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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아아아..."


소년은 너무 이른 시간부터 잠들어 버린 탓에, 일어났을 때엔 아직도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다.


한번 기지개를 늘어지게 키려고 했으나

무언가에 걸려 일어나질 못했고, 이내 그 물체의 정체가 옆에서 자고있는 모친의 팔이라는 것을 금방 인지하였다.


"...불편해"


어째서인지 본인은 모친의 품에서 낑긴 채로 자고 있었기에 움직일 수가 없었고,

아직 새벽이라 모친을 깨우기도 뭣했던 소년은 다시 잠들기 위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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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아침, 소년은 잠에서 깨어나 늘어지게 기지개를 펼쳤다.


어느새, 옆에서 자고 있던 모친은 보이지 않았지만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기에

그녀가 지금 요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지할 수 있었다.


"몰래 다가가서 껴안아볼까, 아니지아니지.. 책이나 읽어보자."


장난을 치려고 하던 소년은 이내 생각을 바꾸어

어제 읽다가 잠들었던 검은 색상의 일지와 초록색의 노트를 펼쳐보았다.


"라비아타 프로토타입, 모든 바이오로이드의 시초 격이며, 사령관의 최측근 중 한명."


초록색의 노트 안에는 수많은 여성들의 사진과 함께 이름을 비롯한 특징이 적혀 있었고,

특이했던 점은 이 여성들의 설명문 안에는 항상 바이오로이드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었다.


"흐으으음.... 모르겠어, 모르겠다구우우..."


바이오로이드를 비롯한 몇몇 단어들은 어린 소년에겐 너무나도 생소했으며,

여성들의 이름이 마치, 사람의 이름이 아닌 기계에 붙는 상호명 같았기에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요리가 다 되려면 아직 먼 것 같으니 이거나 읽고 있어야겠당."


소년은 초록색의 노트를 덮어버리고 그 위에 검은색의 일지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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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의 메이가 합류하고 나서, 확실히 일처리가 더욱 수월해졌다.


...좀 싸가지가 없는게 마음에 안들기는 하지만 말이다.


"사령관님, 안에 계세요?"


"어, 그래. 들어와도 돼."


이내 함장실의 문이 열리고 콘스탄차가 들어온다.


"오늘 제조된 바이오로이드들을 직종과 팀에 따라 분류한 목록이에요, 읽어보시고 서명 부탁드릴게요."


제조를 한번 하는데에만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기에, 

해결책을 찾아 몇시간정도 고민하다 나온 결론이 콘스탄차에게 부탁하고 업무를 하는 것이었다.


"컴패니언, 성벽의 하치코 2기에... CS페로 1기, 그리고 블랙 리리스 1기, 스틸 라인은..."


혼자남은 인류라는 이유로 전 세계의 자원을 싹쓸이하고 있던 나였기에,

남아도는 자원 소모도 좀 할 겸, 제조 설비를 몇번 강화했더니 꽤나 효율이 좋은 바이오로이드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바이오로이드들을 어느정도는 파악하고 계서야 할 것 같아서 여기 정리한 노트를 두고 갈게요, 그럼 이만."


서명을 하고 콘스탄차를 내보낸 후에, 내 무릎 위에 올라타있는 무언갈 쓰다듬자 눈 앞에서 포근한 털뭉치가 살랑인다.


제조실에서 몇 번 쓰다듬어줬더니 이젠 아예 내 무릎에 전세내고 누워서 고롱거리는 하치코를 보곤, 

갑자기 궁금한 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너는 왜 내가 좋은거냐."


"그야, 당연히 제 주인님이시니까요!"


"...나는 네 주인이 아니야."


"에이, 예전의 주인님들은 저를 쓰다듬어주셨었는데요?

그러니까 제 앞에 있는 분도 제 주인님인 거에요!!"


"쓰다듬는다고 주인이면 온 세상 사람이 다 네 주인이겠네.. 잠깐만, 옛날 주인이 어쨌는데?"


갓 제조된 바이오로이드일 지라도 옛날의 인간 정도는 기억하고 있겠지, 꽤나 중요한 정보일 것 같구만.


"으음... 옛날의 제 주인님들은.. 저를 자주 쓰다듬어 주셨었어요, 그리고는.."


하치코가 말하다 말고 대뜸 내 바지를 가리킨다.


"? 내 바지가 왜?"


"주인님들은 하치코를 침대에 눕히고, 거기에서, 음... 뭔가 울퉁불퉁하고.. 길쭉한 게 나와서, 하치코의 뱃속에 들어갔었어요."


"(....이런 미친새끼들이...)"


"그게 들어왔을때, 너무너무 아파서 몇번이고 도망치려고도 해봤어요.

근데 하치코가 도망가려고 하면... 주인님들이 하치코를 때리면서 '쓸모없는 고철덩어리같으니!!' 라고 하셨어요.

그래서....그냥 꾹 참았어요, 그러면 주인님도 웃으시면서 하치코를 칭찬해 주셨어요."


이야기를 듣자, 주먹에 저절로 힘이 들어간다.


눈 앞의 순진하고도 연약한 존재에게.. 아니, 무수히 많았을 존재들에게 전 인류가 행했을 쓰레기같은 행보를 들으니,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솟구친다.


"주인님도 그걸 원하신다면... 전 참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버리지 말아주세요..."


나는 그 자리에서 뛰쳐나가 화장실에 들어갔고, 애꿏은 변기에 내 분노를 토해냈다.


전 인류가 이런 소녀들에게 행하였을 쓰레기같은 행보들을 

참을 수 없었다.


인간들에게 고통받고 버림받았으나, 버림받지 않기 위해 두려움을 무릅쓰고 고통을 반복하는 소녀들의 슬픈 눈빛을 보고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가장 참을 수 없던 것은.....


아무리 인류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삿대질을 해 보아도,

내가.. 내가 그런 방사능의 폐기물만도 못한 인류와 같은 존재라는 것이었다.


"...나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전 인류와는 같은 길을 걷지 않으리라고 이 자리에서 다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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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바짓 속에서 대포가 나온게 아니라면 아플 이유가 없는데... 그리고, 폐기물이 뭐지?.. 엄마한테 물어봐야겠다."


책의 내용에 갸우뚱해하던 찰나, 바깥쪽에서 소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일어났어? 나와서 밥먹어!!!!"


이내 소년은 쪼르르 달려나가 기다리는 모친에게 질문을 던진다.


"엄마, 페기물이 뭐야?"


"에?"


예상치 못한 소년의 질문에 모친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리고 바짓 속에 있는 대포가 뭐야? 엄마도 맞아봤어? 그거 되게 센거지?"


이어지는 소년의 난감한 질문들에 모친의 얼굴이 새빨게진다.


"너 그런거 어디서 배웠어!!"


"윽... 여기서요..."


당황 반 흥분 반이 섞인 모친의 호통에 소년은 움츠러들며, 질문의 근원지인 검은 일지를 품에서 꺼내 들어올린다.


"아.... 그래... 네가 뭘 알겠니... 밥이나 먹자."


"...네..."


부엌은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이내 어색한 기운이 감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