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https://arca.live/b/lastorigin/22217429




 눈을 떴을 때 내 기억속에 '김철붕'이라는 이름 외에 나를 특정할 수 있는 것들은 남아있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어딘지 모를 동굴 속이었고,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미모의 여성들이 내 용태를 살피고 있었다. 

 그녀들은 스스로를 인류 최후의 저항군인 오르카 호에 바이오로이드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그녀들의 말에 따르면 나는 이 시대에 지구에 남은 최후의 인류이며, 우리들은 인간에게 봉사하기 위해 만들어졌기에 최후의 인간인 나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내가 최후의 인간이라고?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지? 웃으면서 그런 농담은 하지 말라고 했으나 그녀들의 눈빛은 진지했다. 어디까지 믿어야할지는 알 수 없으나 뭔가 이상한 사태에 휘말린 건 확실한 것 같았다. 

 사태의 파악도 아직 완전히 되지는 않았는데 자기네들끼리는 이곳에 아직 철충이 습격해올 수 있으니 우선 인간님을 데리고 오르카 호로 돌아가자고 결정이 난 듯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사람들 뭔가 상태가 이상한데.. 애초에 인간에게 봉사한다면서 내 의견은 하나도 안 묻고 일단 데려가기로 결정하다니..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어서 너희들을 완전히 믿을 수 없으니 그 오르카 호라는 곳에는 아직 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안됩니다"

"뭐라고요? 안 된다니 뭐가?"

"이곳은 위험합니다. 인간님의 명령을 거부한 것에 대한 징계라면 나중에 얼마든 받을테니 지금은 얌전히 따라와주시기 바랍니다. 게다가 지금 철충들이 인간님의 뇌파를 감지하고 몰려오고 있군요."


 오드아이의 눈에 커다란 저격총을 든 여자가 그렇게 말하며 총을 쏘았다. 협박하고 억지로라도 데려갈 셈인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 총은 나를 향해 쏜 것이 아니었다. 이 바이오로이드라는 여자들이 왔던 곳에서 기묘하게 생긴 생명체? 기계 비스무리한 것들이 이 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저게 철충이라는 건가? 저것들에게 의사가 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철충들이 나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그 모습에 겁을 먹은 나는 바이오로이드들을 완전히 믿을 수는 없지만 나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일단은 오르카 호에 따라가기로 했다.


 다행히 바이오로이드들은 손쉽게 철충을 격파하며 나를 보호해주었고 나는 무사히 오르카 호에 승선할 수 있었다. 오르카 호는 거대한 잠수함이었다. 이런 잠수함에 타보는 것이 처음이었던 나는(기억이 누락되어 있는 탓도 있겠지만), 신기해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르카 호 내부를 안내받으면서 오르카 호에 타고 있던 수많은 여성들이 나를 보고 다양한 반응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굉장히 놀라는 사람, 눈물을 흘리는 사람, 환희하는 것 같은 표정을 짓는 사람... 그런 사람들을 보며 왜 저런 반응을 하는 것이냐고 나를 데리러 왔던 바이오로이드들 중 하나에게 물어 보았는데, 오르카 호에 있는 전원이 바이오로이드이며 나의 명령을 무조건 따를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질문에 대한 대답도 어긋난 것 같고, 나는 지금 자기에 대한 것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인데 그냥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내 명령을 따르는 게 말이 되나..? 그렇게 물어보았지만 우리는 인간에게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대답을 진지하게 할 뿐이었다. 

 바이오로이드들의 안내를 받으며 걷고 있던 도중, 드디어 내가 쓸 방에 도착했다고 한다. 방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메이드였다. 안경을 쓰고 메이드복을 입은 여성은 자신을 콘스탄차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딱딱한 말투로 앞으로는 이 사령관실이 내가 사용할 방이 될 것이고 인간님은 사령관이 될 것이라고 한다. 사령관이라고? 나는 싸움이나 전쟁 같은 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아니, 난 지휘 같은 거 전혀 몰라서... 안타깝지만 그런 역할은 맡을 수 없을 것 같은데요.."

"괜찮습니다. 사령관님은 그저 저희에게 철충과 싸우라고 명령해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굳이 내가 사령관일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요?"

"아뇨. 인간을 위해 싸우는 게 저희들이 만들어진 이유입니다. 그러니 부디 사령관님, 거절하시지 말아 주세요. 제발..."


 아무리 생각해도 부자연스럽고 석연치 않았다. 뭔가 나에게 어떤 역할을 요구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그냥 모실 인간이나 상징이 필요할 뿐인가? 그리고 저 말 끝에서 느껴지는 절박함 비슷한 무언가도 내 사고를 어지럽혔다. 하지만 그렇게 인간을 애지중지 하려는 것 치고 그 오드아이의 여성은 내 말을 무시하고 억지로 데려가려고 했는데... 그 이야기를 하자 콘스탄차는


"그 건에 대해서는 알고 있습니다. 발키리에 대한 징계 처분이 논의중입니다."

"네? 아니 그래도 내가 위험할 거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했던 건데 징계를 줄 필요까지야.."

"예.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내린 판단입니다만 그래도 사령관님의 의향을 거스른 것에는 벌이 필요합니다. 발키리 본인도 납득하고 있습니다."

"아니..."


 정말이지 모순적이고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나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게 가장 중요한데, 내가 위험한 곳에 있는 것을 막았다고 벌을 받는다고? 아무리 내가 스스로 위험한 것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그건 좀 아닌거 같은데.. 징계를 취소할 수는 없을까요?"

"사령관님이 뜻이 그러시다면 징계를 취소하겠습니다."


 뭔가 감형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던져본 말인데 너무 쉽게 받아들여졌다. 바이오로이드들은 자신들이 군대 비스무리한 것으로 소개했는데 군대라는 조직이 이렇게 그냥 주먹구구식으로 행정이 이루어지는 거였나? 아니면 이게 사령관이라는 직책의 힘인가? 그런 멍청한 생각을 하며 입을 벌렸다. 그런 내 반응은 상관하지 않은 채 콘스탄차는 앞으로 저희들의 사령관이 되실 분이니 앞으로 어떤 것이든 명령해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저희들에게 경어를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편하게 불러주셔도 됩니다."

"아, 네 그건 언젠가 익숙해지면..."

"그럼 저는 물러가보겠습니다. 언제라도 명령할 것이 생기신다면 그 콘솔로 저희들 중 누구든 호출해주세요."


 그리고 콘스탄차는 인사를 올린 후 방을 나갔다. 그리고 혼자 남게 된 나는 얼렁뚱땅 넘어가는 형태로 내가 사령관이라는 자리에 앉게 된 것과 어딘가 이상한 바이오로이드들의 태도에 대해 생각했다. 그냥 상징이 필요할 뿐이라니,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있어 인간이란 그렇게 중요한 존재인가? 정말 나에게 그냥 '오르카 호에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까? 게다가 나를 보며 다양한 반응을 보여주었던 바이오로이드들.. 나를 두려워하면서도 나한테 매달리려고 하는 것도 같았다. 그리고 그녀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보여준, 다시는 찬스가 없다고 말하는 것만 같은 비장한 느낌..

 하지만 아무리 혼자 생각해도 답을 내릴 수는 없었다. 생각을 많이 한 탓인가? 배가 고픈데 어떻게 해야 하지.. 콘스탄차가 용무가 있으면 자신을 불러달라고 했던 것을 떠올렸고 나는 콘스탄차를 불러 배가 고픈데 식사는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곧바로 식사를 만들어 보내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잠시 기다리자 하얗고 긴 머리를 한 여성이 트레이를 몰고 사령관실에 찾아왔다. 자신을 소완이라고 소개한 여성은 자신이 이 오르카 호의 주방 담당자이며 앞으로 '주인님'을 위해 최고의 요리를 대접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곧바로 음식을 서빙하기 시작했다. 오, 확실히 굉장히 맛있어 보인다. 풍기는 향이나 외견만 보더라도 이 요리들이 굉장히 맛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드시옵소서." 서빙이 끝나고 먹으라는 말이 떨어지자 마자 나는 곧바로 요리에 달려들었고 그 맛은 과연 외견만큼이나 훌륭한 것이었다.

 식사는 맛있지만... 식사를 하고 있는 나를 계속 지켜보고 있는 소완이 신경쓰인다. 먹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있을 정도면 그냥 같이 먹는게 낫다.. 그렇게 말을 꺼내보았지만 "소첩이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겠습니까. 신경쓰지 말고 편하게 드셔주시옵소서." 하는 말이 돌아올 뿐이었다. 같이 밥을 먹는게 감히라는 말을 꺼내야 할 정도인가...? 그리고 바이오로이드들의 너무 딱딱한 태도도 신경쓰인다. 그래. 콘스탄차도 자기들한테 편하게 말하라고 했으니 내가 사령관이라고 굳이 위압적인 모습을 보여 줄 필요는 없지 않을까? 농담따먹기 정도는 할 수 있는 관계도 괜찮겠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농담을 던질 생각으로 내 지식 속에 남아 있던 유명한 만화를 흉내냈다.




"으아아악! 피마아아앙?!"


 수백년 지나도 기록에 남아있는 그 세기의 명작 만화영화... 내가 했지만 재현도는 훌륭했다. 그리고 소완의 반응은 내가 한 흉내의 재현도만큼이나 놀라운 것이었다.


"죄송하옵나이다!'

"?"


 소완은 곧바로 엎드려 땅에 머리를 조아리며 나에게 용서를 빌었다. 눈을 뜬 이후 겪었던 모든 사건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이었지만 지금 이 상황이 가장 충격적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주인님의 기호품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음식을 올리다니, 죽어 마땅한 일... 허나 부디 그 벌은 저에게만 내려주시옵고 저희 모두를, 이 오르카 호를 떠나는 일만큼은 참아주시옵소서.."

"??"


 애초에 식사를 받은 게 지금이 처음인데 기호품을 파악하고 뭐고 할 게 있나?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도 못할 정도로 충격적인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내 뇌는 경악에 빠진 채 그냥 입을 헤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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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쓰면서 설정 생각했을때 이 피망씬부터 생각나서 이거 쓰고싶었음 ㅂ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