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놈'이 울부짖는다.

이젠 숫자를 헤아리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수없이도 죽고 죽여온 숙적.

이름을 붙여주는 일은 없다. '놈'의 존재를 말할 다른 사람이 없으니까.

하지만 '놈'의 모습은 가슴을 간질이는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건 뭐야, LRL?'


'이걸 알아보지 못한다니 실망이군, 인간! 이것은 드래곤 슬레이어! 내가 용을 죽였을 때 사용한 무기다!'


'과연... 나조차도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진다했더니 그런 거였나...?'



피식

바람 새는 소리가 입가에서 난다.

웃...었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웃은 걸까? 거울을 본지가 언제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추억은 여기까지. 따뜻했던 기억을 묻어두고 앞으로 나선다.

모든 신경과 집중은 '놈'에게로.

시야가 좁아지고 몸의 감각이 옅어진다. 나와 드래곤과 같은 '놈'만의 존재만이 세상을 가득 채운다.


'놈'이 이족보행인 상태로 머리를 지켜들었다. 

브레스. 용의 그것과는 다르지만 쇳가루와 독이 담겨있는 그것은 스쳐도 치명상이라는 점은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숨결을 모으는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걸리는 법.

왼팔에 달려있는 클러치를 놈의 얼굴에게 던지고, 당긴다.


"■■■-----!!!"


놈이 위협하듯 소리를 지른다. 만약 청력이 남아있었다면 귀를 막아야했을 정도로 큰 소리겠지만 이미 그런 기능은 남아있지 않다. 

단단하게 놈의 머리에 몸을 고정한 뒤 오른팔에 든 드래곤 슬레이어를 지켜들었다. 들기도 힘들었던 이걸 언제부터 한 손으로 자유자재로 휘두르게 되었더라.


'폐하아~~~'


'그래 샬럿, 뭐하고 있었어?'


'LRL양이 드래곤 슬레이어를 다루는 법을 익혀달라고 해서요. 가르치는데는 별 재주가 없지만 노력해보고 있답니다.'


'LRL은 똑똑하니까 살렷이 가르쳐준다면 분명 할 수 있을 꺼야.'


'그렇죠. 하지만 LRL양은 다른 기체에 비해서도 특별히 약한 기체라서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을까 싶네요.'


'대략 어느 정도나 걸릴까?'


'음... 제대로 휘두르려면 10년 정도 걸리지 않을까요?'


'10년이라... 100년 쯤 지내면 철충도 상대할 수 있을까?'


'후훗? 그럴지도요?'


'LRL이라면 할 수 있을 꺼야. 물론 그렇다해도 전투에 내보내는 일은 없겠지만.'


'저도 그렇게 생각한답니다, 폐하'



퍼억!

손에 묵직한 감각이 느껴지며 파편이 튄다.


"■■■-----!!!"


'놈'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흔든다. 떼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쓸 게 뻔하기에 클러치를 풀고 착지한다. 착지하는 머리 위로 놈의 앞발이 스쳐지나간다. 조금만 머뭇거려도 몸이 으스러졌을 것이다.

다시 클러치를 던진 곳은 날개.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놈'이 날기 시작하면 전투가 피곤해지기에 다른 부위보다 우선으로 파괴해야하는 곳이다.

놈의 날개에 드래곤 슬레이어를 박아놓고 몸의 무게를 실었다.


우드드드드드득


박아넣은 드래곤 슬레이어가 지그재그로 놈의 날개를 찢어발겼다. 수복은 가능하겠지만 여러 처리를 해둔 드래곤 슬레이어가 이렇게 깊이 훑고 지나간 상처다. 아마 금방 수복은 불가능할 것이다.

착지한 머리 위로 검은 그림자가 덮여온다. 무엇인지 생각하기도 전에 구른다. 구른 뒤로 놈의 거구가 넘어지듯 쓰러진다.


"■■■-----!!!"


이족보행에서 사족보행으로 바꾼 놈의 입으로 검붉은 기운이 모여든다. 도끼로 무게를 싣고 착지하고 구른 직후라 자세가 불안정하다. 




피할 수 없다.




'죽음'이 덮쳐오는 감각에 주변이 점차 느려진다. 놈의 움직임이 하나하나 보이지만 동시에 내 몸도 물 먹은 듯 무거워진다.

무섭다. 

수없이 죽음을 겪어봤음에도 적응되지 않는다. 빨리 등을 돌리고 도망치고 싶다.

그래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째서 알비스가 자신 앞을 막아줬는지. 수없이 겪어본 난 아직도 도망치지 않고 서 있는 게 고작인데 어째서. 

어째서 날 지켜준 걸까




'괜찮아 LRL?'


엉망진창인 채로 그녀는 웃으며 물었다. 상체가 너덜너덜해져서 장기가 보이고 하체는 뭉개졌다할 상태에서도 그녀는 웃었다.


'너...너! 다쳤지 않느냐! 가만히 있어라!'


'괜찮아... 괜찮아... 알비스가 위험해지면 사령관님이 도와주러 오기로 했으니까... 알비스는 걱정 안해. 이거 받아'


아픈 와중에도 그녀는 브라운문트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초코바였다.


'내...가... 아끼던 거야. 언니들이랑 나눠먹으려고 했는데 LRL도 언니들만큼 소중하니까. LRL이 먹어.'


'나... 난....'

 

어찌해야할 줄 모르는 내게 알비스는 하염없이 웃었다. 


'받아줘, 응?'




 잠에서 깬 듯 온 몸이 무거웠다. 정말 운 좋게도 왼팔 정도만 날아가고 살아남은 듯 싶었다. 알비스의 방패 파편을 모아 만든 간이 방패 덕인 듯 싶다. 

알비스. 네가 날 또 지켜줬구나.

고마움을 표할 시간도 없이 몸을 일으켰다. 고통스럽진 않다. 하지만 왼팔을 잃은 대가로 몸의 균형이 잘 잡히지 않는다. 이래선 전투에 지장이 생긴다. 

하지만 그런 게 중요할까. 억지로 몸을 채찍질해서 일어선다. 처음 들었을 때만큼이나 무거운 드래곤 슬레이어도 다시 잔해 속에서 꺼내든다


이것은 되찾기 위한 싸움.

내가 원하는 것들을 되찾기 위해선 여기서 누워있을 순 없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권속은, 아니 사령관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도, 

사령관에게 당당히 칭찬 받으려면 포기해선 안 된다.


 

"■■■-----!!!"


다시 짓이겨들어오는 '놈'을 향해 나 역시 드래곤 슬레이어를 쥐고 달려들었다. 따뜻했던 그 때를 찾기 위해







놈이 쓰러진다.

원래 용도가 아닌, 전투로 너무 많이 써 문제가 생긴 왼쪽 눈까지 사용해서야 겨우 이겼다.

할 일을 마쳤다는 듯, 드래곤 슬레이어 역시 부서진다.

하지만 내 일은 끝나지 않았다. 놈의 잔해를 파해친다. 이윽고 원하던 것을 찾아냈다.

기이한 보라색 쇳조각. 이것을 위해 놈에게 덤벼들었다.

원하던 물건을 찾고 조력자에게 연락을 건다.


-괜찮습니까 LRL?


이제 남아있는 유일한 대화 상대 에이다가 말을 걸었다. 


"그래. 다시 돌려보내줘."


이곳에서 더 할 일은 없다. 타임리프장치에 필요한 저것이 필요했을 뿐이니까. 


"뭔가 문제라도 있어?"


-...정말 괜찮습니까 LRL?


"....뭐가?"


무덤덤한 내 답변에 에이다가 묻는다.


-저 역시 기록공유로 아는 정도지만 당신이 얼마나 많은 횟수의 회귀를 거듭해온지 알고 있습니다. 인간, 아니 바이오로이라도 괜찮을리가 없습니다.


몇 번이더라. 회귀를 반복한 것이. 밤하늘의 별을 세 번 센 뒤로는 세는 걸 포기했다. 어쩌면 그냥 포기하는 것이 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권속을 챙기는 건 주인의 일이니까.'


사령관을 다시 만나고 싶으니까. 어쩔 수 없다.


-알겠습니다. 꼭 원하는 바를 이루시길.


머리를 울리던 에이다의 의사가 희미해지고 모든 색이 흐려진다. 모든 것이 빨려들어가는 느낌.

모든 게 이대로 빨려들어가고 끝나면 좋을텐데, 라는 생각도 드는 감각.


그 감각의 끝에서 한 얼굴이 보인다. 그 얼굴만 보인다.


아아... 울면 안 되는데. 저 얼굴을 봐야하는데. 눈물이 앞을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간신히 말한다.


"나는 깊고 깊은 심연, 어비스에서 태어난 자!"


"태고의 어둠 속에서 검은 고독과 싸우며"


"그대들을 기다렸노라"





대충 한 시간 반쯤 걸린 듯... 는 다른 대회는 왜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고 이건 쭉쭉 써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