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인간 1

두번째 인간 2

두번째 인간 3

두번째 인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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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개인실에 틀어박힌지 며칠이나 지나서야 나왔다.


매끈한 근육질이었던 몸은 야위었고 잘생기고 당당했던 얼굴은 초췌해졌다.


바이오로이드들이 남자가 두문불출하는동안 방 앞에 둔 식사를 위장이 뚫리는 듯한 허기에 조금 먹긴 했지만 뭔가를 먹는 것 자체가 지금의 남자에겐 고역이었다.


영양실조와 극도의 스트레스가 남자의 몸을 좀먹고 있었다.


가히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신경통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남자는 스스로 목을 매는 대신 방 밖으로 나오는 것을 택했다.


왜인지는 남자 본인도 몰랐다.


단지 사령관과 콘스탄챠, 두 사람의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참을 수 없는 아픔이 밀려왔다.


그리고 그 고통이 남자를 살아있게 했다.


남자는 비참한 몰골로 비척비척 걸으며 사령관실로 걸어갔다.


복도에서 그와 마주친 몇몇 바이오로이드들이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인사를 하려 했지만 눈을 희번득거리며 숨소리마저 낮게 그르릉거리는 남자의 모습에 미처 다가가지 못했다.


상관없었다. 이제 남자에게 타인의 눈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이나 다른 암컷의 환심을 사는 일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그렇게 한발자국씩 어렵사리 발걸음을 떼며 나아가던 남자의 귀에, 자신의 심경과는 전혀 다른 경쾌한 소음이 들려왔다.


남자가 신경에 거슬리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소리는 점차 화기애애하게 웃고 떠드는 여자들의 목소리로 변해갔다.


그리고 그 속에 간간히 섞인, 굵은 남자의 목소리.


남자의 다리는 소리를 따라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열린 휴게실 문의 틈 사이로 남자가 다가가 그 안을 엿보았을때, 남자는 상상한 적 없었던, 그리고 상상하고 싶지 않았던 광경을 목격했다.


사령관실에 틀어박혀 산더미같은 업무에 파묻여 있어야 했을 사령관이 바이로이드들에게 둘러싸여 처음으로 보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떠들고 있었다.


자신이 알던 철두철미하고 냉정하고 언제나 피로한 철인은 그곳에 없었다.


그곳에 있는 것은 가장 빛나던 시절의 남자라 해도 열등감과 질투심을 가질 만큼 매력적이고 잘생긴 청년이었다.


늘 눈가에 짙게 퍼져있던 시커먼 눈그늘도, 푸석푸석한 더벅머리도, 미약한 혈색의 피부도 질나쁜 거짓말 같았다.


그리고 그 옆에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콘스탄챠가 자신에게 보였던 분노과 슬픔따윈 영영 잃어버린 것 같은 미소를 지은 채 함께 이야기 하고 있었다.


순간, 남자의 위장에 쥐어짜는듯한 격통이 밀려왔다. 


헛구역질이 치솟으며 입에 강렬한 신맛이 퍼졌다.


하지만 그보다도 남자의 뇌리를 두들기는 것은 그 심장의 박동이었다.


미친듯이 뛰는 심장의 박동이 시체처럼 생기를 잃었던 사지에 피를 뿜어 보낸다. 살아갈 힘을 준다.


남자의 몸과 마음에 켜켜이 쌓여있던 열등감과 두려움, 부서진 자존심은 질투로 인해 발화해 증오가 되어 타오른다.


이제 남자는 세계의 지배자가 되지 않아도 좋았다. 마지막 인간이 되지 않아도 좋았다. 콘스탄챠의 연인이 아니어도 좋았다.


하지만 단 한가지, 남자에게 바람이 있다면, 사령관에게 한방 먹이고 싶다는 것이었다. 


저 잘난 면상이 분노로 일그러지는 것을 볼수만 있다면, 남자는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아 치울 수 있었다.


그리고 남자는 모두가 즐거워하는 와중에 혼자서 가면을 쓰고 있는 단 한명의 바이오로이드를 발견했다.


그녀에게선 자신과 같은, 썩어 문드러진 절망과 뒤틀린 애증의 냄새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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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이랑 개추박아주는 분들 감사합니다…


여러분 덕분에 제가 삽니다.


이번화는 내용을 더 붙이자니 오늘 안에 못잘것 같아서 부득이 끊습니다.