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 https://arca.live/b/lastorigin/1507448 




 이란은 세상에 얼마 남지 않은 금주령이 내려진 국가였다. 그 역사는 100년도 채 되지 않았다. 100년전, 1960년대의 이란은 중동에서 찾기 힘을 정도로 가장 세속화된 나라였다. 당시 이란을 지배하고 있던 것은 민주주의 정부가 아닌 팔라비 왕조였다.

 팔라비 왕조의 뒤를 봐주고 있던 것은 이란의 기름을 탐내고 있던 미국이었다. 현대에서는 상상도 안되는 일이었지만 미국은 이란에 다른 나라에는 수출하지 않던 무기까지 수출할 정도였다.  하지만 냉전시기 미국이 지원하던 다른 나라의 독재정부와 마찬가지로 팔라비 왕조는 부패와 독재로 지지를 점점 잃어갔고 이는 1970년대 말, 이란 혁명으로 이어지게 된다.

 여기서 이란의 아이러니가 시작된다. 아니, 혁명의 아이러니였다. 사람들이 독재자를 끌어내리지만 사회는 변화하지 않는 법이었다. 급진적인 방향은 다른 한쪽의 병목으로 다가온다. 이란 혁명의 결말은 이슬람 근본주의 독재정부의 시작이었다.

 누구를 위한 혁명이었을까. 그 어느 국가보다 서구적이던 이란은 이슬람 공화국이라는, 미래에 수많은 사람의 치를 떨게 한 국가로 인정받을 수 없는 국가의 이름과 비슷한 이름이 되게 되었다.

 어째서 이란은 금주령이 내려진 국가가 되었을까. 코란에 그리 적혀있기 때문이었다. 단 하나의 혁명으로 인해 어느 국가보다도 진보적인 국가는 순식간에 어느 나라보다도 보수적인 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정부가 바뀐다고, 사회가 바뀐다고 사람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평생을 술을 마시고 지내오던 사람들이 갑자기 술을 그만 먹을 리가 없었다. 금지함으로 없앨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미국의 금주령 시대를 보면 금주령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사람들의 찬성으로 금주령이 내려졌지만 그것은 모든 사회구성원이 동의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술을 끊을 수 없었다. 금주령이 아니더라도 매년 1월, 수많은 사람들이 작년의 결심을 잊고 새로이 금주를 결심하는 것을 보더라도 얼마나 술을 끊기가 어려운 지를 잘 알수 있다.

 이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란의 술은 미국의 코카인과 같은 것이었다. 분명 정부에서는 금지했고 강한 처벌을 내리지만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것이었다.

 반다르아바스의 중심부의 번화가를 가다 어느 골목에 들어선다. 모래같이 누렇고 흰 건물들로 둘러쌓인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걸어가다보면 우측에 읽을 수 없는 페르시아어로 쓰인 간판이 보인다. 그 간판을 따라 들어가면 평범한 중동식 커피집을 발견할 수 있다. 장사가 잘 되는 듯 언제 찾아가든 테이블에는 몇 명씩 항상 앉아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곳이 목적지인 사람은 별로 없었다. 커피집의 한켠에는 작은 문이 있었다. 헤질대로 헤진 철문을 열면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인다. 창고로 보이는 곳에는 항상 일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를 지나쳐 다시 한번 계단을 내려가면 냉장창고로 숨겨진 문이 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지금껏 자신이 마주쳤던 사람들이 단순한 손님과 인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 안에는 이란의 중심가라고는 믿을 수 없는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서구권의 클럽이나 주점에 비하면 점잖은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비밀 주점에서 신나게 춤추고 노래를 부르며 주변에 민폐를 끼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가게의 한켠에는 바가 있었고 반대편에는 테이블과 의자에 사람들이 빼곡하게 않아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바의 뒷편은 좀 더 조용히, 혹은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술을 마시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룸까지 준비되어있었다.

 구스타포 하멜은 이곳에서 이질적인 외국인이 아니었다. 이란의 금주법은 이란인들에게 고통스러운 법이었지만 이란에서 온 외국인들에게는 더 고통스러운 법이었다. 수많은 외국인들이 술을 마음껏 마실 수 있는 얼마되지 않는 곳이었고 어떻게 보면 이란인들보다도 많은 외국인들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란에서 금주법 위반은 최대 사형까지 가능했지만 그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바의 뒷편의 룸 중 하나에는 근처 모스크의 종교지도자인 이맘이 여자들을 끼고 술을 마시는 중이었으니까. 이곳에서 위험한 것은 자신들만이 아니라는 동질감으로 안심을 하는 것이었다.

 하멜은 자연스럽게 뒷편의 방중 하나로 들어갔다. 그가 이란을 방문할 때마다 오는 곳이었다. 그에게 이곳을 소개시켜준 사람은 다른 사람도 아닌 이란인이었다.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명소라며 소개시켜준 곳이 바로 이 이름없는 비밀 술집이었다.

 하멜은 딱히 내키지가 않았다. 그에게 술은 목숨을 걸만큼 중요한 것도 아니었고 그는 배 위에서 술을 마시는게 금지된 사람이 아니었다. 이란을 떠나 공해상으로 간다면 술은 얼마든지 마실 수 있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이곳의 사람들처럼 이렇게까지 술을 마시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함이 없었다.

 그가 이곳을 방문하는 것은 다른 일 때문이었다.

 “구스타포!”

 룸에는 이미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사복을 입은 이란인이었지만 구스타포는 알고 있었다. 그가 혁명수비대, 그것도 소령까지 오른 사람이라는 것을. 그는 이미 술을 마시고 있던 것이었는지 테이블 위의 잔은 반쯤 비어있었다.

 “앗살람 알라이쿰.”

 하멜은 중동권에서 통용되는 인사말을 했다. 알라 안에서 평화가 있기를, 이라는 뜻의 말이었다.

 “알라는 이곳에 없소. 오직 술만 있을 뿐이요. 굿 드링크.”

 살 아지드는 잔을 들어올리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이란내에서 극우로 소문난 혁명수비대마저 이곳에서 술을 마시는 시점에서 이란의 금주령, 나아가 이란의 이슬람사회가 얼마나 끝에 다다랐는가를 알 수 있었다.

 그와의 첫 만남은 이런 술집이 아닌 평범한 음식점이었다. 반다르 아바스에서도 유명한 고급 음식점이었다. 그는 혁명수비대의 간부이자 해안의 통관에 깊이 관여하는 사람이었다. 아마도 밀수를 위해 뇌물을 바치려는 사람들로 호르무즈 해협을 막을 수 있을 것이었다.

 하멜이 아지드 소령을 만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아니, 더 나아간 제안을 하기 위해서였다. 바로 거래의 이야기였다.

 “술 드시죠.”

 아지드 소령은 잔을 하나 하멜의 앞에 놓은 뒤, 라벨이 붙지 않은 술을 따라주었다.

 “지난번에 왔을 때 다음날 된통 당해서 말이죠. 대체 이곳의 술은 뭘로 만든 거란 말입니까?”

 “밀주요. 당신네들 말로는 문샤인이라 하는 그것말이요. 당신네들은 밤에 바깥에서 만들었겠지만 우리들은 지하실에서 만드니 벌브샤인이라 불러야겠죠.”

 하멜은 잔을 들어올려 천장의 전등에 비추어 보았다. 갈색의 위스키처럼 보이는 술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순물이 떠다니고 있었다.

 “아무리 돈을 쓴다 해도 진짜 위스키는 구하기 어려워서 말이죠.”

 라고 말하며 아지드 소령은 잔을 들어 위스키와 비슷한 무언가를 한모금 마셨다. 하멜은 그를 따라 한모금 마셨다. 내용물이 불안한 건 여전했지만 맛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잔을 내려놓은 하멜은 가방에서 상자를 하나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바로 그 진짜 위스키입니다.”

 이름만 말해도 누구나 알아볼법한 유명위스키, 그것도 30년산이었다. 미국에서도 일반인들은 볼 일도 없는 술이었다.

 “맥캘란! 이름만 들어봤던 술인데 이렇게 실물을 접할 줄은 몰랐네요.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겠죠?”

 고급 위스키, 그것도 술을 구하기 힘든 이란에서는 더욱 귀한 것이었지만 뇌물치고는 너무 싼 물건이었다. 하멜은 알고 있었다. 그가 이것만 주문했을 리가 없었죠.

 “그건 그거 선물입니다. 본론은 이거죠.”

 하멜은 가방에서 뒤이어 서류를 하나 꺼냈다. 서류에는 빼곡한 명단이 적혀있었다.

 “블랙리버제 고블린. 전부 일련번호가 제거되어 어느 국가나 기관에서도 추적이 불가능합니다. 심지어 저희까지도요.”

 거짓말이었다. 블랙리버는 만일 사내 기밀이 유출될 것을 우려해 모든 제품을 추적할 수 있었다. 다만 그것을 이란인들이 알 일이 없을 뿐이었다.

 “총 100기. 당신네들은 참 웃기오. 미군에 그렇게 많은 고블린을 팔면서도 우리에게까지 팔려고 하다니 말이야. 이런 선물까지 주면서.”

 아지드 소령은 서류가 아닌 술에 더 관심이 있는 모양이었다. 역시 선물을 가져오길 잘 했다고 하멜은 생각했다.

 “이번 고블린 납품에 대한 대금은 일절 받지 않습니다. 다만 추가로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하멜은 또다른 서류를 아지드에게 건네주었다. 그 서류를 읽은 아지드는 웃음을 터트렸다.

 “당신네들은 세상에서 제일 웃긴 기업일거요. 이런 미친 짓을 할 사람들이 있을 줄이야. 고블린 200기를 우리를 통해 시베리아 철도를 통해 배송하라는 말이요? 이 대륙 동쪽 끝으로? 이 고블린으로 알래스카 침공이라도 할 셈이요?”

 “다른 계획이 있다고만 말씀해드리죠.”


 다음날, 샤하드 라자이항에 정박중인 산타 마리아호의 선장실, 하멜과 아지드 소령은 다시 마주하고 있었다.

 “아지드 소령, 이런 식으로 이곳을 찾을 줄은 몰랐네요.”

 하멜이 기대한 것은 출항준비전에 아지드 소령의 혁명수비대가 와 고블린이 있는 컨테이너를 회수하는 것이었지, 이렇게 출항 직전에 막무가내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었다.

 “이번 건은 더 조심해야 한다고 한 건 당신 아니오? 미군의 드론이 이곳을 감시하기 때문에 이것은 당신들의 의지가 아니라 우리가 아무 컨테이너나 힘을 빼앗아 간 거라고. 나는 그를 위해 좀 더 실감나는 작전을 했을 뿐이요. 그 과정에서 매번 우리 병사들은 목숨을 걸어야 하고. 맞소?”

 “그건 형식상일 뿐이죠. 매번 그랬잖아요. 우리가 당신들에게 빼앗긴건 형식상으론 고블린이 아니라 사우디 아라비아에 내려야 할 메이지 푸드의 시리얼이에요. 그거 아세요? 우리는 매번 여기서 잃을 때마다 보험사에서 사고 피해보상금을 받아요. 그 보험사마저 아무 의심도 안하고 있다고요. 저 미군들은 지금 우리를 보면서 이란이 또 불쌍한 화물선을 삥뜯는다고 생각할 거에요.”

 만일 그게 아니었다면 이란에 고블린을 밀수출하는 것을 벌써 들키고도 남았을 것이었다.

 “자자, 뭐 이걸로 쌍방 서로 볼일은 다 본 거 아니오? 여기는 공해상이니 마음 놓고 한잔 하실테요?”

 아지드는 선장실의 찬장에서 잔을 두개 집어 선장의 책상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물병을 꺼내 두 잔에 조금의 갈색 액체를 부었다. 누가 봐도 그것은 술이었다.

 “어제 구스타포, 당신이 준 술 말이오. 정말 맛있었고 알라께 맹세컨데 그건 내가 지금까지 마셔본 술중 최고였소. 당신도 이 술을 마셔야 하오.”

 하멜은 아지드 소령의 권유를 거절하지 않았다. 고급위스키를 거부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엄밀히 말하면 공해상이 아닌 이란 땅이지만 뭐 이란땅에서 술을 먹는 게 한두번인가요.”

 하멜은 위스키를 마셨다. 아지드 소령의 말대로 최고의 술이었다. 이런 깊은 향은 일반 위스키에서 맛볼 수가 없었다.

 “제가 준 술이지만, 정말 좋은 술 맞네요.”

 하멜은 오랜만에 웃으며 대답했다.

 “서로 술을 한잔해서 말인데 저 고블린들, 어디로 향하는 거요? 어제 밤새 궁금해서 잠을 못잤다오.”

 아지드 소령은 선장실에 난 작은 창문을 통해 밖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느새 크레인은 항구에 몇 개의 검은 컨테이너를 내리고 있었다.

 “극동지방에 당신네들과 친한 나라가 하나 있잖아요. 그곳으로 갈 겁니다. 북한 말이요.”

 남은 위스키를 마시며 하멜은 아지드 소령의 옆에서 창밖을 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