 내쉬면서도 날 도발해오는 에밀리. 괘씸한 마음에 에밀리를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한계까지 부푼 육봉을 가장 깊은 곳까지 박았다, 다시 빼기를 빠르게 반복하고, 손으로는 배, 가슴, 목덜미를 간드러지게 쓰다듬고 아프지 않을 정도로 꼬집었다.

 

애타는 마음에 교성을 내뱉으려는 입술을 키스로 틀어막고 혀를 섞었다. 소리도 내지 못하게 된 에밀리가 뱃속을 더 강하게 조여왔다. 눈이 반쯤 풀렸으나 시선만큼은 내 눈과 맞추고 떨어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까의 당당하던 기세는 진작에 역전되어 에밀리는 지금 내 밑에 깔려 쾌감에 지배당한 암컷에 불과하게 되었다. 

 

“흐읏... 응! 얼마 전까지 교복 입던 여자애 따먹으니까 좋아...?”

“.....!”

 

버거운 와중에도 힘겹게 미소를 짓는 에밀리. 분명 아스널이 알려준 말이겠지. 하지만 전후 사정 따윈 중요치 않았다. 에밀리의 도발은 내 가학심을 최대까지 끌어 올리기 충분한 유혹이었고, 머릿속에서 무언가 뚝- 끊어지는 감각과 함께 이 교미를 화려한 피날레로 안내했다.

 

“으앙! 하앗... 자기야... 자기... 자기야...!”

 

한껏 달아오른 공기가 뜨겁게 느껴질 만큼 우리의 관계는 격렬했다. 에밀리의 숨결이 내 목덜미에 닿아 흩어지고, 내 숨결이 에밀리의 귓가에 맴돌다 사라진다. 때로는 체위를 바꾸어 발정난 개처럼 쾌락을 탐하고, 또 가끔은 진득하게 입술을 겹치고 땀이 흥건한 서로의 살결을 맛 보았다.

 

나의 것인지, 너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체액으로 비부가 흥건해졌다. 혀는 이미 끈적한 타액의 맛에 길들어 더 진한 자극을 찾아 에밀리의 이곳저곳을 헤집어놓았다. 서로의 온몸이 성감대가 되어 몸을 맞대거나 슬며시 쓸어내리는 것만으로도 눅진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소온... 손 잡아져...”

 

혀가 꼬인 걸까. 에밀리가 답지 않은 말투로 팔을 벌려 신호를 보내었다. 부드럽게 감싸 쥐자 손의 포근하고 폭신한 감촉이 전해져 왔다. 손을 마주 잡고 아기를 다루듯 조심스럽게. 때로는 아이를 혼내듯 단호하게. 스퍼트를 낮추면 애가 탄 에밀리가 먼저 허리를 흔들어 오고, 강단 있게 몰아붙이면 또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순종적으로 받아들이고.

 

완벽한 궁합이었다. 첫날 밤의 기억이 겹쳐지며 성숙해진 에밀리가 몇 배는 더 사랑스러워 보였다. 미숙한 솜씨로나마 만족시켜주려고 노력했던 그 날의 에밀리. 그랬던 에밀리가 지금은 나와 완벽하게 합을 맞추어 섹스하고 있다.

그 사실을 상기하며 에밀리에게 남은 정을 쏟아부었다.

 

끓어오르는 사정감에 힘을 다해 몸을 붙이자 에밀리는 복받치는 절정감에 옅은 눈물까지 보이고 말았다. 바깥에 들리지는 않을까 걱정될 만큼 큰 소리를 냈지만, 이내 다가온 절정에 소리를 죽이고 축 늘어지고 말았다.

 

정액이 흘러나오며 꿀렁대는 감각이 전부 느껴질 정도로 예민해졌다. 불탈 것처럼 뜨거웠다가 그 하얀 정을 안에 전부 쏟아내자 힘이 쭉 빠지는 것 같았다. 사정은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한동안 배출하지 못한 탓에 묵혀있던 것들마저 전부 그녀의 속으로 털어놓았다. 

 

에밀리는 그 많은 양을 야무지게 받아들였다. 꿀꺽꿀꺽, 가장 깊은 곳으로 내 분신들을 삼켜대었으나 너무 많았던 것인지, 결국 일부는 결합부의 틈으로 새어 나오고 말았다. 그마저도 아쉬웠던 걸까. 에밀리는 조금씩 흘러나오는 하얀 것들을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사정은 끝났지만 우리는 그 상태로 한참이나 멈춰있었다. 얼마 만이었는지도 가물가물한 결합. 그 강렬한 자극의 여운을 조금이라도 더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둘의 생각이 일치했으므로, 아직 수그러들지 않은 분신을 차마 빼지 않고 그 상태에서 사랑을 속삭였다. 

 

서로의 몸에 키스 마크를 남기고, 평소라면 닭살이 돋아서 하지 못할 야릇하고 달콤한 대화를 나누었다. 보답이라도 하듯 에밀리의 질이 기분 좋게 그것을 마사지해왔다. 긴장이 풀리는 바람에 슬슬 잠자리를 준비하려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 안돼.”

 

에밀리가 허리를 다리로 감아 옴짝달싹 못하게 구속했다.

 

“이젠 내 차례야.”

‘난 아직 만족 못 했어.’ 그렇게 덧붙이고는 허리를 들어 순식간에 위아래를 바꾸었다.

 

“어... 에밀리? 오늘은 여기까ㅈ... 윽...!”

 

에밀리는 수그러든 내 성기를 입안 가득 밀어넣고 혀를 굴리기 시작했다. 너무 강한 자극에 힘이 빠졌던 하반신이 다시 벌떡 일어서고 말았다...

가차 없는 애무에 잠잠했던 성욕이 다시 끓어올랐다. 정기를 전부 빨아낼 기세로 자극해대는 혀. 입술이 뻐끔거릴 때마다 흡입력이 강해져 순식간에 에밀리의 입안도 내 흔적으로 마킹하고 말았다. 나의 색으로 물든 에밀리의 구강... 

 

에밀리는 보란 듯이 입을 벌려 가득 머금은 하얀 것들을 자랑했다. 조금 자신감을 되찾은 걸까. 이번에는 그녀의 뜻에 따라주기로 했다. 두 번째의 사정에도 줄어들지 않은 양에 놀란 것처럼 보이다가도, 이내 꿀꺽 삼키고 입가를 혀로 훑어 남은 액체마저 전부 마셨다. 

예전이었다면 여기저기 흘러 더러워졌을 테지만 이제는 기침도 하지 않고 능숙하게 받아 마시는 수준이 되었다. 

 

“이젠... 내 턴 맞지?”

 

에밀리가 내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우리는 다시 하나가 되었다.

 

/

 

“후아... 이제 만족했어?”

“흐응... 읏.. 만족... 하아... 했어...”

 

둘 다 완전히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 몸이라면 두 말할 것도 없이 서로의 사랑으로 뒤덮여 끈적끈적하게 젖어버렸고, 심지어 에밀리의 머리카락은 이후에도 몇 번이나 구강성교로 인해 뿜어져 나온 하얀 것으로 잠식당하고 말았다.

 

옷을 입는 것도 사치였으므로, 우리는 이미 우리의 향과 색으로 깊게 물들어버린 침대 위에 자연의 상태 그대로 누워 있었다. 이불을 미리 개어 둔 것이 다행이었다.

 

“하아... 임신... 했겠다. 그치?”

에밀리가 두둑하게 부푼 배를 어루만지며 베시시 웃었다.

 

“확실하네...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되는 마음도 컸으나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저렇게나 행복해보이는 표정은 오랜만이었으니까.

 

“이럴 줄 알고 밥 많이 안 먹었던 건데... 헤헤.”

“응?”

 

“봐봐. 배가 빵빵해졌잖아. 밥까지 먹었으면 터져버리고 말았을 거야.”

새삼 순수한 미소에 격렬했던 관계로 생겼던 피로가 눈녹듯 사라졌다.

 

“하아, 시트 완전 못 쓰게 됐겠다. 내일 청소하려면 고생이겠네... 

자기가 너무 많이 해서 그래.”

“누가 그렇게 예쁘래? 누가 엄마 아니랄까봐 이젠 그런 걱정부터 하네.”

 

부드러운 이불에 들어가 오랜만에 나누는 달콤한 이야기들은 아까의 관계만큼이나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가끔 에밀리의 가슴을 만지작거리면 얕은 신음을 흘리기도 하고, 금세 살아난 분신이 에밀리의 배에 닿아 어색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했다.

 

“.... 사랑해, 사령관. 정말... 사랑해.”

새삼스러운, 그러나 유독 감미로운 고백.

 

회답하지 않고 입술을 맞추었다. 아까와는 다른 것이다.

쾌락 때문이 아닌, 서로의 감정을 재확인하는 그런 키스.

달콤하면서도 씁쓰름한 연분홍빛 입술을 열과 성을 다해 음미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잊은 지 오래였다.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는 모른다. 미래가 언제나 밝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런데도 두렵지가 않았다. 이 작고 귀여운 아내와 함께 만들어갈 미래에 대한 기대만이 충만할 뿐이었다.

 

얕은 숨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에밀리는 이미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이 아이가 선물해준 믿을 수 없을 만큼 찬란한 시간에 감사하며, 

나는 조용히 속삭였다.

 

굿나잇, 에밀리.


/


에밀리 보고 안 꼴린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런 미성숙한 아이가 이런 야스한 말이나 행동을 배우면서 음탕해지는, 그런게 진짜 꼴리는 거라고요. 아.시.겠.어.요?


물론 굳이 그럴 필요도 없이 에밀리는 그 자체로 존나 귀엽고 꼴립니다




창작물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