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전, 레모네이드 제타가 항복해왔다.

당황스럽게도 그 쪽에서 먼저 구조 신호를 보내온 게 계기였다.

고민 끝에 함정을 각오하고 최고 수준의 전투 태세로 도착한 신호 포인트에서, 처음에는 그 누구도 제타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녀가 너무 꾀죄죄했던 것이다. 심지어 같은 자매기인 레모네이드 알파도 그 모습을 못 알아봤을 정도였다.

그녀는 거의 헐벗은 수준의 누더기를 걸치고 있었고, 얼굴과 몸엔 땟국물이 가득했으며, 머리는 진흙과 먼지 투성이여서 원래의 머릿색이 무엇인지 알 수 조차 없는데다 지린내와 악취가 전신에 가득했다. 심지어 심하게 굶은 건지, 파리한 상태의 홀쭉해진 얼굴이 영양실조에 걸린 것만 같았다.

제타는 사령관을 보자마자 후들거리며 입을 열었다.


-항,항복 무조건 항복이에요...마,마지막 인,인간님께 충,충성할께요..제,제발 살,살려주세요...


어눌하게 웅얼거리던 제타는 그 말을 끝으로 바닥에 쓰러졌고, 오랜 굶주림과 피로로 인해 기절한 것 같아 보였다.

심지어 브라우니가 총끝으로 툭툭 찔러봐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사령관이 새로운 종류의 함정인가 고민하는 사이, 진상은 곧 파악되었다. 단순한 이유였다.

레모네이드 제타는 나태의 레모네이드였고, 그 명성에 걸맞게 지독하게 무능했다.


-원래 게으르고 무능하고 도움 안되긴 했지만,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알파는 당황한 듯 시선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제타는 멸망 전에도 무능했고, 늘 자기 주인에게 혼나는 모습에 자매기들에게는 비웃음의 대상이었으며, 심지어 일부 아랫계급의 바이오로이드들에게도 멸시를 당하기 일수였다.


-그래도 자기 일은 잘해냈어요. 거의 시킨 일이 없긴 했지만...설마 이런 한심한 모습으로 재회할 줄이야

-오메가하고 연락하진 않은걸까?

-...오메가가 멸망 직후 제일 먼저 한 일이 제타를 아예 배제하는 거였어요. 통신선도 전부 끊어버렸죠. 걸리적 거린다고

-그 정도야?

-네 그 정도에요 아마 직접 경험하시면 알게 될거에요


그 말은 사실이었다. 그 후  한달간 사령관은 같은 자매기인데도 저렇게 까지 차이 날 수 있을까 하고 놀랐다.

그녀는 무능했다. 진짜 끝장나게 무능했다. 심지어 멍청하고 허당에 울보이기까지 했다.

씻겨놓고 옷을 맞추니 같은 레모네이드 자매기라는게 보였지만, 그녀는 사실 토모의 자매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사실 토모조차 그녀와 비교하는게 실례인 수준이었다.


-밥, 밥은 주시는거죠..? 저,저 대답 잘 할테니 제,제발 자,자비를...


처음 그녀를 옮기고 구속의자에 묶은 뒤, 심문을 시작하자 그녀가 처음 한 질문이었다.

밥을 준다고 하자 그녀는 울면서 감사하다고 빌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밥이 나오자 콧물까지 질질 짰다.

심지어 그녀는 심문 도중에 오.줌을 지리기까지 했다.


-하,하지만 화,화장실 가도 된다고 안,안하셔서..최,최대한 참았...흐윽 흐앙~


결국 그녀는 오.줌을 지리며 울기 시작했다.


'환장하겠군.'


심문실을 지켜보던 사령관과 지휘관 기체들은 멕이 빠졌다.

그녀에게 적의가 없는 걸 확인하고 여러 정보를 캐내려했으나, 그녀는 아는게 거의 없었고, 뭔갈 말하면 전부 틀린 내용이었다.


-벌써 세 번째야 제타. 넌 곡물창고라고 했는데 거기엔 곡물비료밖에 없었어. 이게 어떻게 된거지?

-죄,죄송해요..!! 제,제가 멍청해서..곡, 곡물비료랑 헷갈린..

-...그걸 헷갈린다고?

- 히익...!!죄, 죄생호요 아,아니 죄송...부,부디 자비를...아,아니, 차,차라리 벌,벌을...


'도대체 쟤를 비서로 어떻게 써먹은거지?'

어떻게든 레모네이드라는 이름에 걸맞게 써먹기 위해 감시 하에 비서일을 시키려 하자 사고는 더욱 커졌다.

그녀는 커피를 타오면 태우기 일수였고, 심심찮게 물건을 떨어트리고 방을 엉망으로 만들고 커피를 쏟았다.

무능 무능 무능!!!무능이라는 글자가 바이오로이드의 형태를 갖춘다면 그건 바로 제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나중엔 알파가 나서서 제타를 비서 업무에서 제외시켜 달라 요청해왔다.


결국 그녀는 아무일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자 또 문제가 생겼다. 제타가 일을 달라고 하는것이다.


-죄,죄송해요 그,그래도 업,업무를..

-아니야 제타 괜찮아. 정말 아무일도 안해도, 우린 쫓아내지 않아.

-아,아니에요! 제,제발 인간님 아,아니 주,주인님 제,제발...신,신발이라도 핥을께요!!저, 저에게 일을...!!


주장의 근거는 단순했다. 다른 자매기들과 자신을 버린 부하(였던) 바이오로이드들처럼, 일을 못하면 그녀를 버리고 갈거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녀는 정말 끈질기게 일을 달라 주장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쫓아내지 않을거라 말을 해줘도 그녀는 믿지 않았고, 오히려 그런말을 하면 위아래로 액체를 흘리며 빌기 시작했다.

나중에 가선 그녀가 너무 긴장하는게 아닐까 해서, 멸망 전 그녀의 주인처럼 귀족스러운 호화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며 대화를 해봤지만, 그 자리에서 그녀는 역대급으로 발광하며 울어재꼈고, 결국 소완이 칼을 꺼내는걸 막아서야했다.


-하아....


 늦은 밤, 겨우 일을 끝낸 사령관은 머리를 감싸안았다.

 오늘 오전에 이미 한번 끝냈던 서류지만, 점심시간 찾아온 제타가 울며 불며 난리치다 콘솔을 잘못 건들었는지 내용자체가 증발했고, 결국 지금 이시간까지 사령관은 야근을 때려 겨우 복구에 성공한 거였다. 이젠 슬슬 본인도 제타를 쫓아내고 싶은 충동이 올라오는게 느껴졌다. 대체 저걸 어떡해야하지? 진짜 쫓아내야하나? 진지하게 고민하려는 찰나,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탈론 페더였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급히 보여줄게 있다며 늘 가지고 다니던 콘솔을 들이밀었다.


-또 뭘 찍었다고...


최근엔 제타 때문에 녹초가 되어 제대로 하지도 못했건만, 심드렁한 마음으로 콘솔을 보던 사령관은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콘솔에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형식으로 여자화장실칸이 녹화된 영상이 띄워져 있었


-아니 너 여자화장실도 도촬하냐?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소근 거리는 페더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명의 미녀가 화장실로 들어왔다. 제타였다. 특유의 울상을 띄운 채 들어온 그녀는 팬티를 내리고 변기 위에 앉았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녀의 표정이 돌변했다.


평소의 순진무구하다 못해 멍청하고 어리버리하던 눈동자는 공허함만이 가득찬 텅 빈 썩은 동공으로,

항상 울상 지으며 버리지 말라고 빌던 보기만 해도 바보같던 표정은 세상만사가 귀찮고 시시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러자 그녀에게서 손하나 까딱하기조차 귀찮은 나른함과 권태감이 느껴졌다. 그렇다 지루하다.

인간도, 바이오로이드도, 철충도, 오르카호도, 심지어 자기 자신 조차도, 표정의 주인에겐 아무런 가치도 없이 지루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거기엔 멍청하고 무능한 바이오로이드는 사라졌고, 세상이란 시시한 유희에 질려버린 여왕이 있을 뿐이었다.


-나태의 레모네이드 제타!


소름이 돋으며 육성이 터져나왔다. 그렇다, 그녀는 결코 무능하고 어리석은게 아니었다. 지금까지 철저하게 그 본성을 숨기고 있었던 것 뿐. 감시용 카메라가 몰래 설치된 자기 방에서 조차 철저하게 자신을 숨기며 모두를 속여왔던 거다.


'젠장 비상사태다. 모두를 깨워야해. 아니 오히려 그럼 눈치를 채니 소수병력으로...'

-사령관님 진정하세요 진정하고 좀 더 보세요.


차분한 페더의 목소리에 다급하게 머리를 굴리던 사령관은 화면에 집중하며 다음 장면을 기다렸다.


하지만 화면 속 장면은 점입가경이었다. 제타는 태연하게 한손을 들자 거기엔 화면 단말이 떠올랐다. 숨겨진 통신기기였다. 그녀는 본성을 감춘것도 모자라 통신기기까지 숨겨놨던 것이다.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하며 식은땀이 흐르는게 느껴진다. 


'오메가인가? 오메가랑 연락하는건가? 이미 오르카의 위치가 발각된건가? 그럼 페더는 뮈지?지금 이걸 보여주는 페더는?

내옆에 있는 페더는 그럼 누구지?'


호흡이 멎는 듯한 공포, 사령관의 동공이 크게 떠지며 긴장감이 척추를 내달리던 그 시점,

레모네이드의 통신 기기에 한가지 영상이 떠올랐다.



-아앙 허니~♥허니 너무 좋아♥ 레오나 엉덩이는 허니의 변기야♥어서 빨리 변기 레오나를 사용해줘♥ ♥ ♥ 오옹♥ ♥ ♥ ♥


섹스영상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크리스마스날 술마시고 레오나와의 뜨거웠던 추억이 담긴 영상이었다.


-미친! 페더 너 이거 다 지웠다매!

-네 그런데 그걸 복원한 것같아요. 엄청난 기술이에요 사령관님. 오르카의 통신 자체를 해킹해서 유출한 영상일지도 몰라요.

-뭐 유출? 복원? 어떤 미친 년이 그딴...

-그보다 사령관님 제타의 표정을 보세요


제타? 제타가 뭘? 급하게 시선을 돌려 제타의 표정을 쳐다보자, 거기엔 녹아내릴듯 황홀한 제타의 표정이 있었다. 그녀는 눈과 입꼬리는 풀릴 때로 풀려 호를 그리고 있었고, 입에선 칠칠치 못하게 침까지 흘리고 있었다. 심지어 한손으로는, 자기의 아래를 쑤시며 자위행위에 한참이었다.


-아앙 허니~♥ 허니이이♥ ♥ ♥ 아앙 그렇게 하면♥ ♥ ♥ 엉덩이가 가득!!♥ 오옥!♥ 오오오옥!!♥ ♥ ♥ ♥


푸샷!!


마침내 영상이 절정에 오르자, 제타는 멍청한 표정으로 입을 헤 벌리고 침을 흘리며 혀를 내밀고 경련하였고, 밑에서는 부끄러운 소리와 함께 소변인지 알 수 없는 액체가 분수처럼 분출되었다. 그렇게 한참을 쏟아내던 그녀는 실떨어진 인형처럼 축 늘어진 상태가 되었으나 오히려 손은 다급하게 아래를 쑤씰 뿐이었다. 몇번 가벼운 경련을 반복하는 그녀...하지만 이윽고 다시 나태의 표정으로 돌아와 뒷정리를 하더니 다시 울상이 되어 화장실을 나왔다. 다만, 나오기 전 그녀는 한번 더 영상의 썸네일을 보면서 미묘한 표정으로 입을 달싹였다.

-부럽다-

라고.


쾅쾅쾅!!!


-우음..사,사령관닝..?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제타는 거기에 있었다. 울것같은 표정 순둥스러운 눈동자로 침대에 누운채로 사령관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사령관은

냅다 전력으로 뺨을 갈겼다.


-우윽...사, 사령관님...? 갑,갑자기 왜 뺨을..

-닥쳐 개년아 니가 날 가지고 놀아??


당황한 제타는 급하게 침대에서 반쯤 몸을 일으킨채 한손으로 맞은 뺨을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어루만졌다.

충격으로 눈은 크게 뜨고는 상황이 이해가 안된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 그게 무슨...아악!!!머, 머리...머리카락 당기시면, 아, 아ㅍ



사령관은 다시 뺨을 쳤다. 이번에는 한손으로 머리를 잡아당기며 강제로 바닥으로 끌고 나온 후에 친 뺨이었다.

제타는 제대로 몸에 힘도 못주고 머리카락에 전신의 무게가 지탱당해 매달려 붙잡힌 채 비명을 질러댔다.


-아아악 아악!!! 아, 아파요 사령관님!!! 머, 머리는 놔주ㅅ


짝 짝! 뚜둑-

다시 뺨을 힘껏치자 몸 전체가 흔들렸고, 몸 무게를 지탱하던 머리카락은 그대로 몇가닥 뽑혔다.


-흐윽 흐윽 으흐흑...제,제발 이러지 마세요... 저, 저한테 왜이러세요 대체...


마침내 제타는 울기 시작했다. 하긴 자는데 갑자기 쳐들어와 머리 당기며 뺨때리는데, 누구라도 울겠지.

그러나 속지 않는다. 저 표정은 시답지 않은 연기일 뿐. 지금에야 보인다. 저 멍청한 표정 속 감춰진 또 하나의 표정이.

드디어 라며 만족하는 표정이. 우는 듯한 입가에 걸린 미소가. 공포가 아닌 기대로 달아오르는 얼굴이...


10분전,

영상을 보고 의아한 사령관은 급하게 레모네이드 알파를 호출했고, 그녀는 당황하다 탈론페더에게 뭔가를 듣더니 눈치챈 듯 설명하기 시작했다.

제타는 멸망전에도 무능하다며 욕을 먹었지만, 처음에 말했듯이 자기일은 잘해내는 편이었다.

아니,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평소 이미지 때문에 안보였던거지, 오히려 레모네이드 평균보다 뛰어난 훌륭한 일처리 솜씨였다.

게다가 그녀의 주인은 각 레모네이드의 주인들 중 가장 잔혹한 성품이었다. 진짜 그녀가 무능했다면, 진작에 폐기처분했을 것이다.

즉, 그녀는 무능한게 아니란 말이다.

그러나 그녀는 늘 실수를 했다. 그것도 엄청 자주. 특히 주인 앞에서.


-그녀 입장에선 일종의 놀이인 거죠 사령관님.


그렇다. 나태의 레모네이드인 그녀는, 진짜 나태한게 아니었다. 오히려 뛰어났기에 모든게 시시했고, 그렇기에 재미를 추구했던 것이다. 이런 희안한 재미를.


-아마 멸망 후엔 당분간 재밌었겠지만, 곧 모든게 시시해졌겠죠. 그러다 오르카호에 접근하기 시작했고, 아마 이 영상을 극비 문서 같은 줄 알고 복구했다가...푹 빠져버린 것 같네요

-그럼 항복은?

-...아마 이 영상만 보고 사령관님도 변태라고 생각하고 접근하기 위한게 아니었을까요?

-하...그럼 어떡하지?

-일단 그녀가 원하는걸 해주도록 하죠. 지금은 가만 있지만, 그녀의 능력은 위험요소에요. 분명 저런 단말 말고도 분실했다고 보고한 여신의 허리띠도 어디에 잘 숨겨 놨을 거에요.


맞는 말이었다. 멸망 전에도 모두를 속이고 멸망 후에도 모두를 속일 정도라면, 만약 그녀가 다른 마음을 먹으면 위험하다. 철저히 아군으로 만들어야한다. 아니 철저하게






조교를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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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매도당하고 싶은 엘프님" 보고 삘받아서 따라써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