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 https://arca.live/b/lastorigin/22099238 



 

하아… 하아… 하아…”

 

끝났다. 전쟁은 결과적으로 모든 철충을 섬멸하는 것으로 끝났다. 더 이상의 연결체도, 철충들의 잔당도, 별의 아이도 이제는 없다. 한바탕 전쟁의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폐허밖에 남아 있지 않았지만 전쟁은 끝났다.

그 잿더미 사이에서 작은 체구의 소녀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주저앉았다. 그녀도 전투에 참여했던 것인지 손에는 나무토막 같은 것을 들고 있었고, 한쪽 눈은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건지 회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허나 전쟁이 끝났는데도 소녀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지는 일은 없었다.

 

이번에도… 실패했구나….”

 

나지막하게 중얼거린 소녀의 곁에는 오랫동안 그녀와 함께했던 동료들의 시체가 마구 널브러져 있었다. 콘스탄챠라 불렸던 안경을 쓴 갈색 머리를 가진 메이드도, 그녀에게 틈만 나면 꿀밤을 먹였던 금색의 단발머리를 한 소녀도, 이방의 십자군 왕이라 자칭한 갑주를 입은 흑인 여성도 모두 그녀의 곁에 싸늘한 주검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사령관…”

 

숨을 쌕쌕거리던 소녀는 한 사내의 사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권속이나 사령관이라 불렀고, 누군가에게는 주인님, 누군가에게는 인간, 누군가에게는 반려…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던 최후의 인간 남성 역시 애석하게도 죽음을 피하지는 못했다.

주위에 살아 움직이는 존재는 소녀밖에 없었다. 그랬다. 전쟁의 ‘결과’는 철충을 섬멸하는 것으로 끝났지만, 마지막 인간이 이끌던 군대 역시 소녀를 제외한 모든 전투원들이 목숨을 잃는 비참한 결말을 맞게 되었다.

전쟁이란 건 어째서 이렇게도 얄궃은 것일까. 차라리 전쟁이 없던 시대에 살다가 죽었다면 이렇게 가슴이 미어지는 일도 없었을 텐데. 하지만 그랬다면 사령관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게 더 싫었다. 한숨을 쉰 소녀가 주머니에서 단말기를 꺼내고선 입을 열었다.

 

에이다.”

 

곧 단말기의 액정에 로봇의 모습이 비쳤고, 이제는 익숙한 로봇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LRL 양, 이번에도 돌아가시려는 겁니까?”

“…….”

저는 단순히 설명과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지만, 당신은 직접 경험하는 일입니다. 괴롭지 않은 겁니까?”

“…….”

 

LRL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괴롭지 않느냐고? 아니, 괴롭다. 마음이 찢어질 것 같다. 슬프다. 여기에서 포기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도 숱하게 많았다. 이제는 익숙해져서 감각이 무뎌질 때도 되었지만 여전히 괴로웠다.

하지만─

 

부탁이야. 타임 리프 장치를 작동시켜 줘.”

 

LRL은 언제나처럼, 이제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반복한 그 대사를 입 밖으로 냈다. 에이다는 잠깐 동안 뜸을 들이는가 싶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작동까지 다소 시간이 걸리니 기다려 주십시오.”

 

에이다의 대답을 받은 LRL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잿빛으로 물든 하늘을 바라봤다.

타임 리프. 이른바 시간을 되돌리는 장치. LRL은 치트와도 같은 그 장치를 이용해서 몇 번이고 사령관과 처음 만났던 때로 되돌아가 다시 철충과의 최후의 격전을 치뤘다.

하지만 맞닥뜨리게 되는 결과는 항상 참혹했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바이오로이드와 사령관의 죽음. 방법을 아무리 달리 해도 과정만 달라질 뿐 냉혹한 현실은 LRL에게 항상 똑같은 결말을 보여줬다.

이제는 백 단위까지를 바라보는 무한한 반복의 굴레는 다시금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LRL은 또다시 다른 결말을 맞이하기 위해 다른 방법을 쓰면서, 이 참혹한 결과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LRL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괴롭고, 가슴이 미어질 것 같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그녀에게 행복이란 사령관과 동료들이 없다면 성립되지 않으니까.

그리폰의 꿀밤이 그립다. 안드바리의 잔소리가 그립다. 사령관이 자신에게 선물해 준 고딕 드레스가 그립다. 항상 품에 안고 다니던 곰인형과 드래곤 슬레이어가 그립다. 기억의 하나부터 열까지, 즐거웠던 일도 슬펐던 일도 다퉜던 일도 모두 뼈에 사무칠 정도로 그리웠다.

그 그리움과 괴로움에 기억을 제거한 적도 여러 번 있지만, LRL은 자신이 추구하는 단 하나의 행복을 위해 다시 가시밭길을 걷는 것을 선택한다. 이 세상에 둘도 없이 소중한 사령관과 동료들을 지키는 결말을 맞이하기 위해서.

 

“LRL 양,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타임 리프 장치를 작동시키겠습니다.”

응.”

 

다시 돌아가면 사령관에게 참치를 달라고 조를 것이다. 그러면 사령관은 참치캔을 주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겠지.

그 넓은 품에 다시 한 번 힘껏 안겨보고 싶다. 그 손에서 나오는 온기를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다. 짭쪼름한 참치캔의 맛을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령관의 무릎을 베고 낮잠을 자고 싶다.

그리고 자신이 바라는 다른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면, 사령관과 동료들을 데리고 세계의 이곳저곳을 놀러 가고 싶다. 참치캔보다 더 맛있는 것을 배가 터질 때까지 먹고 싶다.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마음껏 놀고 싶다.

타임 리프가 완료되기를 기다리면서 LRL은 괴로움과 외로움을 자신이 그토록 원하는 행복한 상상으로 덮어씌운다. 그런 방법으로 가지는 희망만이 그녀가 매번 이 결정을 내리는 원동력이니까. 다음에도 실패한다면, 똑같은 선택을 하고 똑같이 행복한 상상을 할 것이다.

 

슈우우우우─

 

몸이 붕 뜨면서 어디론가 빨려들어가는 느낌에 LRL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다시 되새겼다. 이번에야말로 이 이야기의 결말을 해피엔딩을 마무리하겠노라고.

 

똑똑똑─

 

아…”

 

노크 소리에 눈을 뜨니 익숙한 단칸방이 눈 안에 들어온다. 또다시 시작이다. LRL은 마음을 다시 한 번 가다듬고 터벅터벅 걸어가 까치발을 들고 단칸방의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보이는 것은 언제나처럼 콘스탄챠와 그리폰, 요안나의 모습이다. 그리고 맨 뒤에, 약간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지만 누구보다 착하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사령관의 얼굴이 보이자 LRL은 뛸 듯이 기뻤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짐짓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찾아온 사령관과 옛 동료들을 올려다보자 콘스탄챠가 자신을 내려다보며 이야기했다.

 

오랜만이네. LRL, 잘 지냈어? 여기에서 만나서 다행이야.”

 

응, 잘 지냈어! 이번에도 잘 부탁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아내고서 LRL은 항상 사령관과 동료들에게 보여 주었던 자신감 있는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다.

 

크크크… 짐의 본명은 싸이클롭스 프린세스… 유구한 세월을 살아 온 드래곤 슬레이어이니라!”

 


아이디어가 좋아서 한번 부족한 필력으로 끄적여 봤다

재밌게 봐 줬으면 좋겠다. 특히 원작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