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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링크 : 멸망전 미식회 2화 - 라스트오리진 채널 (arca.live) 


파티가 끝난 후,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예냐가 준 편지를 읽어보았다.


[소문에 의하면 진 씨의 미식 수준이 높다고 들었어요. 거기다가 다른 멍청이들처럼 바이오로이드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제 파티에 놓인 음식들은 모두 주방장인 소완의 작품이에요. 이런 걸작을 만드는 소완에게 기계취급이라니…


(중략) 그런 의미에서 저는 마음이 맞는 몇 명만을 모아서 사교회를 만들려 해요. 이름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미식을 즐기는 사람들끼리 모이는 것이니 미식전이나 미식회는 어떨까요?


저는 진 씨와 함께 미식을 즐기고 서로의 주방장의 실력을 겨루는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요.

긍정적인 답변 기다릴게요. 예냐.


추신. 집안의 허락은 이미 받아놓았으니 신경 쓰실 필요는 없을 거예요.]


“뭐…괜찮네.”


사교회의 이름 후보가 미식전…이라는 건 조금 꺼림칙하지만.

마치 누군가가 뒤통수를 칠 것 같은 이름이지 않은가.


눈에 거슬리는 바이오 로이드 차별자나 혐오자들이 없는 것만 해도 나에겐 상당한 행운이었다.


급이 맞는 집안의 자제들은 대부분 그런 성인이 되지 못한 집단들뿐이라, 방 안에서 뒹굴거리기만 하는 나에게 경쟁기업이라도 좋으니 제발 친구 좀 만들어보는 게 어떠냐는 부모님의 걱정을 무마시키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란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어머니, 친구는 하찌코와 바닐라가 있어요…”라고 했다가 집에서 내쫓길 뻔했었지.


“바닐라 아까 야냐의 비서한테 명함을 받았었지?”

“흥, 주인님께선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리실 셈이시군요. 저와 하치코를 놔두고.”

“…”

“쭈인님?!”


그 말을 들은 하찌코는 일전에 미트 파이 1주 압수를 했을 때보다 더욱 슬픈 표정을 지어 나를 난감하게 했다.


“자아, 하찌코. 너는 내 경호원이니까 여기 갈 때도 항상 붙어 다녀야 해, 바닐라 너도. 그러니까 명함 좀 가져와”

“…쳇.”


고급스러운 편지의 답장을 메신져로 하는 게 조금 모양 빠지지만… 전생에서의 기억 때문인지 아직도 나는 이런 방식이 더 편했다.


메신저라고 하지만, 격식으로 차려서 메시지를 보낸 나는, 이 세상에서 두 번째 친구가 생길 것이라는 기대감과 사교회에서 만날 낯선 사람들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심장이 빠르게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



내 메시지를 받은 예냐는 이렇게 빨리 대답을 보내서 조금 놀란 듯 했지만, 다른 이들은 이미 승낙 의사를 보내왔기에 이른 시일 내에 모이자는 이야기를 했다.


미식회라는 이름이 정해지고, 총인원은 예냐와 나를 포함해 총 4명이 되었다고 한다. 누구인지 말해주지는 않았지만 이름을 듣는다면 알만한 집안의 자제들이라고.


첫 만남의 장소는 예냐의 저택. 예냐는 성인식 이후 집안의 어른들과 거리를 두기 위해, 자신의 명의로 된 저택으로 분가를 했다고 한다. 


아마 그 뛰어난 능력으로 어릴 적 부터 번 돈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겠지. 

나야 능력도 없고, 가족끼리 사이도 화목했기에 그럴 이유는 없었지만 말이다.


“그럼, 다녀올게요.”

“잘 갔다 오렴. 우리가 그쪽과는 사이가 좋진 않지만…너한테까지 그런걸 강요하지는 않을거란다.”

“이번 기회에 좋은 사이가 돼서 애인까진 바라지도 않으니, 친구라도 만들어서 오거라.”

“…”


웃으면서 내 심장에 비수를 꽂는 부모님의 인사를 뒤로 한 채, 나는 하찌코와 바닐라, 그리고 내 전속 주방장인 소완과 함께 차를 타고 예냐의 저택으로 향했다. 


“소완, 네 생각은 어때?”

“저와 같은 모델이지만…그 능력에는 차이가 있겠지요. 주인님의 애정을 받은 소첩의 실력을 따라올 수는 없을 겁니다.”


소완은 자신감에 가득 차서 말했다. 하지만 다른 이들도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졌기에 그 실력은 비등하겠지만 굳이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뭐, 이번 기회에 다른 모델들의 음식을 맛보고 경험한다면 소완도 한 층 성장할 수 있겠지. 

그리고 그 결과로 나는 더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을 거고.


나는 전생의 지식을 살려 소완의 새로운 메뉴 구상에 어울려 주기도 하고, 안타까운 요리실력으로 이야기에 끼어들지 못하는 바닐라도 챙겨주면서 시간을 보냈다.


“기사님 수고하셨어요.”

“아닙니다. 도련님. 그럼 저는 이 앞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예냐의 저택에 도착을 한 우리는 마중을 나온 메이드의 안내를 받으면서 메인 홀로 향했다.


메인 홀로 향하는 길은 수행 인들을 제외하고 혼자서 사는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크고 화려했다. 일전에 보았던 문화 인형의 회장이 사는 본가와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


그런데, 특이한 것이라면 복도에 걸린 조각상이나 그림이 죄다 음식의 모습을 한 것이다.

과연 초대장을 받은 이후 그녀에 대해 조사한 사실이 틀리지 않은 걸까.


본명, 루에르나 비예냐프스키. 세간에서는 그녀를 천재라기보다는 ‘광인’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까다롭고 뛰어난 입맛을 가진 그녀는 집안의 모든 요리사-인간들을 해고하고, 뛰어난 요리실력을 가진 바이오 로이드들로 인력을 일거에 대체.

그 유명한 ‘지고의’ 소완의 음식조차도 그녀를 만족시키기엔 어려웠던 까닭에 미식을 넘어서 그 손을 괴식, 악식에도 뻗은 음식에 미친 사람.


화려하게 장식된 음식모형들은 마찬가지로 미식에 일가견이 있다 자랑하는 나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끝이 없는 것만 같았던 복도에는 거대한 문이 있었다. 저곳이 메인홀, 앞으로 미식회가 만날 장소.


그 앞에 서 있는 블랙 웜과 몇몇 호위 역들이 함께 들어가려는 바닐라와 하찌코를 제지했다.


“죄송하지만, 저 안에는 미식회에 초대받은 인간님과 소완만이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다른 분들은 별실에서 대기해야만…”


그 말에 눈매가 날카로워지는 바닐라와 울먹이는 하찌코. 나는 집에 돌아가서 놀아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새끼손가락을 한참이나 걸고 나서야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오랜만이군. 진.”

“응? 요시츠네, 네가 왜 여기에?”


그 안에서 가장 먼저 나를 맞이한 것은 일전에 만나, 오해를 풀고 친구가 된 덴세츠의 요시츠네였다.


“진 씨가 미식회에 참가한단 이야기를 했더니, 요시츠네 씨도 흔쾌히 승낙하시던걸요~”


미성에 고개를 돌리자, 주방과 이어진 통로 쪽에서 예냐가 나와 테이블에 앉아 있는 처음 보는 여자의 소개를 했다.


“자, 이쪽은 하나 송. 최근 유명하죠? 자수성가해서 삼안의 공식 파트너로 지정된 회사의 차녀.”

“안녕- 여기서 BR 중공의 도련님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 편하게 하나라고 불러줘?”

“어…저도 편하게 진이라고 불러주시죠.”


나른하게 웃으면서 자기소개를 했지만, 그 안에는 미묘한 적의가 흘러나오는 듯했다.

…나는 블랙 리버의 근처도 가본 적이 없는데, 소속된 집안 간의 문제 때문에 이러는 건 상당히 자주 있는 일이었다.

이거 앞으로 피곤해질 것 같은 느낌인데.


“이런, 이 안에서는 회사나 각국의 관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걸요. 어차피 미식은 그런 쓸모없는 것을 초월해서 존재하는 것이니-”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는다만…사교회에서까지 그런 골치 아픈 걸 생각하기엔 너무 귀찮지 않은가, 하나.”


라이벌 기업의 하위 기업 자제여서 그런 걸까. 미묘한 분위기를 흘리는 송하나의 모습에 예냐와 요시츠네는 그녀를 진정시켰다.


“…그러네요. 이번 건 제 불찰이에요.”

“괜찮아, 거기랑 우리 쪽이랑 분위기 안 좋은데 이 정도로 끝나면 매우 신사적인 거지. 그보다 예냐. 이 미식회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듣지 못한 것 같은데…”


나는 불편한 주제로 계속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기에 재빨리 이야기의 주제를 바꿨다.

그러자 예냐도 눈치를 챈 듯, 주방 안에 있는 소완을 데리고 나오며 말했다.


“먼저 이 미식회의 일정은 이야기해 드렸죠? 이 주 혹은 삼 주에 한 번. 돌아가면서 서로의 소완이 테이블을 준비할 거예요. 그리고 그걸 맛보는 과정에서 피드백이나 느낀 점을 이야기하면…”

“다음번엔 그걸 바탕으로 소완의 실력을 향상하는 것으로, 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정답. 역시 서로 잘 맞는 것 같네요.”

“…”

“오늘은 저희 집의 주방장의 실력을 자랑해보려고 해요. 그래서 올 때 다른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 것이고.”


그 말에 우리의 눈은 반짝였다. 그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수다를 떠는 것보다는 몇십, 몇백 배 흥미로운 일 아닌가.


그렇게 말한 예냐가 테이블에 종을 치자, 주방에서 4명의 콘스탄챠가 서빙을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