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인간 1

두번째 인간 2

두번째 인간 3


---------------------------------------------------------------------------------------


남자는 개인실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따금씩 남자를 찾거나 식사를 갖다주기 위해 방문하는 바이오로이드들이 있었지만 남자는 그들과의 대면을 거절한 채 오로지 누워있기만 할 뿐이었다.


자신이 지니고 있던 모든 것을 파괴당하고 부정당한 여파는 남자의 정신을 완전히 황폐화 시켰다.


설마 자신의 마음을 산산히 부숴버리는 것이 사령관이 아닌 바이오로이드라니,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


사령관으로부터 무언가의 압력을 통해 자신이 무릎을 꿇었다면 차라리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사령관은 그만한 능력을 지닌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바이오로이드라니?


사람의 모양을 했을 뿐인 고기인형, 공산품, 소모품인데?


그것도 유니크한 최고급의 주문제작품도 아닌, 삼안제 양산품을?


자신이 아직 야망을 포기하기 이전, 블랙리버에서 촉망받는 중역의 인재였던 시절을 생각하면 이보다 더 자존심이 상할 순 없었다.


가장 비참한 것은 그 고기인형, 공산품, 소모품을 지금까지도 사랑한다는 점이었다.


아직도 그 날의 정사는 강렬하게 남자의 마음을 울리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몸과 꺾이지 않는 녹색의 눈동자, 떠올릴 때마다 심장을 찔리는 듯한 동정어린 시선마저도.


아직 세상이 멸망하기 전, 바이오로이드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괴짜들을 누구보다 비웃던 남자는 이제 그들을 비웃을 수 없었다.


남자는 누구도 위로해 줄 수 없는 자신의 상처를 끌어안은 채 눈물을 흘리며 밤을 지새웠다.


-----------------------------------------------------------------------------------


같은 시각, 사령관실에서는 관모를 푹 눌러쓴 사령관이 말없이 불도 붙이지 않은 담배를 문 채 책상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령관이 가장 총애하는 부관인 콘스탄챠가 두번째 인간의 방에서 나와 출근이 늦었다는 소문은 이미 오르카호 전체에 퍼져있었다.


사령관도 알고있었다.


행동반경이 좁아 함 내에 흐르는 기류를 느끼기 힘들다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자신이 신뢰하는 몇몇 바이오로이드들을 정보원으로 퍼트려 두었으니까. 


그리고 피로한 얼굴로 출근시간에 늦은 콘스탄챠와 두번째 인간이 수업에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소문의 신빙성을 뒷받침했다.


사령관은 하루 내내 그 상태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곁에 선 콘스탄챠도 말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한 채, 깊은 슬픔에 잠겨 시선을 들지 못했다.


"오늘은 이만 끝내지."


불현듯 침묵을 끝낸 것은 사령관 쪽이었다.


"....네. 고생하셨습니다, 주인님."


그때서야 콘스탄챠도 입을 열었다.


간밤에 당했던 능욕과 수면부족도 원인이었지만 사령관이 자신의 마음을 의심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이 콘스탄챠의 마음을 무겁게 누르고 있었다.


자신은 마지막까지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사령관을 향한 마음을 지켜냈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었지만 사령관이 그것을 믿을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콘스탄챠의 괴로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령관은 물고있던 담배에 마침내 불을 붙였다.


심지가 붉게 타들어가고, 깊은 한숨과 함께 뿌연 연기가 사령관실에 퍼졌다.


사령관의 흡연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깊이 생각할 일이 있을 때나 드물게 일어나는 감정의 동요에만 꺼내 물곤 하는 것이었다. 보통은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사령관은 오늘 하루에만 네갑이 넘는 담배를 해치우고 있었다.


사령관실에 연결된 오르카호의 환기시스템이 우수한 것이 아니었다면 소방센서가 반응해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엄청난 양이었다.


그러나 사령관은 그 모든 담배를 태우는 와중에도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콘스탄챠는 사령관의 침묵이 두려웠지만 그 침묵이 깨지는 것도 두려웠다.


'뭐라고 하실까?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실까? 나를 의심하시지는 않을까? 주인님을 배신했을 거라고…'


하지만 콘스탄챠의 걱정보다는 밝은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울렸다.


"들어가봐. 푹 쉬어."


그렇게 말하는 사령관의 눈빛에는 평소보다 갑절은 더한 피로함이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네, 주인님.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공손히 허리굽혀 인사하는 콘스탄챠.


하지만 콘스탄챠가 머뭇거리며 발걸음을 돌리자 사령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만."


피우던 담배를 꽁초가 수북한 재떨이에 눌러 꺼버린 사령관은 콘스탄챠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하루동안 찌들어버린 담배냄새로도 지우지 못한 사령관의 체취가 그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콘스탄챠의 심장을 채웠다.


한동안 콘스탄챠의 머리칼을 어루만지고 허리를 감싸던 사령관은 그녀의 귀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오늘은 생각할 거리가 많았어. 네가 힘든 건 생각해주지 못했어. 많이 힘들었지? 미안해. 정말로."


사령관의 말에 콘스탄챠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말 대신 그저 눈물만이 터져나와 그 하얀 얼굴을 적셨다.


하루종일 자신을 괴롭혀왔던 불안과 사령관이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다는 안도감이 오열과 함께 터져나왔다.


콘스탄챠는 마침내 그 가혹한 시험을 버텨낸 대가를 받았다.


그리고 그 감정속에서, 사령관을 향한 사랑은 더욱 견고하고 애틋한 것이 되었다.


'함께할게요, 주인님. 영원히… 세상의 끝까지라도.'


가냘프게 떨리는 콘스탄챠의 몸을 단단히, 그러나 소중히 끌어안은 사령관은 콘스탄챠의 향기를 느끼며 조용히 그 눈을 분노로 불태웠다.


'박살을 내주마. 두번째 인간.'


-----------------------------------------------------------------------------------


분량조절 실패와 쓰는놈의 일정문제로 상중하가 아니라 번호를 붙이는 식으로 대체되었읍니다


상중하로 쓸라면 한편한편을 길게 써야 하는데 현생때문에 그게 안되그등


아마 두편정도 더 쓰면 끝나지 않을까?


항상 좋아요와 댓글 달아주시는분들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